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마음은 십계명보다 더 깊다>
목사님께,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목사님과 교회의 모든 성도들 위에 충만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저는 이름 없는 한 평신도입니다. 주님의 계명을 사랑하고, 진리를 갈망하며,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 이 시대의 혼란 속에서 더욱 또렷하게 드러나기를 소원하는 사람입니다.
목사님의 「그리스도인이 십계명을 지킬 수 있는가」라는 설교 말씀을 경청하며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품었습니다. 시대가 갈수록 도덕이 희미해지고, 신앙이 느슨해지는 이때에 하나님의 거룩함과 계명의 중요성을 외치시는 그 음성은 참으로 값지고 귀한 줄 압니다. 다만, 한 평신도의 작은 신학적 질문으로, 그리고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자기희생적 사랑을 통해 말씀을 재해석하려는 신학을 따르는 사람으로서 몇 가지 신중한 반론을 드리고자 합니다.
1. 십계명은 하나님의 본질인가요, 아니면 죄 가운데 있는 인간을 위한 임시적 계시인가요?
목사님께서는 십계명을 하나님의 “보좌의 기초”요, “그분의 존재 자체와 연결된 법”이라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성경 전체,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중심으로 볼 때, 십계명은 하나님의 본질을 드러내는 최종 계시가 아니라, 죄로 인한 인간의 상태에 따라 '허용된 계시'였다고 생각합니다.
율법, 특히 십계명을 포함한 구약의 규례들은 하나님의 완전한 의도를 드러낸 계시가 아니라, 죄 많은 인간과 소통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사랑이 자기 자신을 제한하신 방식으로 봅니다. 십자가 위에서 자기 원수를 위해 기도하시며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하나님의 본성 자체를 계시한 유일하고 완전한 모습이기에, 율법조차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해석되어야 합니다.
즉, 십계명은 그 자체로 영원불변한 본질이 아니라, 사랑의 하나님께서 폭력적이고 질서 없는 사회를 최소한의 기준으로 다스리시기 위해 주신 문화적, 임시적 장치라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은 십계명을 강화하셨나요, 아니면 초월하셨나요?
목사님은 마태복음 5장을 인용하시며 예수님이 십계명을 "강화"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본문의 문맥은 오히려 예수님이 율법의 문자적 조항을 넘어서, 마음의 중심—사랑, 용서, 자비—를 강조하신 것이 아닐까요?
예수님은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단순히 지키는 것을 넘어, 형제를 미워하는 것조차도 심판의 대상이라 하셨고(마 5:21–22),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도 마음의 정욕까지 포괄하셨습니다. 이는 율법을 강화한 것이 아니라, 율법의 외적 행위 기준에서 내면의 성품과 동기로 초점을 이동시킨 것입니다. 이는 단지 '율법을 더 무겁게 만든 것'이 아니라, 아예 새 언약의 계시 중심으로 전환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은 율법의 시대에서 십자가 중심의 새 창조로 나아가는 전환점입니다.
3. 계명을 지키는 것이 사랑의 열매인가요, 사랑 자체의 본질인가요?
목사님은 계명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 사랑의 표현이며, 그 계명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하게 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계명을 낳는 것이지, 계명이 사랑을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로마서 13장에서 바울은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말하면서, 그 사랑은 단지 규칙의 준수가 아니라, 실제로 이웃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희생의 삶이라고 정의합니다.
즉, 십계명조차도 사랑의 ‘틀’로 존재할 뿐, 사랑 자체는 십자가 위에서 완전히 계시된 그리스도의 삶 안에서 정의되어야 합니다.
4. 복음은 “율법+성령”의 조합이 아니라, “십자가+성령”의 자유입니다.
설교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하신 “성령의 도우심으로 계명을 지킬 수 있다”는 주장은 선한 의도 속에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신약에서 복음이 선언한 “율법으로부터의 해방”과 충돌할 여지가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은 “성령의 열매”와 “율법의 행위”가 양립할 수 없는 두 체계임을 명확히 말합니다.
복음은 계명을 더 잘 지킬 수 있게 해주는 ‘도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계명을 초월하여 새로운 생명의 방식을 가능케 하는 혁명입니다. 십자가에서 나타난 용서, 희생, 비폭력, 자기부인은 문자 계명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그 자체이며, 성령은 그 사랑을 내면에 새기시는 분이지, 구약 계명을 다시 힘주어 실행하게 하시는 조련자가 아닙니다.
맺으며: 십자가를 중심으로 성경을 다시 보아야 할 이유
목사님, 저는 율법의 중요성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율법이 어떤 역할을 감당해왔으며, 그것이 왜 십자가 안에서 재해석되어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묻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장 깊은 본심은 십계명에도, 전쟁 명령에도, 심판 선언에도 있지 않습니다. 그분의 가장 깊은 마음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예수 안에만 완전하게 계시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돌비” 위에 새겨진 법보다, “살과 피” 위에 새겨진 사랑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셨습니다. 그 사랑이 십자가에서 완성되었고, 그 십자가의 사랑이 우리 삶의 유일한 계명이며 율법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부디 저의 부족한 편지가 목사님의 귀한 사역을 훼손하지 않기를 바라며, 오직 함께 진리를 향한 여정을 이어가는 믿음의 동역자로서 전하는 사랑의 간청으로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