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유년 시절

by 장동기 posted Aug 3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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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는 유년과 청소년 시대를 한 작은 산촌에서 보내셨다.

그는 부유한 가정이나, 왕궁이나, 유명한 학자의 저택을 지나치시고,

궁벽하고 천시 받는 나사렛을 거처로 삼으셨다.

 

그분은 정신이 민활하고 통찰력이 있었으며,

나이에 비하여 생각이 깊고 지혜가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분의 품성에는 균형 잡힌 아름다움이 있었다.

정신력과 체력은 아이의 성장 법칙에 따라 점점 발달하였다.

 

예수께서는 유년의 독특한 사랑스러운 기질을 나타내셨다.

예수의 자발적인 손은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하여 언제나 준비되어 있었다.

원칙에는 반석과 같이 확고하였지만, 예수의 생애는 이기심 없는 인정을 드러내셨다.

 

예수의 어머니는 예수께서 능력을 발휘하시는 것을 매우 진지하게 주목하였으며

예수의 품성에 나타난 완전의 표적을 보게 되었다.

그녀는 기쁨으로 그 명랑하고 감수성이 많은 아이의 마음을 격려하기를 힘썼다.

그녀는 하나님만을 그의 아버지라고 주장할 수 있는 이 아이를 양육하는 일에

하늘 천사들과 협력하기 위한 지혜를 성령을 통하여 받았다.

 

그 당시 회당에서 가르치는 유대인교사(=랍비)들은 의식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다.

외양적인 것들에 열중한 학생들은 하나님과 조용히 보낼 시간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마음에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지 못하였다.

탁월한 교육이라고 생각되었던 것이 참된 향상에는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랍비들의 훈련을 받음으로 청소년들의 능력은 억압을 당하였다.

그들의 마음은 제한을 당하고 좁아졌다.

 

아이 예수는 회당의 학교에서 교육을 받지 않았다.

그분의 어머니가 최초의 인간 교사였다.

그분은 어머니와 선지자들의 두루마리(=구약성경)로부터 하늘 사물에 대하여 배우셨다.

 

1500년전 예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던 바로 그 말씀을

이제는 어머니의 무릎에 앉아서 배우셨다.

유년기에서 소년으로 자라나실 때에도 그분은 랍비의 학교를 찾지 않으셨다.

랍비로부터 얻는 교육이 그분에게는 필요하지 않았는데

이는 하나님이 바로 그분의 교사이셨기 때문이다.

 

구주의 공생애 동안에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고 한 질문은

예수께서 글을 읽으실 수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랍비의 교육을 받지 않으셨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요 7:15).

 

예수께서 랍비의 교육을 받지않고도 그처럼 성경에 정통하신 사실은

소년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부지런히 연구하셨는지를 보여 준다.

예수 앞에는 예수자신이 창조하신 작품으로 채워진 큰 도서관이 펼쳐져 있었다.

만물을 만드신 예수께서 당신의 손으로 친히 땅과 바다와 하늘에 쓰셨던 교훈을 연구하셨다.

 

그분은 세상의 방법들을 떠나서  천연계로부터 학문적 지식을 얻으셨다.

그분은 식물과 동물과 인간의 생명을 연구하셨다.

그분은 유년 시대부터 오직 한 목적에 사로잡히셨는데 곧 남을 축복하기 위하여 생애하셨다.

이 일을 할 수 있는 자원을 그분은 천연계 가운데서 발견하셨다.

식물과 동물, 생물의 생태를 연구하시는 동안

새로운 방법과 수단에 대한 생각이 마음에 번개같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분은 보이는 사물로부터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을 소개할 수 있는 예증들을 끌어내려고 끊임없이 노력하셨다.

공생애 동안 비유를 들어서 진리의 교훈을 가르치기를 좋아하신 것을 보면

그분은 천연계의 감화에 대하여 얼마나 마음 문을 열어 놓으셨으며,

일상생활의 환경으로부터 영적 교훈을 어떻게 취하셨는지를 알게 된다.

 

그와 같이 예수께서 사물의 이치를 깨달으려고 힘쓰셨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과 천연계의 깊은 뜻이 그분께 펼쳐졌다.

하늘의 천사들이 그분의 수종자였으므로 거룩한 사상과 교제를 계발시킬 수 있었다.

지성의 눈이 처음 뜨일 때부터

그분은 영적 은혜와 진리를 아는 지식 가운데서 끊임없이 자라나셨다.

 

어떤 아이든지 예수께서 지식을 얻으셨던 것처럼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늘 아버지와 친숙하게 되려고 노력할 때에

천사들은 우리에게 접근하고, 우리 마음은 연단되며 우리의 성품은 고상해지고 세련될 것이다.

우리는 더욱 우리 구주와 같아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천연계 가운데서 아름다움과 웅대함을 볼 때에

우리의 애정은 하나님을 좇아간다.

 

정신은 경외감에 젖어드는 한편

영혼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천연계를 통하여 무한하신 자와 접촉함으로 활기를 얻는다.

기도로 하나님과 교통하는 일은 지적·도덕적 기능을 계발시키며,

우리가 신령한 사물에 대한 사상을 계발시킴에 따라서 영적 능력은 굳세어진다.

 

예수의 생애는 하나님과 조화된 생애였다.

그분이 어렸을 때에는 생각과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았다.

그러나 아무런 죄의 흔적도 그분의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손상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그분께서 시험에서 면제된 것은 아니었다.

 

나사렛 사람들은 악하다는 평판이 있었다.

그들이 일반적으로 받았던 낮은 평판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요 1:46)는 나다나엘의 질문에서 엿볼 수 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품성이 시험을 받을 수 있는 환경에 처하셨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순결성을 보존하기 위하여 항상 경계하셔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분은 우리가 당하는 모든 싸움을 싸우셨으니

이는 그분이 아이 때나 청년 시대나 장년 시대에 있어서 우리에게 본이 되시기 위함이었다.

 

사단은 나사렛의 아기 예수를 정복하기 위해 지칠 줄 모르게 노력하였다.

예수님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하늘의 천사들의 보호를 받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생애는 흑암의 권세에 대항하여 싸운 긴 투쟁의 생애였다.

 

이 지상에 악의 더럽힘을 받지 않고 사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는 사실은

흑암의 왕(=사단)에게 불쾌하고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예수님을 시험에 빠뜨리기 위하여 온갖 수단을 다 썼다.

인간의 어떤 자녀도 우리 구주께서 당하셨던 것처럼

그처럼 치열한 시험과의 투쟁 속에서 거룩한 생애를 살도록 부르심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