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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 같이 생각해 봅시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교파마다 자신들의 교회는 진리교회라고 믿고 또 자부심과 긍지를 같고 있습니다. 안식일 교회도 타 종파에서는 이단시하거나 말거나 세상의 마지막 교회요 남은 무리며 진리교회로서 유일무이하게 예언의 신을 소유한 성경과 증언대로 사는 참 교회라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오류가 없다고 믿습니다. 어느 교단 보다고 성경을 가장 잘 알고 말씀대로 사는 교단이라고 자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실상은 많은 오류를 과거에도 범했고 또 지금도 범하고 있습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안식일교회의 초창기에 어떠했는지 알아봅시다.
"우리 교회의 첫 60년 동안 거의 모든 재림교인들이 예수께서 아버지보다 열등한 피조물이라고 결론을 지었다." (소스북 52)
이렇게 과거의 오류를 범한 일이 있습니다. 지금도 오류가운데 있는지 겸허한 마음으로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무엇인가 안다고 하는 그 무엇만이 고집할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 선지자는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우리를 충고있읍을 주목할 필여가 있습니다.
"우리 형제들은 모든 논쟁점들을 거리낌없이 연구하기를 즐겨 하여야 한다. 만일, 어떤 형제가 그릇된 것을 가르치는 때에는, 그에 대한 책임을 맡은 자는 그 사실을 명확히 알아야 하며, 또 만일 그가 진리를 가르치는 때에는 책임자의 입장은 그 형제의 편에서야 한다. 여하간, 우리는 우리 가운데서 가르쳐지고 있는 모든 사항을 알고 있어야 하는데, 만일 그것이 진리라면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 대하여 우리에게 보내시는 기별을 알아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교리를 시험할 수 있는 지침을 주셨다.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빛을 보지 못하고"(사 8 : 20). 만일, 소개된 빛이 이 시험에 부합할 때에는, 그것이 우리의 생각과 맞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을 수락하기를 거부해서는 안 된다.
아무도 사람의 조사 연구로는 우리가 완전한 것을 발견할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분명히 아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문제와 그와 관련된 분명한 진리들을 가르치지 않는 까닭에 우리 교회들은 점점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빛이 누구를 통해 왔든지 간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온유함으로 마음 문을 열어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와 같이 하지 않는다. 그들은 어떤 논쟁의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에는 그것이 사실로 입증되었을 때에라도 조금도 인정하지 않고 계속 질문을 퍼붓는다. 참으로, 우리는 빛을 사모하는 자처럼 행동하여야 하겠다. 하나님께서는 날마다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셔서, 당신의 광채가 우리 위에 비치어 우리가 모두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배우는 자가 되기를 바라신다.
우리의 의견에 맞지 않는 어떤 교리가 제시될 때에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연구하려 또 기도로써 주님께 도움을 구할 것이며, 원수가 우려의 속에 의심과 편견을 일으키게 할 여지를 주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과거에 대제사장들과 관원들이 구세주 예수님께 대하여 품었던 그러한 정신을 나타내서는 안 된다."(복음 300, 301)
예수님 초림 당시와 이 시대를 한번쯤은 비교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어두움이 땅을 덮었고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웠다. 사라 계신 하나님의 율례는 신속하게 생명없는 죽은 문자가 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간간이 하나님의 작은 음성들이 들렸는데 이는 가장 경건한 성도들에 의해서 였다. -- 제사장들의 길고 복잡한 설명은 가장 분명하고 단순한 것들을 불분명하고 불완전하고 신비롭게 만들어 버렸다. 경쟁관계에 있는 교파들간에 논쟁의 소리는 이해력을 어둡게 하였고 그들의 가르침을 진리의 올바른 논리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리뷰 1895. 8. 6)
예수님의 초림 당시의 형편을 나타낸 말씀이나 어쩌면 우리리 사는 현 시대를 그대로 그려 놓은 듯 합니다. 예수님의 설교는 참으로 단순하여 노인이건 어린아이든, 여자나, 남자나, 지식인이든 무식한 사람이든 잘 이해할 수 있는 알아들을 수 있는 이해하기 쉬운 말씀 이였슴이였습니다. 공중나는 새를 보라고 하는데 못 알아들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들의 백합화를 보라고 하는데 못알아 들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어린아이들로부터 노인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잘 알아들을 수 있는 극히 평범한 말씀으로 하늘의 대진리의 보화를 열어 보이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주위에는 많은 관중들이 늘 따라 다녔습니다.
누군가가 연설을 잘하는 사람이란, 유식한 말로 문자를 써서 유식한 사람만 알아듣는 그런 말이 아니고 어린아이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무식한 자나 유식한 자나 모두 골고루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하는 말을 들은 바 있습니다.
요즈음 이름 있다는 종교지도자들 가운데는 자신의 유식을 나타내려고 히브리어가 어떻고 라틴어가 어떻고 영어가 어떻고 하며 성경풀이를 하는데 어찌나 복잡한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 눈까풀이 닫아질 정도입니다.
또 경쟁관계에 있는 교파들간에 자기 교회가 제일이라고 정통이라고 논쟁의 목청을 돋웁니다. 자기네 교리와 맞지가 않으면 서로 이단이라고 합니다. 참으로 우리는 예수님시대와 너무나도 같은 조류의 흐름을 목격하게 합니다. 증언은 예수 재림 직전의 형편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은 이 세상 역사의장 어두운 시기에 일어날 것이다. 노아와 롯의 시대는 인자가 오시기 직전 세상의 상태를 묘사한다. 성경은 이 때를 가리켜 사단이 모든 능력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살후 2:9, 10) 일할 것이라고 선언한다. 사단의 역사(役事)는 이 마지막 시대의 신속히 증가하는 암흑과 많은 오류와 이단과 기만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사단은 세상을 사로잡을 뿐 아니라 그의 기만으로 소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들에게까지도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큰 배도는 밤중과 같은 깊은 암흑으로 발전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진리를 위한 시련의 밤이요 눈물을 흘리는 밤이요 핍박의 밤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암흑의 밤에 하나님의 빛은 비칠 것이다."(선지 717)
우리는 지구 역사상 죄악으로 가장 어두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불의는 세상을 판을 침니다. 위정자들을 국민들은 믿지를 못합니다. 또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부모가 자식을 믿을 수 없는 세상이 이미 되었습니다. 진리대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시련의 밤이고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죄악의 깊은 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고후 4:6)게 하신다. "(인간 마음의)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에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창 1:2, 3)다. 그처럼 영적 흑암의 밤에 하나님의 말씀은선지 717고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일어나라 빛를 발하라(하나님의 품성이 어떤것인지 알수 있게 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사 60:1)고 하신다."(선지 717)
지구가 처음 창조될 당시 땅은 공허하고 흑암이 깊었다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이 시대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도 흑암으로 둘러 쌓였습니다. 무엇이 오류고 진리인지 각 교파마다 주장하는 너무도 많고 많아서 흑암과 혼돈이며 공허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의 마음이 흑암과 혼돈과 공허할 때 하나님의 신 곧 성령께서 역사를 하시는데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즉 우리 마음의 수면에 역하시더라 이 말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생기더라 이 말입니다. 빛이 무엇입니까? 빛은 곧 생명입니다. 동물이나 식물이나 모든 생물은 빛으로 인해서 살아갑니다. 빛이 없다면 동물도 식물도 모두가 살수 없습니다. 여기 나오는 빛은 중천에 뜬 태양의 빛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빛이요 생명입니다. 마음의 흑암과 혼돈과 공허를 맛본 자에게 하늘에 빛 곧 하나님의 사랑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빛을 받을 때 그토록 공허하고 무엇이 진리인지 오류인지 모르던 사람이 진리와 오류를 구별할 수 있고 혼돈에서 정리된 바른 그리스도인 생애에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암흑속에서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사 60:2)라. 아버지의 영광의 빛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빛으로서 세상에 오셨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아버지)을 사람들에게 나타내시려 오셨고 그는 "성령과 능력으로" 기름부음을 받아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행 10:38)하시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나사렛에 있는 회당에서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 4:18, 19)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하도록 명하신 사업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하라"(마 5:14, 16)고 말씀하셨다." (선지 717, 718)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따른다고 수 천년간을 양을 잡아 제사를 지내고 있었지만 실상은 하늘 아버지의 품성은 전혀 모르는 무지의 흑암으로 쌓여 있었다는 말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에 대해서 무지한 소경이여 귀머거리요 장님이 였습니다. 이러한 불치병에 걸린 중환자를 치료하시려고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아버지의 품성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게 하여 그분의 품에 안기도록 하여 죄의 치료를 받고 아버지와 행복한 삶을 살게 하는 것이 예수님의 상명이 였으며 또 예수를 믿는 제자들 곧 신앙 인들이 하여야 할 하나님의 참 사업이라고 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하라"(마 5:14, 16)고 말씀하셨다." (선지 717, 718)는 것을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마25:1-13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슬기 있는 者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는 전에 없었던 방법으로 열 처녀의 비유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 다섯은 슬기가 있었고 다섯은 미련하였다. 슬기 있는 자들은 등과 함께 기름을 갖고 있었다." (원고 140. 1901)
"비유에서 하늘의 신랑을 기다리는 사람 모두가 주께서 더디 옴으로 다 졸며 잔 것으로 나타나 있지만, 슬기 잇는 자들은 그의 오실 때가 가까웠다는 기별을 듣고 잠에서 깨어나 그 기별에 응답하였다. 그들이 영적 식별력이 다 없어진 것은 아니 였으며 그들이 일어나 그들이 그리스도의 은혜를 꼭 붙들었을 때 그들의 신앙적 경험은 활기가 있었고 풍성하여 졌으며 그들의 애정은 위에 있는 것들에 고정되었다.
그들은 도움의 근원이 어디 있는가를 알았고 하나님(천부)의 사랑에 감사하였고 그들은 성령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마음을 열어 놓았고, 그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그 마음에서 흘러 나왔다. 그들이 등잔 심지를 자르고 손질을 해서 불을 붙여 도덕적 흑암에 쌓여 있는 세상에 한결같은 빛을 보내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마음에 은혜 기름을 가졌기 때문이며 그들의 주님이 그들 앞서 행하신 일 곧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는 일을 하려고 나아갔기 때문이 였다." (사인즈.1901.6.28)
"라오디게아 교회는 어리석은 처녀로 예표되었다." (리뷰.1890.8.19)
어리석은 처녀가 바로 라오디기아 교회라고 하는데 라오디기아 교회는 어느 교회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이것은 천주교회든 장, 감리교회든 안식일 교회든 말세에 존재하는 모든 교회를 통칭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속하지 않은 교회는 이 지상에 없습니다. 오늘날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교회는 즉 진리교회라고 하는 안식일 교회든 좌우간 어떤 교회든 모두가 라오디게가 교회인데 슬기있는 처녀로 판정된 것이 아니고 어리석은 처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기별은 두려운 책망이며 오늘날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1보감 327)라고 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계 3:14∼17).
그들이 잘못되어 있는데도 스스로 옳다고 확신하는 것보다 더 큰 기만이 어떻게 사람의 마음에 자리잡을 수 있을까! 참된 증인의 기별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비참한 기만을 당하고 있으면서도 전혀 그 기만을 알지 못함을 보여 준다. 그들은 그들의 형편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한탄할 만한 상태임을 알지 못한다. 기별의 대상자들이 스스로 높은 영적 수준에 처해 있다고 자부할 때, 참된 증인의 기별은 그들이 영적으로 눈멀고 가난하고 곤고한 상태에 있다는 무서운 책망으로 그들의 안전을 깨뜨린다."(3증언 252)
잘못된 길로 가지만 그것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눈이 멀었기 때문인데 자신들이 눈이 멀었다고 하면서도 어떤 부분에 눈이 멀었는지 모릅니다. 약간에 지적을 해 보겠습니다. 안식일을 어떻게 지키는 것인지 전혀 모릅니다. 그저 안식일은 토요일이야 그날은 장사하면 안되지, 교회 가는 날이야 하는 정도입니다. 안식일에 요리를 해도 괸찮은지 안되는지 전혀 모릅니다. 건강개혁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쪽발 갈라지고 새김질하는 짐승의 고기는 먹어도 되, 비늘있고 지느러미 있는 것은 먹어도 되, 이것이 건강개혁이라고 생각하는 정도입니다. 시골생활의 왜 해야하는지 전혀 모릅니다.. 이게 진리 교회입니다.
"영적 지식과 우월성을 가졌노라고 자랑하는 한 백성이 상징되었다. 그런데 저들은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베풀어주신 과분한 축복에 대하여 전혀 반응을 나타내 보이지 않았다. 저들은 하나님께 대하여 거역하는 정신과 감사치않는 마음과 망각하는 태도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마치 사랑스럽고 용서하는 아버지가 배은 망덕하고 불순종하는 아들을 다루는 것처럼 저들을 취급하시는 것이었다. 저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하였고 거룩한 특권들을 남용하였으며 주님께서 주시는 기회들을 멸시하였고 만족한 정신으로 침체된 생활을 하며 인색한 정신으로 배은 망덕하고 공허한 형식주의와 위선적인 불성실에 빠져 있는 것을 만족하여 왔다. 저들은 바리새인적 교만심을 가지고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는 견책의 말씀을 들을 때까지 허풍을 떨어왔다."(1기별 357)
많은 타종파 교회에서는 안식교인들을 바리세인적인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매우 율법적입니다. 사랑이 없는 냉냉한 교회라는 것입니다. 개신교회 안에 안식일을 지키는 무리들이 있다고 하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저들은 안식일을 뜻이 맞는 이들과 함께 지킵니다. 그러면서도 안식일 교회로 개종은 안 합니다. 왜 그럴까요? 역시 안식일 교회에는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전도회때 주일을 지키는 형제들이 말씀을 듣고 개종을 합니다. 그러나 얼마 안있어 도루묵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서 왜 안식일 교회가 진리교회가 아니라고 생각되느냐 하고 알아보면 그들의 대답이 '맞다 진리교회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나는 사랑이 그립다 그래서 도로 내가 다니던 교회에 나간다고 하는 것을 나는 들었습니다. 아마 목사님들 가운데도 그런 말, 들은 분들이 간혹 있을 줄 압니다.
교회에 다니기는 다니지만 참으로 마음이 공허합니다. 목사님의 설교를 들어봤자 판에 박힌 듯한 내용에 별 감흥이 없습니다. 교회에 안가기도 그렇게 가자니 따분한 분위기입니다. 무엇인가 마음에 공허합니다. 즉 마음에 무엇이 차야 되는데 텅 빈 마음 즉 마음이 가난으로 죽을 지경입니다. 이것이 라오디기아의 상태입니다. 영적 눈이 멀어서 무엇이 진리인지 오류인지 통 알 수가 없습니다. 분별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십년 이십년 믿었지만 구원에 자신이 없습니다. 즉 품성이라고 하는 것 십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그저 그 모양입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술 답배 안 하는 것 그 정도 일뿐입니다. 마음은 째째하고 인간다음을 아무도 느낄수 없습니다. 기껏해야 자부심이 있다는 것이 그래도 내가 목사인데 내가 장로, 집사인데, 수 십년을 예수 믿었는데, 전도를 얼마를 했고 교회를 얼마를 지었고, 교회에 대한 자기 경력, 그저 그것으로 위안을 받고 있다면 어떨 지요? 완전히 품성의 옷은 벌거벗은 상태입니다.
아무리 예수 믿고 품성 품성 해 보았자 되지를 않습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품성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품성이 변화되는 것이라고들 합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자기의 의이지 하나님의 의는 아닐 것입니다. 품성이란 하나님이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거룩하다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계19:7-9)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했스니까 열심히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안됩니다. 왜 그럴까요 스스로 자기 의로 할려니 안됩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15:5)
예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성경에 보면 사람을 나무로 비유한 곳이 많이 있습니다. 나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많은 이들 가운데 품성의 변화를 위해 부단의 노력을 해야한다고 말합니다. 거름도 주어야 하고, 김을 매야 한다고 합니다. 저는 도무지 이해가 안갑니다. 그가 말하는 거름이 무엇이며 김매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가 안갑니다.
나무 스스로가 거름을 주고 김매는 것 봤습니까? 이거 도무지 천연계의 법칙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소리입니다. 다시 성경을 봅시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요15:1)
농부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우리의 아버지십니다. 포도나무의 원 둥치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왜 이 세상에 오셨습니까?
" 오직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위대한 희생만이 죄인을 위한 아버지의 사랑을 알려 줄 수 있었다. "(정로 14)
"갈바리의 십자가를 바라보라. 십자가는 하늘 아버지의 무한하신 사랑과 측량할 길이 없는 자비의 영구적인 보증이다." (1기별 385)
"하나님의 아들께서 하늘에서 오신 것은 세상에 하나님 아버지를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정로 11)
"오로지 하나님의 아들만이 우리를 구속하고 죄에서 구원하실 수 있다. 오직 아버지와 일체이신 그분만이 하나님께 대하여 우리에게 말씀해 줄 수 있다. 오직 그분만이 하나님의 사랑의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 아셨다. 오직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위대한 희생만이 죄인을 위한 아버지의 사랑을 알려 줄 수 있었다."(정로 14)
많은 증언을 여기에 기술할 수 있지만 이정도로 기록하고 설명해 나가겠습니다.
하나님은 농부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시고, 우리는 포도나무의 가지입니다. 열매와 나무의 잎은 가지에서 맺는 것이 천연계의 법칙입니다. 그런데 나무 스스로는 가지기도 할 수 없고 또 잡초가 무성하다고 해서 김매기도 할 수 없습니다. 물론 거름도 줄수는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은 농부가 합니다. 농부는 거름을 땅을 파고 듬뿍 줍니다. 가물면 물도 줍니다. 풀 뽑기도 합니다. 이것을 실타고 하면 그 나무는 시들어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좀 더 설명을 하겠습니다. 나무는 아무리 거름을 많이 주어도 많은 물을 주어도 태양빛을 받지 못하면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태양은 하나님 아버지를 상징합니다. 그분의 사랑을 예수님을 통해서 아버지의 사랑을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성경에 숱하게 기술하셨는데 그분의 사랑 즉 하늘 아버지의 사랑만 쏙쏙 뽑아 먹으면 성령의 열매가 주렁주렁 달리지 말라고 해도 안 달릴 재간이 없습니다. 이것이 품성의 변화입니다. 이것을 가르쳐서 입혀주신 의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의로는 하늘갈 사람 하나도 없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입혀주신 의니 나누어주신 의니 백날 떠들어 봤자 소용없습니다. 말하는 사람도 무슨 소리인지 듣는 사람도 무슨 소리인지 전혀 모르고 떠드는 날라리 방언에 불과합니다.
처녀들보고
"너 남자를 아느냐?"
고 물어본다면 그뭐라고 대답을 할까요?
"웃기는 소리한다."
고 할 것이다. 왜 그의 아버지도 남자고 그의 할아버지도 남자고 그의 남동생이 있다면 또 그의 오빠가 있다면 역시 남자일 터이니까 말입니다. 역시 남자를 모른다는 말은 말도 안 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는 남자를 모르는 여인이 있었으니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그에게 들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생각하매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은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눅1:26-36)
처녀가 아이를 낳게된다는 가브엘 천사의 말에 마리아는 나는 사내를 모른다고 했습니다. 즉 남자를 모른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체험적으로 모른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 모른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 하나님 안다고 합니다. 그것은 아는 것이 아닙니다. 막연하게 아는 것입니다. 진짜가 아니라 이 말입니다.
어느 나라 백성이든 자기 나라의 대통령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 그 대통령의 얼굴도 압니다. 그러나 그와에 직접적인 관계는 없습니다. 그것으로는 안다고 할 수는 업습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것은 구체성이 있어야합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확립되고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품성을 알아야 합니다. 그분과 나 개인과의 관계가 확립되어야합니다. 하나님은 곧 나의 개인의 아버지이심을 확신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미련한 하나님을 알기는 아는데 피상적 이여서 관계없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에 대해 이렇게 소개하신다.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요20:17)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 글을 매우 좋와합니다.
"my Father and your Father, to my God and your God.'"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요 20:17)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얼마나 멋지고 든든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아버지가 내 아버지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시라는 거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믿으십시오 이 말씀이 영생입니다. 이 말씀이 당신을 구원하는 길입니다. 이 말씀이 당신을 행복하게 하는 비결입니다. 이 말씀을 받아들일 때 당신의 행복하여 당신의 품성을 점진적으로 하나님화 시킬 것입니다.
Can you not trust in your heavenly Father? Can you not rest upon His gracious promise? ... Can we not have implicit trust, knowing that He is faithful who hath promised? I entreat you to let your trembling faith again grasp the promise of God. Bear your whole weight upon them with unwavering faith; for they will not, they can not, fail.-2T 497
그대의 하늘 아버지를 신뢰할 수 없는가? 그분의 은혜로운 약속을 믿을 수 없는가?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다는 사실을 알면서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없단 말인가? 나는 흔들리는 믿음 가운데 있는 그대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 한 번 붙잡으라고 간청한다. 요동하지 않는 믿음으로 그대의 전심을 다해 앞으로 나아가라. 이는 그분의 약속들은 실패하지 않을 것이요, 또한 실패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교회증언 2권 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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