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0주야의 십자가 중심적 해석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이 글을 올린 이후에 더 깊은 깨달음을 성령께서 주시고 계십니다.
더 깊이 연구하여 다시 정리하여 더 확실한 내용을 곧 올려드리겠습니다.
“정한 때 끝”(초림)과 “2300주야”
[단8:17] ~그가 내게 이르되 인자야 깨달아 알라 이 이상은 “정한 때 끝”에 관한 것이니라.
창세 이래, 첫 선지자는 노아였다. 하나님은 선지자 노아에게 첫 구원의 언약을 주셨다. 방주의 언약이었다.
[창6:18]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자부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홍수가 그 당시의 죄의 세상을 끝냈다. 그 홍수가 끝난 후, 하나님은 선지자 노아와 그들의 후손, 곧 온 세상의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그리스도께서 직접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어 모든 인류에게 구원을 베푸시겠다는 “새로운 구원의 언약”을 주셨다. “무지개”의 언약이었다. 바로 아들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죄인을 대신하여 그가 죽임을 당하는 심판을 받게 하시어 죄인을 속량하시겠다는 약속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는 물로 심판하시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창9:9–17절까지)
창9:11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창9:13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노아로부터 시작하여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을 거쳐 침례 요한에게 까지 하나님이 주신 모든 예언은 하나님이 홍수 후 노아에게 주신 바로 그 무지개 언약, 곧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의 초림의 언약이었다. 바로 이 언약의 예언이 이루어져서 마침내 그리스도가 오실 때를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여 두셨던 초림의 때였다, 그리고 하나님이 다니엘에게 주신 2300주야의 때도 바로 단8:17,19절의 “정한 때”는 바로 초림의 때였다.
[단8:19]가로되 진노하시는 때가 마친 후(end 319)에 될 일을 내가 네게 알게 하리니 이 이상은 “정한 때 끝”에 관한 일임이니라.
그리고 그 정한 때, 곧 “초림의 때”가 마침내 와서 그리스도께서 초림하신 것을 사도 바울은 “때가 차매”라고 기록하였다.
갈4: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
그리고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초림하신 때를 “세상 끝”이라고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히9:26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이렇게 노아에게 주신 “무지개 언약”을 이루시는 “정한 때”가 홍수가 끝나고 노아에게 초림의 언약을 주신 때로부터 시작하여 2300년이 지나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고 부활하여 온 죄의 세상에 생명의 “무지개”가 되실 것이었다. 바로 이 “무지개” 예언이 단 8:14절의 “정한 때의 끝”, 곧 초림(십자가)의 때로 예언이며 2300주야 예언의 내용이었다.
노아의 때에 방주(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와 구원을 받은 노아의 식구들도 있었지만, 방주를 거부한 죄인들은 멸망의 심판을 자초하였다. 방주이신 예수께서도 초림 하시어 말씀하시기를, 그분의 피를 믿음으로 받아드리는 자는 방주로 들어와 구원을 받을 것이며, 십자가 후에도 계속 방주에 들어오기를 재림 때까지 거부하여 만은 죄인들이 멸망하게 될 것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어 “노아의 때”와 “인자의 때”를 연결시키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눅17:26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70이레(490년) 예언(단9:24,25)도 초림 때에 관한 예언이다.
만약 70이레의 예언도 초림에 관한 예언이라면, 2300주야와 70이레의 끝은 동일한 초림이다. 그러므로 이 두 예언은 동일한 초림의 시점에서 끝난다.
다음, 그 말씀, 단 9장 24,25절의 내용을 읽어보면 분명히 십자가, 곧 초림에 관한 예언이다.
단9:24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그런데 이 70이레 예언도 역시 “기한을 정하였나니”라고 기록하였다. 단 8장의 2300주야에서 정한 때의 끝이라는 뜻과 동일한 뜻이다. 그러므로 2300주야나 70이레 예언 모두 이미 정해진 구원의 떼(초림의 때), 곧 AD 30년을 보여주기 위하여 주신 예언이다.
이제 다시 정리해보자.
십자가의 때, 곧 초림의 때가 “정하신 때의 끝”이다.
2300주야 예언도 초림에 관한 예언이다.
70이레의 예언도 초림에 관한 예언이다.
그러므로 2300주야와 70이레 예언 모두 초림에서 끝난다.
2300주야와 70이레의 예언의 끝은 서로 일치한다.
그러나 시작점은 일치할 수가 없다.
70이레 예언의 시작점이 457BC 이라고 다니엘이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70이레(490년)가 2300년의 한 부분이라면, 그 끝 부분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2300주야의 시작점은 457BC가 될 수가 없다.
457BC 보다 훨씬 더 이전, 곧 AD30년에서 2300년 뒤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2300주야와 70이레 예언도 초림에서 끝난다.
교황권은 초림 이후에 AD 538년에 등장한다.
따라서 교황권은 초림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러므로 초림에서 끝나는 2300주야 예언과 70이레 예언 모두 교황권과 상관이 없다.
따라서 초림을 훨씬 지나버린 교황권이 몰락한 1798 이후인 1844년은
2300주야와 70이레의 예언과 전혀 상관이 없는 때이다.
최후의 성소정결
창세전부터 사단은 죄로 인하여 하늘도 더럽혔다. 그 후, 이 땅도 더러워졌고, 하나님의 백성도 더럽혀져서 그 후에도 계속 반복하여 하나님의 성소를 더럽혔다. 그 때마다 어린 양의 피로 매일 죄를 사함 받고 매년 성소를 정결케 하는 일을 반복하였다. 그러나 이런 희생 제사를 영원히 반복하여 성소를 정결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언젠가는 죄를 영원이 없애셔서 죄인의 영원한 구속을 이루시어 더 이상 성소에서 반복하는 매일의 어린 양의 희생 속죄제사를 끝내시기로 하나님께서 이미 정하시고 여러 선지자들로 예언하게 하신 정하신 때, 곧 십자가의 때가 정해져 있었다, 이 십자가와 부활의 때야말로 최후의 성소정결이 끝나는 때이었다. 바로 이 예언된 때가 곧 “정해진 때의 끝”이다. 바로 이때가 제사를 끝내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께서 직접 오셔서 피 흘리셔야만 하시는 초림의 때이다.
그러므로 단8:14절의 2300주야 끝의 성소의 정결(중건)이란 그 희생제사를 반복하던 예루살렘 성전에서 매일 피 흘리고 죽어 간 희생제물로서의 어린 양의 희생 봉사를 완전히 끝내고, 그리스도께서 직접 오셔서 피 흘리시어 “죄를 영원히 구속하시고, 영원한 의를 드러내시고,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으시고 그분의 몸이 부활하여 더 이상 매일의 제사가 없는 “새 성전”이 되시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이 “새 성전”이 되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아드리면 죄인들은 구속을 받아 의인이 되고 죄인들의 몸도 성령이 거하는 성전이 되는 것이다.
[고전6:19]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초림이 최후의 성소의 정결(차다크)이며, 그 이후로는 성소에서 희생제물로 드리는 정결은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것이다. 따라서 건물로서의 성전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고, 이 때문에 예루살렘 성전은 허물어도 무방한 존재이유가 없어지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의 피로 영원히 죄를 끝내시고 죄로 더러워진 죄인들을 정결케 하시어 구속하셨고 의롭게 하셨기 때문이다.(단9:24)
“노아의 때” - 최초로 세상의 죄를 정결케 하신 때.
그렇다면 2300주야의 시작점은 언제인가? 초림의 십자가에서 죄인을 구원하신 때(AD 30)로부터 2300년 전으로 거슬러 돌아가면 노아 홍수가 끝나고(BC 2297년) 27년 후인 BC 2270년이된다. 이때가 바로 2300년의 시작점이다. 이 노아의 때에 온 세상이 죄로 더럽혀졌기 때문에 온 세상에서 죄를 제거하여 정결케 하실 수밖에 없으셨다. 최초의 범지구적인 성소 정결이었다. 죄를 없앨 수 있는 것은 어린 양의 피 밖에는 없다. 성소봉사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어린 양의 피를 믿음으로 받아드린 노아의 가족들은 방주를 선택하여 구원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 이외의 모든 죄인들은 구원의 방주(그리스도)를 거부하고 그들 자신이 선택한 죄(사망)의 결과들을 그들이 직접 당하였다. 하나님은 그들의 선택대로 멸망하도록 허락하셨다. 그 결과는 참담한 멸망의 심판이었다.
하나님은 그 때에 온 세상의 인류에게 약속하셨다, 그 후로는 더 이상 홍수로 심판하시는 일은 없을 것이며, 그 대신 아들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모든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으시어 구원하실 최후의 성소정결인 초림을 약속하셨다. 그리고 그 증거로 무지개(그리스도)를 보여주셨다. 그러므로 모든 인류에게 십자가의 약속, 곧 그리스도의 초림의 예언, 곧 하나님의 언약을 처음으로 범지구적, 범세상적으로 보여주신 때가 바로 홍수가 끝나고 27년 후인 BC 2270년으로 추정이 되는 것이다.
창9:8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한 아들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창9:9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창9:10 너희와 함께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한 새와 육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창9:11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창9:12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영세까지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라
창9:13 내가 “내 무지개”(그리스도)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창9:14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창9:15 내가 나와 너희와 및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혈기 있는 자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창9:16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땅의 무릇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된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윌리엄 밀러의 결정적 오류
윌리엄 밀러는 70이레의 끝은 초림이라고 옳게 판단했다. 그러나 역시 초림을 예언한 2300주야의 끝, “정힌 때의 끝”은 초림이 아니라 재림이라고 판단하는 결정적인 실수를 했다. 그 결과 예수께서 1844년에 재림하실 것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다시 강조하면, 윌리엄 밀러의 치명적인 실수는 2300주야의 “정한 때의 끝”을 초림의 때가 아니라고 오해했던 것이다. 그 결과 70이레의 시작점인 예루살렘 중건령이 내린 BC 457년이 2300주야의 시작점이 된다고 오해한 것이다.
이러한 윌리엄 밀러의 결정적 실수를 아직도 재림교단이 답습하고 있다. 재림교단이 2300주야의 끝도 70이레의 끝과 마찬가지로 초림 때라고 수정하지 않는 한 “조사심판”교리를 유지할 것이다. 이러한 “정한 때의 끝”에 대한 밀러와 현 재림교단의 오해는 모든 구약성경의 예언이 초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끝내, 밀러는 구약성경의 2300주야의 예언이 “재림의 때”에 대한 예언으로 간주해버렸고, 그 결과 재림의 때가 1844년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재림은 없었다. 만약 이 때에 밀러가 2300주야가 재림을 예언한 것이 아니라, 초림을 예언했다는 사실을 깨달고 수정했다면 조사심판을 주장하는 재림교회는 탄생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밀러의 이런 실수는 모든 구약의 예언은 초림에 맞추어져 있음을 간과한 것이다. 그리고 예언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는 재림도 예언할 수 있는 것으로 오해하였다. 그 결과 2300주야 구약의 예언 역시 초림을 예언한 것임을 몰랐던 것이다. 또 더 중요한 것은 “재림의 때”는 예언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가 망각한 것이었다. “재림의 때”는 신약의 그리스도께서도 예언할 수 없게 되어 있으며 오직 아버지만 재림의 때를 아신다고 말씀하시어 누구도 예언할 수 없음을 너무나도 확실하게 강조하셨다. 이런 그리스도의 말씀을 밀러가 신뢰하지 않는 불신의 죄를 저질렀다. 그리고 예수께서도 알 수 없다는 “재림의 때”를 죄인에 불과한 자기가 계산해 낼 수 있다는 “교만” 곧 “참람”의 죄를 범한 것이다.
그리고 재림교단은 아직도 성소의 정결이 끝나지 않고 진행 중이라고 주장하고 있음으로 말미암아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이 새 하늘성소임을 부인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부활하심으로 성소의 정결이 끝났음을 인정하지 않은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초림과 부활로 말미암아 “성소 정결”(단8:14)이 이미 완결되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성소 정결이 부활로 끝난 사실을 부인하고 “조사심판”이 끝나는 재림직전까지 진행될 예정이라고 주장하는 오류를 아직도 범하고 있는 것이다.
두 다른 작은 뿔 – “초림 전 작은 뿔”과 “초림 후 작은 뿔”
“작은 뿔”(Little Horn)은 다니엘서 7장과 8장에 나타난다. 재림교단은 이 두 작은 뿔을 동일한 “교황권”으로 해석한다. 과연 7장과 8장의 작은 뿔이 동일한 “교황권”을 상징할까?
흥미로운 것은 “Little”이라는 원어의 단어와 그 의미가 서로 다르다. 7장의 “Little”은 그냥 크기만 작다는 뜻이다. 그러나 8장의 “Little”은 크기가 작다는 뜻뿐만 아니라, “미미한”, “무의미한”(insignificant)이라는 뜻이다. 역사적으로 의미 없는, 미미한 존재로 평가되는 한 왕이라는 뜻이다. 사실 7장의 교황권은 역사적으로 보아도 전혀 무의미한 존재가 아닌,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강력한 영향을 미쳤고, 아직도 의미 있는 강력한 세력이다.
그러므로 7장의 작은 뿔은 초림 후, AD 538년에 등장하는 교황권임은 분명하다. - “초림 후 작은 뿔”
그러나 8장의 작은 뿔이 초림 후에 등장한 교황권을 상징할 수 없다는 증거가 다니엘서에 확연히 드러나 있다. 다음 성경 말씀을 자세히 보자.
단8:8 숫염소가 스스로 심히 강대하여 가더니 강성할 때에 그 큰 뿔이 꺾이고 그 대신에 현저한 뿔 넷이 하늘 사방을 향하여 났더라.
위의 8절 말씀은 그리스제국(숫염소)의 알렉산더(큰 뿔)가 죽고 4왕국(뿔 넷)을 나타낸다. 다음 9절 말씀을 보면 이 4왕국 중에 한 왕국(셀루쿠스)에서 한 개의 작은 뿔(한 왕)이 나타나 동편과 남쪽으로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세력을 확장하며 자신을 신이라고 공언한 안티오크스 에피파네스 왕이 등장한다. 이 왕이 바로 역사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세상에 뚜렷한 의미 있는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 미미한 한 왕에 불과하였다.
단8:9 그 중 한 뿔에서 또 작은 뿔 하나가 나서 남편과 동편과 또 영화로운 땅을 향하여 심히 커지더니
단8:10 하늘의 군대에 이를 만큼 커져서 군대와 별들 중에 얼마를 땅에 던지고 그것들을 짓밟더라.
그 왕은 예루살렘 성전을 짓밟고 파괴하여 더럽혔고 희생양으로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였다.
단8:11 또 스스로 높아져서 군대의 주재를 대적하며 그에게 매일 드리는 제사를 제하여 버렸고 그의 성소를 헐었으며
그 후,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사단의 기만에 넘어가 어린 양의 피에 대한 불신과 반역으로 말미암아 율법주의에 빠지게 되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진리는 땅에 떨어지고, 성전 뜰에서 장사를 하며 성전은 완전히 세속화 되어 더렵혀졌다,
단8:12 범죄 함을 인하여 백성과 매일 드리는 제사가 그것에게 붙인 바 되었고 그것이 또 진리를 땅에 던지며 자의로 행하여 형통하였더라.
단8:13 ~성소와 백성이 내어준 바 되며 짓밟힐 일이 어느 때까지 이를꼬 하매
단8:14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 하였느니라.
단 7장의 작은 뿔(초림 후) | 단 8장의 작은 뿔(초림 전) |
로마제국으로부터 탄생 | 그리스제국으로부터 등장 |
짐승의 머리로부터 직접 나옴 | 머리에서 직접 너오지 않음 네뿔 중의 한 뿔로부터 나옴 |
10뿔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 4뿔만 존재하고 있었다. |
10나라 중의 한 강력한 나라 | 4나라 중의 한나라의 한 왕 |
나오면서 3나라가 뿌리가 뽑힘 | 나오면서 다른 나라와는 무관함 |
강력하여 다른 왕국들을 지배함 | 미미하여 다른 왕국들을 지배못함 |
“세상 끝”(End of the World)은 “초림”이었다.
“세상 끝”이 재림 때인가?,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상 끝”에 “죄를 없게 하시려고” 나타나셨다. 죄를 없게 하시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서 죄를 없게 하셨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히9:26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cancel, abolish, disannul, 도말)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초림 하시어 이루신 일은 다음 두 가지이다.
1, 죄를 없게 하셨다.
2, 사흘 만에 성전을 다시 세우셨다.(그리스도의 부활하신 몸이 성전이 되셨다.)
요2:19 예수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이 성전을 헐라. 그러면 내가 삼 일 만에 이것을 다시 세우리라."고 하시니라.
요2:20 그러자 유대인들이 말하기를 "이 성전을 짓는 데 사십육 년이 걸렸는데 네가 이것을 삼 일 만에 세우겠단 말이냐?"고 하더라.
“이 성전을 헐라”란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 당시까지의 성전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로 더러워진 성전, 이제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어버린, 헐어버려야 할 예루살렘 성전은 헐어버려야 한다는 뜻이다. 그 성전을 헐어버려야 이유는 무엇일까? 그 성전은 그 당시까지 유대인들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곧 그리스도의 의에 등을 돌리고 자신들의 의에 매달려 있게 하였던 “옛 언약”(행함으로 말미암는 의)을 상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삼 일 만에 이것을 다시 세우리라."는 무슨 뜻일까?
유대인들이 자기의 행함으로 구원 받으려는 예 언약을 무너뜨리고, 어린 양의 피가 바로 생명이며 이 생명을 믿음으로 받아드리면 영생을 가지게 하신다는 “새 언약”, 곧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다시 세우신다는 뜻이다. 바로 이 새 언약을 증명하는 것이 십자가의 피 흘리심과 부활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옛 성전(옛 언약)의 무너짐을 상장하며, 부활은 새 성전(새 언약)이 세워짐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피 흘리신 이후에는 건물로서의 성소는 더 이상 존재 이유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헐어도 되는 것이다.
요2:21 그러나 주께서는 성전 된 자기 몸에 관하여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삼 일만에 다시 세우실 새 성전은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몸이었으며 바로 새 언약이었다.
요2:22 그 후 주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나셨을 때 제자들은 주께서 그들에게 하신 이 말씀을 기억하고 성경(다니엘서)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더라.
제자들은 구약 선지자 스가랴도 역시 초림의 그리스도께서 성전을 세우리라고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다.
슥6:12 고하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보라 순(그리스도)이라 이름 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분의 지상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요한복음 2장에서 초림으로 오신 그분 스스로 “새 성전”을 다시 세우실 것을 최종적으로 예언하셨다. 그러나 이 그리스도의 예언을 제자들도 분명히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예수의 부활하심을 보고 제자들이 그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바로 그분이 삼 일만에 다시 세우실 것이라고 예언하셨던 “새 성전”이라는 사실을 마침내 깨닫게 되었다.(요2:22) 그 깨달음의 결과 제자들이, 스가랴서 6장 12절에 기록된 에수님의 초림과 부활의 에언, “순(그리스도)이라 이름 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라는 구약 선지자의 초림예언, 그리고 다니엘서의 “정한 때의 끝에 관한 예언”인 2300주야의 (성소의 정결?) 예언과 세상의 끝, 곧 초림 때에 삼 일만에 “새 성전”을 다시 세우시겠다는 그분의 예언이 함께 연결된 동일한 예언임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이 초림을 예언한 예언들이 이미 자기들의 목전에서 피 흘리시고 “다 이루었다!”고 외치시고 죽으셔서 3일 후에 부활하심으로 성취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 새 성전이 되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혜사 성령이 주시는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속에 받아드리면 그들 자신들도 어린 양의 피로 죄 사함을 받고 영화롭게 된(롬8:30) 하나님의 성전이 된다는 진실도 알게 되었다.
정한 때란 그리스께서 초림하실 때까지의 기간 곧 2300년의 끝이라는 뜻이다.
십자가의 예수님이 중심이 된 해석. 하나님의 언약에 중심된 해석.. 너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