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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08 04:31

자유를 위한 애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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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위한 애매함 — 신앙은 사랑의 선택이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하늘을 찢고 천둥소리로
“나는 여호와다! 지금 회개하라!”
고 외치신다면 온 인류는 즉시 엎드릴 것입니다. 그 광휘와 위엄 앞에 거역할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엎드림은 사랑의 반응이 아니라 공포의 반사일 것입니다. 그건 ‘자유로운 사랑’이 아니라 ‘본능적 생존’의 몸짓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로봇처럼 프로그래밍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어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사랑이 가능한 존재, 즉 자유롭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존재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분은 강제된 복종보다, 자유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을 더 귀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의 위엄을 감추고, 인간이 두려움이 아닌 사랑으로 다가올 수 있는 공간을 남겨두신 것입니다.


1. “에피스테믹 거리”란 — 믿을 만큼은 충분히 보이되, 믿지 않을 자유도 남겨두는 거리

이것이 바로 신학에서 말하는 에피스테믹 거리(epistemic distance), 즉 ‘지적 거리’, ‘인식적 여백’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완전히 노출시키지 않으심으로써, 인간이 그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주십니다.

그분은 믿을 수 있을 만큼은 충분히 드러나시되, 강요받지 않고 사랑할 수 있는 여백을 남기십니다. 이 ‘여백’이 바로 믿음이 자라나는 토양이며, 사랑이 자유로워지는 공간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린아이가 부모를 사랑할 때, 그 사랑이 의미 있으려면 강요되지 않은 자유로움이 있어야 합니다. 부모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벌을 주겠다”고 협박한다면, 그 사랑은 단지 두려움의 복종일 뿐입니다.

연인의 사랑도 같습니다. 사랑의 관계가 진짜가 되려면, 상대가 거절할 수도 있는 가능성이 있어야 합니다. 만약 상대의 마음을 강제로 조종할 수 있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인형극일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원하시면 언제든 자신의 존재를 압도적으로 증명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인간은 더 이상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저 복종의 본능만 남게 될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의 대상으로 부르셨기에, 우리에게 믿을 자유와, 거절할 자유를 동시에 허락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스스로를 감추시는 이유이며, 그분의 침묵이 곧 사랑의 또 다른 형태인 이유입니다.


2. 말구유의 아기 ― 강요하지 않는 사랑의 시작

이러한 하나님의 방식은 예수의 탄생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불처럼 등장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아기로 오셨습니다.

창조주께서 인간의 품에 안겨 울었습니다. 그분은 “두려움으로 복종하라”고 명령하지 않으시고, “나를 품고, 나를 사랑하라”고 부드럽게 초대하셨습니다.

그 말구유의 장면은, 하나님이 인간의 자유를 얼마나 존중하시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온유한 계시입니다.
그분은 전능을 버리고 연약함으로, 심판의 칼을 버리고 초대의 눈빛으로, 왕좌에서 내려와 우리의 무릎 높이까지 낮아지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강제로 무릎 꿇게 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스스로 무릎을 꿇고 우리 눈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의 눈빛에는 명령이 아니라 신뢰,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의 기다림이 담겨 있습니다.

이것이 사랑의 시작이자, 인류의 자유가 처음으로 숨 쉬게 된 순간입니다.


3. 십자가 ― 하나님의 ‘존재의 위압’을 버리고 ‘사랑의 무력함’으로 다가오신 자리

그 사랑은 결국 십자가에서 완성됩니다.
만약 하나님이 존재의 위압으로 우리를 굴복시키셨다면, 그분은 하늘의 폭군처럼 군림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늘의 힘으로 제압하지 않으시고, 인간의 약함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분은 십자가 위에서 무력한 사랑으로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분은 폭력 대신 희생을, 정복 대신 헌신을 택하셨습니다.

십자가는 바로 “강요 대신 사랑을 택하신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힘으로 제압하지 않는다.
나는 너의 자유를 끝까지 존중한다.
네가 나를 거절할 수 있다 해도,
나는 여전히 너를 위해 죽을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시가 ‘무력함’의 형태를 띠는 이유입니다.
그분은 하늘의 왕좌에서 번개로 외치지 않고, 피와 눈물로 사랑을 증언하셨습니다.

그분의 침묵과 무력함은 절망의 신호가 아니라, 사랑이 얼마나 진실한지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4. 일상의 신앙 ― 자유로운 사랑을 배우는 자리

이제 우리는 묻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지금도 왜 그렇게 조용하신가?”

그 이유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당신의 존재를 ‘조용한 방식’으로 드러내십니다.
그분은 폭풍 속이 아니라, 작은 바람결 속에서 말씀하십니다. (왕상 19:12)

우리의 신앙은 바로 그 ‘애매함’ 속에서 자랍니다.
하루하루의 평범한 선택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신뢰를 쌓는 과정 속에서, 그분의 침묵 속에서도 사랑을 붙드는 고요한 결단이 우리 안에서 자라납니다.

그 믿음은 확증이 아니라 관계의 신뢰에 기초합니다.
그 믿음은 증거가 아니라 사랑의 기억으로 버텨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하나님의 침묵 속에서 오히려 가장 깊이 뿌리내립니다.

그분은 여전히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이제는 천둥이 아니라, 속삭임으로.
그분은 여전히 나타나십니다. 하지만 이제는 번개가 아니라, 사랑으로.


정리: 사랑이 자유를 전제하듯, 신앙은 애매함을 전제한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 분명해집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완전히 드러내셨다면, 우리는 그분을 자유롭게 사랑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랑이 사랑이 되려면, 반드시 거절할 자유, 의심할 여백, 믿음의 모험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확실성보다 신뢰를, 지식보다 사랑을, 통제보다 자유를 택하셨습니다.

그분은 존재의 압도적 위엄으로 우리를 제압하지 않으시고, 십자가의 무력함으로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십니다.

“그분은 불로 오지 않으셨다.
그분은 아기로, 종으로, 십자가의 죄인으로 오셨다.
그리고 그 침묵과 약함 속에서
인간의 자유와 사랑이 비로소 태어났다.”

이것이 바로 ‘자유를 위한 애매함’,
즉 사랑의 본질이자 복음의 가장 고요하고도 강력한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부재가 아니라,
우리의 자유를 위한 사랑의 공간이며,
그 공간 안에서만 참된 믿음이 태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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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벚꽃향기 2025.08.08 04:33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아니함 같은 자여,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 5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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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니야 2025.08.13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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