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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확신에 대한 성경적, 신학적 이해

(Biblical and Theological Understanding of the Conviction/Assurance of Salvation)

 

문제는 구원의 확신에 대해서 대부분의 성도들이 잘못 알고 있거나 혼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에 대하여 대체로 (1) 성령에 의한 구원의 확신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2) 인위적인 자신의 착각에 의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3) 아애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들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물론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들이 문제이지만, 진정한 구원의 확신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도 문제입니다. 이상구 박사님의 주장과 같이 성령으로 인하여 거듭나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구원이 보장되는 것입니다 (8:38; 살전 1:5; 10:20; 13:11; 8:16).

 

그런데 오늘날 성도들에게 있어서 구원의 확신에 대하여 성경적으로 그리고 신학적으로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지 못하여 과연 자신이 구원을 받았는가? 구원의 확신이 있는가? 의심하기도 한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부흥성회에 참석해서 강사 목사님이 "구원의 확신이 있는 사람들은 손들어보라"고 할 때에 주저주저하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참석경험에 의하면 반수 이상이 손을 들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성경이 구원의 확신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구원받았다"라고 담대하게 외쳐야 됨에도 불구하고 외치지 못하는 이유는 구원의 확신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확실히 모르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확신은 인간의 인식(지식)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감정에서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또 누구의 교육과 훈련을 통해서 깨닫게 해준다고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신학적으로 구원의 확신은 존재론적 차원과 인식론적 차원의 두 가지 차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1) 첫째로 존재론적 차원(Ontological Dimension)입니다.

이 경우에는 아직 신앙이 성숙하지 못한 상태에서 구원의 확신에 대하여 머리(지식)로 인식하지 못하게 됩니다. 다시 말하자면 구원의 확신에 대한 논리적인 확신을 갖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론적으로 이미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을 통하여 중생했기 때문에 누가 뭐래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김OO씨의 피로 출생한 사람은 누가 뭐래도 김OO의 핏줄을 타고난 그의 아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난 아이일 때에는 자기가 김OO의 아들이요, OO가 자기의 아버지인 줄을 깨닫지 못하다가 성숙해감에 따라 자기의 아버지로 인식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성령과 예수님의 물과 피로 거듭난 사람은 역시 누가 뭐래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머리로, 다시 말하자면 성경적인 논리나 신학적인 논리로, 자신이 확실히 구원을 받았는지 못 받았는지에 대한 증명을 하기가 어렵다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그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것이 아닙니다. 이미 존재론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되돌릴 수 없는 구원을 받은 존재가 된 것입니다. 사람도 자기 피로 출생한 자녀를 버릴 수 없는 것과 같이 하나님은 더욱더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는 버리지 않습니다. 십자가상에서 원죄를 해결해주셨기 때문에 구원이 완성된 것입니다. 물론 일시적인 자범죄로 인하여 징계는 받을 수 있으나 영원히 버리지 않으시는 바 이는 버릴 수 없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요일 3:6,9; 5:18).


(2) 다음으로 인식론적 차원(Epistemological Dimension)입니다.

전술한 바와 같이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구원의 확신이 그의 영혼과 마음 깊숙한 곳에 뿌리깊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물론 믿음의 초보일 때, 즉 성령으로 거듭났어도 믿음이 성숙하지 못했을 때에는 논리적으로 자신의 구원의 확신을 말하거나 증명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말해서 논리적으로 자신의 구원의 확신에 대하여 설명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 계시는 성령으로 인하여 자신이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믿는 확신이 무의식중이지만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필자도 성령으로 거듭나서 새사람이 된 후에 무언가 논리적으로 말할 수는 없었지만, 누가 뭐래도 마음속에는 나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을 경험했고, 그 후 말씀을 통하여 영적인 지식이 성장함에 따라 이제는 누가 뭐래도 담대한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주를 시인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갓난아이일 때에는 자기의 엄마나 아빠를 보고도 알아보지 못하지만, 본능적으로 믿고 의지하게 되며, 점점 자람에 따라 자기의 부모를 알아보고 '엄마" "아빠" 하고 확신 있게 부르게 됩니다. 이와 같이 인식론적인 차원에서 아직 확실하게 말로 고백하지 못한다고 해서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의 구원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결론적으로 부연하여 설명하자면, 우리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시는 순간 원론적으로 인류의 속죄가 완성되고, 개인적으로는 이를 믿을 때에 성령으로 거듭남과 동시에 구원이 확정되는 것입니다. 이 구원은 원죄(peccatum originale)를 해결함과 동시에 전후(현재를 비롯하여 과거와 미래까지)의 자범죄(peccatum actuale)에 대한 사죄를 포함하여 그리스도께서 영원히 살아계심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약속으로 구원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혹자는 신학적인 전문용어인 "이미"(already)"아직"(not yet)의 구도(frame)라는 공식에 잘 못 대입시켜서 구원이 이루어졌지만, 종말의 심판 때까지 유보되었다(reserved)가 그 때 가서 행함으로 의의 열매를 맺지 못한 사람들은 구원에서 탈락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구원은 십자가상에서 단번에 이루신 주님의 공로로 하나님께서 단번에 주신 믿음으로 말미암아 단번에 이루신 것으로 우리가 단번에 얻은 것입니다. 구원 사건은 단회적인 영적 사건이지 니고 데모가 두번 다시 모태에 들어갔다가 나와야 하느냐고 예수께 질문한 것과 같이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대답과 같이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말씀하심과 같이 중생이란 생물학적 출생(biological birth)이 아니라 영적이 중생(spiritual regeneration)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성경의 곳곳에서 성도의 행함을 강조하여 구원에 결부시키는 듯한 구절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 문제로 알미니안주의와 칼빈주의 사이에 갑론을박이 계속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인죄론에서 죄의 개념과 종류, 그리고 구원론에서 구원의 개념과 의미를 정확하게 인식한다면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원론적으로 인간의 사망은 죄로 인하여 온 것이기 때문에 이 죄를 없애야 영생한다는 원칙입니다. 그러면 이 죄란 무엇이며 어떤 종류가 있는가? 죄란 본래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으로 그 종류에는 원죄와 자범죄가 있습니다. 원죄는 우리 조상 아담이 범한 죄로 영원한 사망의 원인이 되었고, 자범죄란 우리 자신이 범한 죄로 원죄와 결부되어 있지 않는 한, 영원한 사망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그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가 있을 뿐입니다. 물론 불신자의 자범죄는 원죄와 연결되어 있고, 원죄를 해결 받지 못했기 때문에 멸망하게 되지만, 신자는 원죄를 해결 받았기 때문에 원죄로 인한 영원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고(5:24,25), 다만 자범죄에 대한 사죄는 그의 언약 속에 포함되어 있고, 자범죄에 대하여는 하나님의 보응징계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12:6~13). 단지 이 세상에서 성도들의 범죄는 징계”와 "회개"라는 방식으로 해결하며, 그들의 선행에 따라 그에 대한 상이 주어질 것이며, 불신자들은 믿지 않음으로 영생에 들어가지 못하고 멸망하게 되며, 그들의 악행에 따른 심판으로 고통이 가중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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