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서 지워진 이름 – 둘째 사망의 시》
(1. 이름 없는 자의 삶)
그는 한때 아이였고,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어머니의 품에 안겨 노래를 들으며 잠들던 존재였다.
세월이 흐르자 그는 말했다.
“나는 나의 주인이다.”
“신은 필요 없다. 나는 나로 족하다.”
사랑은 그의 문을 두드렸다.
비로소 복음이 그 삶을 찾아왔을 때조차,
그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고맙지만, 난 내 길이 있다네.”
십자가의 이야기는
그에게 감동이 아닌, 부담이었다.
그는 말없이 돌아섰다.
그러나 하늘은 그를 결코 미워하지 않았다.
언제나 기다리고 있었다.
(2. 재림 – 모든 것이 드러나는 날)
하늘이 열렸다.
그날은 이슬처럼 조용히 오지 않았다.
하늘은 소리쳤고, 땅은 떨었다.
그분이 오셨다.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사랑이,
모든 존재의 눈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빛이 그의 얼굴을 비추자
그는 눈을 감았다.
심장이 저릿하게 아파왔다.
그의 모든 기억이 되살아났다.
복음을 듣고도 거절했던 날들,
사랑의 손길을 밀쳐낸 시간들,
자신이 스스로 주인이 될 수 있다고 믿었던 오만한 고요들.
그는 속삭였다.
“내게서… 떠나소서.”
(참조: 눅 5:8, 계 6:16)
그러자 주님은 눈을 감으셨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셨다.
(3. 존재의 경계로 추락하다)
그는 도망쳤다.
빛이 닿지 않는 곳으로.
사랑이 스며들지 않는 공간으로.
그러나 그것은 은신처가 아니었다.
그는 도망치며 깨달았다.
하나님의 임재에서 도망친다는 것은,
존재의 중심에서 벗어나는 것임을.
그곳은 어두웠다.
그곳은 침묵뿐이었다.
거기에는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자들이 있었다.
(마 25:30)
하지만 누구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왜냐하면, 소리조차 공명되지 않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4. 불의 심판인가, 사랑의 해체인가)
불은 그를 태우지 않았다.
불은 그를 짓이기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사랑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 자리에 이르러 처음 알게 되었다.
사랑 없이 존재를 유지한다는 것은,
숨 없이 심장을 뛰게 하려는 것처럼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점점 사라져 갔다.
기억이 흐릿해지고,
자아의 윤곽이 무너지고,
그의 이름조차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지워져 갔다.
그는 더 이상 누구의 아들도 아니었다.
더 이상 이야기 속의 인물도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 없는 곳에 이르러,
하나님 없는 존재의 무게에 짓눌려
마침내 무로 녹아내렸다.
(5. 기억하는 이는 오직 하나님)
그의 이름은 이 땅에서는 지워졌지만,
어쩌면 하나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이름을 불렀을지 모른다.
“가룟 유다야...”
그 이름을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은
너무나도 조용하고 애틋했지만,
그 속엔 우주를 뒤흔드는 사랑의 떨림이 담겨 있었다.
“유다야... 내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너를 위하여 죽었노라.
돌아오너라… 늦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듣지 않았다.
그 마지막 사랑의 속삭임마저,
자기 자신을 향한 증오와 절망 속에 묻어버렸다.
(6. 남겨진 이들의 고요한 탄식)
하늘은 기뻐하지 않았다.
성도들의 눈에서 눈물이 씻기기 전,
그들은 잠시 그 이름 없는 자를 떠올렸다.
“아아… 사랑은 그를 찾아갔으나,
그는 사랑을 품지 못했다.”
그의 존재는 마지막 한 줄의 숨결처럼
하늘 가슴에 스치고 사라졌다.
(7. 영원한 평안 속으로)
그리고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다.
그리하여 죽음도, 슬픔도, 아픔도 더는 없게 되었다.
(계 21:4)
이제 사랑만이 남았다.
하나님을 선택한 자들은,
사랑의 불 안에서 영원히 타오른다.
그러나 그것은 소멸이 아닌 생명의 빛으로 타오름이다.
그를 놓으신 하나님의 손에는 여전히 못 자국이 남아 있었을 것이고,
그는 사라졌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여전히 그 이름을 품고 있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