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말하는 사람의 말은 비수 같아도, 지혜로운 사람의 말은 아픈 곳을 낫게 하는 약이다.”
— 잠언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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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서로에게 남기는 것
한마디가 오래 남는 날이 있습니다.
화면을 닫고, 하던 일을 끝내고, 불을 끈 뒤에도 낮에 읽었던 말이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괜찮은 얼굴로 지냈지만, 혼자가 되면 다시 그 말 앞에 앉습니다.
나는 정말 그런 사람인가.
내가 살아온 모든 시간이 저 한마디로 정리되는 것인가.
우리가 주고받는 말은 글이 끝나는 곳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저녁으로, 잠들지 못하는 밤으로 함께 들어갑니다.
그런 밤을 생각하면 사람에 대해 말하는 일이 조금은 조심스러워질 것입니다. 우리가 읽은 몇 줄의 글 너머에,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의 삶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때때로 다른 사람의 허물을 발견하며 이상한 안도감을 느낍니다. 저 사람보다는 내가 낫다는 생각에 마음이 잠시 든든해집니다. 누군가의 잘못이 나의 괜찮음을 확인해 주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신앙 안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내가 더 바르게 믿고, 더 정확히 알고, 더 오래 헌신했다는 사실로 나의 자리를 지키려 합니다. 심지어 사랑을 말하면서도, 사랑이 부족해 보이는 사람을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저 역시 그 마음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보다 나아야 안심할 수 있는 마음은 쉽게 지칩니다. 누군가의 잘못으로 나를 세웠던 그 기준이, 내가 잘못한 날에는 나를 무너뜨립니다. 한 번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 나라는 사람 전체를 잃는 일처럼 두려워집니다.
그 두려움 한가운데로 복음이 찾아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우리 안에 사랑하기 어려운 모습이 있음을 아시면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오셨습니다. 우리가 먼저 달라져서 그 사랑을 얻어 낸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랑이 먼저 우리에게 와서, 달라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낮추지 않아도, 나는 이미 사랑받는 사람입니다.
그 사랑 안에서 우리는 조금씩 정직해질 수 있습니다. 내 말이 틀렸음을 인정해도, 내 안에 부끄러운 마음이 있음을 발견해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잘못을 감추느라 쏟던 힘을 이제는 잘못을 고치는 데 쓸 수 있습니다.
“제가 잘못 알았습니다.”
“그 말로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렇게 말한 뒤에도 내가 여전히 사랑받는 존재임을 믿을 수 있다면, 회개는 다시 살아갈 길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에 기대어 고개를 들면, 내 앞에 있는 사람도 새롭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 사람 역시 내가 다 알지 못하는 아픔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의 말에 동의할 수 없는 날에도, 그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여전히 내 생각보다 깊습니다. 나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신 예수께서는 그 사람을 위해서도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내가 반박하는 그 사람도, 하나님께는 잃고 싶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 소중함을 기억할수록 잘못은 더 정직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상처받은 사람의 말을 듣고, 해로운 행동을 멈추게 하며, 책임질 일에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합니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사랑은 그가 입은 상처도, 그가 남긴 상처도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 사람을 그의 잘못 안에 영원히 가두지 않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과해야 할 사람에게는 사과할 용기가, 상처받은 사람에게는 안전하게 회복할 시간과 도움이 필요합니다. 신뢰는 진실한 변화가 쌓이는 동안 조금씩 자랍니다. 사랑은 그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까지 헤아립니다.
우리의 말에도 그 마음이 담길 수 있을 것입니다.
상대의 주장에 답하면서 그 사람의 모든 동기를 안다고 단정하지 않는 것. 확인하지 못한 이야기를 옮기지 않는 것. 잘못을 지적한 뒤에도 그 사람이 진실 앞에서 다시 일어서기를 바라는 것.
때로는 보내려던 문장 앞에서 잠시 멈추어, 그 문장을 읽을 사람의 저녁을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마음이 곧바로 부드러워지지 않는 날에는 그 마음 그대로 하나님께 가져가도 좋겠습니다. 아직 아프다고, 아직 화가 난다고 말씀드리면서, 나를 붙드시는 사랑에 잠시 기대어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머물다 보면 언젠가 그 사람을 위한 기도도 시작될지 모릅니다.
그도 자신의 잘못을 정직하게 마주할 힘을 얻기를.
그도 상처에서 회복되기를.
그도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그리고 저 역시 그렇게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의 생각을 모두 이해하게 되는 날은 쉽게 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서로를 대하는 마음은 오늘부터 조금씩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같은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임을 기억하며, 다시 한 문장을 고르고 한 사람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오늘도 누군가는 우리가 남긴 말을 읽고 하루를 마칠 것입니다.
그 사람이 화면을 닫은 뒤에도, 자신이 여전히 소중한 사람이라는 사실만큼은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