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트 가족 여러분께 드리는 복음적 답변]
― 부자는 모두 악인인가? 바늘구멍의 복음적 진실
사랑하는 뉴스타트 가족 여러분,
마태복음 19장 24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이 구절은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주며, 때로는 경멸의 눈초리로 '부자'들을 바라보게 만들기도 합니다. 어떤 이들은 이 말씀을 단순히 '부자는 모두 악하다'는 선언으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그런 단편적인 선언이 아니라, 복음의 가장 깊은 심연에서 울려 나오는, 우리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경고입니다.
예수께서는 "부자"를 악인이라 정죄하신 것이 아니라, 재물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인간의 마음을 포박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외면하게 만드는지를 고발하신 것입니다. 낙타는 고대 중동에서 가장 크고 힘센 짐승이었고, 바늘구멍은 가장 작고 가느다란 통로의 상징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과장된 비유를 통해, "사람의 마음이 물질에 묶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아무리 가까워도 들어갈 수 없게 된다"는 진리를 강력하게 드러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유한 사람을 미워하신 적이 없습니다. 도리어 그분의 무덤은 부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제공했고(마 27:57–60), 삭개오라는 부유한 세리장의 집에도 기꺼이 들어가셨으며(눅 19장), 부자라고 다 악하다는 인식은 복음의 정신이 아닙니다. 문제는 재물이 사람의 주인이 되는 순간, 하나님은 더 이상 그 영혼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부자는 악인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재물과 성공에 의지하는 사람은, 자신의 심령을 하나님께 의탁할 수 없기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매우 어렵다’고 주님은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경고는 재물을 소유하는 것에 대한 경고가 아니라, 재물이 우리의 마음을 소유해버리는 비극에 대한 경고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말씀을 복음적으로 이해하고 적용해야 할까요?
첫째, 이 말씀은 가난한 자를 높이려는 사회주의적 언설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탐심의 실체를 폭로하는 신적 통찰입니다.
부자든 가난하든, 마음이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한다면, 모두 같은 영적 위험에 놓여 있습니다.
둘째, 이 말씀은 '예수님을 따름'을 ‘무소유’가 아니라 ‘전심’으로 재정의합니다.
예수님은 부자 청년에게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하신 후, “그리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소유 자체가 아니라, 예수를 따르는 데 방해되는 소유였던 것입니다.
셋째, 이 말씀은 복음을 향한 절망이 아니라 소망의 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마 19:26)
즉,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로 그 바늘구멍을 통과할 수 없지만, 십자가의 은혜와 성령의 능력으로는, 가장 크고 무거운 낙타도, 영혼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늘구멍은 좁고 작고 아픕니다. 그러나 그 문은 좁지만, 그 안에는 넓은 은혜의 나라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부유함이 죄가 아니라, 복음을 가로막는 자기 의존이 죄입니다.
빈손으로 십자가를 붙들 수 있는 사람이라면, 부자이든 가난한 자이든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뉴스타트 가족 여러분,
우리는 바늘구멍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주 앞에 내려놓고, 오직 예수만 붙든다면, 그 바늘구멍은 오히려 부활로 이어지는 생명의 문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부자에게 말씀하신 진짜 복음입니다.
그 복음 앞에서 우리 모두가 다시 한 번 무릎 꿇고 고백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 제 마음의 주인은 재물이 아니라 당신입니다.”
그 고백이 있는 심령은 결코 바늘구멍에 갇히지 않을 것입니다.
십자가는 우리 모두를 통과시키는 하늘의 문입니다.
당신이 부자이든, 가난하든.
당신이 지금 어떤 자리에 있든.
그분의 사랑은 당신을 초대합니다.
“바늘구멍 너머, 하나님 나라로 오라.”
<부요함 속에 숨은 하나님의 초대 – 기도문>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저희를 부르시는 당신의 부드러운 음성 앞에 나아갑니다.
바늘구멍보다도 좁은 길로 저희를 부르시는 이유가, 우리를 거절하려 하심이 아니라
가장 크고 깊은 당신의 품으로 이끌려 하심임을 믿습니다.
아버지, 저희는 종종 부요함 속에 평안을 찾고,
소유의 많고 적음을 당신의 축복과 진노로 오해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압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그 말씀이,
재물의 유무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무엇을 붙잡고 있는지를 묻고 계셨음을…
주님, 우리에게 있어서 재물은 자주 안전의 이름이었고,
명예의 이름이었고,
당신 없는 평안을 대신하는 가짜 복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를 얼마나 조용히, 그러나 깊이 병들게 했는지 이제야 보입니다.
주님, 오늘 우리가 가진 것들보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더 귀하게 여기게 하소서.
바늘구멍을 지나게 하소서,
우리의 탐심과 교만, 비교와 불안을 내려놓고,
십자가의 좁은 문으로 기어이 들어가게 하소서.
아버지, 우리가 낙타처럼 크고 무겁게 살아왔다면,
이제는 예수님처럼 가볍고 겸손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가진 것에서 구원을 찾지 않고,
모든 것을 버려서라도 주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자가 되게 하소서.
혹 우리 중에 부유한 자가 있다면,
그가 자신의 부요를 당신의 나라에 맡겨,
사랑과 생명, 회복과 구원의 도구로 쓰임 받게 하소서.
또한 가난한 자가 있다면,
그가 자신의 삶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하늘의 상속자요 영원한 부요를 유업으로 받은 자임을 깨닫게 하소서.
예수님, 당신은 가장 부요하신 분이셨으나,
우리를 위해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그 십자가의 사랑 앞에서 오늘도 우리를 다시 불러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는 주님 한 분이면 충분합니다.
주님, 우리의 전부가 되어 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아버지께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