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별오름에서 생각을 줍다

by 가파 posted Jun 1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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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인동꽃 향이 날린다. 푸른 연인들은 손을 잡고 가파른 능선을 가볍게 거닐고 있다.

멋적게 먼 산 향해 사진 몇 장 눌러 본다. 옅은 안개가 산을 반쯤 가리고 있다.

뒤를 돌아다 보니 관광 버스로 온 것 같은 임신 팔개월쯤 된 아저씨가 가파른 길을 오르다 되돌아 가고 홀로 길을 벗어나 작은 풀들이 자라는 능선을 따라 가볍게 걷다 풀 밭에 앉았다.

산들바람이 삥이꽃을 흔들고 지나간다.


서귀포에서 제주시로 84세에 운명하신 고교시절 단짝 친구 어머니 문상 가는 길, 

세상은 무심한 듯 가볍다.


되돌아 본 사년의 뉴스타트 생활, 걸어 온 저 능선 처럼 뚜렷하다. 

절망 두려움 그리고 한가닥 희망 그리고 노력,

노력 넘어 은혜와 감동 그리고 깨달음.

뉴스타트는 얼어 붙은 땅에 봄바람 불어 넣는 일이란 생각을 유월의 생명들을 보며 하게 된다.

모든 것이 죽은 듯 보이던 땅 그러나 봄이 오면 파랗게 살아나는 생명들, 우리 몸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일찌기 어린 아이 처럼 살기로 했다.

저녁이 오면 놀이를 그치고 엄마의 밥상을 거쳐 잠자리로 돌아가는 근심없는 아이 처럼.

어자피 죽기위해 태어난 목숨 궂이 붙들 맘 없다.

단지 주어진 시간 너무 일찍 꺼져버린 내 안의 생명력의 불씨를 좀더 세게 호호 불 뿐. 아직은 그러한 권리가 있는 것 같다.

다시 본 세계는 시리도록 아름답다. 그래선지 가끔 눈물난다.


내려오니 푸드트럭이 열대 가깝게 서 있다. 예전 같았으면 나도 어느 한 곳의 손님이 되어 있겠지만 지금은 아무런 생각이 없다. 단지 열심히 일하는 쥔장 모습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 뿐.


해가 안개에 가리더니 더운기가 쌱! 가셨다.

걷기 좋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