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착하게 살아야 하는가?

by 벚꽃향기 posted Jul 08, 2025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왜 착하게 살아야 하는가? 영악하게, 실리만 쫓는 삶의 유혹 앞에서 
십자가가 말하는 바는 무엇인가?”


뉴스타트 가족 여러분께,

이 질문은 오늘날 우리가 겪는 삶의 복잡한 딜레마를 명확하게 드러냅니다.
많은 사람들이 착하게 살아가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 나만 손해를 보며 법을 지켜야 하나?”
“왜 나만 바보처럼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고 살며,
내 유익을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가?”

이 질문은 단순히 ‘착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제시하신 삶의 원리를 우리가 왜 따라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그리고 그 답은 단순히 ‘도덕적 의무’나 ‘사회적 규범’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부터 비롯됩니다.


I. ‘영악하게’ 사는 것이 정말 ‘현명한’ 것인가?

먼저, 영악하게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때로는 생존의 본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러한 자기중심적인 삶을 ‘자기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 (마태복음 22:39)


이는 단순히 법적으로 의무를 다하는 것을 넘어서,
‘자기 이익’과 ‘타인의 이익’을 동일시하라는 말씀입니다.
자기 이익을 쫓는 것이 자연스럽고 현명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영악함은 결국 자기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삶의 결과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이기적인 자는 결국 자기 자신을 해친다.” (잠언 18:1)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자는 결국 남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기적이고 영악한 삶은 우리에게 진정한 평화와 기쁨을 가져다주지 않습니다.


II. ‘착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 –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삶

복음은 우리가 타인의 유익을 위해 살아야 하는 이유를 하나님의 본성에 뿌리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분은 인간을 위한 자기 부인과 희생을 삶의 모델로 보여주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한복음 13:34)고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은 자기 유익을 위해 살지 않으셨고,
자기 희생과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착하게 살라’는 의무적 요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격하여,
자신의 삶을 남을 위한 희생으로 바꾸는 삶입니다.


III. 십자가와 복음 – 손해를 보는 삶의 의미

이제, ‘손해를 보면서도 착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십자가의 관점에서 보겠습니다.

십자가는 “손해를 보며 살아야 하는 이유”를 정의하는 최고의 예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전능한 능력을 다 내려놓고,
자기 의로움을 다 비워 인류를 위한 희생의 길을 가셨습니다.
그분은 이 땅에서 고통과 수치를 받으시며,
우리를 위한 죄값을 치르셨습니다.

예수님의 고백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 15:12)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손해 보는 삶”을 끝까지 사셨습니다.
그러나 그 ‘손해 보는 삶’은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이루었고,
결국 모든 인류에게 생명과 구속을 가져왔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따를 때, ‘손해’를 보는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복음은 항상 ‘자기를 부인’하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손해는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약속된 생명의 관으로 이어지는 좁은 길임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IV. 손해를 보면서 살아가는 ‘영적 유익’의 복음

하나님 나라의 법은 세상 법과는 다릅니다.
세상의 법은 자기 유익을 추구하고,
자기만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남을 섬기고, 희생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입니다.

예수님은 말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마태복음 16:24)


십자가를 지는 것처럼 보이는 삶이 사실은 진정한 자유와 평안을 누리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그 길을 통해 진정한 “하늘의 상급”을 준비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법에 따라,
우리는 ‘손해를 보며 살지라도’
그 안에서 얻는 ‘영적 유익’을 믿음으로 취할 수 있습니다.


뉴스타트 가족 여러분,

우리가 착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는 단지 도덕적 의무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그 사랑을 나누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은 우리가 ‘손해를 보더라도’,
하나님의 나라와 영원한 상급을 바라보며
기쁨으로 따라갈 수 있는 길임을 우리 모두 기억해야 합니다


V. ‘영악하게 살아야 현명하다’는 거짓 신화

많은 이들이 말합니다.
“착하게만 살면 바보된다.”
“영악해야 살아남는다.”
“자기를 먼저 챙겨야지, 누가 나를 챙겨주나?”

이 말들은 일견 현실적인 것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 세대의 지혜는 하나님 앞에서 어리석음이다”라고 선언합니다.
(고린도전서 3:19)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세상의 지혜는 ‘자기 유익’을 중심으로 움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는 ‘사랑과 관계’를 중심으로 움직입니다.


사람의 영혼은 ‘이익’으로 만족되지 않습니다.
물질의 풍요, 영악한 전략, 순간의 승리로는
사람의 내면에 있는 공허, 죄책, 갈망, 관계의 파괴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의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나의 유익을 넘어서 타인의 유익을 위할 때 가장 완성됩니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영혼을 잃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마가복음 8:36)


착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는,
그 길이야말로 인간의 존재 이유와 가장 맞닿아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VI. 악을 행하며 얻는 ‘실리’는 결국 사라진다

“나는 남을 속여서 이익을 챙겼고,
법을 피해 교묘히 살고 있으며,
착한 사람들보다 훨씬 잘 살고 있다.”

이 말은 잠시 가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엄중하게 말합니다:

“악인은 풀처럼 자라고 모든 행악자는 꽃피우지만,
결국 영원히 멸망되리로다.” (시편 92:7)


반면에,
의인은 눈물로 씨를 뿌리더라도 결국 기쁨으로 거두게 될 것입니다.
(시편 126:5)

손해 보는 것 같아 보이는 착한 삶,
눈물 나도록 외롭고 억울한 그 길이,
하나님 앞에서는 영광스러운 길로 해석됩니다.


VII. 착하게 사는 삶의 복음 – 그것이 곧 ‘하나님의 성품’이다

왜 착하게 살아야 합니까?
왜냐하면 하나님이 착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거짓이 없고, 속이지 않으며,
언제나 자비롭고 공의로우신 분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기 아들의 모습을 닮으라고 초대하십니다. (로마서 8:29)

복음은 단지 죄사함을 받는 사건이 아닙니다.
복음은 우리를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게 하는 새 삶의 초대입니다.
복음은 우리를 새로운 사람으로 창조하고,
그리스도처럼 온유하고 진실하며, 착하고 용서하는 자로 만들어 갑니다.

그러니 ‘착하게 산다’는 것은 복음의 열매입니다.
우리는 구원받기 위해 착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았기 때문에, 착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VIII. 착한 삶은 결코 헛되지 않다 – 십자가와 부활의 약속

예수님은 이 땅에서 ‘영악함’과는 가장 먼 분이셨습니다.
그분은 끝까지 손해 보셨고, 끝까지 참으셨으며,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길 끝에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분은 온갖 수치, 모욕, 고통을 다 당하시며
“왜 나만 손해를 봐야 합니까?”라는 외침 없이,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누가복음 23:34)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착한 삶, 그 손해 보는 삶은
부활의 영광으로 열매 맺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땅에서 ‘착한 자’로 산다는 것은,
종종 십자가를 지는 삶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약속하십니다: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않으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라디아서 6:9)


착하게 살아가는 삶은
하나님의 마음을 드러내는 삶이며,
사람을 살리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됩니다.

그리고 언젠가 그 모든 착한 눈물과 희생을
하늘의 왕이 기억하시고 보상해주실 날이 옵니다.


맺는말 – 당신은 결코 바보가 아닙니다

뉴스타트 가족 여러분,
혹시 이 글을 보며 이렇게 생각하실지도 모릅니다.

“나는 늘 손해만 보고, 늘 착하게만 살았는데,
왜 더 억울한 일만 생기지?”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당신은 결코 바보가 아닙니다.
당신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며,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입니다.

이 땅에서의 모든 ‘손해’는
하늘나라에서의 ‘영광의 보상’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삶이,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이 땅에 뿌리는 참된 지혜자의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