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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트 가족 여러분께 드리는 복음의 대답]
― “신은 왜 히틀러 같은 자를 만드셨는가?” ―


사랑하는 뉴스타트 가족 여러분,

고 이병철 회장님의 일곱 번째 질문,

“신은 히틀러·스탈린 같은 악인들을 왜 만드셨는가?”
그 자체로 너무나 깊고 무거운 질문입니다.


이것은 단지 교리나 변증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과 존재의 목적,
그리고 인간의 자유와 책임,
궁극적으로는 십자가의 복음이 아니고서는 끝내 풀 수 없는
가장 절박한 영혼의 질문입니다.


1. 하나님은 히틀러를 악인으로 ‘만드시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악하게 창조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창세기 1장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창세기 1:27)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선하고 자유로운 인격체로,
하나님과 교제하고 사랑을 주고받을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히틀러와 스탈린 또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들도 하나님께서 사랑 가운데 창조하신 존재였고,
처음부터 학살자나 독재자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의 선택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짓밟고,
자기 의지를 신격화하며,
타인의 삶을 도구화하는 길로 들어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인을 만들지 않으셨고,
악한 선택을 강요하지 않으셨으며,
다만 그들의 자유를 억지로 꺾지 않으셨습니다.


2. 왜 하나님은 그들을 막지 않으셨는가?

이 질문은 더 아프고 무겁습니다.

“그들이 악행을 저지를 줄 아신다면, 왜 아예 허락하셨는가?”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됩니다:

1. 하나님은 악을 막을 수 없을 만큼 무능하신가?

2. 하나님은 악을 막지 않으실 만큼 냉혹하신가?


하지만 십자가는 이 두 가지 모두를 부정합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심에도 불구하고,
그 악을 뚫고, 껴안고, 심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택하셨습니다.

왜 막지 않으셨는가?
그 이유는 단 하나,
하나님은 인간에게 ‘사랑할 수 있는 자유’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자유는,
사랑을 거부할 수도 있는 자유,
심지어 하나님을 거절하고 타인을 파괴할 수도 있는 무서운 자유였습니다.

하지만 만일 하나님께서
히틀러가 악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그 존재를 애초에 제거하셨다면,
그 순간 인간은 더 이상 자유로운 인격체가 아닌 인형이 되었을 것입니다.


3. 악은 하나님이 창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거부된 결과입니다

히틀러의 악행은 단순히 유전적 결함이나 시대적 비극의 결과가 아닙니다.
그것은 그가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인격적 선택의 누적된 결과였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자유롭게 창조하셨기에,
사랑하지 않을 권리도,
자기만을 사랑할 권리도 허용하신 것입니다.

그 자유는 아름다움을 낳을 수도 있지만,
거부되었을 때는 세상에서 가장 추한 지옥을 낳습니다.

그리고 그 지옥은 단지 전쟁터와 수용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없는 자아의 중심에 존재합니다.


4. 하나님은 그 악을 방관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묻습니다:

“히틀러의 가스실에서 유대인들이 죽어갈 때 하나님은 어디에 있었는가?”
“스탈린의 수용소에서 사람들이 죽어갈 때 하나님은 어디에 있었는가?”


복음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분은 그 안에 함께 계셨고, 고통 당하셨고, 울고 계셨다.”


하나님은 멀리서 인간의 악을 관망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악의 한복판에 오셔서,
그 악의 무게를 자기 몸으로 감당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히틀러 같은 악을 멀리서 심판한 것이 아니라,
그 악을 자신 안에 끌어안고,
그 독을 삼키며,
그 죽음을 이기신 사건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악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신지를 보여주는 유일한 해석지점입니다.
그분은 “왜 악인이 있냐”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찔리셨습니다.


5. 왜 하나님은 당장의 심판 대신 ‘기다리시는가’?

우리의 심장은 외칩니다:

“그토록 잔인하고 극악한 자들을 왜 즉시 제거하지 않으셨습니까?”
“어떻게 침묵하실 수 있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주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이니라.” (로마서 2:4)


그분은 한 영혼이라도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는 아버지이십니다.

그 기다림은 무관심이 아니라,
고통을 동반한 사랑의 인내입니다.
히틀러조차, 스탈린조차,
그들이 처음 생명을 받았던 그 날부터,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을 수없이 두드리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결코 강제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인간의 자유를 유린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인간의 거절을 견디며 십자가까지 나아가셨습니다.


6. 하나님은 ‘히틀러를 위한 복음’조차 준비하셨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소스라치게 놀라야 합니다.
복음은 단지 ‘선한 자’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마가복음 2:17)


히틀러조차, 스탈린조차,
그 피 묻은 손으로라도 십자가를 붙잡았다면,
그들을 위해서도 십자가는 열려 있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충격입니다.
그 어떤 사람도, 그 어떤 죄도,
하나님의 아들의 보혈보다 크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모욕했고,
결국 스스로를 심판으로 던져 넣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스스로 거절한 것입니다.


7. 하나님의 최종 심판: 사랑은 악을 영원히 방치하지 않는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주지만,
최종 심판은 그 사랑이 결코 악과 타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이 오래 참으시되,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베드로후서 3:9)


그러나 회개를 끝까지 거부한 자들에게,
하나님은 그들이 선택한 대로 버려두십니다.

그 심판은 폭력이 아니라,
자유에 대한 최종적 존중입니다.
“네가 나를 원치 않으니, 영원토록 나 없이 있으라.”

히틀러가 맞게 될 심판은
하나님께서 분노로 내리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거부당한 끝에서,
그 사랑이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는 문 앞에서 이루어지는 ‘눈물의 선언’입니다.


8. 결론: “하나님은 악인을 만든 것이 아니라, 악인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셨다”

사랑하는 뉴스타트 가족 여러분,

하나님은 히틀러를 악하게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히틀러는 자유를 남용해 하나님을 거절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파괴했으며,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를 끝까지 사랑하려 하셨습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듣고 나면,
우리는 더 이상 이렇게 묻지 않게 됩니다:

“왜 하나님은 히틀러를 만드셨는가?”


대신 우리는 이렇게 묻게 됩니다:

“왜 하나님은 히틀러 같은 나를 위해
아들을 내어주셨는가?”


그 물음 앞에서 우리는 무너지고,
십자가 앞에서 울며 서게 됩니다.



마침말

히틀러는 스스로 신이 되려다 인간성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참된 하나님은,
인간이 되셔서 스스로 죽음까지 낮아지심으로
인간을 구원하셨습니다.

그 차이,
그 반전,
그 사랑이
복음입니다.

이 진실 앞에서 우리는 소리 없이 무릎 꿇고 고백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악인을 만들지 않으셨다.
악인을 위해 십자가를 준비하셨다.”
  • ?
    벚꽃향기 13 시간 전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에스겔 3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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