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화한 도시의 오후 퇴근 시간,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습니다. 퇴근을 서두르던 사람들은 가까운 건물의 처마 밑으로 몰려들었습니다. 다섯 사람쯤 서 있기에 좋을 그곳으로 갑자기 몸집이 큰 아주머니 한 분이 뛰어들었습니다. 자연 한 사람이 밀려날 수 밖에 없는 형편에 놓였는데 그때 가장 나이가 젊은 한 청년이 빗속으로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던 한 노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봐, 젊은이. 세상은 다 그런 것이야"
그 노인의 말에 모두가 침묵했습니다. 그러자 청년은 빗속을 뚫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잠시 뒤 다시 나타난 청년의 손아귀에는 여섯 개의 비닐우산이 들려져 있었습니다. 청년은 아무 말없이 그 우산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이렇게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은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청년으로부터 받은 우산을 쓰고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노인은 그 우산을 받아 쓸 수가 없었습니다. 우산을 그대로 둔 채 조용히 자리를 뜨고 말았습니다. 한 청년의 작은 사랑, 작은 나눔, 작은 베품, 작은 섬김이 그 노인을 부끄럽게 만들고 말았던 것입니다. 또한 여러 사람들을 행복하게 했으며 세상은 아름답고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도록 만들었던 것입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에 팔려고 내 놓은 집이 있었습니다. 의사부부가 살던 집으로 다른 도시에 병원을 개업하게 되어 급히 아파트를 내놓았는데 몇 달이 지나도록 살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결국은 3개월을 더 버티다가 먼저 이사를 해 버렸고 빈집으로 3개월을 더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아파트 1층이란 사기는 쉬워도 팔기는 어렵다는 말들을 하다가도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그 집 현관앞에 설때마다 집이 제 임자를 못만나 먼지가 끼고 때가 끼인다면서 아까워 혀를 차기도 했습니다. 1층이 비어있기를 1년 쯤 지난 어느 날 봄이었습니다.
하루는 50대로 보이는 부부가 이삿짐을 나르고 있었습니다. 이사온 그 부부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집 안팎을 말끔히 씻고 닦고 온 종일 부지런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아파트 현관 앞의 정원을 손질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무를 손수 깎아 낮은 울타리를 두르고, 흰색 페인트를 칠하고, 잡초를 뽑아내고, 잔디를 심고, 화초를 심고, 각종 실과나무를 심고, 베란다에서 화단으로 연결되는 쪽문을 내어 무시로 드나들며 풀과 나무들을 가꾸거나 호스로 물을 뿜어올리기도 하고 나아가 아파트 주변의 화단까지 돌아보는 것이었습니다. 꽃을 사다 심고, 덩굴나무가 줄을 잘 타도록 지주를 세우고 언제나 그들의 손은 빠르고 부지런했습니다.
6월이 되었습니다. 그 집 앞의 낮은 울타리를 타고 빨간 줄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었고 정원에서 이름을 알 수 없는 분홍빛, 흰빛, 붉은빛, 노란빛, 보랏빛의 들꽃 향기가 바람결에 실려왔습니다. 한 가운데 작은 연못도 만들고 부부가 마주앉아 차를 마실수 있는 소담한 티테이블도 놓여졌습니다.
가끔 피아노곡을 배경으로 해 저무는 오후, 두 부부가 정원 테이블에 마주앉아 차를 마시거나 책을 읽는 모습이 발견되었습니다. 서로를 향하는 그 눈빛이 정겹고 부드럽고 따스하여 사람들은 그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하며 미소를 지어주곤 했습니다.
1년동안 먼지를 뒤집어 쓰고 샷시까지 녹슬어가던 그 집은 꽃대궐보다 더 아름답게 변해버렸습니다. 이들 부부가 보여준 아주 소박하고 작은 일들은 곧 이웃으로 퍼졌습니다. 동네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했습니다. 그 부부로 인해 행복해졌다고 더불어 행복해져 가는 자신들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어느 한 사람의 작은 힘. 그 작은 힘 하나만으로도 행복은 창조되며 나중에는 그 행복의 파동이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퍼져가게 됩니다. 세상의 온갖 잘못되고 굽은 것을 바르게 고치고 펴고자 할 때는 반드시 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쳐야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 사람의 아주 작고 소박한 힘 하나만으로도 가능하다는 것을 다시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