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보다 더 즐겁고 크게 성공하려면...귀중한 일을 이상구 박사처럼 하면 된다.

by 안병선 posted Mar 15,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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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보다 더 즐겁고 크게 성공하려면…

KBS 2008년 성공 강좌에서 한근태씨는 성공학 강좌에서 성공에 대한 정의를 써보자면서 다음과 같이 열거 했다.
1.        가정에서 성공
2.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되는 것
3.        시간적으로 자유로운 것
4.        직업적으로 자유로운 것
5.        기여를 잘 하는 것: 부자는 돈버는 것보다 기여하는 것에서 쾌감을 느낀다.
6.        성공이 지속적이어야 한다: 인생은 축적이다. 조금씩 쌓이면서 성공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대박 운운 하는 사람은 조심해야 한다.
7.        성공하는 사람은 생각이 다르다. 성공한 사람 중엔 낙천적인 성격인 사람들이 많다.

한근태씨는 이런 성공에 대한 정의를 계속 update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도 했는데 아래 글에 나오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귀중한 일에 참여한 그 사실에 재미와 성취가 있다”는 ‘오만한 제국’의 저자 하워드 진의 말로 update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나는 도처에서 일어나는 무서운 일들의 모든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내게 희망을 주는 사람들을 계속 마주치고 있다. 특히 미래가 달린 젊은 사람들을 마주친다. 내가 가는 곳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발견한다.... 우리는 변화 과정에 참여하기 위해서 굉장한, 영웅적인 활동에 참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작은 활동들이 수백만의 사람들에 의해 증폭될 때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 우리가 이기지 못할 때조차 우리가 가치 있는 귀중한 일에 다른 좋은 사람들과 함께 참여한 그 사실에 재미와 성취가 있다. 우리는 희망을 가질 필요가 있다. 낙천주의자는 꼭 쾌활하고, 약간 활발하고, 우리 시대의 어둠 속에서 휘파람을 부는 사람일 필요는 없다. 나쁜 시대에 희망적이라는 것이 꼭 바보처럼 로맨틱하다는 것이 아니다. 희망은 인간의 역사는 잔혹함의 역사일뿐 아니라 동정, 희생, 용기, 친절의 역사이기도 하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우리 주위에 있는 나쁜 모든 것들을 도전하면서 인간이 살아야 한다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현재를 사는 것 자체가 경이로운 승리이다.”

정신과 의사 정혜신씨는 그의 책에서 미국, 북한, 페미니즘은 거대담론이라 이런 문제들에 골몰하다보면 정신이 황폐해지지 않을 수 없어 보통 사람들이 재미없어한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이런 거대담론에 골몰하면서도 즐거웠고 경이로움을 느낄 때가 많았다. 그것은 평화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을 하는 중 훌륭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가능했다. 최근엔 뉴스타트 건강운동을 하는 이상구 박사를 만남으로써 직업에서도 더 많은 성취와 재미를 느끼게 됐다.  

  다음은 2002년 쯤에 ‘부자 되기 보다 더 좋은 사귐’이란 제목으로 작성했던 글이다.

IMF 관리체제를 지나면서 돈에 대한 평가나 욕구가 훨씬 긍정적으로 바뀐 동시에 가난에 대한 두려움이 '부자'에 대한 관심을 자연스럽게 증폭시켜 요즈음은 금융자산이 10억쯤 있어야 부자며 그런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내게 그런 돈이 없어도 부자인 듯한 느낌으로 살고 있다.

통장엔 항상 한달 월급보다 더 적은 돈 밖에 없지만 월급 날이면 내가 맨먼저 하는 일이 딸, 아들, 친정 어머니와 평화운동단체를 비롯한 사회단체들에 돈을 보내는 것이다.
그 돈을 받는 사람들이 기뻐하는 모습과 그들이 하는 사회활동이 내게 지속적인 기쁨을 주기 때문에 행복해지기 위해 나는 내 통장에 현금이 늘어나는 부자가 되는 것보다 친구들과의 연대를 선택한다.

나는 10년 전에 지금 정도의 후원금을 사회운동가들에 보냈고 몇 년 후 돈을 덜 벌 땐 액수를 줄였고 아주 못 벌 땐 못 보낸 적도 있지만 다시금 예전대로 또 후원할 수 있을 정도로 돈을 버는 사람이 됐다. 아직 건강하고 안정적인 직장이 있기 때문에 10년 전보다 훨씬 더 편안한 마음으로 다양한 사람들에게 후원하고 있는 점이 다를 뿐이다.

오마이뉴스를 통해 자주 보게 되는 평화네트워크 정욱식씨의 글,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회원들이 보내주는 국내외 평화운동 소식과 새로 상근 간사가 된 최현진씨가 보내는 움직이는 그림 카드, 내게 말지 홈페이지 디지털말의 주식을 살 것을 권유했던 김승국 기자가 가족 이외의 사람으로서 요즈음 내게 비교적 큰 기쁨을 주는 사람들이다.

또 "보수적인 노동자 계급 밑으로 최하층민, 국외자, 다른 피부색을 지닌 인종, 착취당하고 박해받는 자, 실업자와 고용불능자로 구성된 하위 계층이 존재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민주주의적 과정의 외부에 존재한다. 불관용적인 제도와 존재 조건들을 종식시키는 것이야말로 긴급하고 회피할 수 없는 요구들이라는 점을 이들의 삶이 설명해주고 있다. 자신들의 의식이 혁명적이지 않을지라도, 이들의 저항은 혁명적이다"란 말을 했던 사람에게 '스승이자 친구인 헤르베르트 마르쿠제에게'란 헌사가 붙은 '신좌파의 상상력'이란 책을 쓴 조지 카치아피카스 보스톤 앤트워스 공과대학 인문사회과학부 교수와 주고 받는 메일로 전해지는 연대로도 나는 부자가 된 것보다 더 큰 기쁨을 느낀다.

카치아피카스 교수는 New Political Science의 편집장을 맡고 있으며 정치적 변화를 연구하고 실천하는 학자들과 활동가들의 비영리조직인 <새로운 정치학을 위한 코커스> 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국제적인 연대 실천에 힘을 쏟고 있는데 2000년 광주 항쟁 2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광주 코뮨: 20년 이후]를 발표했고 지금은 한국의 사회운동에 관한 책을 준비하고 있다.
위 교수의 번역된 책 일부와 그가 보내준 [광주 항쟁에 대한 기억]이란 글을 포함한 5편의 짧은 글을 읽어보고 나는 감동을 받아 그 교수에게 돈을 보내고 싶다는 메일을 보냈다. 내가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 30대 초반의 젊은 평화운동가들의 단체인 평화네트워크에 작년에 매달 보냈던 만큼의 돈을 매달 보내고 싶다고 제의했는데 그는 내게 감사하지만 '전쟁이냐, 평화냐'라는 문제에 처해있는 한국인들이 스스로의 운명에 대한 결정력을 갖는 것이 절박하니까 그 돈이 한국에서 쓰여졌으면 좋겠다는 내용이 들어간 메일을 보내왔다.

아래는 카치아피카스 교수의 [광주항쟁에 대한 기억]의 마지막 부분이다.
"IMF, 세계 은행과 같은 지구적 지배 기구에 맞서기 위한 전선이 전지구적으로 대결을 고조시키면서 역동성을 만들고 있다. 전지구적 자본 지배 체제(IMF, 세계은행, WTO)의 선동으로 지역의 지배 계급들-동아시아와 미국 모두-은 설득을 통해 기업착취와 문화적 지배권을 유지시키는데 실패하자 강제력을 동원하고 있다. 사람들이 한 나라에서 그와 같은 독선적인 경향에 직면하면 사람들은 직관적으로 운동을 꾸리고 연대와 투쟁의 지구적 역동성을 만들어 낸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화는 세계의 가난한 노동자의 등위에 세워져 있다. 더 많은 양의 자본 집중은 세계 체제의 외곽에 놓인 수백만 민중들의 고통에 기반하고 있다. 세계화 경향은 수백만 민중들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을 강화하고 있으며 이에 반대하는 세력들간의 국제적 연합이 더욱더 필요하다. 에로스 효과가 활성화되려면 시민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수천 수백만 사람들의 행동이 필요하다.-판에 박힌 일상을 부정하고 뿌리깊은 정해진 틀을 부숴야 한다. 이 과정은 비록 하나의 작은 불씨는 될 수 있지만 작은 집단들의 의지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마치 사랑에 빠지듯 에로스 효과를 일으키는 과정은 복잡하다. 지도자가 없는 상황에서 종종 에로스 효과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만약 에로스 효과가 계속해서 활성화되었다면 우리는 마르크스가 역사 이전이라고 이름 붙였던 단계에서 인류가 처음으로 스스로를 위해 기꺼이 살고 싶은 사회 형태를 결정할 수 있는 진정한 인류사의 시기로 뛰어 넘어왔을지도 모른다.

광주 항쟁에서 우리는 그런 세상을 잠시 보았다. 1980년의 악랄한 현실에서 한국 노동자들과 학생들은 잠시나마 자유를 맛봤다. 자치정부와 시민들간 유기적 연대를 이루는 자발성을 통해 광주 사람들이 보여준 사례는 그들이 간직한 가장 중요한 유산이다. 오늘날 인류가 지닌 아직 깨닫지 못한 잠재력의 한 표상과 함께 군사독재를 무너뜨리고 다른 민주화운동을 고취시킨 점, 전략적 조직과 근본적인 변화를 위한 노동계급의 구심점에 대한 필요성을 확실하게 얻었다. 20년이 흐른 오늘에도 항쟁은 우리들에게 인류의 존엄과 투쟁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을 계속해서 일깨워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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