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0:1-11
[1] 나는 또 힘 센 다른 천사가 구름에 싸여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의 머리 위에는 무지개가 있고 그의 얼굴은 해와 같았으며 발은 불기둥과 같았습니다.[2] 그는 작은 두루마리를 들고 있었는데, 그 두루마리는 열린 채로 그의 손에 들려 있었습니다. 그는 오른발로는 바다를, 왼발로는 땅을 딛고 서 있었습니다. [3] 그가 사자의 울부짖음 같은 소리로 크게 부르짖었습니다. 그가 부르짖자 일곱 천둥의 목소리가 말하였습니다. [4] 일곱 천둥이 말할 때에, 내가 받아 적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어떤 목소리가 “일곱 천둥이 말하는 것을 비밀로 하여 두어라. 그것들을 적지 말아라.” 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5] 그러고 나서 내가 본 천사, 곧 바다와 땅을 딛고 서 있는 천사가 하늘을 향해 오른손을 들었습니다. [6] 천사는 하늘과 하늘에 있는 모든 것, 땅과 땅에 있는 모든 것, 바다와 바다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시는 그분의 권능을 힘입어 이렇게 맹세하였습니다. “더는 늦어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 [7]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부는 날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 예언자들에게 선포하신 대로, 하나님의 감추어진 계획이 이루어질 것이다.” [8] 그때에 내가 하늘에서 들려오는 것을 들었던 그 목소리가 다시 내게 말하였습니다. “너는 가서, 바다와 땅을 딛고 서 있는 천사의 손에 열린 채 들려 있는 두루마리를 받아라.” [9] 그래서 나는 그 천사에게 가서 작은 두루마리를 내게 달라고 하였습니다. 천사가 내게 말하였습니다. “이것을 받아서 먹어라. 그것이 네 입에서는 꿀처럼 달 것이다. 그러나 네 뱃속을 쓰리게 할 것이다.” [10] 나는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받아서 먹었습니다. 두루마리는 입에서는 꿀처럼 달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먹고 나니 뱃속이 쓰렸습니다. [11] 그때에 내가 “너는 여러 백성과 민족과 언어와 왕에 관하여 다시 예언하여야 한다.” 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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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펴놓인 작은책, 십자가 없는 예언 해석의 비극” ―
사랑하는 목사님께,
요한계시록 제23강에서 전하신 ‘펴놓인 작은책’ 강의를 경청하며, 목사님의 성경 연구에 대한 열정과 시대적 진지함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계시록 10장은 분명히 경건한 떨림으로 접근해야 할 깊이 있는 본문이며, 목사님께서 이 본문을 단순한 상징 이상의 메시지로 풀어내려 하신 노력은 귀하게 여겨 마땅합니다.
그러나 저는 본 강의가 복음 없이 예언을 해석할 때 나타나는 신학적 위험과 깊은 신앙적 오해를 선명하게 드러냈다고 느꼈습니다. 이 편지를 통해, 그 구조적 오류를 복음의 빛으로 비추어 보고자 합니다. 목사님의 진심을 믿기에, 저 역시 진심으로 이 글을 드립니다.
1. “펴놓인 작은책” – 그리스도가 아니라 다니엘서를 중심에 세우신 오류
계시록 10장의 핵심은 “힘센 천사”가 손에 들고 있는 “펴놓인 작은책”에 있습니다. 목사님은 이 책이 다니엘서라고 명확히 주장하시며, 계시록 10장은 “2300주야 예언의 봉인이 해제되는 장면”이라고 해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절정은 1844년 10월 22일에 있다고 보셨습니다.
하지만 계시록 10장은 어디에서도 “그 책”이 다니엘서라고 명시하지 않습니다. 이 장면의 중심은 책이 아니라, 책을 들고 나타난 힘센 천사,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의 얼굴은 해 같고, 발은 불기둥 같으며, 머리 위에 무지개를 두르셨습니다. 그분은 구름을 입고 내려오셨고, 바다와 땅을 밟고 계십니다. 이는 전형적인 구속자 메시아의 영광스러운 재현입니다(계 1:13–15, 단 7:13).
하지만 목사님의 강의는 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임재를 예언 해석의 수단으로 전락시켰고, 그 손에 들린 책을 “다니엘서”라는 도식 안에 가두어 복음의 중심성을 제거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언 해석의 자가당착이며, 그리스도의 계시를 인간의 해석 틀 속에 가두는 것입니다.
정말로 계시록 10장이 말하려는 것은 “작은 책이 무슨 책인가?”가 아니라,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주님이 온 세상을 향해 권세 있게 외치시는 복음의 선포입니다. “다시 예언하라”는 명령도 어떤 특정 교단의 정체성을 확증하기 위한 명령이 아니라, 죽음을 이기신 어린양의 복음이 온 땅에 다시 울려 퍼져야 한다는 십자가 중심의 선포인 것입니다.
2. “달고 쓴 책” – 진정한 쓰라림은 예언의 실패가 아니라 십자가의 도
목사님은 계시록 10장의 “입에는 꿀 같고, 배에서는 쓰다”는 이중적 경험을 1844년 재림운동의 “대실망” 사건으로 해석하셨습니다. 처음에는 2300주야의 예언이 꿀처럼 달았고, 예수께서 오시지 않음으로 쓰라림을 경험했다는 논지입니다.
하지만 목사님의 이 해석은 예언을 오해한 실망조차 하나님의 섭리로 합리화하려는 위험한 신학입니다. 그 쓰라림은 회개가 아니라 교단적 정당성을 찾는 이념으로 변질되었고, 결국 하늘 지성소라는 이차적 교리를 통해 실망을 보완하려는 인간의 사상적 노력으로 이어졌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진짜 쓰라림은 복음이 실패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복음이 선포될 때, 그 복음이 인간의 자아와 자부심과 종교적 시스템을 파괴하기에 쓰라린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주의 말씀을 먹고 기뻐했지만(렘 15:16), 동시에 그 말씀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조롱을 받고 외면받았습니다(렘 20:8–9). 복음은 달지만, 그 복음을 온전히 삼키면 반드시 십자가의 고통과 자기부인의 길로 들어서야 하기 때문에 쓰라립니다. 계시록 10장의 “쓴 배”는 예언의 해석이 틀려서가 아니라, 복음을 선포하는 이들이 그 복음으로 인해 고난당하고 핍박받는 십자가의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쓰라린 것입니다.
따라서 계시록 10장의 핵심은 "예언의 성공 여부"가 아니라, 복음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전하는 자에게 반드시 따르는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의 소망입니다.
3. “다시 예언하라” – 교단적 사명인가, 복음의 재선포인가
목사님은 “다시 예언하라”는 계시록 10:11의 명령을, 재림교회의 존재론적 사명으로 해석하셨습니다. 심지어 이 구절을 기점으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계시록에 예언된 유일한 교회”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신학적 과잉 해석이자, 교단 중심주의라는 심각한 신앙적 편향입니다.
계시록 10장에서 “다시 예언하라”는 명령은 한 특정 교파가 다시 전해야 할 예언 해석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이미 완성된 하나님의 비밀(복음, 계 10:7)을 모든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선포하라는 복음적 요청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은 단순한 미래의 사건표가 아닙니다. 바울은 이 “하나님의 비밀”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이 통일되는 복음의 계획이라고 분명히 선언했습니다(엡 1:9–10). 그리고 그 비밀은 “영원부터 감추었던 복음”, 즉 십자가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의 절정이라고 말합니다(골 1:26–27).
그렇다면 “다시 예언하라”는 말씀은 세상 끝날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다시, 그리고 다시, 그리고 또다시 전하라는 부르심이지, 1844년을 기준으로 특정 교단만이 전해야 할 특별 지식을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복음을 “다시” 예언하는 사명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던 세상을 향해, 그 죄인을 사랑하신 그분의 눈물과 죽음과 부활을 다시 말하는 것입니다.
4. 다시 예언하라는 명령 – 교단적 사명인가, 복음의 외침인가
목사님은 계시록 10장의 결말인 “다시 예언하라”는 말씀을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성립 근거로 삼으셨습니다. 강의 후반부는 거의 대부분 이 교단이 각 시대 종교개혁 전통을 통합해 탄생한 유일한 진리 교회라는 선언으로 채워졌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당신의 교회를 제도나 역사로 정당화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 요한복음 13:35
“다시 예언하라”는 말은 교단을 옹호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복음을 다시 말하라는 외침이며,
하나님의 사랑이 여전히 살아 있으며, 아직 그 사랑을 듣지 못한 이들에게 다시 전하라는 요청입니다.
복음은 특정 교파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복음은 보혈로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민족과 언어와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전능한 사랑의 선언입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다시 예언하라”는 부르심은 오늘도 우리 모두를 향한 초청입니다.
결론 – 복음의 중심으로 다시 돌아오십시오
목사님, 계시록 10장은 “다니엘서의 예언이 풀리는 장면”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권세 있게 복음을 선포하시며, 모든 세대에게 그 사랑을 다시 외치라고 부르시는 복음의 재출발점입니다.
* “펼쳐진 작은 책”은 그리스도 자신이며,
* “입에 단 꿀”은 복음의 감격이며,
* “배의 쓰라림”은 그 복음을 따라 살아야 할 고난의 현실이며,
* “다시 예언하라”는 명령은, 어떤 교단도 아닌,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다시 세상에 전하라는 부르심입니다.
다니엘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 돌아가야 합니다.
예언이 아니라, 복음으로 다시 서야 합니다.
1844년이 아니라, 갈보리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고, 거기서 모든 것이 완성되었습니다.
이 복음의 중심이 목사님의 강의에도, 저와 목사님의 삶에도 다시 살아나길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주님의 은혜 안에서,
십자가의 복음을 사랑하는 한 신앙인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