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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04 05:00

심판인가 사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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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재림교단의 공식 입장


하나님의 사랑과 심판: 과연 심판은 없는가?“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 4:8,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이 선언만큼 그리스도교의 특징과 하나님의 속성을 잘 표현한 성경 구절은 없을 것이다. 이른바 “대쟁투 총서”라고 일컫는 화잇 여사의 5대 저술의 첫 권(부조와 선지자)의 첫 문장과 마지막 권(각 시대의 대쟁투)의 마지막 문장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God is love”)이다. 그만큼 하나님에게 있어서 “사랑”은 참으로 중요한 속성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문자 그대로 영원하고 무한하며 위대하다.그러나 성경이 제시하는 하나님의 사랑은 그것이 영원하다고 해서 인간의 죄악에 대하여 영원히 조치를 취하지 않는 무원칙한 사랑이 아니고, 그 사랑이 무한하다고 해서 의인과 악인을 구별하지 않고 한없이 퍼주기만 하는 무분별한 사랑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위대하다고 해서 우주에 들어온 죄와 악을 방치하거나 조장할 만큼 무기력한 사랑이 아니다.성경이 계시하는 하나님의 모습은 사랑 이외에도 다른 중요한 속성들을 포함하고 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면서(신 23:5; 33:3; 요 3:16; 요일 4:8, 16), 또한 자유의 하나님이시며(레 25:10; 요 8:32; 롬 8:21; 고전 3:17; 갈 5:1, 13), 동시에 그분은 공의(公義)의 하나님이시고(신 32:4; 33:21; 삼하 23:3; 시 37:28; 89:14; 101:1), 신실 또는 인자하신 하나님이시며(창 19:19; 출 15:13; 만 14:19; 시 6:4; 136:1-26), 무엇보다도 그분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다(레 11:44-45; 수 24:19; 삼상 6:20; 시 78:41; 사 1:4; 5:16).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는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시 85:10), “의와 공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라. 인자함과 진실함이 주를 앞서 행하나이다”(시 89:14)라고 읊조렸다.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의 프로필을 묘사하면서 “은혜와 진리”(요 1:14, 17)가 공존한다고 기록하였다. 여기서 “은혜”는 사랑에서 우러난 것이고, “진리”는 율법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사랑과 더불어 공의와 진리와 율법은 하나님의 나라의 법이고 질서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정(正)과 사(邪), 의(義)와 죄(罪) 사이에 판단하시며(창 16:5; 신 32:36; 대상 16:14; 시 35:24; 50:4; 58:11; 72:2; 등등), 인간의 모든 행위를 선악(善惡) 간에 심판하신다(창 18:25; 삿 11:27; 삼상 2:10; 욥 34:23; 시 7:8; 9:8; 50:6; 전 12:14; 히 10:30; 등등).하나님께서 공의로 세상을 심판하신다는 말씀은 성경에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자주 반복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에도 아랑곳없이 하나님의 사랑만을 강조하면서 그러한 사랑의 하나님은 사람을 심판하시거나 죄인을 벌하시는 일은 절대로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릇된 단정으로서 성도들을 기만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악인에 대한 심판과 형벌은 없다고 가르치는 이들은 다음의 성경 본문들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말해야 한다.“내가 심중에 이르기를 의인과 악인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니 이는 모든 목적과 모든 일이 이룰 때가 있음이라 하였으며”(전 3:17).“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전 12:14).“그가 많은 민족 중에 심판하시며 먼 곳 강한 이방을 판결하시리니…”(미 4:3a).“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마 12:36).“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 12:48).“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행 17:31a).“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롬 14:10).“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살후 2:12).“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계 20:12-13).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에 최후의 심판과 형벌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원칙하고 비도덕적인 존재로 전락시키고, 성경에 수십 번 명시되고 강조된 하나님의 통치 방법을 부인하는 행위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에게 무원칙 또는 자유방임과 방종의 사랑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원칙 있는 사랑이요 하나님 자신께서 희생을 감수하시면서도 지키시는 원칙 있는 사랑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영원하고 무한하고 위대한 사랑 때문에 인간을 창조하셨고, 죄인을 구원하시며, 그 사랑 때문에 공의롭게 심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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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인가 사랑인가: 십자가 앞에서 재림교회의 심판론을 다시 묻는다 


– 사랑 없는 심판은 복음이 아니다, 십자가는 모든 심판을 품은 자리다 –



1. 서문: 왜 ‘심판’이라는 말 앞에서 복음이 침묵해야 하는가?


존경하는 재림교회 지도자 여러분께,


먼저 말씀의 빛을 사모하며,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진력하시는 여러분의 수고와 헌신 앞에 경의를 표합니다. 그러나 그 숭고한 열심이 오늘날 ‘하나님의 성품’이라는 주제에서 중대한 전도를 일으키고 있는 현실 앞에서, 저는 사랑하는 형제된 자의 심정으로, 그리고 십자가의 빛에 사로잡힌 복음의 종으로 이 비평을 씁니다.


재림교회는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러나 동시에 공의로 심판하신다.”


겉보기에는 균형 있는 진술이지만, 실상은 복음을 공의로 제한하고, 사랑을 조건화하며, 십자가를 배후로 후퇴시키는 논리입니다.


여러분께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해 준비하신 마지막 말씀은 사랑입니까, 심판입니까?

십자가는 죄인을 정죄한 자리입니까, 아니면 대신 정죄받은 사랑의 자리입니까?



2. 성경적 분석: 성경은 심판을 말하나, 복음은 심판을 종결시킨다


(1) 성경은 심판을 선언한다. 그러나 그것은 ‘예고’이지 ‘궁극’이 아니다


재림교단의 공식 입장은 수많은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분임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이 본문들은 구속사 전체에서 하나님의 최종 계시인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 이전, 또는 그 사건의 외면적 차원에 국한된 본문들입니다.


전도서 12:14, 계 20:12 등은 구약적 전통과 요한계시록의 종말론적 언어로써 인간의 행위에 따른 심판을 언급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요 5:24에서 "내 말을 듣고 믿는 자는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느니라"고 선언하십니다.


바울은 롬 8:1에서 단언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성경은 심판을 선언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그 심판을 그리스도 안에서 대속적으로 종결시키는 계시입니다. 재림교단은 이 복음의 ‘심판 종결성’을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2) 하나님은 공의로 심판하시는가? 예, 그러나 그 공의는 ‘형벌’이 아니라 ‘자기희생’이다


공의는 사랑의 반대가 아닙니다. 공의는 사랑의 방식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죄인을 벌하는 것으로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죄인을 대신하여 하나님 자신이 벌받는 자리에서, 그 진실한 공의가 계시되었습니다.


고후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롬 3:26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십자가는 심판의 법정이 아니라, 사랑의 제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선고’하지 않고 ‘감당’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러나 재림교단은 하나님의 공의를 아직 집행되지 않은 심판의 보류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십자가는 복음의 중심이 아니라 심판 이전의 절차로 전락하고 맙니다.


(3) ‘행위대로 심판’이라는 교리는 복음을 무효화한다


계시록 20장을 인용하며 “행위에 따라 심판받는다”는 논지를 전개하는 것은 십자가의 선언과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하나님의 의가 인간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전가되는 복음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갈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롬 4: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행위의 기록’이란 계시록의 상징은 구원 판결을 위한 법적 근거가 아니라, 믿음을 가진 자들의 삶에 대한 열매의 증거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성경 전체, 특히 바울의 복음에 부합하는 해석입니다.


(4) 재림교단의 ‘사랑+공의’ 균형 논리는 십자가의 기적을 무너뜨린다


“하나님은 사랑이지만 공의도 있으시다”는 이중성 언어는 교리상 중립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하나님을 ‘두 개의 상반된 법’에 갇힌 존재로 그립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사랑은 항상 공의에 의해 제약을 받으며, 십자가조차도 공의를 만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격하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요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


요 12:47 “나는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구원하려 함이로라.”



공의는 사랑을 제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은 공의의 모든 요구를 자기 희생으로 껴안고 초월하셨습니다. 그 사건이 십자가였습니다.



3. 신학적 분석: 심판 중심의 하나님은 복음의 하나님이 아니다


(1) 하나님은 심판자가 아니라, 심판을 감당하신 아버지이시다


재림교단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되, 죄를 방치하지 않으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며, 죄인은 반드시 형벌로 다스리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진술은 복음의 심장부를 오해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다스리시는 분이 아니라, 죄인을 사랑하느라 자기 자신을 죄로 여기신 분입니다.


예수께서는 죄인을 심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고, 그들 대신 십자가에서 조용히 심판을 감당하셨습니다.


그는 정죄의 칼을 들고 오신 분이 아니라, 정죄의 칼 아래 자신의 몸을 두신 어린양이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드러난 하나님은 재판장이 아니라 중보자, 처벌자가 아니라 자기포기자, 심판의 실행자가 아니라 사랑의 화해자이십니다.


(2) 심판은 복음의 앞이 아니라, 복음의 배경일 뿐이다


복음은 ‘사람이 심판받을 것이다’라는 두려움에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이 먼저 사랑하셨다”는 선언에서 시작됩니다(요일 4:19).


복음의 본질은 “그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입니다. 그 목적은 형벌이 아니라 구원입니다(요 3:16-17).


십자가는 복음의 정점이며, 모든 심판의 무게를 하나님께서 친히 짊어진 역사적 사건입니다.


따라서 심판은 복음으로 이끄는 ‘공포의 통로’가 아니라, 복음을 드러내기 위한 어둠의 배경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심판으로 협박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심판을 감당하시면서까지 사랑을 증명하신 분입니다.


(3) 심판 없는 사랑은 방종이라는 주장은, 복음을 법정으로 다시 끌고 온다


재림교단의 공식 입장은 말합니다. “형벌 없는 사랑은 무원칙하고 무기력한 사랑이며, 그것은 방종을 낳는다.” 그러나 이 말은 율법이 없는 사랑은 혼돈이다라는 전통적 바리새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주장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말합니다.


사랑은 방종을 낳지 않습니다. 참된 사랑은 마음을 변화시키고 회개를 일으킵니다(롬 2:4).


십자가에서 무조건적으로 용서받은 자는 그 사랑에 사로잡혀 자발적으로 거룩해지는 길을 택합니다(고후 5:14).


죄를 방지하는 동력은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형벌로 사람을 바꾸려는 것은 십자가를 믿지 못한다는 고백입니다. 사랑은 법보다 강하고, 은혜는 심판보다 깊습니다.



4. 논리적 분석: 교리적 정합성과 복음적 일관성의 붕괴


한국 재림교회의 심판론은 그 자체로 하나의 체계처럼 보일 수 있으나, 실제로는 복음이 계시하는 하나님의 성품, 구원 방식, 그리고 종말론적 메시지와 심각한 충돌을 일으킵니다. 이 충돌은 신학적으로 치명적인 수준이며, 복음의 본질적 선포를 구조적으로 손상시킵니다.


(1) 하나님의 성품: ‘사랑과 공의의 균형’이라는 이중 구조는 하나님을 분열된 존재로 만든다


재림교단은 하나님이 사랑과 공의를 동시에 갖춘 분이라고 강조하며, 이 두 속성이 조화를 이루는 심판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 설명은 사랑과 공의를 각각 독립된 ‘힘’으로 상정하여, 하나님 안에 두 개의 상반된 법이 긴장하는 구조를 상정하게 됩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이중적이고 내적으로 분열된 존재로 만들며, 십자가의 자기 희생 안에서 사랑 안에 공의가 포함되고, 공의 안에 사랑이 체현된 복음의 계시를 훼손합니다.


(2) 심판의 목적: ‘죄의 확증과 형벌’이라는 해석은 이미 십자가에서 감당된 심판을 부정한다


재림교단은 심판의 목적이 죄를 드러내고 악인을 벌하는 데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이 모든 심판이 십자가에서 이미 감당되었으며, 인간에게 남은 것은 그 사랑에 응답하는 길뿐임을 선포합니다.


십자가는 심판을 미루어 둔 사건이 아니라, 모든 인류의 죄와 형벌을 하나님이 친히 짊어진 종결적 사건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이 심판을 무시하고, 다시 마지막 날에 인간의 행위로 심판을 결정짓는 것은 십자가의 권위를 훼손하는 재심 요구이며, 복음의 본질적 부정을 의미합니다.


(3) 구원의 조건: ‘믿음+행위’ 구조는 믿음만으로 의롭다 하신 복음의 선언을 부정한다


재림교단은 믿음에 더해 율법의 순종, 계명의 준수, 삶의 열매 등을 구원의 조건처럼 언급합니다. 그러나 신약 성경은 일관되게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선언합니다(롬 3:28, 갈 2:16, 엡 2:8-9).


‘믿음+행위’라는 공식을 받아들이는 순간, 복음은 다시 율법의 체계 속으로 끌려들어가며, 결국 인간은 구원을 위해 하나님 앞에서 다시 자격 심사를 받아야 하는 존재가 됩니다. 이것은 마틴 루터가 말한 것처럼 "마귀가 가장 그럴듯하게 위장하여 복음을 무효화하는 방식"이며, 십자가의 무조건적 사랑과 은혜를 철회시키는 위험한 오용입니다.


(4) 종말의 메시지: ‘행위에 따른 최후의 판단’이라는 주장은 요한복음 5:24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재림교단은 마지막 심판 날에 각 사람의 행위대로 구원의 운명이 결정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명확히 말씀하셨습니다: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 5:24).



이 선언은 현재 시제이며, 복음을 받아들인 자는 이미 생명 안으로 들어왔고, 최후의 심판은 그의 미래에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선포합니다.


재림교단이 말하는 “행위에 따른 최후의 판단”은 결국 예수 안에서 이미 종결된 심판을 무시하고, 복음 안에서 살아가는 자를 다시 두려움 속에 묶어두는 결과를 낳습니다. 이는 요한이 경고한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나니…”(요일 4:18)라는 선언과도 충돌합니다.



5. 복음적 대안: 심판은 경고가 아니라, 복음의 완성 선언이다


복음은 ‘심판이 있다’는 선언이 아니라,

“심판은 이미 끝났다. 다 이루었다. 이제는 생명으로 오라.”는 선언입니다.


요 19:30 “다 이루었다.”


요 5:24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롬 8:1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하나님은 더 이상 죄인을 재판하시지 않습니다. 이미 예수 안에서 죄인을 품고 용서하신 분입니다. 복음은 “심판을 두려워하라”는 말이 아니라, “사랑을 믿고 오라”는 초청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힘이며, 복음의 혁명입니다.



6. 결론: 재림교회는 ‘심판의 종교’에서 ‘복음의 신앙’으로 회개해야 한다


지금 한국 재림교회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더 이상 ‘두려움의 신학’으로 성도들을 붙잡을 수 없습니다.

더 이상 ‘율법과 형벌의 논리’로 하나님의 사랑을 변호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택해야 할 길은 오직 하나입니다.

십자가 앞에 다시 서십시오. 복음이 말하는 하나님으로, 하나님을 다시 고백하십시오.


심판을 넘은 사랑, 율법을 이긴 은혜, 정죄를 삼켜버린 십자가,

그 복음으로 돌아오십시오.



마무리 선언


하나님은 심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심판을 감당하신다. 


심판은 죄인을 벌하는 날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모든 것을 끌어안은 날로 드러날 것이다.



아멘.




  • ?
    벚꽃향기 2025.06.04 05:07

    심판이 무섭습니까? 십자가를 보십시오. 거기서 하나님은 심판을 감당하셨고, 나에게는 사랑을 초대하셨습니다.

  • ?
    벚꽃향기 2025.06.04 05:41
    재림교단의 공식 입장에서 인용된 수많은 심판 관련 성경 구절들에 대해 하나하나 심도 깊은 해설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방대하여 이곳 홈페이지에는 게시하기에 다소 제한이 있을 수 있어, 작업이 완료되면 제 블로그에 정리하여 게시할 예정입니다. 모든 작업이 마무리되면 블로그 주소를 공개하겠습니다. 이 주제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블로그를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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