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둔 암환자 친구에게 키스한 꿈꾸고 보냈던 편지

by 안병선 posted Mar 14,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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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트를 한 후 전이까지 된 난소암 환자들이 낫는 것을 알게 되면서 아래 글에 나오는 내 친구가 죽기 전에 뉴스타트를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1990년대 초반에 전북 지역에서 여성운동을 함께 했던 친구가 난소암으로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그 지방 여성단체의 소식지를 보고 알게 된 후  아래 편지를 보냈었다.

그 여성은 결국 곧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사회운동을 오랫동안 해온 그 남편이 부인을 기념해 1년 후 부인이 상담했던 내용과 신문 기고문들을 모아 추모 문집을 만들어 책으로 발간해 내게 한 부를 보내주었다. 그 책을 읽은 후 감사의 전화를 그 남편에게 했더니 내게 그 남편이 관여하는 열린전북이라는 잡지에 칼럼을 써달라는 제안을 해 그 후 매달 한번씩 주로 평화운동에 관한 칼럼을 썼다. 핵시대평화재단에서 하는 일들을 주로 알렸는데 그 재단의 회장이 아주  기뻐하면서 그 잡지를 기록으로서 보관하겠다며 매달 미국으로 보내달라고 했다.

함경숙 선생님께:

안녕하세요?
전북 여성단체연합 후원회 소식지에 선생님이 환히 웃으시면서 어느 여성운동 동지와 함께 포옹하는 사진이 있었습니다. 그 곳에서 선생님이 암투병 중이시란 소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하고도 몇년전 그렇게 포옹하셨는데 어제 밤 꿈에는 제가 선생님 집으로 가 제 얼굴을 선생님 얼굴에 부비고 심지어 꼭 다문 입술 위에 제 입을 맞추기까지 하면서 제가 왔다고 인사드리며 선생님과 포옹했답니다.

몇 년 전 제가  전북 KBS TV 방송국에  여성운동과 관련하여 아침 일찍 출연하게 되었을 때 선생님 집에서 잠자고 맛있는 음식으로 차려주신 아침을 먹고 화장품까지 빌려서 바르고 방송국에 갔던 생각이 났습니다.

제가 병원에서 남편에게 폭행당한 부인을 상담한 후 전주 여성의 전화의 쉼터를 이용할 수 없을까 물어보았을 때 이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장소만 알려주면 직접 차를 운전해 그 여성을 데리러 가겠다는 말을 했을 때 참으로 감동을 받았던 일도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여성의 전화 모임에서 남편분과 함께 노래를 어찌나 잘 하시던지 그 모습이
아름다운 그림으로 제 마음에 아로 새겨졌답니다. 저는 출퇴근 길에 풀과 나무 꽃들, 또 비오는 날에는 빗방울이 동그라미를 그리며 노래부르듯이 땅에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제가 앞으로 죽어 이런 꽃과 나무와 풀을 키워내는 흙과 물로 변한다면 죽음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에 의한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발생될 것을 두려워하면서 평화운동을 하던 태도에서 벗어나 두려움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많이 줄인 상태에서  자연과 사람들과의 관계를 즐기면서 평화운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올 봄에 프랑스에 있는 플럼빌리지에 예수와 부처의 상을 같이 모셔놓고 매일 아침
두 분의 상 앞에서 향을 피운다는 베트남 출신 틱낫한 스님이 전쟁 위협에 시달리는 한반도 사람들을 위로하고자 우리나라를 찾아왔을 때 저도 국회에 가서 첫 번째 강연을 들었습니다.

우리자신을 과거와 미래로부터 해방시켜 '지금, 여기에' 마음 집중해 행복하게 살뿐 아니라 죽을 수도 있는 법을 알려주었을 때 많은 위로와 함께 전쟁과 죽음으로부터의 불안과 두려움을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그 분의 책 중 13권이 번역되어 있는데 9권을 사서 읽었습니다. 그 중 '죽음도 없이 두려움도 없이'라는 책이 있는데 이 책도 제게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남편이신 김의수 교수님께서 다행히 제 부탁을 들으시고 계좌번호를 알려주셔서 오늘 아침 돈을 조금 부쳤습니다. 선생님께서 아직 과일을 비롯한 음식을 드실 수 있다니 좋아하시는 과일이나 음식을 그 돈으로 사서 드리시기를 바란다고 했는데 그 돈 중에서 '죽음도 없이 두려움도 없이'(출판사 나무심는사람)라는 책도 사서 선생님께 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그 분이 국회에서 강연하실 때 '현재, 지금'에 마음집중하면 평안과 행복을 깨닫게 되고 그 상태가 바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왕국이고 불교에서 말하는 정토, 깨끗한 땅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 때의 강연과 책 읽은 소감, 제 생활에서의 깨달음을 글로 써서 몇군데 사이트에 올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은 제 마음 속에 아름다운 여성운동 동지로 늘 살아있을 것이란
말과 함께 그 책의 부분을 소개하고  그치겠습니다.

프랑스에 있는 제 거처에는 동백나무 숲이 있습니다. 숲은 매년 봄이 되면 아름다운
꽃들이 피는데, 어느 겨울인가는 따뜻한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숲에 가보니 한겨울이었는데도 벌써 꽃봉오리를 틔운 나무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어느날 밤, 서리가 내릴 정도로 아주 매서운 바람이 불었습니다. 나무들이 얼어붙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말이지요.

다음날 저는 행선(walking meditation)을 하면서 얼마 전 얼마 전 꽃봉오리를 틔운
나무들을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꽃봉오리들은 모두 죽어버렸습니다. 그것을 보고 저는 '새해에는 부처님 재단을 장식할 꽃들이 충분하지 않겠구나'하고 걱정했습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고 다시 날씨가 따뜻해졌습니다.
그날도 저는 홀로 숲을 거닐다가 며칠 전 꽃봉오리들이 죽어버린 동백나무 앞에
다시 섰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져 있었습니다. 나무에서 다시 새로운 꽃봉오리들이 나온 것이었습니다.

저는 반가운 마음에 꽃봉오리들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너희들은 얼마 전 서리가 내렸을 때 죽어 사라졌던 그것들과 같은 것들이냐, 아니면
다른 것들이나?"

그러자 이렇게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스님, 우리는 다르지도 같지도 않답니다. 다만, 조건이 충분해지면 나타났다가 조건이 없어지면 사라질 뿐이랍니다. 아주 간단한 이치지요."

붓다가 가르치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모든 사물은 조건이 충분하면 나타났다가 조건이 사라지면 모습을 감춥니다.
그리하여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 알맞은 순간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거지요.
비록 한겨울이었지만 따뜻한 날씨 때문에 나타났던 꽃봉오리들은 서리라는 조건이 오자 모습을 감추었다가 날이 다시 따뜻해지자 모습을 나타낸 것입니다. ......................

무가 된다는 것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두려움은 아마 죽음에 대한 것이 아닐까요. 죽으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 다시 말해 無가 된다는 두려움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의 생명이라는 것이 어머니 몸속에 잉태되는 순간이나 태어나는
순간에 시작해서 죽을 때 끝나는 간단한 생명주기를 가질 뿐이라고 믿습니다. 무에서 태어나 다시 무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소멸의 두려움으로 가득 찬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붓다께서는 다른 견해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태어남과 죽음이란 것이
단지 우리가 만들어낸 생각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태어남과 죽음이 실재한다고 믿는 것이 바로 고(苦)를 만드는 가장 강력한 착각이라고 말이지요.

붓다께서는 태어남도 없고 죽음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고,
똑같은 것도 없고 다른 것도 없고, 영원한 자아도 없고 소멸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단지 우리의 생각이 혹은 관념이 '그것들이 있다'고 할 뿐이라고 말입니다.

죽으면 소멸되어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거둘 때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이것은 커다란 위안입니다. 소멸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버릴 때 비로소 우리는 새로운 방식으로 삶을 즐기고 음미할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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