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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드신가요? 가슴 뭉클한 동화 한편 읽어보세요


<돼지코에 앉은 나비>

시끄럽고 지저분한 돼지우리에 따사로운 오후의 햇볕이 쏟아질 무렵이었습니다.

"꿀꿀꿀...... 꿀꿀......"

방금 전까지만 해도 땅바닥에 코를 박고 돌아다니던 돼지들이 먹이통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했
습니다.
식사시간이 찾아온 것입니다. 돼지들은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음식 찌꺼기의 향긋한 냄새를
마음껏 들이마시며 계속 꿀꿀거렸습니다.

이윽고 덩치 큰 주인 아저씨가 외발 수레와 함께 나타나자, 돼지들은 배가 고프다고 더 호들
갑을 떨었습니다.

"저리 가!"
"여긴 내 자리야!"

기다란 먹이통 앞에 모인 돼지들은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를 밀치며 마구 소리쳤습
니다. 모두 다 욕심쟁이처럼 먹을 것밖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주인 아저씨가 수레에 담겨 있던 먹이를 먹이통 안에 쏟아준 후에도 돼지들은 여전히 자리다
툼을 벌였습니다.
우리 구석의 울타리에다 엉덩이를 기대고 있던 복둥이는 다른 돼지들의 못된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며 생각했습니다.

'왜들 저렇게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걸까?'

조금이라도 더 먹기 위해 친구들을 밀쳐 내는 돼지들이 복둥이는 정말 미웠습니다. 하지만 뱃
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자 복둥이는 얼굴을 찌푸리며 꼬불꼬불한 꼬리를 이리저리 흔들었습
니다. 향긋한 먹이 냄새의 유혹은 억지로라도 견딜 수 있었지만, 배고픔은 도저히 참아 낼 수
가 없었던 것입니다.

복둥이는 어쩔 수 없이 먹이통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습니다. 하지만 먹이통을 둘러싼 다른 돼
지들 때문에 맛있는 먹이를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복둥이는 잠시 망설이다가 자신보다 덩치
가 작은 돼지를 옆으로 힘껏 밀쳐냈습니다.

그리고는 먹이통 속에다 코와 입을 파묻고 허겁지겁 먹이를 먹었습니다. 그런데 홀쭉했던 배
가 조금 불러오자, 자기가 밀쳐냈던 그 불쌍한 돼지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복둥이는 자기 자신이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먹이통에서 슬그머니 빠져 나와 울타리
로 힘없이 걸어갔습니다.

'난 이곳에서 가장 한심하고 나쁜 돼지야. 내 자신을 속였으니까.'

복둥이는 코를 높이 쳐들고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둥둥 떠다니는 솜털 같은 구름들이 복둥이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아, 저 구름을 타고 날아갈 수만 있다면.... 이 답답한 곳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복둥이는 우리 안에 갇혀있는 자신의 처지가 싫었습니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이곳의 생활
이 정말 싫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복둥이에게도 우리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기회가 딱 한번 기
다리고 있었습니다.

지금보다 살이 더 통통하게 찌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것입니다. 복둥이는 그곳에 끌려가게
되면 더 이상 먹이를 먹을 수도, 숨을 쉴 수도 없다는 걸 알고있었습니다. 그런 걸 '죽음'이
라고 말하면서 벌벌 떠는 어느 암퇘지를 본 적이 있었거든요.

그렇지만 돼지들은 그런 두려움을 쉽게 잊어먹었습니다. 돼지들이 무서움을 느낄 땐 주인 아
저씨가 고른 돼지가 도살장으로 끌려갈 때뿐이었습니다. 그 이외의 시간엔 먹을 것에 대한 욕
심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러나 복둥이는 항상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언젠가는 자신도 도살장으로 끌려가게 될 거라
는 사실을 알고있었으니까요.

복둥이는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두 눈을 감았습니다. 그렇게 하면 답답한 돼지우리에서
벗어나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복둥이는 자주 그런 행동을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이었습니다. 분명히 돼지우리의 지저분한 냄새는 아니었
습니다. 그 냄새는 지금까지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그런 냄새였습니다. 향긋한 음식 냄새보
다 더 향긋했고, 햇살의 고소한 냄새보다 더 달콤했습니다. 하지만 코가 간지러워서 복둥이
는 금세 눈을 떴습니다.

"어? 이게 뭐지?"

복둥이는 깜짝 놀랐습니다. 난생 처음 보는 곤충이 자기 코 위에 앉아있었으니까요.

"넌 누구니?"

"난 산제비나비야."

나비가 날개를 펄렁거리며 대답했습니다.
복둥이는 아름답고 화려한 날개를 가진 나비가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정말 아름답게 생겼구나. 그런데 왜 내 코 위에 앉은 거지?"

"잠시 쉬어가고 싶어서..."

"아하, 그러면 내가 맡았던 향기로운 냄새가 바로 너 때문이었구나."

그제야 복둥이는 냄새의 비밀을 알았다는 듯 환하게 미소지었습니다.

"그건 네가 꽃향기를 맡아서 그런 거야."

"꽃?"

"그래, 난 꽃을 찾아서 날아다니지. 꽃의 꿀을 빨아먹고 사니까."

"그렇구나. 꽃은 좋은 향기 말고도 꿀이란 걸 갖고있구나. 꿀맛은 어떨지 정말 궁금해."

"아주 달콤해. 애벌레였을 땐 그런 맛을 몰랐었지만..."

"애벌레?"

"난 원래 이런 모습이 아니었어. 처음엔 조그만 알이었고, 그 다음엔 애벌레, 그리고 번데기
를 거쳐서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된 거야."

"힘들었겠구나."

"그땐 그랬지만 지금은 다 잊어버렸어. 물론 고통만 잊었다는 것 뿐이야. 고통의 의미는 여전
히 내 몸 구석구석에서 숨쉬고 있으니까."

나비는 아름다운 날개를 살짝 흔들었습니다.
복둥이는 나비의 몸짓을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가만히 입을 열었습니다.

"나도 알에서 태어났다면 너처럼 되었을까? 그랬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돼지는 알에서 태어나지 않아."

나비는 기다란 더듬이를 좌우로 움직였습니다.

"그래, 난 돼지야. 이렇게 답답한 우리 안에 갇힌 돼지."

복둥이는 울적한 기분이 들었는지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하지만 나비는 복둥이의 코에서 떨
어지지 않았습니다. 커다란 날개를 펄렁거리며 균형을 잘 잡았으니까요.

"기분이... 좋지 않은.... 모양이구나."

나비가 온몸을 휘청대며 힘들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복둥이는 숙였던 고개를 다시 들어올려
나비가 앉아있기 편하도록 해주었습니다.

"꽃향기를 맡았을 땐 좋았는데, 지금은 아냐."

복둥이는 더 침울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내가 괜히 너의 코 위에 앉았나 봐. 미안해."

복둥이는 둥글뭉스레한 코를 설레설레 흔들었습니다.

"아냐, 아냐. 잠깐이었지만 너 때문에 처음으로 꽃향기를 맡을 수 있었잖아. 고마워, 산제비
나비야."

복둥이의 말에 나비는 뭔가를 깊이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면 너한테 다른 꽃향기를 선물해줄까?"

"정말? 진짜로 그렇게 해줄 거야?"

"약속할게."

"그럼, 앞으로 우리 친구가 될래?"

"응. 그 대신 나도 부탁할 게 하나 있어."

"뭔데?"

"내가 여기까지 내려온 이유는 산 아래쪽에 꽃들이 많아서야. 하지만 꿀을 배불리 빨아먹고
나면 다시 산 위로 올라가야만 해."

"그런데?"

"그러니까 산 위로 올라가기 전에 잠시 쉬어가야 한다는 거야. 너의 코 위에서 쉬고 싶어. 딱
딱한 곳보다는 축축한 너의 코가 아주 편하거든. 그렇게 해줄 거지?"

"알았어. 뭐 어려운 일도 아니네. 하하..."

복둥이와 나비는 함께 웃었습니다. 포도 알처럼 예쁜 우정이 그들의 마음속에서 영글어갔습니
다.

그날 이후로, 나비는 날마다 산 위로 올라가기 전에 복동이의 코 위에 앉아 쉬었습니다. 그
대신 여러 가지 꽃향기를 복둥이에게 선물해주었습니다. 진달래 꽃, 과꽃, 나팔꽃, 맨드라
미, 꽃양배추, 봉선화, 일일초, 채송화, 분꽃, 시클라멘......

비록 코끝이 간지럽기는 했지만, 복둥이는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어쩔 땐 배고픔을 잊어먹을
정도로 꽃향기에 흠뻑 취하기도 했습니다. 꿈속에서도 복둥이는 바람을 타고 떠다니는 풍선으
로 변하여 나비를 따라다녔습니다. 정말 행복했고 자유로웠습니다. 아무 희망도 없이 살아온
복둥이에게 산제비나비는 희망과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복둥이는 슬픔에 잠겨있었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나비가 날아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날 잊은 게 분명해. 아니면 다른 돼지한테 갔거나...."

시간이 흐를수록 화도 났고 질투도 났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친구가 미웠습니다.
그렇게 세 밤이 지난 후에 갑자기 나비가 나타났습니다.
복둥이는 심통을 부렸습니다. 나비가 자신의 코 위에 앉으려고 하자 머리를 마구 흔들어서 앉
지 못하게 했습니다. 나비는 어쩔 수 없이 울타리 위에 앉았습니다.

"화내지마. 내가 널 찾아오지 않았던 건, 다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야."

나비의 목소리는 아픈 것처럼 힘이 없었습니다.

"흥, 내가 얼마나 너를 기다린 줄 알아?"

복둥이는 계속 투정을 부렸습니다.

"복둥아.... 난 곧 죽어."

나비가 그렇게 말하자, 화를 내던 복둥이는 바보처럼 입을 벌렸습니다. 나비의 말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죽는다고?"

"나비는 돼지보다 오래 살지 못하거든."

"정말이구나."

"난 알아. 이제 곧 죽을 때가 되었다는 것을.... 그래서 일부러 널 찾아오지 않았던 거야."

"........"

북둥이의 얼굴은 금세 침울해졌습니다. 그러자 나비가 울타리에서 날아오르더니 복둥이의 코
위에 사뿐히 내려앉았습니다. 그리고 진지하게 말했습니다.

"내가 죽고 나면, 넌 더 이상 꽃향기를 맡을 수가 없잖아. 다른 나비가 네 코 위에 앉는다면
몰라도 말야. 그래서 널 길들이기 위해 삼일 동안 찾아오지 않았던 거야."

"날.... 길들인다고?"

"나와 못 만날 수도 있을 테니까. 삼일이 아니라, 삼 백년, 삼 천년 후에도.... 그건 정말 길
고도 긴 시간이지. 어쩌면 짧은 시간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내가 다시 찾아온 것은
네 마음속에 숨겨둔 향기를 다시 꺼내기 위해서야."

"꽃향기?"

"그래, 눈을 감아봐."

나비의 말대로 복둥이는 눈을 감았습니다.

"자, 이제 꽃향기를 천천히 떠올려 봐. 아무거나."

복둥이는 콧구멍을 자신도 모르게 벌름거렸습니다. 그리고는 이내 미소지었습니다. 진달래꽃
향기가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내 말이 맞지?"

"응, 꽃향기를 맡고있는 것만 같아."

"그러면 다른 향기도 떠올려 봐. 강제적으로 하지 말고, 너의 코 위에 내가 앉아있다고 생각
해. 지금처럼."

나비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습니다. 복둥이는 나비가 전해주었던 수많은 꽃향기를 하나씩 떠올
릴 수가 있었습니다. 마치 꽃밭 위를 날아다니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조금 뒤에 나비가 다시 말했습니다.

"여태까지 넌 꽃향기를 희망이라고 생각했을 거야. 그런데 그 희망은 꽃향기 속에 있는 게 아
냐. 너의 마음속에 원래부터 존재하고 있었던 거지. 알겠니? 그 누구도 너한테서 희망을 뺏어
갈 순 없어. 그건 모두 다 너의 것이니까."

복둥이는 두 눈을 똥그랗게 떴습니다.

"희망을 준 건 너였잖아."

"아니, 희망은 줄 수가 없는 거야. 내가 준 건 단지 꽃향기일 뿐이지. 넌 그걸로 마음속에 잠
자고 있던 희망을 깨운 거고."

"믿을 수 없어. 내 마음속엔 희망이 없었어. 널 만나기 전까지는...."

복둥이는 고개를 가로 저었고, 나비는 가만히 미소지었습니다.

"내가 그걸 증명하면 믿겠니?"

"그래."

"좋아, 그러면 다시 눈을 감아 봐. 그리고 아까처럼 꽃향기를 떠올려봐."

복둥이는 나비가 시키는 대로했습니다.

"떠올랐으면 그 꽃향기를 지워 봐. 다른 것들도 하나씩 다 지워야 해."

"알았어."

곧이어 복둥이는 마음속에 남아있던 여러 가지 꽃향기를 모조리 지워버렸습니다.

"다 지웠어."

"눈을 떠봐."

북둥이는 눈을 뜨고 나비를 바라보았습니다.

"기분이 어때? 슬프고, 우울하고, 답답하고 그러니?"

나비의 질문에 복둥이는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자기가 아직까
지도 미소짓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상한데... 꽃향기를 맡을 때처럼 기분이 좋아."

"그것 봐. 너의 기분을 좋게 했던 건 꽃향기가 아냐. 그 향기는 매개체일 뿐이니까. 희망은
향기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네 마음속에 있었던 거야. 네가 아무 생각을 하
고 있지 않아도 희망은 항상 너와 한 몸이라는 것을 잊지마."

그제야 복둥이는 나비의 말을 이해하고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나비는 더욱 진지해진 목소리로 다시 말했습니다.

"그리고 너한테 한 가지 더 말해주고 싶은 것은.... 죽음에 대해서야."

"더 이상 밥도 못 먹고, 숨도 쉴 수 없는 거?"

"그래, 죽음은 누구나 반드시 경험하게 되는 거야. 하지만 죽음은 끝이 아냐. 변하는 것일 뿐
이지. 모든 것이 변하듯.....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바로 죽기 직전이야. 죽음이 코앞
에 닥쳐와도 희망을 버리면 안 돼. 희망이 원래부터 자기 자신과 한 몸이라는 걸 느끼라구.
그런 후엔 마음속으로 네가 되고싶은 것을 그려 봐. 바로 그 모습이 네가 다음에 태어나게
될 때의 모습이니까......

가난뱅이가 죽기 전에 부자가 되길 희망하는 것 따위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아. 그건 희망이
아니라 욕심이지. 욕심과 희망은 달라. 욕심은 겉보기엔 희망 같아 보이지만, 자기 자신과 원
래부터 하나가 아냐. 하지만 희망은 바로 자기 자신이지. 자신을 아는 사람은 욕심을 부릴 수
가 없는 거야. 알겠니? 네가 꽃향기에 대한 욕심을 부렸던 건 바로 자신을 잊어버렸기 때문이
라는 것을......

허황한 꿈을 마음속에다 대충 얼버무려 놓은 것을 희망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니, 그것은
언젠가는 무너지게 될 욕심이고 야망일 뿐이야. 희망은 헛된 모래 탑을 쌓으려고 하지 않으니
까. 희망은 단지 긍정적인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삶의 영양분 같은 거야. 그래
서 그 속엔 견디기 힘든 고통이나 이기적인 집착이 없어.

희망은 아주 높은 곳에서 전체를 내려다보는 조화로운 눈을 가졌기 때문이지. 날개가 있으니
까. 그래, 희망은 날개를 갖고있어. 깃털이 빠지지도, 뼈가 부러지지도 않는 그런 날
개......

이 돼지우리가 여기에서 볼 땐 볼품없고 지저분해 보일지 몰라도 높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자연의 일부처럼 보여. 저녁에 불이라도 켜져 있으면 무척 포근하고 아름답게 보이지. 희망
은 그렇게 전체를 내려다보는 눈을 갖고있어.

그런데 욕심은 이기적인 눈을 갖고있지. 욕심은 죽음 이후까지 가져갈 수 없는 거야. 원래부
터 내 것이 아니니까. 우리가 죽음 이후까지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사랑, 그리고 희망 뿐이
야......

복둥아, 난 네가 순수한 희망을 느끼며 살아가길 바래. 때론 그 희망이 꽃향기처럼 구체화되
기도 하겠지만, 그런 꽃향기가 희망의 전부라고는 믿지마. 그러면 희망은 다시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버리게 되고, 그 빈자리는 틀림없이 욕심이 차지하게 될 거야. 욕심은 결국 허무함
과 공허함만을 안겨줄 뿐이야. 그러니까 마음을 편안하게 내버려 둬. 그러면 돼."

나비는 그렇게 말하고는 복둥이의 코 위에 엎드렸습니다. 너무나 힘들고 지쳐서 더 이상 날갯
짓도 하지 않았습니다.
복둥이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너의 말을 들으니까. 뭔가 알 것 같기도 해. 막연하지만 느낄 순 있어. 그런데 넌 어떻게 그
런 걸 알고있는 거지? 죽음에 대한 것까지도?"

"그건.... 내가 한때는 알이었고, 애벌레였고, 번데기였기 때문이야. 그렇게 변해 가는 과정
에서 나도 모르게 알게된 거지."

"그렇구나."

복둥이는 머리를 끄덕였습니다. 그 순간 나비는 돼지 코에서 미끄러져 지저분한 땅 위로 떨어
지고 말았습니다. 복둥이는 깜짝 놀랐습니다.

"나비야! 괜찮아? 미안해. 이젠 움직이지 않을 테니까, 다시 내 코 위로 올라와. 응?"

"복둥아, 난 이제..."

"안 돼! 죽으면 안 돼! 그런 말하지 말란 말이야!"

복둥이는 마구 소리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나비는 그런 복둥이를 올려다보며 작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지금 난 행복해. 희망과 함께 있으니까.... 울지마. 언젠가는 다시 만나게 될 테니까.... 울
지마, 복둥아. 울지마......"

나비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조금씩 움직이던 더듬이도 나뭇가지처럼 딱딱하게 굳어졌습니다.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았던 멋들어진 날개도 꿈적하지 않습니다.
숨도 쉬지 않습니다.
나비는 죽었습니다.

한참만에 정신을 차린 복둥이는 나비의 날개를 입으로 살며시 물어 들어올렸습니다. 그리고
울타리 밖의 풀숲 위에다가 나비를 내려놓았습니다. 너무나 슬퍼서 엉엉 울고싶었지만, 나비
의 부탁대로 애써 울음을 참았습니다.

다시 점심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돼지들은 늘 그래왔듯이 먹이통 앞으로 재빨리 몰려들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먹기 위해 서
로를 밀치며 꽥꽥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하지만 복둥이는 먹이통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이젠
배고픔의 유혹도 참아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복둥이는 다른 돼지들이 먹다 남긴 찌꺼기만을
먹기로 했습니다. 그 정도만 먹어도 충분히 살수가 있었으니까요.

그날부터 복둥이는 가장 늦게 밥을 먹었고, 그 이외의 시간엔 나비의 말라붙은 시체가 있는
울타리에서 마음속의 꽃향기를 하나씩 떠올리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눈을 감고 코를 하늘높이 들고...... 그건 희망과 하나가 되는 복둥이만의 특별한 행동이었습
니다. 복둥이는 나비가 가르쳐준 대로 순수한 희망의 느낌만을 갖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자 언제부터인가 꽃향기 이외에도 다른 냄새를 맡을 수 있게되었습니다. 꽃향기에 대한
욕심을 버리자, 마음속의 희망이 그보다 더 좋은 향기들을 바람에 실어 보내주는 것만 같았습
니다. 복둥이는 정말 행복했습니다. 지저분한 우리 안에서 복둥이 만큼 행복한 돼지는 없었습
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가자, 주인 아저씨가 복둥이를 돼지우리에서 끌어냈습니다. 다른 돼지
몇 마리도 복둥이와 함께 어디론가 끌려갔습니다.

돼지들이 도착한 곳은 으시시한 도살장이었습니다.
무서운 분위기가 돼지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습니다. 돼지들은 도망가기 위해 필사적이었습
니다. 하지만 복둥이는 주변을 둘러보며 그냥 얌전히 서 있었습니다.

조금 뒤에 이상하게 생긴 막대기를 들고 있는 사람이 복둥이에게 가장 먼저 다가왔습니다. 시
뻘건 악마처럼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람이었습니다.

"착한 돼지로구나. 하지만 어쩔 수가 없어. 널 죽여야만 내 가족을 먹여 살리니까. 세상 참
불공평하지? 그렇지?"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도끼를 머리 위로 번쩍 쳐들었습니다.
돼지들은 숨을 죽이며 벌벌 떨었습니다. 그러나 복둥이는 아니었습니다. 복둥이에겐 두려움
이 없었습니다.

'날개가 보여. 어, 움직이고 있네. 춤을 추는 걸까? 꿀을 빨아 먹고있는 걸까? 나비야, 부탁
이 있는데... 다른 돼지들한테 희망에 대해서 얘기해줄래? 응?'

복둥이는 코를 하늘 높이 들어올리며 해맑게 웃었습니다.

<끝> ------ 이 창작 동화는 소설 <애기냉이꽃>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살인죄를 뒤집어쓴 엄
마가 감방에서 죽기 전에 아들에게 남긴 유언입니다. 동화로 유언을 대신한 거죠. 잠시나마
여러 사람들과 함께 희망을 얘기하고 싶어서 올린 것이니 돌?은 던지지 마세요. ^^ - <
애기냉이꽃> 저자 채평산 올림 - MoonKhan@hite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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