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암순이라는 걸 사람들은 믿지않는다(직장암)

by 김화숙 posted May 18,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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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쾌한 아침 맑은 공기를 마시며 만남의 광장에서 한 무리의 아줌마 부대를 이끌고 등산을 간다.  전부 나를 사부로 모시고 있는 뉴 스타트 스트레칭 멤버들이다.  산에 올라가서 나는 그들에게 나날이 가슴 가득 엔돌핀을 선사한다.  나의 웃음보따리 유전자가 너무나 커서 나 혼자 주체를 못한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나눈다.  내가 암순이라고 하면 아무도 안 믿는다.  내가 환자가 아니라 자기들이 환자라고 한다.  몸도 유연하고 물도 많이 마시고 규칙적으로 식사하고 하니까 자기들은 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들은 허리가 많이 아파서 잘 걷지도 못하는 이도 있고 혈액 순환이 안된어서 손발 저린다는 사람도 있고 만성 변비 때문에 고통 스러워 한다.  아프지 않다고 하는 이는 나밖에 없다.  그들 생각에 죽음을 앞두고 저렇게 웃을 수 있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2년 전에 직장암 선고를 받고 죽음의 문턱에서 5시간의 대수술과 항암치료, 그리고 28번의 방사선 치료까지 현대의학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치료를 하였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병원에서 하라면 하고 약 먹으라면 약 먹고 CT촬영.......  난 살기 위해서  발버둥쳤다.  병원에 다니면서 얼마나 울고 다녔는지 모른다. 

 나에게는 아직 어린 자녀가 셋이나 있다.  그 아이들에게 엄마 없는 불쌍한 아이들로 만들고 싶지 않았고  나의 주어진 책임을 다하고 싶었다.  살길이 어디엔가 있을까 싶어 인터넷 암 사이트를 찾아다니면서 헤매었다.  그런데 그런 곳에는 희망보다 절망스러운 내용이 더 많았다.  중병에 걸린 딸 수발한다고 친정엄마가 일년을 외손자 돌보면서 살림을 도맡아 해 주시면서 딸과 같이 우울증에 걸려 혼자 몰래 숨어서 울고 계셨다. 

  그러던 중에 이상구 박사님의 한국생명운동본부 사이트를 우연히 접하게 되면서 희망이 솟기 시작하였다.  인터넷 강의를 조금 들어보니 내가 살 곳이 거기에 있었다.  전화로 신청을 바로 했다.    부산에서 양양 가는 비행기에서도 눈물을 흘리면서 갔다.  하늘에서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경치가 전혀 아름답지 않았다.  난 너무 억울해 있었다.  너무나 열심히 살았노라고 자부했기 때문이다.  남편에게 훌륭한 내조자요, 자식 잘 키우고, 살림 잘하고, 절약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 안 하고, 정말 모범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었다.  그런데 왜 내가 이런 큰 병에 걸렸나?  하나님이 내게 왜 벌 주셨나?  온통 원망 뿐 이였다.  그 때는 하나님을 믿지도 않으면서 하나님 원망을 하였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날 살리시려고 오색에 보내주시면서 이딸을 얼마나 귀여워했을까 싶다. 

바람 때문에 비행기가 착륙하다 못 하고 도로 부산에 내려오는 바람에 다시 버스를  타고 양양까지 가다보니 새벽1시반 도착이 되어 다음날 아침 비몽사몽 이상구 박사님의 첫 강의를 듣게 되었는데 제일 첫 느낌이 그렇게 유명하신 이상구 박사님이 저분이구나! 하고 생각하는데 박사님이 너무나 젊으신데 깜짝 놀랐다. 

지금도 뉴 스타트를 잘하고 있는 이유가 이상구 박사님의 연세보다 훨씬 젊으신 모습과 뉴 스타트에 계신 분들의  맑은 모습을 보면서 더욱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처음 뉴스타트할 때 많은 가족들이 아픈 사람이 너무 영양 섭취 하지 않는 것 아니냐고 걱정스런 얼굴로 얘기하기도 하였지만 뉴스타트만이 나의 살길이다! 라고 확신하고 옆에서 뭐라 해도 잘 실천 해 나갔다.  나는 뉴스타트를 한국생명운동본부에서처럼 똑같이 실천한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뉴스타트가 엄청 힘들게 투병하는 것인 줄 알고 있다.  같은 암 환자도 심지어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 보다 2년 먼저 암 걸려서 투병을 하고 있던 이웃집 피아노 선생이 내가 암 수술할 때 자기의 아픈 경험으로 인해 앞으로 암 투병이 얼마나 힘든지 나에게 위로하러 와서 같이 이야기 하다가 같이 울고 무슨 약이 좋다더라 무슨 버섯이 항암 효과가 있다 하면서 나보다 암 선배로서 여러 이야기를 해 주면서 자기 먹던 약초도 가지고 와서 먹어 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꽤 오래 동안 뉴스타트를 이해 못하고 사각에 많이도 빠지면서 남편과의 관계를 더욱 악화시키고 힘들어  하더니 나의 뉴스타트에 동참하면서 자기 남편과의 사이가 무척 좋아졌으며 요즘은 둘이서 많이 웃고 산에도 같이 다니면서 둘이 무척 즐겁게 산다.  그녀의 남편이 나에게 무척 감사하게 생각한다.  

친지나 친구들 그리고 나를 아는 모든 이 들은 쉽게 살고 쉽게 먹고 즐겁게 사는 게 뉴스타트라고 설명을 해줘도 나를 동정의 눈으로 쳐다본다. 우리 아이들도 뉴스타트하니까 우리아이들을 불쌍하게 생각한다.  엄마 때문에 먹고 싶은 것도 못 먹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아주 행복해 한다.  엄마가 많이 바뀌어서 칭찬도 많이 하고 사랑도 듬뿍 표현하니 그 이상의 가정교육이 없다. 

  이번에 중학생 딸이 공부를 일등을 하니까 그 비결이 뭐냐고 묻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이들이 고기 안 먹고 잘 자고 잘 놀고 채소 먹고 과일 먹고 뛰어 놀고 해서 일등 했다 하니까 전부 농담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또 입이 아프도록 뉴스타트에 대해서 설명 해준다. 

  작년 가을과 올 봄에 유제명 박사님께서 경주 세미나에 오셨을 때 느낀 게 너무 많았다.  우선 뉴스타트 하시는 분이 많이 오셨는데 참석 하신 분들이 나이보다 10살 심지어는 20살 정도 젊어 보였다.  그리고 정서적 삶의 수준이 높았다.  그 분들과 비교 해 볼때 나 자신을 생각해보니 삶의 질이 형편없이 낮았다.  나 자신이 만든 보잘 것 없는 기존 틀에서 나는 잘 사는 것인 냥 부지런 한 냥 살았는데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나 혼자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천방지축 살아 온 삶이였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그래도 아직 부족한 것이 많다.  그 점은 하나님께서 알아서 나를 생명의 길로 잘 인도 해 주시라 믿고 즐겁게 살려고 한다. 

  오색에서 이상구 박사님의 첫 강의를 듣고 그 순간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첫 강의 끝나고 주전계곡으로 산책을 갔을 때 설악산의 그 아름다움에 반하기도 했고 여러 가지로 희망이 보이니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면서 처음으로 웃음이 살짝 나왔다.  10년여 만에 처음 웃음 같은 웃음 이였다.  그리고 이틀째엔 잃어버렸던 원래의 큰 웃음소리가 하하하! 하고 산천을 울리면서 터져 나왔다. 암 생긴다고 10년 동안 웃지 못했던 웃음을 뉴스타트 가서 이틀 만에 나의 암이 치유되면서 작동하지 않았던 나의 웃음 유전자가 갑자기 활성화 되어서 작동한 것이였다. 10년 된 체증이 싹 사라진 기분 이였다.     그 때부터 난 환자가 아니었다.  가져갔던 항암제 약 보따리를 버려 버렸다.   난 그동안 웃고 살고 싶었는데 내 몸이 웃지 못 할 환경으로 되어 있었다.  늘 화만 내고 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화 안 내도 될 일도 성질만 부리면서 살았다.  그리고 왜 날 웃게 해 주는 사람이 없나하고 원망하며 살았다. 

그런데 이상구 박사님의 강의를 하루하루 들으면서 내가 왜 암이 생겼는지 알게 되었고 억울하지도 않게 되었다.  암세포가 잘 자랄 수 있도록 내가 무지무지 애쓴 생활이었고 정말 그간 수고를 많이 한 탓 이였다.  비만, 과로, 과 스트레스, 과 운동, 과식, 폭식, 잠 적게 자기, 물 안 마시기, 간식 많이 먹기 등등....  한 가지라도 똑 바로 한 게 없다. 

  지금은 뉴스타트를 잘 하고 있으면서 얻은 것이 너무나 많다.  건강 좋아지는 건 당연하고 우선 화내는 것이 없어지고, 많은 것을 사랑하게 되었고, 느긋해졌고, 웃음이 많아졌다.  그리고 난 인기가 참 많다.  부부동반 모임에서 난 웃음 보따리이다.  나에게 이런 개그맨 보따리가 있는 줄 나도 몰랐는데, 웃음 보따리가 나의 유전자 속에 잠자고 있었다.  늘 왕래하던 사람들이 옛날의 내가 아니니까 다들 놀랜다.  예전에는 그러지 않았다.  남들이 웃으면 별 것도 아닌것 같고 웃는다며 상대도 안하는 희안한 성질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암 환자가 투명한다고 얼마나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들까 생각하던 사람들이 내가 너무 즐겁게 생활하니까 놀래는 표정이다.  즐겁게 많이 웃다보니 저절로 맘 속 깊이 자리 잡은 감방의 빗장이 풀려 버려서 수감자가 다 탈출해 버리고 없다.  그래서 난 죄수를 감시할 필요가 없어졌다.  

  암 걸리고 난 뒤 뉴스타트 하면서 나는 완전히 바뀌었다.  이젠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다.  이렇게 살 맛 나는 세상을 살게 해 주신 하나님께 너무 감사드린다.  암 걸려서 뉴스타트 하게 해 주신 것 정말 감사드린다.  가족 모두 뉴스타트 하면서 건강해 지니까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날 보살펴 주시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날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한다.  앞으로의 인생은 즐겁게 살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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