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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우리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고린도전서 13:12)

우리는 늘 희미한 것을 보며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신화를 만들었고, 영웅을 노래했으며, 언젠가 사랑이 이길 것이라는 이야기를 오래도록 반복해 왔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그 희미함은 끝날 수 있다고.
이야기는 마침내 얼굴을 얻을 수 있고, 꿈은 역사 속으로 걸어 들어올 수 있다고.

이 글은 바로 그 지점을 향해 나아갑니다.
신화가 멈추고, 한 사람이 드러나는 자리.
상징이 끝나고, 한 인격이 우리 앞에 서는 순간.
희미한 그리움이 선명한 얼굴을 얻는 그 놀라운 지점을 바라보려는 글입니다.

========================================================


신화의 끝에서, 예수를 만나다
― 상징이 역사로 들어온 순간


1. 우리는 왜 ‘이야기’에 이끌리는가
― 인간 영혼 깊은 곳에 새겨진 서사의 본능

사람은 논리보다 먼저 이야기에 반응하는 존재입니다.
고대의 신화든, 현대의 영화든, 우리는 비슷한 구조의 이야기 앞에서 자꾸만 멈춰 섭니다.

어떤 영웅이 어둠과 죽음의 위협 앞에 서고,
사랑 때문에 자신을 내어주며,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은 순간 뜻밖의 새 시작과 회복이 찾아오는 이야기.

이 구조는 문화와 시대를 넘어 거의 본능처럼 반복됩니다.
우리는 그것을 신화라 부르고, 전설이라 부릅니다.

현대인은 자주 이렇게 말합니다.
“그건 그냥 신화일 뿐이야.”

이때 ‘신화’라는 말은 대개 ‘거짓’이나 ‘꾸며낸 이야기’의 뜻으로 사용됩니다.
그러나 인류의 긴 역사 속에서 신화와 전설은 단순한 허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인간 안에 깊이 새겨진 현실 감각을 이야기의 형식으로 표현해 온 오래된 언어였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느끼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무엇을 갈망하는지,
어떤 구원을 꿈꾸는지를
인간은 신화와 전설이라는 서사로 풀어내 왔습니다.

그러므로 신화는 신문 기사처럼 사실을 기록한 문서는 아니지만,
인간 내면의 가장 깊은 진실을 표현해 온 상징적 진실의 언어였습니다.


2. 신화가 오래도록 말해 온 하나의 꿈
― 잃어버린 세계를 향한 기억과 갈망

인류의 위대한 신화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놀라울 만큼 반복되는 꿈이 있습니다.

이 세계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는 직감,
선과 악의 싸움은 실제이며 언젠가 정의가 승리해야 한다는 갈망,
죽음이 마지막 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저항,
그리고 누군가가 우리를 대신해 어둠 속으로 들어가 싸우고, 우리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기대 말입니다.

신화와 전설은 바로 이 꿈을 이야기해 왔습니다.
우리 말로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이 깊은 갈망을 상징적인 이야기로 그려 낸 것입니다.

그래서 신화는 비록 역사 기사처럼 사건을 기록하지는 않지만,
인간의 심연에서 일어나는 가장 진지한 질문과 가장 오래된 소망을 이야기라는 형태로 보존해 온 내면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화는 허공의 장난이 아닙니다.
그것은 잃어버린 세계를 향한 인간 영혼의 기억이며, 아직 오지 않은 구원을 향한 마음의 떨림입니다.


3. 예수 이야기의 낯선 친숙함
― 왜 우리는 이 이야기를 ‘어디선가 본 것 같다’고 느끼는가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보십시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 사이에 오셨습니다.
권력이 아니라 섬김으로 다스리셨습니다.
원수들의 미움과 폭력을 그대로 맞으셨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시며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사흘째 되는 날 죽음을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듣는 사람도 이상한 친숙함을 느낍니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어떤 이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보라, 다른 종교와 신화에도 신이 내려오고, 죽고, 다시 살아나는 이야기들이 있다. 예수 이야기 역시 그런 종교적 신화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조금 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이 ‘낯선 친숙함’은 예수 이야기가 거짓이라는 증거가 아닐 수 있습니다.
오히려 예수 이야기가 진짜라면, 바로 이런 친숙함이 나타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참된 이야기가 역사 속으로 들어왔다면,
인간은 그 이야기를 이미 오래전부터 더듬어 꿈꾸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4. 모든 신화 속에 숨어 있는 메아리
― 인간은 하나님을 향하도록 지음받은 존재다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라고 말합니다(창 1:26–28).
우리는 우연히 던져진 먼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를 비추도록 지어진 존재입니다.

또한 성경은 참 빛이 세상에 와서 각 사람을 비춘다고 증언합니다(요 1:4, 9).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은 피조 세계 가운데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고도 말합니다(롬 1:19–20).
바울은 심지어 하나님께서 모든 민족을 만드신 이유 가운데 하나가 사람들이 하나님을 더듬어 찾게 하려는 데 있다고 설명합니다(행 17:26–28).

이 사실들을 함께 놓고 보면, 우리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향해 열려 있는 존재이며,
하나님의 빛은 모든 사람에게 어느 정도 비추고 있고,
성령께서는 모든 문화와 역사 속에서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히려 기대해야 합니다.
모든 민족과 문화의 신화와 전설 속 어딘가에 복음의 메아리가 숨어 있을 것을.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죽음과 악을 이기며, 새 생명을 주는 이야기가 흐릿한 그림자와 깨진 조각의 형태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을 것을 말입니다.

신화와 전설 속의 구원자, 영웅, 희생, 죽음과 부활의 모티프는 허공에서 튀어나온 환상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은밀한 손길 아래 인류의 집단 기억 속에 새겨진 예수 이야기의 예감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인류의 신화는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
아직 얼굴을 보지 못한 채, 얼굴을 그리워하던 마음의 흔적일 수 있습니다.


5. 그러나 예수 이야기는 결정적으로 다르다
― ‘신화 같은 이야기’가 실제 역사 속으로 들어온 사건

여기까지는 예수 이야기와 다른 신화들이 어느 정도 닮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여기서 결정적인 차이가 드러납니다.

다른 신화와 전설은, 아무리 깊은 진실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다 해도,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일어났는가”를 역사적으로 검증할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반면 예수 이야기는 아주 구체적인 시공간 속으로 내려옵니다.

로마 제국의 압제 아래 놓인 1세기 팔레스타인,
본디오 빌라도라는 총독 아래 집행된 십자가형,
갈릴리와 예루살렘이라는 실제 지명,
그리고 “우리가 보고, 들었고, 우리 손으로 만져 보았다”고 증언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요일 1:1).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은 “옛날 어느 나라에…”로 시작하는 전설이 아닙니다.
그것은 실제 역사 한복판에 박혀 있는 사건입니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기묘하고도 유일한 만남을 보게 됩니다.

한편에는 인간이 오래도록 상징으로 표현해 온 깊은 진실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둘이 예수 안에서 하나로 만납니다.

그러므로 예수 이야기는 단순히 “신화 같다”거나 “감동적인 상징이다”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신화가 꿈꾸어 온 모든 것을 실제로 구현해 낸 역사적 사건입니다.
희미한 꿈이 몸을 입고 걸어 들어온 순간입니다.


6. 흐릿한 꿈에서 선명한 얼굴로
― 모든 상징이 한 사람 안에서 초점을 얻다

인류의 신화와 전설은 마치 초점이 맞지 않은 사진과 같습니다.
빛과 그림자, 선과 악, 희망과 절망이 그 안에 섞여 있지만,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늘 흐릿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흐릿한 그림이 갑자기 선명한 얼굴을 얻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인간의 죄와 악이 얼마나 깊은지,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구원과 새 창조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이 모든 것이 한 유대인 남자의 삶과 죽음과 부활 속에서 압축적으로, 그리고 결정적으로 드러납니다.

신화는 막연히 말해 왔습니다.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언젠가 희생과 구원을 이루어 줄 것이라고.

그러나 예수 이야기는 말합니다.
바로 여기서, 바로 지금, 바로 이 사람 안에서 그 모든 꿈이 현실이 되었다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안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원수들을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시는 사랑으로 드러나십니다.
인간의 악과 폭력은 하나님의 몸을 찢는 실제 상처로 드러납니다.
그리고 모든 신화가 희미하게 바라보던 “결국 사랑이 이긴다”는 결론은 부활이라는 구체적 사건으로 선언됩니다.

이것이 바로 “신화가 역사가 되었다”는 말의 뜻입니다.
예감과 상징의 구름 속을 떠돌던 꿈이, 예수라는 한 인격 안에서 살과 피와 시간과 공간을 가진 현실이 된 것입니다.


7. 십자가, 모든 거짓 신화를 뒤집는 장면
― 피를 요구하는 신이 아니라, 자기 피를 내어주시는 하나님

인류의 신화들 가운데에는 우리 안의 깊은 갈망을 담아낸 아름다운 요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왜곡된 그림들도 가득합니다.

신들이 인간을 이용하고 버리는 이야기,
더 강한 폭력으로 악을 눌러야 한다는 논리,
우리 편을 살리기 위해 남의 편을 제물로 바치는 구조 말입니다.

이런 신화들 속에서 희생은 언제나 약한 자의 몫입니다.
신과 영웅은 대개 희생을 요구하는 편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이 모든 거짓 신화를 뒤집는 급진적 반전입니다.

여기에는 희생을 요구하는 신이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자신이 희생물이 되십니다.

인간이 신에게 피를 바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자신의 피를 흘리십니다.

우리 편이 저쪽 편을 죽여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와 저들을 가르지 않으시고 모두를 위해 자기 생명을 내어주심으로 구원의 길을 여십니다.

십자가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진짜 하나님은 다른 이의 피를 요구하는 분이 아니라,
자기 피를 흘려 우리를 살리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부활은 이렇게 판결합니다.

이 사랑이 우주의 최종 진실이며,
이 자기희생이 죽음과 악보다 더 강한 힘이라는 것을.

그 순간 인류의 모든 신화는 두 갈래로 갈라집니다.

다른 이를 제물로 삼는 폭력의 신화는 십자가 앞에서 심판받고 무너집니다.
반대로 “언젠가 사랑이 이겨야 한다”는 모든 참된 갈망은 십자가와 부활 안에서 비로소 완성되고, 참된 내용을 얻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인류가 모든 신화를 통해 더듬어 찾던
진짜 이야기의 얼굴입니다.


8. 성령, 이 거대한 이야기를 ‘내 이야기’로 만드는 숨결
― 먼 과거의 사건이 오늘 내 심장에 닿는 방식

그러면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남습니다.

설령 예수 이야기가 신화의 꿈을 완성한 역사적 사건이라 해도,
그것이 지금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성경은 바로 여기에서 성령을 증언합니다.

성령은 인류의 모든 신화와 전설 속에 희미하게 새겨져 있던 갈망과 질문을 일깨우십니다.
그리고 “이 꿈이 사실은 예수 안에서 이미 이루어졌다”는 복음을 우리의 양심과 가슴에 비추십니다.
또한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을 2천 년 전 과거의 이야기로 남겨 두지 않고, 지금 여기서 나를 위한 이야기로 체험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복음을 들을 때, 마음 깊은 곳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공명을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평생 찾던 이야기다”라는 느낌 말입니다.

그 공명은 단지 종교적 분위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우리 안에 새겨진 신화적 갈망과,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서로 이어 붙이시는 순간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이렇게 고백하게 됩니다.

이것은 단지 어떤 감동적인 이야기가 아니구나.
이것은 내 이야기구나.
내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나를 위해 오셨구나.
나의 죽음을 대신 지신 그 사랑이 지금도 성령 안에서 나를 부르고 있구나.

바로 여기서 복음은 ‘좋은 정보’가 아니라
나를 다시 살리는 하나님의 호흡이 됩니다.


9. 그러므로 핵심은 ‘신화 대 역사’가 아니다
― 희미한 꿈과 이루어진 꿈의 관계

여기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한 지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예수 이야기가 다른 신화와 다른 이유는 단순히
“저것은 거짓이고, 이것은 참이다”라는 평면적인 흑백 논리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정확한 표현은 이것입니다.

인류의 신화와 전설은 참된 무언가를 향해 손을 뻗는 꿈입니다.
그러나 그 꿈은 흐릿하고, 불완전하며, 자주 왜곡됩니다.

반면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은
그 꿈이 실제 역사 속에서 한 번 구현된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이야기는
신화와 전혀 무관한 냉정한 역사도 아니고,
수많은 신화들 가운데 하나도 아닙니다.

그것은 신화가 오래도록 말해 온 가장 깊은 그리움이
마침내 역사 속에서 몸을 입은 이야기입니다.

이 점을 놓치면 우리는 두 가지 오류에 빠지게 됩니다.

하나는, 모든 신화를 그저 허구로 취급하며 인간의 깊은 영적 갈망 자체를 얕잡아보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예수 이야기를 많은 신화들 가운데 하나로만 낮추며 그 역사성과 고유성을 지워 버리는 것입니다.

복음은 이 둘을 동시에 거부합니다.

복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 너희가 신화 속에서 더듬어 찾던 그 갈망은 거짓이 아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갈망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 속에 이루어졌다.


10. 만약 이 이야기가 거짓이라면
― 인간 존재는 결국 자기암시에 갇힌 비극이 된다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겠습니다.

만약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이야기가 그저 잘 만들어진 신화에 불과하다면,
우리는 무엇을 인정해야 할까요?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정의가 승리하고, 사랑이 죽음을 이기며, 눈물이 닦이는 세계를 꿈꾸어 왔습니다.
그러나 실제 현실은 오히려 악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늘 스스로를 붙들기 위해 말해 왔습니다.
“그래도 마지막에는 사랑이 이길 거야.”
“언젠가 모든 것이 바로잡힐 거야.”

그런데 만약 예수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면,
이 모든 꿈과 위로는 결국 자기 암시에 불과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인간 존재는 이렇게 정의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의미를 갈망하도록 되어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아무 의미도 없는 세계 속에서
스스로를 속이며 살아가는 존재다.

이것이야말로 헛됨의 극치입니다.
죽음이 마지막 말이 되고, 사랑은 결국 패배하며, 우리가 품어 온 모든 신화적 갈망은 잔인한 농담으로 끝나 버립니다.

그래서 “예수 이야기는 신화일 뿐이다”라는 말은 겉으로는 지적이고 냉철해 보일지 몰라도,
그 말의 숨겨진 결론은 인간 존재 전체를 비웃는 것입니다.


11. 그러나 만약 이 이야기가 진실이라면
― 모든 갈망은 자기위안이 아니라 하나님이 심어 두신 감각이 된다

반대로, 만약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이 실제 역사 속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면 모든 것은 정반대로 바뀝니다.

신화와 전설 속에 흩어져 있던 사랑, 희생, 죽음, 부활, 새 창조의 조각들이
예수라는 한 인물 안에서 하나의 그림으로 맞추어집니다.

죽음은 더 이상 세계의 마지막 심판관이 아닙니다.
이미 심판받은 패배한 권세가 됩니다.

우리가 평생 품고 살아온 갈망은 근거 없는 자기 위안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심어 두신 현실 감각이었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이 경우 예수 이야기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신화 속에서 꿈꾸던 세계는 상상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세계는 이미 나의 십자가와 부활 안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성령으로 그 세계를 너희 안에서, 너희 사이에서, 조용하지만 그러나 실제로 이루어 가고 있다.

이때 복음은 현실을 도피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죽음과 불의와 고통이라는 가장 뼈아픈 현실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하는 용기가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세계의 마지막 한 줄은 죽음이 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쓰신다는 것을.


12. 신화와 역사가 만나는 자리에서
― 우리의 삶도 다시 쓰이기 시작한다

이제 질문은 이렇게 정리됩니다.

예수 이야기는 신화 같은 이야기인가?
그렇습니다.
인류의 모든 신화와 전설이 말해 온 가장 깊은 주제를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예수 이야기는 신화일 뿐인가?
아닙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실제 삶과 죽음과 부활이라는 구체적인 역사 위에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이야기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말은 이 두 문장을 함께 붙이는 것입니다.

예수 이야기는 신화이다.
그리고 역사이다.

여기서 ‘신화적’이라는 말은
이 이야기가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그리움을 건드린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역사적’이라는 말은
그 그리움이 어느 날 실제로, 한 번, 객관적인 사건으로 이루어졌다는 뜻입니다.

바로 이 둘이 만나는 자리에서
우리의 삶도 다시 쓰이기 시작합니다.

죽음이 마지막이라고 믿던 사람은 부활의 소망을 막연한 위안이 아니라 논리적 근거 위에 올려놓게 됩니다.
사랑은 결국 패배한다고 체념하던 사람은 십자가의 사랑을 현실적인 힘으로 만나게 됩니다.
의미 없는 우연 속에서 흔들리던 인생은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큰 이야기 속 한 장면으로 제자리를 찾게 됩니다.

예수 이야기가 단지 감동적인 신화 하나에 그친다면,
우리는 여전히 가속하는 시간 속에서 허무를 향해 달려가는 열차에 타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참된 신화이자 참된 역사라면,
우리 삶의 열차는 보이지 않는 벽을 향해 질주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열린 문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문 너머에는 우리가 신화와 노래와 눈물 속에서 오래도록 기다려 온 세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계 21:4)

인류의 모든 신화가 희미하게 노래해 온 바로 그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안에서 마침내 한 곡의 복음 찬송으로 모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찬송의 첫 구절을
당신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분명하게 시작하고 계십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아득한 그리움은 오래도록 노래가 되고,
“언젠가”라는 막연한 소망은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이 됩니다.

이상은의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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