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 마가복음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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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기 위해 올라가지 않아도 되는 사람
우리는 때때로
사랑하기 위해 시작한 일 속에서
사랑받기 위해 애쓰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처음에는 누군가를 돕고 싶었습니다.
아픈 사람 곁에 서고 싶었고,
받은 사랑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더 많은 사람이 나를 찾기를 바랍니다.
내가 꼭 필요한 사람이기를 원합니다.
내가 한 일이 인정받기를 바라며,
내가 없어도 모든 것이 잘 돌아간다는 사실을 견디기 어려워합니다.
사랑으로 시작한 일이
어느새 나의 가치를 증명하는 일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올라가려 합니다.
더 중요한 자리로,
더 많은 사람 앞으로,
더 큰 영향력으로,
더 강한 힘으로 올라갑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정반대의 길을 가셨습니다.
광야에서 그분은
자신의 유용함을 증명하지 않으셨고,
사람들의 시선을 얻기 위해 기적을 사용하지 않으셨으며,
세상을 바꾸기 위해 세상의 권력을 움켜쥐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을 증명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광야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한 음성을 들으셨기 때문입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예수께서는
사랑받기 위해 올라갈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이미 사랑받고 계셨기 때문에
사랑하기 위해 내려가실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길은 항상
아래를 향했습니다.
사람들이 떠날 때에도,
제자들이 이해하지 못할 때에도,
아무 힘도 없어 보이는 자리에서도
그분은 사랑하는 일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마침내
제자들의 발 앞에 무릎을 꿇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발을 씻기던 손은
마침내 십자가 위에서 펼쳐졌습니다.
아무것도 움켜쥐지 않은 채,
자신을 버린 사람들까지
끝내 사랑하기 위해 펼쳐졌습니다.
그것이 예수의 지도력이었습니다.
사람 위에 서는 힘이 아니라
사람 곁에 머무는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지도자는
가장 강한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이 약해져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가장 많은 사람을 움직이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따르지 않아도
그들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언제까지나 꼭 필요한 사람으로 남으려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더 이상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 순간에도
자신이 사랑받는 존재임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 자유는
기도에서 시작됩니다.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은 채
다시 그 음성 앞에 머무는 것입니다.
“너는 이미 나의 사랑받는 자다.”
이 음성을 깊이 들은 사람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느라
평생을 소진하지 않아도 됩니다.
성공하지 않아도 존재할 수 있고,
인정받지 않아도 사랑할 수 있으며,
자리를 잃어도 자신을 잃지 않습니다.
이미 사랑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사람은 비로소 내려갈 수 있습니다.
내려감은
자신을 하찮게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누군가의 곁으로 갈 수 있게 되는 자유입니다.
사람들의 발 앞에,
상처 입은 사람 곁에,
이름 없는 자리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으로
내려갈 수 있습니다.
사랑받기 위해 올라가지 않아도 되는 사람만이
사랑하기 위해 끝까지 내려갈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보여 주신 지도력은
얼마나 높은 곳에 올라가셨느냐로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깊은 곳까지
사랑하러 내려가셨느냐로
드러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