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교회가 많은데도 왜 범죄와 사회 문제가 많은가?

by 벚꽃향기 posted Jul 0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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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교회가 많은데도 왜 범죄와 사회 문제가 많은가?”
― 십자가가 없는 교회는 세상의 거울일 뿐입니다 


뉴스타트 가족 여러분께,

이 질문은 너무도 무겁고 아프며,
동시에 한국교회 전체를 향해
심장을 찌르는 듯한 고발이자 자성의 소리입니다.

왜 한국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교회 밀집 국가이면서도,
사회 부패, 청소년 범죄, 성범죄, 자살률, 가정 파괴와 같은
정신적·도덕적 붕괴 현상이 동반 상승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는 단순히 신자 수의 문제도,
교회 건물의 개수나 헌금 액수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 질문은 교회의 본질,
복음의 진짜 정체를 묻는 질문입니다.


Ⅰ. 교회가 많다는 것이 곧 복음이 있다는 뜻이 아니다

먼저 직시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세우셨지만, 교회 건물을 세우시지는 않으셨습니다.

“교회”란 예수의 사랑을 본받은 ‘살아 있는 공동체’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교회들은
복음의 십자가를 제거한 종교적 시스템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사랑하시되,
외식하는 종교인을 향해 이렇게 외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자기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는 자도 막는도다.”
(마태복음 23:13)


십자가가 제거된 채,
교회가 권력, 체제, 도덕, 돈, 숫자 중심이 될 때,
그곳은 ‘종교’일 수는 있어도,
예수의 교회는 아닙니다.


Ⅱ. 십자가 없는 교회는 복음을 배반한다

진짜 복음은 사람의 중심을 뒤흔듭니다.

사람을 변화시키고,

욕망을 깨뜨리고,

사랑을 심고,

공감과 용서를 일으키며,

진실로 죄를 미워하고,

철저히 자기부인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수많은 교회는 이 복음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성공의 복음, 복 받는 도구로서의 신앙,
윤리적 자격을 갖춘 엘리트 기독교인의 모습을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많지만,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는 사라졌습니다.

그 결과,

교회는 인간 욕망의 종교적 포장지가 되었고,

복음은 행복한 삶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으며,

성도들은 회개 대신 자긍심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Ⅲ. 예수를 따르기보다 예수의 이름을 이용하려 했기 때문

한국교회는 성장했지만,
그 성장은 대부분 ‘십자가형’이 아닌 ‘제도형’이었습니다.
즉,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신앙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하여 나를 부풀리는 방식’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낮은 곳으로 내려가셨고,

사람들은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 했으며,

예수는 죄인을 위해 울었고,

많은 교회는 죄인을 정죄하며 자부심을 세웠습니다.


그리하여,
교회는 많아졌으나,
십자가를 전하는 자는 줄어들었고,
진짜 예수의 마음을 가진 신자는 드물어졌습니다.


Ⅳ. 하나님 나라가 교회 안에서조차 실종된 이유

예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는
단순히 사후에 가는 천국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서부터 하나님의 다스림과 사랑이 시작되는 삶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현재의 현실과 분리시키고,

신앙을 윤리적 안전지대로 만들었으며,

죄인을 끌어안기보다는
제도와 권위로 구획 짓는 경계선이 되었습니다.


결국,
교회는 ‘빛’이 아니라,
세상의 그림자를 그대로 반영하는 ‘거울’이 되었고,
세상은 교회를 비웃기 시작했습니다.

“너희가 세상의 빛이라.”
(마 5:14)
그 빛이 꺼졌을 때,
세상은 더 이상 교회를 통해 하나님을 보지 못합니다.


Ⅴ. 예수님의 교회는 언제나 소수였다 – 숫자가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다

성경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제자들은 단 12명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던 제자들도 겨우 120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복음의 불씨를 품은 사람들이었고,
세상은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 뒤집혔습니다.

오늘 한국에는 수천만의 기독교인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중에 진짜 예수님의 사랑을 자기 십자가로 품은 자는 몇이나 될까요?

교회는 ‘많아 보이지만’,

복음은 ‘적게 들리고’,

십자가는 ‘거의 보이지 않는’
이 기이한 현상이 오늘날 한국의 영적 풍경입니다.


Ⅵ. 진짜 교회는 어디 있는가? — 고통받는 자 곁에 계신 예수처럼

예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보다 소외된 자와 세리의 집을 찾으셨고,

바리새인들의 설교보다 눈물 흘리는 여인의 고백을 들으셨으며,

율법을 지키는 자보다 사랑하는 자를 찾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진짜 교회는 어디에 있어야 합니까?

정답은 명확합니다:
세상의 눈물이 흐르는 곳,
사람의 상처가 피를 흘리는 그 자리,
정죄가 아닌 용서가 필요한 그 땅 위에
예수의 십자가가 다시 세워져야 합니다.

교회가 다시 교회 되려면,
그 어떤 윤리 교육이나 법률 감시보다 먼저,
복음이 심장을 뚫고 들어와야 합니다.


Ⅶ. 사랑이 없는 신앙은 ‘종교’일 뿐이다

예수님은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한복음 13:35)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가 한국 교회를 통해
예수님의 ‘제자다움’을 보았습니까?

교회는 성도 수를 자랑했지만,
그 안에서 진심으로 용서하고 안아주는 사랑은 적었습니다.

교회는 부흥을 말했지만,
그 안에서 가난한 자를 돌보는 눈물은 말랐습니다.


사랑 없는 신앙은 복음의 모독입니다.
용서 없는 교회는 십자가의 반역입니다.
우리가 이 진리를 외면할수록,
세상은 복음이 아니라 위선을 보게 됩니다.


Ⅷ. 그러나 교회는 끝나지 않았다 – 희망은 십자가 안에 있다

복음의 기적은,
죽음 이후에도 생명을 일으키는 사랑입니다.

비록 한국의 많은 교회들이 껍데기만 남은 채 무너지고 있어도,

여전히 예수님의 마음을 품은 소수의 제자들은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하나님은 다시 한국 땅에 생명의 복음, 사랑의 나라를 회복시킬 것입니다.


그 시작은 언제나
“십자가로 돌아오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20)


이 고백이 살아나는 교회에서,
한국의 부패는 꺾이고,
사회는 다시 치유받을 것입니다.


결론 – 십자가 없는 교회는 반드시 무너진다. 그러나…

사랑하는 뉴스타트 가족 여러분,
오늘 우리가 신앙을 가진 이유는 예수님 때문이지,
교회 제도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교회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 안에서 예수의 눈물을 보기 때문이지,
예배당이 크기 때문이 아닙니다.

교회가 많아도
예수가 없으면 교회는 없습니다.

그러나 단 한 명이라도
십자가의 예수를 마음에 품은 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한국 사회를 바꿀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십자가는 무너진 교회를 일으킬 유일한 희망이며,
복음은 이 나라의 마지막 대답입니다.

눈물로 복음을 붙잡는 이들 안에서,
한국교회는 다시 시작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
세상은 다시
‘교회를 통해 하나님을 보기’ 시작할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