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님의 사역 위에 주님의 은총이 넘치길 빕니다.
생명에 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질문을 하나 드립니다.
생명=진리=말씀=성령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진짜 생명을 가진 자는 진리를 붙잡고 사랑하는 자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요.
그렇다면, 지금 현재 진리를 받지 않고 있는 불신자들이 가지고 있는 생명은 어떤 것일까요? 가짜 생명인가요? 이 생명도 하나님의 생기에 속하는 것이 아닌지요?
성경은 불신자들이 사실상 죽은 상태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반응하지 않는 상태가 죽음의 상태라고 이해합니다만, 그럴 경우 이들이 가지고 있는 육신의 생명은 어디에 속하는 것이 되는지 애매합니다.
바쁘신데 읽어주셔서 감사하겠습니다.
인간이건, 동물이건, 식물이건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를 생물학적으로 살아 있게 하는 생명에너지, 곧 생기는 진리의 영이시오 생명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생물학적 차원의 에너지입니다. 생물학적 차원의 생명에너지도 영적인 하나님의 생명에너지의 일부분임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생물학적 생명에너지와 영적생명에너지가 본질적으로 두 다른 종류의 생명에너지가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경우에는 성경적인 견지에서 어떤 사람은 생물학적으로 살아 있어도 죽은 자일 수도 있고, 또 이미 죽었어도 산 자로 인정을 받습니다.
[마22:32]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이미 죽은지가 오래 되었지만 그들은 산 자라고 불립니다.
그 이유는 동식물과는 달리 인간은 영적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아무리 육체적으로 살아 있을지라도 이러한 영적인간에게는 생물학적 차원의 에너지만으로는 영적인 인간다운 인간으로서 영적인 기능을 발휘할 수는 없습니다. 영적차원의 인간이 하나님이 주시는 낮은 생물학적차원의 생명에너지만 받아드리기로 선택하고 더 높은 진리의 영(생명), 곧 그리스도를 받아드리기를 거부하며 육적으로만 살아가고 있다면 그 사람의 영적인 기능은 나타날 수가 없게 되고 그 결과 그 사람은 생물학적으로는 살아 있을지라도 참으로 영적으로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영적차원에서는 죽은 자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동식물의 차원에서는 죽어 있어도 살아 있다고 표현하거나 살아 있는 동물을 죽은 동물이라고 부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론 그 이유는 동식물은 영적기능을 가진 생명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생물학적, 영적 생명에너지가 본질적으로는 동일한 생명에너지라면, 생명에 진짜생명이 있고 가짜생명이 있는 것은 물론 아니지요. 그렇다면 여기서 생물학적, 또는 영적 생명에너지라고 구분할 수 있는 차이점은 과연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요?
성경은 생명을 ‘사람들의 빛’이라고 부릅니다.
[요1:4]그(말씀)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생명이신 예수님도 자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부르십니다.
[요9:5]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요1:9]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빛으로서 영적생명에너지이십니다. 따라서 이 빛을 거절하는 자들이 생물학적 생명에너만을 받아드리는 자들이며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요3:19]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요8:12]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12:46]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또 다른 방법으로 영적, 생물학적 생명에너지를 받은 자들의 차이점을 표현하는 성경적 방법은 “낮에 다니는 자”와 “밤에 다니는 자”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요11:9]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 시가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요11:10]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결론적으로 생물학적 생명에너지만을 받아드리는 사람은 그들의 속에 있는 빛이 어두운 사람입니다.
[눅11:35]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또 한편 예수님을 자신을 의로운 해로 표현하시고 계십니다.
말4: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생명의 빛)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
태양빛을 생각해봅시다. 같은 햇빛일지라도 정오의 햇빛, 석양의 햇빛, 저녁노을의 햇빛, 초저녁의 햇빛, 한밤중의 빛은 모두 태양빛이지만 그 빛의 강도가 각각 다릅니다. 정오의 햇빛 정도의 광도(光度)가 되어야만 식물을 자라게 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하며 그 식물의 모든 기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녁노을의 햇빛(어둠)으로는 식물이 본래의 기능을 발휘할 수도 없고 따라서 건강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 상의 “죽은 자”들은 그 속에 빛이 있으나 빛이 너무나 어두운 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니기는 다니는데 밤에 다나는 자들, 치료하는 생명의 빛을 충만히 받지 않는 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인간이 생물학적 생명에너지까지도 거부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그 생명마저도 주실 수가 없게 되어 그 생물학적 생명에너지 마저도 거두실 수밖에 없습니다. 죄인이 자살을 감행할 때에 하나님은 막고 싶으시지만 인간에게 허락하신 자유의지 때문에 그 불쌍한 죄인의 죽음을 고통스럽게 인내하실 수밖에 없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