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잇의 구원관의 오류와 수정
초기의 화잇은 창세전 구원을 알지 못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창세전에 피 흘리심으로 죄인들을 구원하셨다.(엡1:4,5) 그리고 십자가에서 확증하셨다. 그러나 화잇은 이 구원의 복음을 알지 못했다는 증거가 1888년 이전에 기록한 그의 초기의 글에, 다음과 같이 나타나 있다.
인간이 잃어버린 바 되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이 비애와 질병과 죽을 운명에 처한 인간들로 가득 차게 되었을 뿐 아니라 범죄자들을 위하여 피할 길이 마련되어 있지 않음을 보고 온 하늘은 슬픔으로 가득 찼다.(초기 149)
바로 이것이 화잇의 구원관의 오류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1888년 이후에 화잇은 위의 오류를 다음과 같이 수정하였다.
구속의 경륜은 아담이 타락한 후에 세워진 사후 고안이 아니었다. 그것은 “영세 전부터 감취었다가…알게 하신 그 비밀”(롬 16:25)의 계시였다(소망 22)
땅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아버지와 아들은 이미 합의하셔서 인류가 사단에게 정복당하게 될 경우에 인류를 구속하기로 언약을 세우셨던 것이다.(소망 834)
구원의 완성과 부활의 관계
“부활”과 “승천”은 구원이 최종적으로 완성되지 않으면 일어날 수 없다. 한 죄인이 부활했다면 그 죄인을 구원하기 위한 더 이상의 속죄 과정이나 심판의 절차가 필요 없기 때문에 부활한 것이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의 피와 부활로 구원이 완성되었음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롬4:25 예수는 우리의 범죄 때문에 죽임을 당하시고, 또한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살아나셨습니다.(표준새번역)
조사심판에 나타난 화잇의 구원관의 오류.
그러나 화잇은 십자가에서 구원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조사심판에서 구원이 완성되어 의인의 부활이 결정된다고 가르쳤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재림 이전에는 결코 아무도 부활 승천할 수 없다. 십자가의 보혈을 받아드리고 잠든 의인들 중에 과연 누가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받아 부활에 합당한 자인가를 조사하여 그들의 부활여부를 결정하여 선고하게 된다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구원이 십자가에서 완성된 것이 아니라는 구원관의 결정적 오류이다. 다음의 화잇의 글을 보자.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처음 생존한 사람들로부터 시작하여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의 모든 사람들의 사건을 제시하신다. 각 사람의 이름이 불리어지고, 모든 사건이 세밀히 검토된다. 어떤 이름들은 가납되고, 어떤 이름들은 거절된다.(쟁투 483)
~곧 죽은 의인들은 (조사)심판 때에 생명의 부활에 합당한 자라는 선고를 받고서야 비로소 부활하게 될 것이다.(쟁투 482)
위의 화잇의 글을 보면, 의인의 구속(구원), 곧 의인의 부활과 승천은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 조사심판이 끝나기 이전에는 결코 결정될 수 없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외치셨을 때에 구원이 완성된 것이 아니라, 시작되었을 뿐이라고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그분께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여 하늘에서 완성하실(구속사업) 일은 그분의 죽으심(십자가)으로 시작되었다.(쟁투 489)
결국 조사심판이 끝나 구속이 끝나기 전에는 아무도 부활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성경은 조사심판이 시작하기도 전에 여러 성도들이 이미 재림 전에 부활하여 승천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재림 전의 부활은 십자가에서 이미 구원이 완성되었음을 확증하고 있다. 십자가에서 완성된 구원을 믿음으로 받아드리고, 숨지는 순간까지 그 받은 영생을 소흘히 여기어(히2:3) 믿음과 선한 양심을 거부하고 버리지 않으면(딤전1:19) 십자가를 받아드린 순간부터 영생, 곧 부활은 이미 보장되어 있는 것이라고 성경은 가르친다.(요5:24)
그렇다면 십자가에서 구원이 완성되지 않았으므로 의인이 숨지는 순간에도 부활을 확신할 수 없다고 가르치는 조사심판이 과연 성경적인가를 당연히 의심하는 것이 오직 성경만을 높이는 올바른 성도의 태도이다.
어린 양의 피로 구원은 완성되었다.
어린 양은 창세전(엡1:4,5, 계13:8)에 피 흘리셨다. 이 어린 양의 보혈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드려 부활 승천한 성도들이 있다. 그 중에 에녹이나 엘리아는 그들이 숨지기도 전에 승천했다. 모세는 무덤에서 부활하여 승천했다. 그리고 그들의 부활이나 승천은 조사심판과는 상관없이, 오직 어린 양의 보혈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드려 의롭다 하심을 받고 구원이 완성된 것임을 증명한다.(롬3:24)
그리고 AD 31년 더 많은 잠든 의인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승천하였다. 이들의 부활 역시 1844년 이전에 일어났던 부활이기 때문에 조사심판과는 상관이 없다. 이 모든 의인들의 부활과 승천은 다음과 같은 중요한 진리를 증명하고 있다.
1, 구원은 오직 어린 양의 피로 완성하셨다. 그 구원을 믿음으로 받아드려 영생을 얻는다.(요5:24,3:16)
2, 모세의 부활은 잠들었다가 다시 부활할 의인들을 대표한다.
3, 엘리아와 에녹의 승천은 잠들지 않고 승천할 의인들을 대표한다.
4,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부활하여 승천한 의인들은 십자가에서 완성된 구원을 믿음으로 받아드렸기 때문에 재림 때에 부활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살았던 모든 의인들을 대표한다.
이제, 의인의 부활과 승천, 곧 의인들의 구원은 그리스도의 재림 이전에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고 완성될 수 없다고 가르치는 화잇의 조사심판의 가르침은 성경과 완전히 모순이 된다는 사실이 분명히 나타났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화잇 자신도 이 조사심판의 모순을 발견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수정했다는 사실이다. 그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깨달은 1888년 이후에 저술한 시대의 소망에서는 구원이 십자가의 피 흘리심과 부활로서 완성되었고 그분의 부활과 함께 부활하여 승천한 의인들은 십자가의 보혈로 완성된 구원을 믿음으로 받아드림으로 말미암아 의인이 되어 재림 때에 부활하게 될 의인들의 첫 열매로서 그들을 표상하고 대표한다고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그분은 자신의 승리의 증거품들을 가리키며 당신이 재림하실 때에 무덤에서 일어날 큰 무리의 대표자로서 그와 함께 부활한 자들을 요제(搖祭)의 단으로 하나님께 바치신다.(소망 834)
~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실 때 무덤에서 나온 자들은 영생으로 일으킴을 받았다. 그들은 죽음과 무덤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전승 기념으로서 그분과 함께 승천하였다. 그분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그들을 구속하였으므로” 그들은 더 이상 사단의 포로가 아니다. 내가 그들을 나의 능력의 첫 열매로 무덤에서 일으켰다.(소망 786)
예수는 부활, 승천 직후, 하늘성소로 들어가신 것이 아니다.
다음의 글에서도 화잇은, 예수께서 대제사장으로서 구속사역을 계속하시기 위하여 하늘성소로 들어가셨다고 주장하였던 조사심판 교리를 뒤로하고, 십자가에서 그분의 구속사역이 완성되었다고 새롭게 수정하여 기록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인류를 위한 그분의 희생이 충분하며 완성되었다는 발표였다. 속죄의 조건들은 성취되었고 그분이 이루기 위하여 세상에 오신 사업은 완성되었다.(소망 819)
부활 승천하여 성소로 들어가시지 않고 바로 아버지의 보좌로 십자가에서 구원이 완성되었음을 증명하시기 위하여 부활시키신 의인들과 함께 승천하시어 그들을 요제로 아버지께 직접 바치신 직후,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께 다음과 같이 아뢰신다.
계약은 완전히 이행되었다. 이제 그분은 다음과 같이 아뢴다. 아버지여, 다 이루었나이다. 오, 나의 하나님이시여! 내가 당신의 뜻을 이루었나이다. 나는 구속 사업을 완성시켰나이다.(소망 834)
자! 이제는 그 누구도 대제사장 예수께서 AD 31년에 승천하시어 성소로 들어가셔서 1844년까지 속죄봉사를 하셨고, 1844년 이후에는 지성소에서 속죄봉사, 곧 조사심판을 아직도 하시고 계시다고 말할 수 없다. 조사심판을 주장한 화잇이 스스로 그것이 오류였음을 분명히 증명하고 있다.
조사심판이 아닌 십자가에서 ‘우주적 공의’와 ‘우주적 속죄’도 완성되었다.
재림교단 신학자들은 조사심판이 있어야 우주적 공의와 우주적 속죄가 완성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화잇은, 조사심판과는 상관없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과 부활로 말미암아 이미 우주의 공의와 우주적 속죄도 이루어졌다고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만일 당신의 공의가 충족되었다면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게 하옵소서(요19:30, 17:24).(라고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에게 말씀드렸다. 그러자) 공의가 충족되었다고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다. 사단은 정복되었다. ~그들은 하늘 천사들과 타락하지 않은 (우주) 세계의 대표자들 앞에서 의롭다는 선언을 듣게 된다.(소망 834)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쁨으로 (우주의) 주관자들과 정사와 권세가 다 생명의 왕의 최상권을 인정한다. 온 하늘 궁정이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계5:12)라는 즐거운 함성으로 충만하게 되는 동시에 (우주의) 천군들은 그리스도 앞에 부복한다.(소망 834)
왜 교단은 화잇의 구원관의 변화를 부정하고 있을까?
위의 화잇의 시대의 소망의 글들은, 그가 조사심판에서 가르친 구원관의 오류를 1888년 이후에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l’의 진리에 입각하여 수정하였음을 분명히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교단은 아직도 이런 화잇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고, 또 동시에 그 오류들이 수정된 사실도 밝히지 않으면서 계속 오류와 수정을 함께 출판하고 있다. 일례를 들면, 대쟁투 1911년판의 조사심판에 대한 내용에서는 시대의 소망에서 수정된 새로운 구원관의 내용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로 본래의 1888년 이전의 오류 그대로 아무런 수정 없이 아직도 출판하고 있다. 그리고 선지자는 무오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필자는 정직하게 자신의 오류를 은폐하지 않고 확실하게 수정한 화잇을 그리스도인으로서 존경한다.
그리고 교단 신학자들은, 단순히 대쟁투 1911년판에 아직도 화잇의 구원관이 수정되지 않고 기록되어 있다는 이유 하나로 1888년 이후에도 화잇의 구원관이 변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교단은 이런 화잇의 “구원관의 수정(변화)”에 대하여 평신도들에게 확실하게 밝혀야할 의무가 있다. 만약 이 구원관의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여 밝히지 못하고 있다면, 결국 장님이 장님을 인도하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남의 글은 복음, 이전의 화잇 본인글은 율법주의적 구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