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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없는 자’는 죄 없는 자가 아니라 사랑 앞에 엎드린 자다.


1. 서론: 복음의 질문으로 다시 시작하다

"죄를 짓지 않아야 구원을 받는가?"
"죄를 끊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가?"

이 질문은 단순히 도덕적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복음의 본질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다.
만약 우리가 죄를 완전히 끊어야만 하나님께 받아들여진다면,
그때 하나님은 더 이상 은혜의 하나님이 아니라, 자격심사관에 불과하다.

성경은 단 한 번도 인간의 완벽함을 구원의 조건으로 내세운 적이 없다.
오히려 성경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완전하신 사랑을 보여주며,
우리가 그 사랑 안에서 자라가기를 요청한다.
완전함은 인간의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관계의 깊이다.


2. '죄 짓지 않는 성도'라는 주장에 대한 복음적 검토

설교자는 요한일서 3장을 근거로 '죄 짓지 않는 완전한 성도들'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 구절은 표면적으로 볼 때, 죄를 짓지 않아야 하나님께 속한 자라는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여기에는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문맥과 복음의 맥락이 있다.

첫째, 요한일서는 율법적 완전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요한은 같은 서신에서 “죄 없다고 말하는 자는 스스로를 속이는 자”라고 명확히 말한다(요일 1:8).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죄를 짓지 않는 자’란, 도덕적으로 흠 없는 자가 아니라,
죄를 정당화하지 않고 회개하며 하나님께 속한 자로 살아가는 존재를 의미한다.

둘째,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새 생명의 씨앗을 받은 존재다.
이 씨앗은 한순간의 완벽을 보장하지 않지만,
끊임없이 하나님을 향해 자라가게 하는 생명의 원리이다.
죄를 짓는 본성을 가진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뿌리내려 사랑으로 열매 맺도록 이끄는 내적 변화의 원리가 작동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죄 짓지 않는 완전한 성도’라는 개념은
행위로서의 완전이 아니라, 복음 안에서의 새로운 생명을 향해 자라가는 과정의 정체성으로 보아야 한다.


3. 십자가에서 드러난 완전함의 본질

우리는 복음의 중심인 십자가에서 완전함의 진정한 정의를 보게 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죄인들과 함께 죽으셨고,
그 가운데서조차 죄인을 정죄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저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완전함이다.
이 완전함은 흠 없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사랑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완전함은 사랑 안에서의 온전함이었다.
우리를 향한 그 사랑은
우리가 죄를 다 끊었기 때문에 주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가 죄 가운데 있었을 때조차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본질이었기 때문이다.

성경은 말한다.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요일 4:18)
완전함은 죄 없는 상태가 아니라, 두려움을 몰아내는 사랑 안에 있다.


4. 바리새인적 완전주의에 대한 예수님의 대응

예수님 시대에도 ‘완전함’을 외치던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며, 외적인 흠 없음을 통해 하나님께 가까이 간다고 여겼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라고 하셨다.

왜인가?
그들의 완전함은 사랑 없는 흠 없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람을 살리지 않고, 오히려 짓눌렀다.
그들의 완전은 하나님을 닮은 것이 아니라,
자기 자랑과 종교적 우월감으로 포장된 인간의 의였다.


5. 성화(聖化)는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하신 사랑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설교자가 말하는 ‘죄 없는 성도’는 종종 “완전한 성화” 혹은 “죄를 끊은 승리의 상태”와 연결된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성화란, 인간이 죄를 제거해 가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에 점점 더 사로잡히는 관계의 성장이다.

성화는 완벽한 인간을 빚어내는 공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완전하심 안에 참여하는 여정이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빌 3:13–14)

완전한 사람이란 실패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에 이끌려 다시 일어나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의 온전함은 과거의 죄를 정리한 자취가 아니라,
오늘도 주님의 사랑에 반응하는 걸음이다.


6. 복음은 죄 없는 자를 부르지 않고, 죄인을 부르신다

예수님은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선언하셨다. (막 2:17)
복음은 결코 “죄를 끊은 자들”을 선택하지 않는다.
복음은 언제나 “자기 죄를 인정하고, 주님 앞에 무릎 꿇는 자”를 향한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집에 초대받았을 때도,
죄 지은 여인의 눈물과 머리털로 발을 씻기는 행위를 더 높이 보셨다.
그 여인은 완전한 삶을 살지 않았지만,
완전한 사랑을 경험했고,
그 사랑 앞에 무너졌고,
그 사랑으로 변화되었다.

‘죄 짓지 않는 자들’이라는 표어는,
복음을 '사람의 성공' 이야기로 만들어버리는 슬로건이다.
그러나 복음은 실패한 인간에게 열린 사랑의 문이며,
무너진 자를 위한 부르심이다.


7. 요한계시록의 ‘흠 없는 자’는 완벽한 행위자가 아니다

요한계시록 14장에서 “그 입에 거짓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이 구절은 일부 설교자들에 의해 문자 그대로 해석되어
"마지막 때의 성도들은 죄 없는 상태에 이른다"는 주장에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흠 없음’은 제사의 제물에 대한 표현에서 비롯된 용어로,
도덕적 결점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려진 존재로서의 구별됨을 뜻한다.
즉, 이들은 “자신을 드린 자들”이지,
스스로 완전해진 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들”이며(계 14:4),
어린 양의 발자취를 따라, 그 사랑의 길을 걷는 자들이다.
이들에게 나타난 ‘흠 없음’이란, 십자가의 사랑에 응답한 자들의 자취이지,
‘죄 없는 상태에 도달한 인간의 완성품’이 아니다.


8. 율법 중심 완전주의는 복음의 십자가를 무력화시킨다

복음의 핵심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것이다(롬 3:28).
그러나 죄를 다 끊고, 흠 없는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는 주장은
결국 율법의 완성을 인간에게 요구하는 이율배반에 빠진다.

이런 신학은 십자가를 “불완전한 중간 해결책”으로 전락시키며,
인간의 노력으로 구원의 최종 단계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반(反)복음적 구조를 만들어낸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선포하신 “다 이루었다”(요 19:30)는 선언은
하나님께서 죄인을 끝까지 사랑하심의 완성 선언이었다.
십자가 이후 구원의 조건을 다시 설정하려는 모든 시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부정하는 또 하나의 율법일 뿐이다.


9. 결론: 죄 없는 완전함이 아닌, 사랑 안의 온전함으로 부르심

복음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는 죄를 끊어야 구원받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사랑받고 있는 존재다.
그러니 그 사랑 안에서 살아라.
사랑 안에서 자라가라.
죄를 두려워하지 말고,
죄보다 크신 사랑을 바라보라.”

예수님은 명확히 선언하셨다.
“나는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나님이 찾으시는 완전함은,
죄를 단 한 번도 짓지 않은 이들의 목록이 아니라,
타인을 긍휼히 여길 수 있을 만큼 사랑 안에 깊이 뿌리내린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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