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안식일교단 복귀를 결심했었다.(수정 12/18/2018)

by 이상구 posted Dec 1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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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안식일교단 복귀를 결심했었다.

2017721, 내가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한 목사님이 센터를 방문하셨다.

그동안 여러 목사님들이 방문하시여 토론(?)을 했지만 서로의 거리는 너무나 멀었다.

그러나 그 목사님은 다른 목사님들과는 다르게

십자가에서 구원이 완성되었다는 말씀을 확신 있게 하셨다.

그분은 십자가의 피로 구원이 완성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으로

그 구원을 받아드리면 영생을 얻었다는

5:24절의 말씀을 확신한다고 힘주어 말씀하셨다.

그리고 성령께서 주신 그 구원의 확신, 그 믿음을 통하여

우리의 남은 여생동안 사단과의 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영적 원동력을 성령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이며

그 성령이 주신 믿음, 곧 구원의 확신이 없으면 성령을 거부한 것이며

그 영적 원동력을 받을 수 없고

그 결과, 누구도 사단과의 영적투쟁을 극복할 수 없다고 힘주어 강조하셨다.

나는 그 목사님께 말했다.

제가 교단에 바라는 오직 한 가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교단이 십자가에서 구원이 완성되었다”(복음)를 인정하는 것뿐이며.

만약 교단이 이 복음을 인정한다면,

나는 더 이상 십자가에서 구원이 완성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화잇과 조사심판을 문제 삼지 않고

교단으로 돌아가서 계속 복음을 전하겠다고 말했다.

그만큼 나는 교단을 떠나기 싫었다.

그 목사님은 뛸 듯이 좋아하시며 자기가 연합회장 및 지도자에게

이 사실을 알리시겠다고 말하면서,

교단이 나의 제안을 충분히 받아드릴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교단은 묵묵부답, 오늘까지도 그 답변을 듣지 못하고 있다.

 

이 교단이 십자가에서 구원이 완성되었음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성령이 주시는 구원의 확신(믿음)을 부정할 수밖에 없도록

가르치는 이 교단에 더 이상 머물 수 없었다.

 

베드로가, 요한이, 다른 제자들도 어린양을 따르기 위하여 교단을 떠난 것처럼...

그들은 얼마나 힘들었으며 떠나기 싫었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나는 그들이 느꼈던 아픔을 안고 너무나 정든 교단을 떠났다.

오직 십자가에서 나의 구원을 다 이루주신 어린양만을 따르기 위하여!

참으로 마음 아프고 슬프다!

누군가는 이런 아픔을 감수하고서라도 십자가의 다 이루신 구원을 외칠 수밖에 없다.

그 목사님도 묵묵히 마음 아파하시고 슬퍼하고 계실 것이다.

 

그러나 순진한 양들은 아무 것도 모른 채로 길 잃은 목자를 따라가고 있다.

십자가에서 구원이 완성되었다고 가르치면 막살게 된다고 가르치는 목자들을 따르면서---

정말로, 십자가의 피로 구원이 완성되었으니 구원의 확신을 가지라고 가르치면 막살게 될까?

나에게는 정반대였다. 그 구원의 확신을 내게 주신 성령께서는

나의 삶의 방향을 완전히 변화시켜 주셨다.

그러므로 구원의 확신을 가지면 막산다고 가르치는 목지들은

성령의 변화시키는 능력을 체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며

구원의 확신을 주시는 성령을 훼방하는 참람을 범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화잇은 십자가의 피로 죄가 도말되지 않았다고 기록하였다.

 

그리스도의 피가 회개한 죄인을 율법의 정죄에서 풀어 줄 것이었지만

죄를 완전히 없이하지는 못할 것이었다.

그 죄는 최종적 속죄 때까지 성소의 기록에 남아 있을 것이다.(부조 357)

 

다 이루었다!” 라는 말씀은 영어로 끝났다”(It is Finished)이다.

속죄, 곧 구원이 완성되었다, 라는 뜻이다.

그러나 안식일 교회, 화잇의 가르침은 십자가에서 끝나지 않았다,

즉 십자가에서 구원이 완성된 것이 아니라고 가르친다.

결국 예수님께서 덜 이루었다!”(Unfinished)고 외치신 것이다.

성소론은 죄인의 죄가 어떻게 도말되에 죄인의 속죄가 완성되는 것인가를 가르친다.

예수와 십자가를 거부하는 유대교 성소론은, 예수의 피로 죄가 도말되지 않는다.

놀랍게도 안식일 교회의 성소론도 유대교와 동일하다.

예수의 피로 죄가 도말되지 않는다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만약, 유대교와 안식일교의 주장대로

예수의 피로 죄가 도말되지 않았다면

무엇이 이 세상의 죄를 지고 가서 도말한다고 가르쳐야할까?

결국 사단(아사셀 염소)이 세상 죄를 지고 광야로 보내어져야만

완전한 속죄가 다 이루어진다고 가르쳐야 할 것이다.

어린 양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것이라고 가르칠 수가 없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을 보라는 침례 요한도 거짓말을 했고

다 이루었다!”는 예수님도 거짓말을 한 것이 된다.

아직도 안식일교와 유대교는 세상 죄를 도말하는 존재는 사단이라고 가르친다.

예수님 당시에 모든 유대인들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침례 요한은 세상 죄를 도말하는 분은 사단이 아니라

예수라고 다음과 같이 외칠 수밖에 없었다..

[1:29]~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침례 요한의 이런 외침은

그 당시의 유대교의 성소론을 정면으로 공격하는 이단이었다.

오늘도 안식일교단은 유대교와 다름없이

예수의 피가 죄를 도말하지 않고

사단이 최종적으로 세상 죄를 지고 가서 도말한다고 가르친다.

따라서 유대교와 안식일교에서는,

세상 죄를 지고 가서 도말하는 것이 어린양이 아니다.

유대교는 십자가를 완전히 거부했지만

안식일교는 십자가를 받아드린 것 같지만 실상은 거부하고 있다.

교단이 가르치는 죄를 도말하지 못하는 십자가는 십자가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십자가에서 구원이 완성된 것이 아니라고 가르치는 것은

유대교처럼, 사단에게도 속죄를 완성하는 대속죄일의 속죄제사에

속죄제물의 자격을 주어 참여시키고 있는 것이다.

속죄제물의 자격은 오직 예수뿐인데도 말이다.

죄는 사망이다.

어둠을 없애고 도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빛뿐이다.

(사망)은 어둠이다.

사망(어둠)을 도말하는 것은 오직 생명()뿐이다.

생명은 십자가의 피다.

십자가의 피(생명)만이 사망을 도말할 수 있다.

참 그리스도인은 이것을 믿고 외치는 자들이다.

사단은 죄(사망)이다.

사망은 사망을 더할 뿐

사망()인 사단은 사망()를 결코 도말할 수 없다.

나는 유대교를 벗어나지 못한 안식일교의 그리스도인이었다.

나는 유대교를 벗어난 그리스도인이었던 침례 요한처럼 외치고자 한다.

물론 현대판 유대교인 안식일 교회는 나를 이단이라고 정죄하고 있다.

침례요한, 베드로, 요한, 야고보, 바울, 그들 모두는

예수의 피로 죄를 도말하시고 구원을 완성하셨다고 가르친 유대교의 이단들이었다.

오늘의 안식일교 안의 참례 요한과 같은 이단들이여, 그리스도인들이여

불쌍한 현대판 유대교인들을 구원하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