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꿈만 같던 치유가 현실로...(동영상)

by 이원자 posted Aug 1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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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제 남편이 굉장히 많이 아팠었습니다. 그래서 생활고를 제가 지고 나갔었고 그러기에 저한테 암이라는 것이 오지 않을 거라고 믿고 살았는데 그런 결과를 받았을 때 캄캄했습니다. 그 생각을 하자 부끄러움이 찾아왔습니다. 왜냐면 제가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남편이 아파서 이렇게 누워 있는 것도 힘든데 저까지 이런 병에 걸렸구나 생각하니까 ‘내가 정말 신앙생활을 제대로 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도 마음을 가다듬고 3차 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를 한 결과 조직검사를 해봐야 정확한 결과를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때는 12월 말과 1월 초라 환자가 상당히 많았는데 1월 9일에 병원에서 조직검사를 해본 결과 악성종양이라 수술은 해야 되고 가슴의 한 부분을 절제하거나 복원수술을 받거나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했습니다.

제가 여태까지 건강하게 살아왔는데 제 몸의 한 부분이 없어진다고 생각하니까 좌절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할 시간을 조금 달라고 말한 다음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하나님 이를 어떻게 하느냐’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주위에서 친척들이 부산에서 수술하지 말고 서울에서 하라고 했습니다. 부산에서는 2월말에 수술을 할 수 있는데 서울에서는 서 너 달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지만 1월 22일에 서울 병원으로 예약접수를 했습니다.

기다리는 기간에 암이 자라도 급속히 자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욥은 이 어려움을 어떻게 겪었을지 알고 싶어 성경 욥기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그냥 넘어가더라도 끝까지 꾸준히 읽었습니다. 1월 21일 새벽에 침대에 누워있는 남편을 보니 남편은 환자로 누워있어서 저까지 이렇게 같이 누워 있으면 어쩔까 애절한 마음이 들어 ‘하나님, 욥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해 주시는데 제 형편을 아시는 주님께서 왜 제게는 말씀은 안하시나요, 제게도 말씀을 보여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새벽에 잠이 들었습니다. 제 꿈에 교회 같기도 한 건물에 많은 여자 분들이 빵 두 덩이를 주면서 빨리 수술하러 가라고 손짓을 해서 그 빵을 들고 계단을 내려가려고 발을 내딛는데 목사님이 어디를 가시냐며 발을 막았습니다. 그래서 암이 걸려서 수술하러 간다고 말씀을 드리는 순간 무릎이 꿇어지며 발가벗은 제 모습이 보게 되었는데 이때 형언할 수 없는 큰 사랑이 저를 뜨겁게 했습니다. 눈을 뜨자 새벽이었고 이 때 부터 KTX로 서울 병원에 도착하게 될 때 까지 이 꿈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했습니다.

서울에 있는 오빠 내외와 같이 병원에 갔는데 이 정도로는 굳이 가슴을 절제할 필요는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서 너 달 후이지만 수술하면 되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오후에 갑자기 내일 수술하자는 병원 측의 소식을 들었을 때 ‘이것이 하나님 사랑이구나’하고 깨달았습니다.

수술도 잘 되었고 그 후 12일 동안 통증하나 없이 아픈 것도 하나도 없었습니다. 간호사는 진통제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했습니다. 수술 후 물을 꾸준히 섭취하였고 12일 만에 퇴원을 할 때 수술 결과 암이 독종이라 항암 4번, 방사선 1달을 해야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항암을 해야 한다는 말에 낚시 바늘에 걸린 채 파닥파닥 대는 가자미 같은 저의 모습이 연상되면서 이렇게 되면 누가 나를 도와줄 것인지 걱정되었지만 우선 집으로 내려갔습니다.

집에 내려가 있는 동안 그 생각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을 때 천연치료를 하면서 병으로 부터 회복한 친구가 항암치료를 하지 말라며 대구까지 와서 간곡히 부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항암치료를 하지 않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시간이 없어서 알려주지 못했습니다.

항암하기 3일 전 쯤에 다른 친구가 제 소식을 듣고 전화를 해서 이야기 하던 중 수술하러 가기 전에 꾼 꿈을 얘기하니 꿈을 깊이 생각해 보라고 말을 해주었습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그 꿈을 곰곰이 생각하는데 그 꿈에 나왔던 7~8년 전에 알던 목사님이 생각났습니다. 오래전에 연락하던 전화번호였지만 전화를 거니 그 목사님이 받았습니다. 사정을 얘기 했더니 목사님께서 수술은 잘 했으니 지금 한국에 있을지 미국에 있을지 모르지만 이상구 박사님한테 가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딸한테 전화해서 이상구 박사님에 대한 것을 알아봐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딸이 간호일을 하다가 인터넷에서 강의를 듣고 뉴스타트 센타 전화번호를 알려줘서 전화를 했더니 16일에 세미나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날이 제 항암치료 가려던 날짜였습니다. 손뼉을 딱 치면서 ‘아 이거구나, 이때까지 살아온 인생 잘못 살았다. 내가 여기를 가야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족들에게 이를 말하니 전부 다 항암치료 안하면 안 된다고 반대를 했지만 딸이 강의를 보고 와서 엄마가 항암치료를 저렇게 싫어하는데 우리 한번 보내 보자고 해서 16일에 세미나에 참가하러 아이파크콘도로 가게 되었습니다.

버스에서 내릴 때 저를 반겨주는 봉사자분들의 환대를 받고 너무 감사했습니다. 제가 그런 마음으로 이곳에 왔기 때문에 처음에 필기를 열심히 하다가 중간에 필기를 더 이상 하지 않고 내가 여기서 뭔가를 얻어야 하고 치료 방법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며 이상구 박사님의 눈동자를 따라 열심히 들었습니다. 이상구 박사님의 말씀이 내 마음 속에 있는 것을 모두 끄집어내는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3일 째 날에 ‘아!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움추러 들었던 내 마음이 펼쳐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서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우리 방에 4명이 있는데 "언니 내가 이렇게 기뻐해도 돼?"하며 물을 정도로 기쁘게 생활했습니다. '이것이 전부구나. 내가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하찮은 것이라도 내가 해봐야 되겠구나.' 이것을 깨닫고 난 다음 날 박사님과 상담 시간에 남편에 대해 상담을 했습니다. "제 남편이 신부전증 환자인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라고 묻자 먼저 자연식을 하면서 남편도 이곳에 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요양원으로 가도 되겠다는 이상구 박사님의 말씀에 용기를 얻어 ‘조금 더 여유를 갖고 뉴스타트를 더 배워서 집으로 돌아가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 저는 제가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세미나가 마치고 여수에 있는 요양병원에 갔는데 저와 함께 간 참가자는 하루가 지나자 가 버리고 저 혼자 생활했습니다. 그곳에서도 이 박사님께서 가르쳐 준 뉴스타트 생활을 그대로 옮겨갔기 때문에 누가 어떤 말을 해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항암을 해라, 뜨거운 찜질을 해라 여러 말을 했지만 저는 오로지 하나님께서 낫게 해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산책할 때 걸으면서 기도에 전념할 수 있도록 혼자 다니고 MP3플레이어를 구입해서 이상구 박사님의 성경말씀, 건강강의를 계속 들었습니다. 잊을 만하면 듣고 또 들었습니다. 그리고 남편 주려던 MP3플레이어까지 이용해서 계속 들었습니다. 그리고 말씀에 저 자신을 묻었습니다. ‘하나님 나는 이 말씀처럼 되고 싶다’고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하니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새로운 해가 보이고 새로운 내 모양이 비쳤습니다. 그런데 통증이 왔습니다. 통증이 올 때에 저는 ‘아 내 세포가 살아서 통증을 느낄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너무 기뻤습니다. 그때는 가슴이 터질 것 같고 빨갛게 달아올라서 통증이 있어도 ‘통증이 있으니까 이제 내 세포가 살아서 낫겠지’ 이렇게 생각하고 기뻐하며 물을 규칙적으로 마셨습니다. 말씀을 보면서 기쁨을 생각하면서 그곳에서 두 달을 지냈습니다. 그곳이 참으로 좋았지만 여건이 허락지 않아 친정이 있는 남해로 가게 되었습니다.

‘어차피 혼자가야 할 길 내가 여기서 다시 해 봐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님은 왜 병원에 안가냐고 자꾸 물어 보시더라구요. 그러면 저는 "하나님이 저를 낫게 해주실 거예요. 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어머님은 이것도 먹어라 저것도 먹어라 이것은 기름이 없으니 먹어도 된다라며 이것 저것 챙겨주셨지만 저는 '엄마, 내가 기도할 때만 같이 앉아주세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게 2009년 12월 까지 남해에 있다가 집으로 올라가서 ‘1년이 지났으니까 제가 확인을 해봐야 안 되겠습니까? 올해 건강검진이 빨리 나오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지난 건강검진에서 발견했으니 이번 건강검진에서 확인을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월 22일에 산책을 하며 ‘건강검진이 3월에 나온다는데 조금 빨리 나오게 해달라’고 무심코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집에 돌아오니까 우체통에 건강검진하라는 편지가 와 있었습니다. 이것 참 신기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2월 25일에 건강검진을 당겨서 했습니다. 저는 자신이 있지만 두려움이라는 것이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 마음을 다그치면서 '아니야 나는 할 수 있어' 하면서 그 두려움을 던져내고 “내가 이겨내야만 우리 식구들에게 믿음을 갖다 줄 수 있어. 우리 식구들, 우리 가족, 그리고 우리 사랑하는 믿음의 형제들에게 믿음을 갖다 줄 수 있어.” 이렇게 계속 외쳤습니다.

3월 10일 눈이 굉장히 많이 온 날 아침에 내리는 눈을 보면서 '우리 하나님께서 나를 축하하는 흰 눈을 내리시는 구나'라며 기뻐했습니다. 그 눈이 오는 중에도 산을 올랐습니다. 전화기로 사진을 찍으면서 '하나님 너무 감사합니다. 분명히 이것은 내 육체가 깨끗해졌다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저 혼자 그렇게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또 16일 이 박사님의 건강세미나가 부산 동래교회에서 시작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세미나에 가고 싶어도 못 갔는데 부산에서 하니까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니까 이렇게 기쁜 여건도 만들어 주시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 딸을 데리고 다녔습니다. 정말 깊이 감명을 받았습니다. 제가 기쁘니까 식구들도 다 따라 기쁘고 세미나가 끝나자 저는 남편에게 “자기야 우리는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남편이 저로 인해서 굉장한 기쁨을 얻었습니다. 그렇게 걱정했던 마누라가 저렇게 기뻐하니까 덩달아서 웃고 성경도 보자 그러고 예배도 드리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기다리던 건강검진 결과 통지서가 오지 않았습니다. 답답해서 제가 전화하니까 3월 25일 경에 도착한다고 했습니다. 25일 검진 결과에 초음파 검사를 다시 해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28일 병원에 가서 주치의에게 “암 수술 후 한 번도 병원에 가본 적도, 약 한 톨 입에 넣은 적도 없으니 (검사를) 확실하게 해 달라.”고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검사를 하고 의사 선생님께서 확실한 말씀을 해주실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의사 선생님 앞에 섰습니다.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정말 깨끗해 졌습니다.”라는 말씀을 듣고 옆에 서 있던 간호사님을 안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런 기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도했습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친구에게 전화해서 “친구야 내가 이상구 박사님 강의를 듣고 변화되어서 나았다.”고 말하고 친구들과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우리 친구가 이곳에서 나았다고 하니까 “나도 원자야 가 봐 야겠다.”고 했고 그래서 지금 이곳에 앉아있습니다. 우리 친구에게 해 줄 이야기를 여러분들께 하게 되어 너무 영광이고 우리 친구가 이 이야기를 듣고 일어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그런 날이 속히 오고 여러분도 하나님의 사랑에너지를 받아서 저처럼 이 자리에 서서 간증하는 날이 속히 오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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