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구약의 전쟁, 복수의 예수님의 설명(2)

by 이상구 posted Jan 25,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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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서 계속:

 

구약 속의 전쟁

원수를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본래의 뜻대로라면 구약의 전쟁도 잘못된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본래는 전쟁을 금하시지만 우리의 완악함을 인하여 마지못해 전쟁을 허락하신 것이다. 그러나 전쟁을 허락하셨다고 해서 전쟁이 옳은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구약 속의 전쟁들이 많이 있으나 여호사밧 왕의 전쟁은 참으로 가장 귀중한 모본이 되는 전쟁이다. 참으로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으로 이기는 하나님의 전쟁이다. 원수 갚는 것이 여호와께 있듯이 전쟁도 인간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 전쟁을 이기게 하신 분은 전적으로 하나님이시다. 여호사밧 왕의 군대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지하며 합창단을 조직하여 다가오는 적군을 향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을 불렀다.

 적군들은 참으로 태연한 유다의 군대를 보고 여호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적군들의 마음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위대하신 여호와의 군대와 전쟁을 하는 것은 무모하다는 의견이 나타났다. 그들은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적군들은 서로를 불신하며 서로를 죽이면서 물러가버렸다.

 그러나 하나님께 슬픔을 안겨드렸다. 그 여호와의 위대하심을 보고도 적군들은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지는 않았다. 그들은 서로를 죽이며 계속 멸망의 길로 행진할 뿐이었다. 그들, 하나님의 백성들의 원수인 그들일지라도 여호와는 사랑하셨다.

 [대하20:15]야하시엘이 가로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과 여호사밧 왕이여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대하20:17]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항오를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며 놀라지 말고 내일 저희를 마주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악의 세력의 연합은 진정한 사랑의 연합ㄴ이 아니라 이기신의 연합니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의심과 분열이 불가피하다. 특히 진리가 그들의 눈앞에 나타났을 때.

 기드온의 전쟁

기드온의 군대는 칼과 창을 가지지 않았다. 오른 손에는 나팔, 왼 손에는 횃불을 들고 큰 소리로 외쳤다.

 [삿7:16]삼백 명을 세 대로 나누고 각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리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고

 삿7:19 기드온과 그들을 좇은 일백 명이 이경 초에 진가에 이른즉 번병의 체번할 때라 나팔을 불며 손에 가졌던 항아리를 부수니라

 삿7:20 세 대가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좌수에 횃불을 들고 우수에 나팔을 들어 불며 외쳐 가로되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 하고

삿7:21 각기 당처에 서서 그 진을 사면으로 에워싸매 그 온 적군이 달음질하고 부르짖으며 도망하였는데

삿7:22 삼백 명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와께서 그 온 적군으로 동무끼리 칼날로 치게 하시므로 적군이 도망하여 스레라의 벧 싯다에 이르고 또 답밧에 가까운 아벨므홀라의 경계에 이르렀으며

백 명밖에 되지 않는 그들은 수천의 적군을 오직 믿음으로 쳐들어갔다. 아무런 무기도 없이!. 오직 여호와께서 함께 하신다는 약속만을 믿고.

항아리는 죄 된 우리 자신을 의미한다. 항아리를 만드신 토기장이는 하나님이시다.

[사64:8]그러나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라

[렘18:4]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파상하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선한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렘18:6]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의 하는 것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롬9:21]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그리고 항아리 속의 횃불은 진리의 성령의 불, 곧 하나님의 마지막 자비의 기별을 의미한다. 항아리를 깬다는 것은 죄인들이 자기를 부인하고 그 속의 진리의 성령의 불을 나타냄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올바른 품성을 나타낸다는 말이다. 스데반이 피 흘리며 죽으면서 나타낸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참 품성이었고 그것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었다. 바로 그것이 스데반이라는 항아리 속의 횃불이었다. 스데반의 원수 사울은 그 횃불을 보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생명을 얻었다.

 나팔은 말씀의 선포, 곧 진리와 생명의 선포를 의미한다. 그 진리와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품성의 나타나심이며 생명의 본질이다.

그러나 기드온의 원수 미디안 사람들은 그 횃불과 나팔소리를 거부하였다. 그 생명의 거부는 곧 사망을 선택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기드온의 용사들이 도망가는 미디안 사람들을 죽이는 것은 그들의 선택을 이루어 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도 우리는 “죽기 싫어하는 죄인을 죽이는 하나님의 아픈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전쟁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위대하심, 곧 그의 품성을 원수들에게 나타내어 보여서 그들이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와서 생명을 얻도록 하는 것이다. 하늘의 전쟁의 목적은 하늘의 복수의 목적과 동일 한 것이다.

 

다윗과 사울의 전쟁

 다윗과 사울의 전쟁도 역시 다윗이 사울에게 하나님의 품성, 곧 참 그리스도를 알게 하려는 자신과의 투쟁의 과정이었다. 죄인으로서의 다윗 자신은 사울을 죽여 버리고 싶은 사단의 유혹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다시 듣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마침내 실천하는 승리를 거둔 것이다. 참으로 힘들었지만 위대한 승리를 거둔 것이다. 

 그러나 사울은 결국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고 말았다. 그토록 사울을 살리시려는 하나님의 노력을 사울은 결국 거부하고만 것이었다. 악이 악인을 죽였다.


다윗과 골리앗의 전쟁

다윗과 골리앗의 전쟁도 마찬가지이다. 다윗에게는 칼과 창이 필요가 없었다. 오직 여호와께서 함께하시면 그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임을 굳게 믿고 골리앗에게로 나아갔다.

 다윗은 돌을 힘차게 던졌다. 돌은 골리앗의 이마에 박혔고 그는 쓰러졌다. 그 돌은 여화와의 말씀이었으며 산돌이신 예수 그리스도였다. 골리앗은 그 돌로부터 오는 생명을 거부하였다. 그는 사망을 선택하였다. 다윗은 달려가서 그를 밟고 그의 칼집에서 그의 칼을 빼어내어 그를 찔렀다. 그는 결국 하나님의 백성들을 죽이려던 자기의 칼에 자기가 죽게 된 것이다. 그 죽음은 그의 선택이 이루어진 것이다. 악이 악인을 죽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골리앗과의 이별을 애통하셨다. 다윗이 압살롬의 죽음을 그토록 애통해한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악인의 죽음을 애통해하실 것이다. (성경공부 자료실에서 죽음을 원하지 않는 죄인을 죽이시는 하나님의 아프신 마음“이라는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여리고 성의 함락

여리고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어떻게 당신의 백성들을 그렇게도 강력한 애급으로부터 이끌어 내시고 광야에서 함께 하시면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위대하신 여호와를 받아드리기를 거부하고 성문을 굳게 닫아버렸다. 

 수6:1 이스라엘 자손들로 인하여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 없더라.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명하시기를 여호와의 언약궤, 곧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인 계명이 든 궤 앞에 일곱 제사장들이 일곱 양각나팔을 불며 여리고 성을 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장한 백성들은 언약궤를 앞뒤로 보호하기 위하여 배치하였다. 여리고 성을 무력으로 공격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제사장들의 나팔소리는 여리고 백성들이 지금까지 그들이 숭배하던 거짓의 사망의 신이 준 우상들을 버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드리고 생명을 선택하기를 간절히 원하시는 여호와의 간절한 호소였다.

 매일 호소하시고, 일곱째 날인 안식일에는 평일의 일곱배로 호소하시고 또 최후의 통곡의 호소로서의 함성을 여리고 백성들에게 들려주시었다.

 슬프게도 여리고는 끝내 생명을 거부하고 사망을 선택하여버린 것이다.

 견고하기로 이름난 성, 여리고 성은 인간의 힘으로 무너뜨릴 수가 없었다. 그 견고한 성이 무너지지 않고 서 있을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다. 모든 것을 붙드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없이는 아무것도 유지될 수가 없다. 그러나 여리고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호소를 최후로 거부한 순간, 그 순간은 그들이 하나님의 보호를 거부해버린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여리고 성을 보호하실 수가 없으셨다. 여리고 성은 힘없이 무너져 내려갔다. 여리고의 백성들은 그들의 성이 아무런 인위적인 공격도 없이 무너져 내려가는 것을 보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자기들의 성도 보호하시고 계셨다는 그 놀라운 진실, 그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사랑을 보고도 거부해버렸다. 그들은 생명을 거부한 것이었다. 그들은 사망을 선택하고 말았다. 선이신 하나님이 악인들을 죽인 것이 아니라 악이 악인들을 죽인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시34:21]악이 악인을 죽일 것이라 의인을 미워하는 자는 죄를 받으리로다

그러나 생명을 선택한 기생 라합은 생명을 얻었다.


질병과의 전쟁 - 뉴스타트

질병과의 전쟁에도 땅의 전쟁과 하늘의 전쟁이 있다. 땅의 전쟁은 의학적인 질병치료이다. 암 자체를 공격하여 원수인 암을 죽여서 이기자는 투병이다.

하늘의 전쟁은 여호사밧 왕처럼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을 믿고 하나님을 찬송하며 암도 사랑하는 전쟁이다.

 [시24:8]영광의 왕이 누구시뇨?,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위의 말씀을 풀어보면, 원수를 용서하시고 사랑하시는 긍휼과 인자, 그리고 은혜가 풍성하신 품성을 보이시는 분이 누구시뇨? 그분은 오래 참으시며, 성내지 않으시며 원수가 돌아올 것을 끝까지 믿고 바라시며 인내하시며 기다라시는 데에 능하신 그리스도이시다.

시86:5 주여, 주는 선하시고 기꺼이 용서해 주시며, 주를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자비가 풍성하시나이다.

시86:8 오, 주여, 신들 가운데 주와 같은 이가 없으며, 주께서 하신 일들과 같은 일들도 없나이다.

[신32:35]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하는 일이니, 내가 갚는다. 


원수들을 너희들의 손에 붙이신다는 말의 뜻

 하나님이 원수를 자기 백성들의 손에 붙이게 되면 결국 원수와 전쟁을 하여 승리하여 정복하고 죽이기까지 한다는 뜻으로 구약성경에는 나타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승리의 진정한 영적의미는 내 마음 속의 악을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성령의 사랑으로 극복하고 승리하여 결국 원수를 용서하는 경지에 들어가는 영적교훈이 담겨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원수들을 죽이는 것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유는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완악함으로 마지못해 허락하신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고

둘째는 악인들이 죽음을 직면할 순간 가장 생명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돌로 쳐 죽이라”와 “죽기를 원치 않는 죄인을 죽이시는 하나님의 아픈 마음”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원수를 다윗의 손에 붙이면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본래의 하나님의 뜻, 곧 원수를 사랑하라는 뜻대로 행한다.

 [삼상24:10]오늘 여호와께서 굴에서 왕을 내 손에 붙이신 것을 왕이 아셨을 것이니이다. 혹이 나를 권하여 왕을 죽이라 하였으나 내가 왕을 아껴 말하기를 나는 내 손을 들어 내 주를 해치 아니하리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였나이다.

 [삼상24:18]네가 나 선대한 것을 오늘 나타내었나니 여호와께서 나를 네 손에 붙이셨으나 네가 나를 죽이지 아니하였도다.

 위의 말씀을 풀면, 다윗은 사울로 하여금 하나님의 놀라우신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사랑을 알게 하는 것에 성공하였다. 하늘의 복수에 성공한 것이다. 사울의 머리에 숯불을 올려놓게 된 것이다.

 

삼상17:47 또 이 온 무리는 주께서 칼과 창으로 구원하지 않으심을 알게 되리니, 이는 전쟁이 주의 것이므로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주실 것이기 때문이라." 하니

여호와께서 너희들을 우리들의 손안에 주시면 너희들도 칼과 창을 쓰시지 않고 우리들을 너희의 압제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신 여호와가 어떠한 하나님이신 줄을 알게 될 것이다. 여호와께서 여러분들을 뉴스타트의 손에 주시면 더 이상 칼과 창의 현대의학으로 암을 치료하시지 않으시고 마침내 말씀으로 치유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뉴스타트는 질병에 대한 하나님의 전쟁이요 치유는 하나님의 복수인 것이다. 그 뉴스타트의 치유로 인하여 죄인들은 다시 하나님의 사랑의 손 안으로 돌아와 구원을 받아드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