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평서 웅크린 쪽방촌 사람들, 마음껏 팔다리 펼 수 있기를…"

by 김은자 posted Sep 2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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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흥용 목사 염원이던 체육센터 이달 말 결실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 이달 말 198㎡(약 60평) 규모의 체육센터가 들어선다. 이곳 주민 사이에 '쪽방촌 대부(代父)'로 통하는 김흥용(71) 목사가 용산 지역 2000여 세대 쪽방 주민들이 운동을 하거나 책을 읽고 영화도 볼 수 있게 만든 곳이다. 체육센터에서는 쪽방 주민들에게 배달될 밑반찬을 만들고, 휴게실에서는 무료 건강검진도 열 예정이다.

김 목사는 "냉·난방 시설이 없는 주민들은 종일 0.7평도 안 되는 방에서 웅크리면서 더위와 추위를 난다"며 "그래서 당뇨와 고혈압 같은 질병도 많고 안타까운 사고도 많이 생긴다"고 말했다. 그런 주민들이 눈치 보지 않고 체육센터에 가서 휴식하고, 운동을 하며 건강관리를 할 수 있게 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 지난 13일 오후 서울 용산구 동자동 지하 쪽방에서 김흥용(71) 목사가 한 주민을 위로하고 있다. 김 목사는 쪽방촌을 돌아다니며 주민들의 근심거리를 종이에 적고 해결책을 찾으러 다닌다.

김 목사는 3년 전부터 체육센터 건립을 추진해 왔지만 후원이 없어서 번번이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김 목사도 부인(71)이 서울역 앞 좌판에서 음료수를 팔아 생계를 꾸리는 터라 자비(自費)로 해결할 수도 없었다. 그러다 올해 서울시가 7000만원을 지원해 건물 지하 공간을 빌릴 수 있게 해줬다. 교회 후원을 받아 바닥 공사는 끝냈지만, 아직 운동기구는 갖춰지지 않았다. 김 목사는 "당장은 집에 있는 자전거형 운동기구를 가져다 놓고 시작할 계획"이라고 했다.

김 목사는 지난 1997년 서울역 앞에 '나사로의 집'을 만들어 쪽방 봉사를 해왔다. 김 목사도 과거 직업 없이 걸인으로 살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김 목사는 목욕탕에 갔다가 '더럽다'는 이유로 쫓겨났던 경험이 있다. 그 설움을 기억하며 서울역 앞 걸인들을 씻겨주는 일을 했다. 김 목사는 "IMF 이후 노숙인이 많아지면서 노숙인이 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을 돌보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000년 '나사로의 집'에 정부가 지원하는 남대문 노숙인 상담센터가 문을 열었고, 이듬해 용산 상담센터가 생겼다. 김 목사가 '나눔의 쌀독', '도배봉사', '쪽방 목욕탕' 등 다양한 후원 사업과, '300만원 적금 들기' 같은 자활(自活) 사업을 전개했다. 그러는 사이 쪽방촌에서 서울대 합격생이 나왔고 쪽방에서 살며 자식을 검사로 만든 부부도 생겼다.

김 목사는 이 체육센터가 '쪽방 주민들을 위한 마지막 선물'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신장이 나빠서 1980년 왼쪽 신장을 떼냈고 1981년엔 오른쪽 신장 3분의 1을 잘라냈다. 2005년에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거동과 언어가 불편해졌고, 지난 3월 위암으로 위를 제거해 몸무게가 17㎏이나 줄었다. 김 목사가 가끔 "몸이 너무 아파 죽고 싶다"고 말하면 그의 부인은 "평생 월급 한번 갖다주지 않고 그렇게 고생시켰으면서 그냥 죽으면 어떡하느냐. 죽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말한다고 한다.

김 목사는 아직도 그런 몸을 이끌고 매일 쪽방을 돌아다닌다. 주민들 요구사항을 모아 도와줄 방법을 찾기 위해서다. 김 목사는 "내가 아프다는 걸 알면서도 내게 도움을 청할 정도로 절박한 이 사람들이 있는 한 이곳을 떠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영민 기자 ymlee@chosun.com

조선일보 : 2010.09.27

이 기사를 읽는 즉시 이박사님의 강의를 이곳 사람들과 김 목사님이 듣는다면 이곳에 하나님의 은혜의 치유가 많이 일어나는 광경이 그려졌습니다.

그런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도하며,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