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트와 자연치유

by 가파 posted Jun 20, 2019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뉴스타트와 자연 치유

저도 처음에 겪었지만 많은 분들이 뉴스타트와 자연 치유의 구분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보이는 것에서 답을 찾고 다른 하나는 그것에 더해 보이지 않는 것을 통해 본다는 것이 다릅니다. 쉽게 말해서 신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차이라고도 말할 수 있지요.
자연치유를 통해 치유가 가능한 것은 이미 자연의 질서 속에 신의 치유 프래그램이 있기 때문입니다.
뉴스타트가 지향하는 것은 그보다 더 높은 곳입니다.
저도 처음엔 그 차이를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먹는 것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는 데는 일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먹는게 중요하지 않다는게 아니라 촛점을 어디에 둘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뉴스타트를 통해 치유를 경험한 사람들을 보면 그 효과는 단기간에 일어난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 것은 음식이나 운동 보다도 먼저 마음이라는 것이죠.
암을 벗어나는 길은 마음 뿐만 아니라 모든 삶의 총체적 변화에 있지만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내면적 변화를 통한 뇌의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전 살아 오면서 두 번의 확실한 치유를 경험했습니다.
하나는 축농증이고 또 하나는 허리 디스크였는데 둘 다 의사가 치유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것이었습니다. 
중학생 때부터 시작된 축농증은 재발을 계속하다 스무살 되던 해 교회에 발을 디딘지 육개월 후 일주일 금식 기도로 다시는 그 병이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당시 한국교회는 금식기도 열풍이 불고 있었고 저는 몇 권의 신앙서적을 읽고 순진하게 나도 낫겠다는 생각을 가졌었지요.
스물 한 살 때 오토바이 사고로 어긋나 있던 허리가 심한 디스크로 마흔 즈음 걸을 수 없는 상태까지 왔고 수술 외에는 방법이 없게 되었을 때 수술 차 병원으로 향하던 중 불현 듯 몸에 칼을 대서는 평생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길로 저를 싣고 가던 사촌 형에게 기도원으로 데려다 달라고 말했고 이십일 금식 기도 후 한 달만에 저는 정상이 되었습니다. 이 부분에선 할 말이 많이 있지만 세세히 쓰기는 그렇고, 
허리가 나았을 때 걸을 수 있다는게 너무 행복한 저는 일년 동안 열심히 교회목사 사모와 전도하러 다녔습니다. 그리고 그 감동은 서서히 잊혀졌지요. 
그리고 이십년 후 다시 암,
이 번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었습니다. 죽음과 결부된, 그리고 그 신 앞에 죄인의 자격으로 서 있었습니다.
낙태.
죄의 결과라 믿었고 본 교회 목사도 암묵적 동의를 하였습니다.
신의 벌 앞에 제가 피할 곳은 없었습니다. 그러다 만난 이상구 박사님, 유전자 강의를 통해 신은 필연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고 신은 절대적 사랑이라는 것을 지식을 너머 전 인격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돌아 보면 제 인생에 가장 중요했던 것은 신은 있는가
십대 후반 부터 본격 시작된 나는 누구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를 밤을 새며 고민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도 아쉬운게 반짝이는 별들과 찬란했던 청춘을 고민하느라 누리지 못한 것, 그래서 지금 그 감성을 찾아 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괴로워 자살을 생각했고 벽에 머리를 짖이겼습니다.
철학책을 읽어도, 절간에 가도 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창문이 없는 깜깜한 어둠에 갖힌 심정.

영원할 것 같았던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되던 날 왠지 허무해서 하루종일 눈물이 났고 그 길로 교회를 향했습니다. 
신을 만나기 위해 가나안 농군학교를 세우신 김용기 장로님을 찾아 두 달을 살았고 신을 만날 수 있을까 싶어 오산리 금식기도원에서 금식 기도를 했습니다. 
성경을 공부했고 아동부와 교회 중 고등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렇게 사십년, 그럼에도 일말의 의심은 저를 잡고 놓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죄는 그 빈틈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죄가 나를 지배했을 때 저는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경제적 여유는 조금씩 생겨갔지만 미래를 바라보면 문득 문득 허무했습니다. 
그렇게 필연적으로 찾아온 암, 

마침내 신이 존재를 안 순간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죽음이 더 이상 두려운 것이 아니란 걸 알게 되니 암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었습니다.
내 안에 있던 믿음의 유전자가 켜지고
지식으로 쌓여 죽어 있던 모든 성경 말씀들이 싹을 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폭발적으로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의문들이 하나하나 풀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온 세상 가득한 신의 발자욱, 신의 체온.
나무 하나를 봐도 그냥 서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누가 그랬습니다. 신을 만난 후 이전과는 다른 세상이 되어 있더라고, 나무들은 자신에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것 같았고 보이는 모든 세계가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고, 그 땐 그 말을 이해할 순  없었고 그저 부럽기만 했었는데
이제 내가 그 사람이었습니다.

다시 태어난 사람에게 오늘의 저 태양은 어제의 그 것이 아니며 잃어버렸던 청춘의 시간과 밤 하늘의 별들은 더 없이 소중하기만 합니다. 
제가 아프리카 초원에서 밤 하늘의 별을 보고 정신이 아득했던 것은 청춘의 마음이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나는 예수와 니고데모의 대화를 사랑합니다
''니고데모야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어머니의 뱃속에 다시 갔다 오는게 아니야, 그 것은 하늘로부터 다시 나는 것이지, 바람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나 그 힘과 실체가 분명히 있듯 거듭난 자도 그와 같거든,
거듭나지 않으면 하늘의 뜻을 알지 못해''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된 것이 아니기에 거듭나지 아니하면 나타난 세계에 갖히게 되는 것.
신을 만나는 것은 은혜 즉 선물과 같은 것입니다.

바람이 불면 나무들이 재잘거고 바람이 없는 날 숲은 깊은 묵상으로 갑니다.
어제 차를 타고 중문에서 돌아 오는 길 분리대 가운데 심은 워싱턴 야자수들이 마치 파트너가 손 잡아주길 기다리며 떡 하니 팔 벌려 선 남성들 같았습니다.

이제 압니다. 
왜 세상이 다르게 느껴지는지를, 
그 것은 살아 있는 모든 생명들에게서 신의 성품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삶과 다르지 아니하며 죽음이 있어 삶은 더욱 빛나고 있었습니다
악은 왜 존재하는가 
왜 모든 존재는 병들고 실패하고 죽어 가는가
우린 다 이해할 순 없지만 빛은 어둠이 있어 빛이 되듯
신의 창조엔 그 모든 것들이 필수 불가결의 요소였다고 생각합니다.

''나만 믿을 수 있니? 보이지 않아도 이해되지 않아도 내 손만 잡고 따라올 수 있니?''

그 분과 함께하는 기쁨, 연탄 한 장의 열기가 아니라 거대한 원자로가 켜진 것  같이 영속적인 것.
그러므로 오직 감사 오직 기쁨, 그저 숨 쉴 수 있는  것 하나로 감사할 뿐,

나의 하루는 어머니가 감자를 갈아 부쳐주신 전 처럼 맛있습니다. 
구십 하나 나이에도 자식을 향한 사랑은 변함이 없어 어느 것 하나 정성 부족한 부분이 없지만 미각이 예전 같지 않아 음식이 가끔 짜집니다. 그러나 신의 손길엔 실수가 없습니다.

여름은 서서히 그 기세를 더해 연두빛이던 나무들은 스물 청년 같이 성숙해졌습니다.
심수봉의 노래를 유튜브로 듣다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지 유행가도 은혜가 됩니다. 제 나이 스물즈음에 좋아 했던 가수 혜은이 노래를 그 아름다운 목소리로 불러 그때의 감성을 자극해서 그래는지 모릅니다.
금 보다 귀한 사년이었고 또 이렇게 지낼 하루하루를 생각하면 행복에 소름이 돋습니다.

뉴스타트는 다시 태어나는 것, 더 높은 차원의 지향, 그 것은 신을 더 깊게 아는데서 오는 감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