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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남 교수님께,


하나님의 평강과 자비가 교수님의 삶과 강의 가운데 언제나 충만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교수님의 ‘칭의, 성화, 영화’ 강의를 경청하며, 그 안에 담긴 신학적 진지함과 구원에 대한 열정적인 가르침에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오늘 이 글을 통해 조심스럽지만 단호한 복음적 요청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 이유는 단순히 표현이나 체계의 문제가 아니라, 복음의 본질과 십자가의 선언이 현재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1. 구원을 “단계적”으로 분할할 수 있는가?

교수님께서는 구원의 세 가지 요소, 즉 칭의(받은 구원), 성화(받아가는 구원), 영화(받을 구원)라는 삼분 구조를 강조하십니다. 이는 전통적 개혁주의 및 보수 복음주의가 사용해 온 틀이며, 설명의 편의상 유용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구조는 자칫 복음의 ‘완결성’과 ‘선언적 성격’을 훼손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미리 정하셨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로마서 8:30)

놀랍게도 사도 바울은 ‘영화롭게 하셨다’고 과거형으로 단언합니다. 이 대목은 단순한 시제의 문제가 아닙니다. 바울은 복음을 시간의 흐름 속에서 부분적으로 적용되는 “진행형 프로젝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십자가 안에서 이미 완성하신 “우주적 선언”으로 이해합니다.

‘칭의’와 ‘영화’ 사이에 있는 ‘성화’를 현재형으로 강조하며 인간의 노력을 다시 강조하는 순간, 우리는 복음을 다시 율법의 구조 안으로 끌어들이게 됩니다. 이것은 결국 ‘칭의’조차 조건부로 되돌리는 구조를 낳을 수 있습니다.


2. 복음은 선언인가, 성취를 기다리는 여정인가?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이미 하신 일”에 대한 선포입니다. 십자가는 미래의 성취를 위한 희망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하나님의 실체적 사랑의 계시’입니다. 그 사랑은 단지 우리를 용서하기 위해 흘러내린 것이 아니라, 우리를 완전히 하나님과 연합된 존재로 선포하기 위해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교수님의 강의에서는 “칭의는 하나의 출발점”이며, “성화의 여정에서 실패하면 영화의 자리에서 떨어질 수 있다”는 뉘앙스가 반복됩니다. 이러한 설명은 “복음을 받은 자는 끝까지 버티고 견뎌야 구원을 완성받을 수 있다”는 전제에 기반합니다.

이 관점은 사도 바울의 외침과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로마서 8:1)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하였으니…” (골로새서 2:10)

복음은 인간의 ‘경과’를 조건으로 정죄하거나 면죄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이루어진 하나님의 선언”이며, 그 선언이 우리 존재의 실체가 되도록 부르시는 ‘은총의 초대’입니다.


3. “성화”는 복음의 중심이 아니라 복음의 열매다

교수님은 ‘성화’에 대해 “매일 더 의로워지고, 더 나아져야 하며, 실패하면 다시 회개하고…”라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성경은 믿는 자의 삶에서 열매가 맺히기를 분명히 기대합니다. 그러나 성화는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의 실재가 맺는 열매’입니다.

성화가 마치 영화의 전제조건처럼 이해된다면, 복음은 더 이상 기쁜 소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불안과 자기점검, 반복적 회개와 자기개선을 요구하는 ‘새로운 율법’이 되고 맙니다.

십자가는 인간의 선함을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만을 보여주었습니다. 성화는 우리의 노력 이전에, “이미 의롭다 하신 자를 하나님이 끝까지 붙드신다”는 약속의 실현이어야 합니다.


4. 영화는 미래가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실재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영화’를 “죽은 다음에 받는 최종적인 구원의 상태”로 분리하여 설명하십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미 지금 이 순간, 복음을 믿는 자에게 그 영화의 실체가 ‘선언적 현재’로 주어졌다고 말합니다.

“우리를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에베소서 2:6)
“우리가 예수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 (고후 4:6)


‘영화’는 부활 후에 시작되는 별개의 시간적 영역이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연합 속에서 지금 이 순간 “보좌에 함께 앉혀진 자”로 살아가는 영적 실재입니다. 죽은 다음이 아니라, 지금 이 땅에서 우리는 복음의 승리, 즉 영화의 생명을 살아가도록 초대받았습니다.


5. 복음은 ‘단계’가 아니라, ‘인격’의 초청입니다

‘칭의 → 성화 → 영화’라는 3단계 구원 구조는 해석의 틀로는 유익할 수 있으나, 자칫 복음을 인격적 관계가 아닌 논리적 과정으로 환원시키는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성경은 “너희가 영접하면 그가 너희 안에 거하신다”고 말하지, “단계에 따라 그분이 점진적으로 임하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시간적 절차가 아니라, 인격과 인격의 만남이며, 사랑의 초월적 통합입니다. 성령은 완전하신 하나님이시며, 우리가 처음 믿을 때부터 완전한 사랑의 임재로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를 끊임없이 그 사랑 안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6. 구원의 완성은 하나님의 책임이며, 인간의 수고는 은혜의 열매입니다

“경건하게 살지 않으면 최종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식의 논리는 결국 인간의 행위를 조건으로 삼습니다. 이것은 교묘한 율법주의의 복귀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확신하노라.” 
(빌 1:6)


구원을 시작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그것을 완성하실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성도의 삶에서 순종과 성화는 반드시 열매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러나 그 열매는 하나님이 맺으시는 것이지, 인간이 보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결실을 내는 자가 아니라 가지로서 붙어 있는 자일 뿐입니다.


7. 결론: 복음은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것입니다

교수님의 강의는 진지하고 성실하며, 청중이 구원을 진중하게 여기도록 유도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더 이상 우리 손에서 완성을 기다리는 구조물이 아닙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이미 선언되고 완결된 하나님의 실재적 사랑입니다.

“그가 다 이루었다” 하신 그 음성이 복음의 모든 구조를 가로지르며 이렇게 외칩니다:

“받아라. 네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미 이루었다.”


칭의, 성화, 영화는 하나의 구원이 세 가지 방식으로 드러나는 것이지, 세 개의 다른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계단이 아닙니다. 성도는 이미 영화롭게 된 자이며, 그 실재를 날마다 누리고 살아가는 복된 자입니다.



교수님께 보내는 권면의 말씀

존경하는 교수님, 저는 이 글을 비판의 글이 아니라 복음의 완결성과 선언적 본질을 다시 회복하자는 신학적 청원으로 드립니다. 다시는 율법의 그림자 속으로 돌아가지 맙시다. 다시는 구원을 자기 자신에게 묻지 맙시다. 복음은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응답이며, 그 응답은 “예수 그리스도” 그분 자신이십니다.

우리가 그 안에 있고, 그분이 우리 안에 계시다면, 이미 우리는 의롭고, 거룩하고, 영화로운 자입니다.

그 진리를 선포하심에 있어, 교수님의 사역과 강의 위에 하나님의 더 큰 계시와 자유가 임하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주님의 평강과 사랑 안에서,
존경과 감사를 담아
한 복음의 형제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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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벚꽃향기 17 시간 전
    위의 글은 구원을 '칭의(과거)–성화(현재)–영화(미래)'의 순차적 단계로 구획하려는 남 교수님의 강의에 대해, 복음이 본래 갖는 선언적·관계적 성격을 회복하려는 십자가 중심 신학의 시각에서 신학적이고 논리적인 비평을 제시합니다. 구원이 시간 속에서 점차 획득되는 조건적 상태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단번에 주어진 완결된 선포임을 밝히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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