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 크럽

by 신충식 posted May 15,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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핼스 크럽

 

 

앞에서 근육 운동을 하는 친구의 얼굴 표정이 무척 무섭게 보인다. 엄청 무게를 올려 놓고 온통 인상을 얼굴에 그리면서 운동을 한다. 사실 나이가들은 사람들은 심하게 무거

 

운 운동보다는 가벼운 쇠덩이를 올려 놓고 심호흡을 하면서 편안 하게 운동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몸에서 심한 활성 산소의 배출은 오히려 몸에 해롭기 때문이다. 활성산소를 적게 만들면서 하는 운동이 몸에 좋고 그러려면 가벼운 운동을 지속적으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얼굴에 인상이 그려지지 않을 만큼만 무게를 올려 놓고 힘이 들지않게 부드럽게 운동을 한다. 우선 요가운동으로 온 몸에 혈을 통한 다음에 근육 운동으로 들어간다.

 

요가를 할때는 머리에서 발 끝까지 꺽고 비틀어서 심장으로 부터의 피를 구석 구석 보내준다.

 

그렇게 스트레체 운동과 근육을 살리는 운동을 하고 나서 따끈한 사우나에 들어가는데 스팀 사우나 보다는 드라이 사우나를 선호한다. 기분상 스팀 사우나에서는 수증기가

 

꽉 차있는데 옆 사람의 몸 냄새가 더 가까이 느껴 져서 기분이 별로다.

 

나는 따끈 따끈한 사우나에 들어오면 기분을 남쪽나라 캬리비안 섬나라에 따가운 했살이 비추이는 해변을 상상하면서 앉아있다. 뜨거운 탕 에서 대부분 서로 말없이 입을꾹

 

다물고 있는데 오늘은 이탈리아 사람으로 보이는 백인에게 내가 먼저 이야기를 시작 했다. 이친구 기다렸다는 듯 신나게 내 이야기를 받는다. 자기는 아루바를 제일좋와 한

 

다 면서 신나게 이야기를 한다. 나도 아루바는 몇 번 갔다온지라 그곳에 유면한 탱고춤 이며 따가운 사막에 선인장 이야기를 펼쳐 놓았다.

 

그리고는 다음날 크럽에서 다시 만났는데 < are you korean?>하고 내게 물어 왔다. yes 하니까 이 친구 하는 말이 자기가 만난 한국인 중 내가 제일 맘에 든다고 했다.

 

벼란간 그 소리를 들으면서 갑자기 한국인들의 무서운 표정들이 머리에 떠올랐다. 내가 보기에도 한국인들은 자기가 아는 사람 이외엔 뭐 원수나 진 것 처럼 서로 무서운 표

 

정을 하면서 지나 간다.

 

내가 얼마 전부터 동양인 에긴 무조건 안녕하세요 해서 대답이 없으면 하와유 하고 영어로 인사를 대치 한다. 그때부터는 한국 사람도 웃으면서 내게 답례를 한다.

 

그러니 이 이타리안 친구 한국 사람의 무뚝뚝한 인상을 항시 대하다가 내가 상냥한 얼굴로 말을 시작한 것 이 무척이나 반가왔던가 보다.

 

더욱이 대부분 미국에 와서 장사만 하느라고 간단한 말 이외엔 서로 통하지가 않아서 미국인 들과 대화 하기를 꺼려하는 한국인 들이 많은 것 같다. 여러말 못 하더라도 상대

 

가 하는 말이라도 웃으면서 끝까지 들어주면 우리 한국인들을 좋와 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태어나고 죽고

 

4 년 전에 손녀 딸이 태어났다. 또 2 년 전에 외 손녀가 태어났다. 모두들 태어날때 엉엉 울면서 태어났다. 태어날때 울지 않으면 죽은 애기 라고 한다.

 

왜 우는지 모르겠다. 어머니 태줄에서 잘라 질때 통증이 있어서 인가 아니면 캄캄한 엄마 배 속에 있다가 너무 밝은 세상에 놀라서 인가. 아니면 무의식 적인 공포심을 타고

 

나서 인가 태어난 생명은 당장에 죽음과 싸워야하기 때문에 겁나서 인가. 좌우간 어린 생명은 울면서 이 세상에 나왔다.

 

또 자라면서 배고프다고 울고 배가 아파 울고 변이 잘 나오지 않아서 울고 감기 때문에 울고 잠자다 깨면 울고 애들은 그렇게 세상을 시작한다.

 

나는 3 살때 할아버지가 돌아 가셔서 집에서 어흔들이 하는유교식 장례식을 본 기억이 있다. 그후 내나이 11세에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 보았다. 수 년간 병고를 치르 셨어도

 

숨이 멈추기 전부터 오히려 얼굴은 편안해 보였다. 다만 어린 자식을 그냥 두고 가기 힘들어서 눈을 못 감으신것 외에 세상을 떠나면서 울지 않으셨다.

 

할머니의 임종도 보았다. 내가 12 살때 일 이다. 돌아 가시면서 얼굴은 평화롭게 변하셨다. 미국 와서는 사촌 누이가 뉴욕 암센터에서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의식 불명일때

 

보았다.

 

한결같이 세상을 하직 하시는 분 들은 절대로 울지 않으셨다. 얼굴은 모두 편안 하게 보였다.

 

우리 앞에는 신문이고 방송이고 뉴스 마다 목숨을 잃어 버리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육신의 명 대로 살다가는게 아니라 먹구 살기위해 일 하다 사고로 죽고 전쟁에서 죽

 

는다.

 

어찌 죽든 죽음이 가까이 오면 몸에서 기분좋은 홀몬이 마지막으로 나오 는가 보다. 아무도 고통스런 임종은 없나보다. 무척 고통 스럽다가도 진짜 죽음이 닥아 오면 인체가

 

스스로 최면제를 생산 하는 모양 이다.

 

자고 나면 이웃이 친구가 친지가 세상을 떠나고 있는데 살아있는 사람들은 죽은 사람에 별 깊은 감정을 느끼지 않고 있다. 더욱이 자신들과는 상관 없게 느끼는 것 같다.

 

허면서도 죽음에 공포는 모두들 갖고 있다. 본능적으로 갖고 있다.

 

어떤 과학자는 언젠가 헤성이 지구에 떨어져 일어나는 먼지 때문에 태양이 가려져서 엄청 기온이 낮아지면 모든 생물들이 전멸 한다고 한다. 지구는 이미 수 십 만년 마다 주

 

기적으로 그런 빙하 기가 있어 왔다.

 

또 어떤 과학자는 브랙홀이 태양계에 가까이 오면 태양에 변화가 일어나 엄청난 지구에 재앙이 일어난다고 한다. 그뿐 아니다. 당장 오늘 밤 자고나면 우리 앞에 무슨 일이

 

벌어 질지 아무도 모른다. 지구가 몽땅 없어질 만큼의 원자 폭탄들이 지구상에 여기 저기 있다.

 

우리가 생명을 가지고 있는 한 우리는 항상 위험에 놓여 있다. 이 우주를 생각해 보면 우리들 생명 세계란 참으로 보잘것 없이 나약하고 먼지 같이 바람에 날아 다니는 허약

 

한 물거품 이다.

 

우리가 생명을 입고 왔을때만 그렇다. 생명이 해체되면 우리는 이 우주에 속해 버린다. 질량 불변의 법칙에 의하면 우리가 없어진게 아니다. 우린 다른 형태로 더 안전한 형

 

태로 되돌아간 것이다. 우리는 이 우주에 영원히 속해 있는 존재다. 온 지구가 파멸되고 빙하기가 와서 모든 숨쉬는 생명들이 없어져도 우리는 여기 존재해 있다. 다른 형태

 

로 말이다. 그리고 지구가 다시 생명체를 받아 들일때 까지 모든 정보를 간직 한채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우린 죽으면서 편안하다. 우리가 사랑과 평화로운 에너지를 선택하면 우린 거기에 속해 진다. 우리가 살아 있을때 순간 순간 선택 하면서 살아 갔듯이 우리는 우리가

 

선택 하는쪽에 합류 할 수 있다.

 

사랑과 평화의 에너지는 우리가 살아 있을때도 존재하고 우리가 죽어서도 우주안에 존재해 있다. 다만 선택의 문제다.

 

들판에 잡초도 가을에는 씨았을 남기고 간다. 다음을 위해서 모든 지나간 정보들을 기록해둔 씨았으로 돌아간다. 하물며 고등 동물인 우리들이 그동안 사는 동안 경험한 정

 

보 들을 기록한 우리의 다른 형태의 존재가 없다고 할수 있겠는가? 우리는 우주 안에 다른 형태의 씨았을 품고 존재해 있다. 다음을 위해서.

 

하얀 눈이 들판을 덮어 햇빛에 반사되어 유난히 아름답다. 오직 배가 부른 상태에서만 그렇다. 배가고프면 눈에 아름다움이 보이지 않는다. 푸른하늘 야자수그늘 아래 산들

 

바람 부는 바닷가에 누어 날아가는 갈매기와 대화 하곺은 마음도 배가 부르지 않으면 되지 않는 그런데가 우리가 지금 속한 물질 세상 물질 세상이 아닌 세상이 더 광활하고

 

  행복하고 아름 답다는 상상은 어느누구도 하지를 못 한다. 눈을 감으면 깜깜해서 일까 육신의 눈은 감으면 깜깜 하지만 영혼의 눈은 다른 세상에 존재 함으로 육신과 비

 

교 하면 안되는 전혀 다른 세상이란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