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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서 계속)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싶으신 분께서 우리에게 해로운 것을 허락하시는 심정은 얼마나 아프시겠습니까? 이렇게 우리들에게 유해한 것을 허락하시는 그분의 오래 참으시면서, 완악해진 죄인들이 다시 당신의 오래 참으시는 사랑을 깨닫고 사망으로부터 생명으로 다시 돌아와서 본래 주신대로 생명을 받아줄 것을 바라시고 믿으시고 인내하시고 계신 그 크신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육식을 금하신 일도 없으시고, 또 결국에는 허락하셨으므로 육식을 해도 괜찮다는 생각은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는 참으로 육적인 생각입니다. 그 이유는 육식이 최선의 식물이 아니었기 때문에 본래는 육식을 선물로는 주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허락하신 것이니까 먹을 수 있다는 이러한 사고방식으로 유지되는 신앙은 ‘기쁘게 주신 선물과 슬프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아픔을 구별하지 못하는 외식적인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보다는 금하셨나, 금하지 않으셨나, 허락하셨나, 허락하시지 않으셨나, 가 신앙의 초점이 되어 있는 잘못된 영적상태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생각으로 하는 뉴스타트나 신앙은 하나님의 생명(사랑)으로부터는 떠나있는 뉴스타트이요 신앙이며, 오직 표면적율법의 의를 추구하는 신앙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잘못한 것이 없으면 잘했다는 신앙입니다. 신앙이 이런 방향으로 변질되면 결국 좌로나 우로 치우치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놀라운 치우쳐버린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로 치우친 결론:

“모든 허락하신 것만이 합법이다. 그러므로 모든 허락하지 않는 것은 불법이다.”

예배에는 정숙과 경건만이 허락되었기 때문에 이것만이 합법이다. 그러므로 박수는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에 불법이다.(치우친 보수주의)


좌로 치우친 결론:

금하신 모든 것만이 불법이다. 그러므로 금하지 않은 모든 것은 합법이다.

예: 돼지고기는 금했기 때문에 불법이다. 그러나 다른 육식은 금하지 않았음으로 합법이다.

그러므로 나는 고기를 먹는다.(치우친 자유주의)


이러한 좌로 치우친 신앙은 역시 ‘치우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부르짖게 됩니다. 그러한 ‘치우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좌로 치우친 자기의 신앙을 합리화하는 잘못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인 것입니다.


자유하게 하는 율법

십자가에서 흘리신, 우리를 죄로부터 자유하게 하는 그 그리스도의 피의 은혜를, 죄의 유혹을 이기고 잘못된 입맛을 인내하고 건강식을 하여 건강해지며 더 나아가 자신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받아드려서 진정한 생명적 변화(성화)를 이루어나가는 기쁨을 맛보는데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죄의 유혹을 받을 때에 그 유혹을 받아드리고 싶어 하는 자신의 죄 된 성향과 투쟁하기보다는 그 유혹에 굴복해버린 것을 오히려 하나님이 허락한 것이라고 합리화하며 자기는 자유를 누리고 있는 사람이라고 주장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것입니다. 즉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로부터 주어지는 자유를 오히려 육체의 기회로 삼는 것입니다.


[갈5:13]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


하나님의 남은 교회의 정체성상실은 계명과 율법 속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품성을 발견하지 못하고 좌나 우로 치우치게 율법을 보게 되므로 일어난 현상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율법을 그리스도의 품성의 사본으로, 살리는 율법으로 보지 않고, 무엇을 금하셨나, 무엇을 허락하셨나를 나타내는 율법으로 본 것이 정체성 상실의 치명적인 원인인 것입니다. 그리고 좌는 우를, 우는 좌를 공격하며 논란하는 가운데 정체성은 완전히 허물어져버리고 혼란이 찾아오면서 마침내 큰 흔들림이 오고야마는 것입니다. 이렇게 좌로나 우로 치우치는 근본 원인은 하나님을 금하시는 분, 허락하시는 분, 무서운 분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품성인 절대적인 사랑은 알지 못하고 율법을 보기 때문인 것입니다.

모든 하나님에 대한 오해는 그분의 품성의 오해로부터 시작합니다. 루스벨의 하나님에 대한 오해도 품성의 오해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루스벨은 하나님의 능력은 원했으나 그의 품성은 원하지 않았다.(소망 435)


그러나 진정한 율법의 의는 그 율법의 주인이신 그리스도, 곧 그분의 품성인 사랑을 율법으로부터 발견하여 삶에 적용하는 의이지요. 왜냐하면 율법은 하나님의 품성(사랑)의 사본이니까요.


바울은 말하기를 “모든 것이 가하나---”

바울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는 어떤 경우에 육식도 가했습니다. 하나님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면 가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고기를 먹는 것이 덕이 되지 않고 오히려 믿음이 성숙하지 못한 초 신자를 실족시키는 경우라면 영원히 먹지 않아도 상관이 없었지요. 그는 육식을 즐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진정한 채식가이지요.


[롬14:2]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믿음이 있지만 연약한 사람은 채소만 먹느니라.


[고전8:13]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


하나님이 해도 된다고 허락하셨기 때문에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도 올바른 신앙이 아니지요. 이혼을 허락했다고 해서 이혼을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신앙도 사랑을 선택하는 신앙이 아니지요. 배우자가 간음을 했기 때문에 이혼할 수 있다는 신앙도 사랑을 선택하는 신앙은 아니지요.

“나는 내 아내가 간음했기 때문에 그 간음한 아내와 이혼했다. 그러므로 나는 의롭다.”라고 생각하는 남편과 같은 사람들 가끔 있지요. 이러한 남편들이 바로 간음한 자를 돌로 치라는 율법의 글자대로 정죄의 돌, 심판의 돌, 곧 사망의 돌을 든 사람들이겠지요. 그러나 그리스도의 돌은 용서의 돌, 구원의 돌, 생명의 돌입니다. 그리스도는 그분 자신이 생명의 돌이십니다.


참으로 그들의 손에 쥐어진 돌은 사망의 돌이었습니다. 생명의 돌은 아니었지요. 그리고 그들이 지킨 율법은 사랑과 생명이 나타난 그리스도의 품성의 사본으로서의 율법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 그 율법은 도리어 증오와 분노, 정죄와 사망의 사본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돌로 치라는 율법 속에 있는 그 율법의 저자이신 그리스도는 알지 못하지요. 따라서 그분이 주시는 생명도 알지 못하지요. 그리고는 그들은 하나님의 공의를 행하고 있다고 확실히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정죄하지 않으며 정죄를 받지도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간음한 여인을 향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너를 정죄한 자들이 없느냐?” 여인은 대답했습니다. “주여, 없나이다.”

주님은 말씀했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께서 그 간음한 여인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심으로 말미암아 분명히 “돌로 쳐 죽이라”는 율법을 폐하시거나 범하신 것이 아니라 그 율법의 진정한 의를 들어내어 보여주시어 그 율법의 진정한 의를 도리어 굳게 세우시는 순간입니다. 그리스도는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요 완성하러 오신 것입니다.


[마5:17]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롬3:31]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여기에 두 다른 의로움이 나타난 것입니다.

죄인을 정죄하지 않고 생명을 주시는 의로우심, 그리고 그와는 정반대로 그 간음한 여인을 정죄하며 사망을 주는 바리세인들의 표면적 율법의 의로 의로움이 나타났습니다.


누구의 의가 진정한 그리스도의 의입니까?

하나님께서 간음한 다윗을 용서하셨다고 해서 간음을 합법화하시거나 허락하신 것도 아니고, 또 간음한 경우에는 반드시 정죄를 받아 돌로 쳐 죽임을 받아 죽어야 되는 것도 아니지요.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 돌로 치라는 율법을 범하시거나 폐하신 것도 아닌 것입니다. 문둥병자를 만지지 말라는 율법을 주신 분이 문둥병자를 생명을 주셔서 치유하시기 위하여 친히 만지시는 것이 그분 스스로가 그 율법을 범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율법은 죽이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살리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그리스도의 의는 좌로 치우친 것도 아니며 우로 치우친 것도 아니지요.


하나님은 금하십니다. 그러나 그분의 금하심은 먼저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신 후에 금하십니다. 만약 선택의 자유를 주시지 않으시고 금하신다면 그것은 독제이며 강제입니다. 그 독제와 강제는 무례히 행하시는 것이며 자기의 유익만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사랑이 아닙니다.

그러나 먼저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시고 그냥 방임만 하시는 것도 사랑이 아닙니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고, 그리고 상대방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시고 무례히 행치 아니하시며, 강제하시지 않으시고, 오래 참으시며, 모든 것을 견디시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시며 인간을 만류하시며 생명으로 인도하십니다.


사망을 금하신 율법과 생명을 약속하시는 율법

그분이 율법으로 금하시는 것은 사망입니다. 그러나 그 금하심의 실상, 곧 율법의 실상은 당신께서 생명을 주시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망을 금하시며 생명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믿는 우리가 그분의 생명을 받아 그 생명을 풍성히 누리며 사는 것을 바라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사망을 금하신다는 참 뜻이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율법에 나타난 금하심은 사망을 선택하는 죄인을 향하신 간곡한 사랑의 만류이며, 생명을 받아드리라는 간곡하신 호소인 것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율법은 죽이기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사망으로부터 자유하게 하여 살리기 위하여 있는 것입니다.


[겔18:23]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겔18:31]너희는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겔33:11]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허락하신 것도 사양할 줄 아는 성숙한 신앙

하나님께서 율법으로 금하신 것을 마치 하나님이 우리들의 자유를 구속하시는 것으로 오해하는 것도 옳지 않으며, 허락하시는 것을 마치 우리들에게 자유를 주시는 것으로 오해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율법은 우리를 사망으로부터 자유하게 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호소이신 것입니다. 따라서 야고보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약1:25]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하나님은 금하신 것도 허락하시는 분이십니다. 선택의 자유를 허락하셨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그분이 허락하신 것도 사양할 줄 아는 성숙한 신앙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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