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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에 대한 답 글입니다.


저는 3년 전 당뇨가 있어 우연히 인터넷을 검색하던 중 이상구박사님의 뉴스타트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질병을 치유하시는 창조주하나님, 절대적인 사랑의 참 좋으신 하나님을 만나, 새로운 기쁨을 얻고 당뇨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저희 가족은 장로교회에 출석하고 있습니다. 장로교회 목사님의 설교말씀과 뉴스타트의 사랑의 하나님이 자꾸 비교되고, 안식일, 지옥 등의 문제가 내적인 깊은 충돌로 다가와 가슴이 아픕니다. 그 문제를 이야기만 하면 이단으로 몰아 이야기가 중단되어 버립니다. 저를 아직 당뇨병환자로 보는 사람도 있답니다.(당뇨가 없다. 라고 이야기하면 당뇨병은 불치병인데 그런 구시대적 말만 하느냐면서.....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안식일이 되면 교회에 가고 싶어 저 혼자 위생병원 교회에 가끔 나갑니다. 물론 집사람은 싫어해요(원인은 저한테 있어요.. 과거 안식일을 일방적으로 밀어 붙일 때도 있었걸랑요...) 안식일문제로, 한 달 전부터 집사람이 애들이랑 일요일 날 교회를 안 나가겠다는 선포를 하고 지금까지 교회를 나가지 않고 있습니다. 주말엔 우리 집은 안 좋은 분위기(살기)가 집안에 가득합니다.


집사람이 약 한 달간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는 걸 어제 새벽에 알았습니다. 상태가 그렇게 심한 줄 몰랐습니다.(몸이 심하게 꼬이고, 계속 트림을 하며, 온몸이 가려운 증상입니다. 스트레스를 아주 심하게 받았나봅니다) 저의 무관심, 방관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뉴스타트 한답시고 혼자 운동하고 22시 되면 그의 어김없이 잠자리에 들었으니까요. 아마 그런 모습이 집사람한테 밉게 보였을 수도 있었겠지요. 함께 고민하고 대화를 해야 하는데, 두 사람 모두 의견이 맞지 않으면 대화를 하지 않는 고집불통의 성격입니다. 뉴스타트를 가슴으로 하지 않고 몸으로 열심히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가장 중요건 사랑과 관심인데 말입니다. 


어제 새벽엔 정말 많은 생각과 마음을 연 기도가 필요했습니다. 집사람을 그냥두면 분명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생각과 사랑이신 하나님은 포기해서는 안 되지만 간혹 생명과 아름다움의 조화이루기 위하여 양보와 희생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밀려왔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기도하고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자기도 잘 모르겠대요..(집사람 엄청 착해요. 아직 저한테 싫은 소리 한번 하지 않은 마음여리고 너무나 예쁜 아내입니다) 순간 무관심한 자신을 반성하며 사과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무작정 "여보 미안해" 그리고  “일요일 날 애들이랑 교회에 가자!” 말했습니다. 그 말이 하기는 싫었지만 사람을 살리는 말이라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생각나는 느낌 그대로 토해냈습니다. 그 시간이 새벽 3시였습니다.

 

집사람의 꼬이는 몸을 풀어주기 위해 정성을 다해 마사지를 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눈을 뜨니 아침 이었습니다. 옆에 집사람이 자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귀한 잠을 주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침에 저의 눈에 비친 집사람은 귀엽고 사랑스런 애기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집사람은 저를 아직도 미워할지 모르지만, 사랑스러운 마음에 아침엔 과일도 먹여 주고, 꼬옥 안아도 주고,  "오늘밤은 일찍 자자" 약속도 했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실 때도 우리 모두를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런 애기들로 보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보고 “어린아이처럼 되라”는 말씀이 억지가 아닌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사랑이요 진리인 것 같습니다(너희는 실제 사랑스러운 어린아이니. 잘나고 많이 알고 자존심 강한 어른이 된 것처럼 하지 말고, 어린아이 그대로 벌거벗은 채로 나에게 오면 안 되겠니...)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하심도, 우리 모두는 하나님보시기에 실제는 어린애 같이 모든 것이 부족하고 부족하나, 어린애처럼 눈치 보지 않고 높고 낮음을 생각지 않고 감히 요구하고 담대히 구하고 내노라고 Ep쓰니 그 모습이 더욱 귀엽고 사랑스러워 "그래 다 주마" "너 잘났다"(너 의롭다) 하시는 건 아닌지.......

먹구름 속으로 환한 빛이 비취는 듯 한 너무 행복한 아침이었습니다.

앞으로 끝없는 고투가 남아있지만요...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다면 행복은 제 것입니다.


이 모든 일련의 일들은 하나님께서 나의 무관심을 깨우고, 감긴 눈을 뜨게 하시려고 기회로 주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사랑을 통과하면 축복이 되나 봐요)


지금 현재 가장 시급한 문제는 사랑하는 집사람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라 생각되어, 하나님 큰 사랑을 가슴에 안고 담대히 일요일 교회에 같이 갈려고 합니다.

작은 믿음이라도 있다면 그 곳에서도 좋으신 하나님 자랑해야 겠지요

 

당분간 안식일을 마음으로 고대하고 바라며, 마음으로 나마 지켜야 될 것 같습니다.


우리를 생명으로 안내하시는 사랑하는 박사님 그리고 모든 직원 분들께 감사 또 감사드립니다. 인터넷을 통한 뉴스타트 방송 활동 정말 오래오래 해주세요.

모두모두 날마다 강건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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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글.

김 대기님께.

당뇨병을 하나님께서 그 절대적 사랑으로 치유해 주셨군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새벽 3시에 마침내, 감추어진 보화를--”

그렇습니다. 최고의 행복은 십자가의 행복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가 십자가에서 입 맞춘 것처럼, 진리를 모르는 불쌍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희생, 곧 사랑의 희생이 참 행복입니다. 그러므로 고통과 행복이 하나임을 깨닫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요, 십자가를 아는 것입니다.

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앞으로 끝없는 고투가 남아있다”고, 그렇습니다. 진리의 길은 외로운 투쟁의 길입니다. 그 길은 좁은 길이며 많은 사람들이 오기를 원치 않는 그런 길입니다. 그 길은 고투와 고난의 길이기 때문이지요. 많은 사람들은 공의와 자비가 서로 반대편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고난과 행복이 서로 반대편에 있는 것이라고 오해하고 있지요. 그러나 선택의 자유를 허락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 속에서는, 그 아름다운 진리 속에서는 행복으로 행복한 것 보다는 고난으로 행복한 것이 참 행복임을 님이 체험하신 그 새벽 3시의 행복이지요.

마치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나를 증오하는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더 큰 사랑이며 이 더 큰 사랑이 더 큰 행복을 주듯이!


님의 글을 읽으면서 저의 눈에도 눈물이 고여 왔습니다. 저도 님과 같은 새벽 3시를, 그 행복스러운 고통, 아니 하늘의 행복을 맛보았기 때문입니다. 님을 위하여 기도할께요.

그렇습니다. 안식일에도, 휴식의 날에도 양이 구덩이에 빠지면 끌어내는 날이 안식일이지요. 살리는 일은 언제나 해야 하고, 더 더구나 안식일은 사람을 살리는 날이지요. 사람을 죽이는 정죄의 율법적인 유대인의 안식일이 아닌 그리스도의 살리는 안식일이지요. 휴식하는 것이 초점이 아니라 살리는 것이 초점인 안식일이 숨겨져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안식일의 휴식도 창조주께서 우리를 다시 회복시키시게 하기 위한 휴식이지 휴식 그 자체를 위한 휴식이 아니지요.


교리 논쟁을 피하시기 바랍니다. 사랑을 보이십시오. 비판하시지 마십시오. 이단으로 알려진 것을 진리로 재인식시킨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으로만 가능합니다. 논리적 토론으로 바뀐 것은 교리만 바뀌는 것이지 창조주의 품성을 깨닫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교리와 율법은 선택의 자유를 주시며 절대적으로 책임지시는 십자가에 나타나신 그분의 품성이 기초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과거에 님께서 밀어붙이셨던 안식일은 날자만 토요일이었지 이단적인 유대인의 안식일이었지요.


참으로 축하드립니다. 율법과 교리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발견하신 것을! 마침내 밭을 가시다가 감추인 보화를 발견하신 농부의 천국(마13:44)을 발견하신 것입니다. 님의 글을 읽고 저도 다시 힘을 얻었답니다. 우리 모두는 이 감추인 보화를 찾아야합니다.


하나님께서 님께 주셨던 선택의 자유를 부인과 아이들에게도 주시고 끝까지 사랑하십시오.

하나님은 님의 마음을 잘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님이 진리의 자녀, 남은 자임을 아십니다.

나아만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알게 된 엘리사는 아람들으로 다시 돌아가 그 왕과 함께 우상인 림몬의 전에서 왕을 부축해야 할 그 거듭난 나아만을 아람 땅으로 다시 보내며 이렇게 말합니다.

[왕하5:19] 엘리사가 가로되 너는 평안히 가라.

그렇습니다. 담대히, 그리고 평안히 아내의 손을 잡고 가십시오.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다시 부탁드립니다. 논쟁을 자제하십시오. 오직 사랑의 역사가 반드시 일어날 것을 믿으며 그 믿음으로 새벽 3시의 그 보화를, 감추인 그 보화를 다시, 또 다시 찾으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다른 분에게 보내었던 답글을 첨부합니다.


다음 글에 대한 답글입니다.


저는 일산교회를 잘 다닐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이끌어 주셨지만, 행사가 많은  시댁식구

와  신랑을 어떻게 이끌어야하나 걱정했어요.

그것마저 맡겨야하는데 이건 어렵네요.  또한  제가  단순히 왔다 갔다 하는 차원을 넘어

공부를 한다니까  이상한데 빠지는 것이 아닌가하여  반응이 좋지 않은 신랑과

일반교회를  다니시는 시어머니께 어떻게 말씀드릴지도,..이럴 때 조리 있게 말을 잘 하는

말주변이 있다면  좋을 텐데,..하긴 지금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지만요,...사실은 그게

가장 큰 문제기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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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이 바라시는 분량만큼  안식일을 보낼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분란보다는

이 길이다 싶어 노력중입니다.  신랑은 이 교회를 가는 것은 반대하지 않지만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아서  가족의 일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일은 잘못되었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제가 교회에서 살거나 집안일을 내던진 건 결코 아닌데  성경 보는 시간에

아이를 가르치는 거나  타 공부를 하기를 바라는 거죠.

일반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생각입니다.   제가 제 삶에서  하나님을 알게 되면서  그 것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없다고 여겨서  남편의 생각이 짐이 되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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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글

“가라지도 뽑지 말라고 하시는 하나님”

"나는 옳은 진리를 가졌으니 나는 구원을 받으나 너는 오류를 믿으니 구원이 없다'는 말은  전혀 사랑이 없는 말입니다. 사랑이 없는 말은 마침내 분란을 일으킵니다. 옳고 그름만 따지다보면 사랑은 사라지고 맙니다. 이 사랑이 사라지면 나의 교리가 신학적으로 아무리 옳아도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그리고 나는 아무 것도 아니며 그 교리가 내게 전혀 유익할 것이 없습니다.(고전 13:2, 3절)


예수님께서 [마12:12]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 여기서 "선을 행하는 것"이 초점입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이단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안식일은 진리입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이단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안식일은 사랑을 행하기 위하여, 선을 행하기 위하여,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다른 세상일을 쉬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특히 안식일이 되면 더 남편을 돌보아 주십시오. 사랑을 느끼어 아내로부터 느껴지는 하늘의 안식을 느껴서 그분의 품성의 아름다움의 단 맛을 보게 하십시오.

남편이 바라는 정리된 가정을 절대로 소홀히 하시지 마십시오.

자녀들에게도 더 사랑을 부으십시오.


가장 위대한 깨달음은 공부 속에서 얻는 것이 아니라 희생의 과정 속에서 하나님께서 직접 주실 것입니다. 남편의 보살핌을 성경공부로 생각하시고 하시면 틀림없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품성을 알게 하실 것입니다.


교리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그분의 품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가리지를 뽑다보면 밀(알곡)도 함께 뽑히는 것이 걱정이 되어서 가라지를 뽑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은 아닙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죄가 많은 곳에 은혜를 더 넘치게 부어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가라지도 사랑하셔서 뽑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라지만 골라서 뽑아버리시는 분이시라면 그분의 품성은 십자가의 사랑을 나타내신 그리스도의 사랑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만약 하나님이 가라지를 뽑아버리신다면, 알곡들도 함께 뽑힐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가라지가 미워서 뽑아버리신다면 알곡들에게 큰 혼란이 올 것입니다. 왜냐하면 알곡들은 하나님의 품성은 죄가 많은 곳에 은혜를 더하시며(롬5:20) 악한 자에게도 인자로우신 분(눅 6:35)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알곡들이나 가라지들 모두 그리스도의 품성을 오해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가라지를 알곡으로 변화시킬 수가 없으나 하나님께는 능치 못하실 것이 없습니다.

가라지가 알곡이 되기를 원하며 선택만 하게 되기를 모든 것을 참으며, 견디며, 바라시며, 그리스도께서는 그 가라지를 사랑으로 기다리실 것입니다.


명원님의 가정이 교회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님께 주신 사랑스러운 교회입니다. 물론 그 교회에도 가라지는 있게 마련이지요. 알곡들의 경건의 연습, 곧 사랑의 연습과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서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