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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진짜 살아 계시고, 전능하고, 사랑이시라면… 왜 그렇게 숨어 계세요? 왜 아무 말도 안 하세요? 믿으라고 하시면서, 왜 그렇게 어렵게 만들어 놓으신 거죠? 차라리 하늘에 글씨라도 써주시든지, 하루 한 번씩 음성으로 알려주시든지 하시면 안 돼요? 왜 꼭 이렇게 애매하고, 불확실하고,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방식으로만 계시려고 하시는 거예요? 정말 믿고 싶어도, 도무지 하나님이 계신 것 같지 않아서 믿을 수가 없어요. 왜, 도대체 왜, 하나님은 그렇게까지 감춰져 계신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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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그러나 더 깊이 말씀하시는 하나님》
— 그 사랑은 보기를 원하는 자에게만 들려온다

“왜 하나님은 좀 더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으십니까?”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의 표현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고통과 불신, 결단과 절망이 얽혀 있는 존재 깊은 곳의 불만이 담겨 있습니다.
그 물음 속에는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동안 무너져 가는 마음이 내뿜는 간절한 외침이 있으며,
그 침묵은 때로 사랑과 신뢰를 요구하는 거룩한 떨림으로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방향을 바꾸어 이렇게 묻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정말로 더 명확하게 자신을 드러내신다면, 우리는 과연 그분을 더 깊이 사랑할 수 있을까요?

만일 하나님께서 매일 아침 하늘에 글씨를 쓰신다면,
“예수를 믿어라. 그렇지 않으면 멸망한다”고 방송 전파를 통해 울려 퍼지게 하신다면,
우리는 그분을 더 신뢰하게 될까요?, 더 사랑하게 될까요?

역사는 그렇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만큼 놀라운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병자를 고치고, 폭풍을 잠잠케 하시며, 심지어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분을 믿지 않았고, 조롱했고, 결국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라고 하늘에서 친히 선포하셨을 때조차,
그 소리를 들은 이들은 “우레가 울렸다”고 말하며 외면했습니다.

결국 믿음이 어려운 진짜 이유는, 하나님의 침묵이나 부족한 증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의 마음이 진실한 사랑을 두려워하고, 관계의 책임보다 확실한 기적이나 강압적 증거에 더 쉽게 끌리도록 왜곡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기적은 믿음을 낳지 못합니다. 결국 참된 믿음은 강요가 아니라, 사랑 안에서 자유롭게 반응하는 인격적 관계에서 시작됩니다.


1. 기적은 믿음을 보장하지 않는다

성경은 이러한 인간의 본성을 반복해서 증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노예 상태에서 구출하시고,
홍해를 가르며 기적적으로 길을 내셨고,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먹이셨으며,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계속해서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광야에서 끊임없이 불평했고,
조금만 위기가 닥치면 이내 우상을 만들고,
심지어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두고도 하나님을 믿지 못했습니다.

왜일까요?

기적은 일시적인 감동은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속적인 신뢰, 그리고 자발적인 사랑을 만들어 내지는 못합니다.
기적이 반복되면, 그것은 더 이상 기적이 아니며,
오히려 그것에 의존하는 믿음은 약해지고, 결국 무너지고 맙니다.

믿음은 기적이 아닌 관계 속에서 태어납니다.
증거가 아니라, 사랑의 응답에서 시작됩니다.
믿음은 “이게 진짜냐?”는 지적 탐색의 문제가 아니라,
“나는 그분을 사랑하고 싶은가?”라는 도덕적·인격적 결단의 문제입니다.


2. 믿음은 증거가 아니라 방향에서 시작된다
 
게다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대부분의 사건은 언제든지 다른 방식으로도 ‘설명’될 수 있습니다.
 
구름에 “내 아들을 믿어라”는 문장이 떠 있어도, 사람들은 “이건 환각이야” 혹은 “누군가의 속임수겠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우연의 일치” 혹은 “사기극”으로 치부되었고, 그분의 부활 역시 “제자들의 집단 환상”이나 “시체 도난극”으로 여겨졌습니다.
 
문제는 정보가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문제는 언제나 마음의 방향성에 있습니다.
 
보고자 하는 사람은 결국 보고, 피하려는 사람은 끝없이 합리화하고 도망칠 구멍을 찾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마귀의 힘이라며 비난했고, 부활을 목격한 로마 병사들조차 돈과 압력 앞에서 침묵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증거는 언제나 자유롭게 해석 가능한 방식으로 주어집니다.
그분은 마음의 방향이 드러날 수 있도록,
사랑과 신뢰가 억지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흘러나오게 하시기 위해
결코 우리를 강제하지 않으십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더 강하게, 더 명백하게, 더 논리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시는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억지로 믿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진짜 믿음은 외적 강제에서 오지 않습니다. 진짜 사랑은 결코 강요되지 않습니다. 믿음은 사랑과 마찬가지로, 자유 안에서만 태어날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의 ‘감추심’은 사랑의 한 방식이다

프랑스 철학자 파스칼은 이 긴장감 있는 진리를 다음과 같이 요약합니다:

“하나님은 선택된 자들에게는 비치기에 충분한 빛을 주시고,
버림받은 자들에게는 보이지 않기에 충분한 어둠을 허락하신다.”


즉, 하나님은 보기를 원하는 자에게는 분명히 보이시고,
보기를 거부하는 자에게는 침묵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절묘한 중간지점,
빛과 어둠, 계시와 감추심 사이에서,
하나님은 억지로 믿게 하시지 않으시며,
사랑받기를 기다리시는 아버지로서 겸손히 계십니다.

그래서 믿는 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그것은 단지 ‘증거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랑이란 언제나 자유로운 결단 안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증명에 의해 억지로 끌려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감춰진 사랑에 자유롭게, 기꺼이, 응답하려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고요한 모험입니다.


4. 믿음의 정점에 십자가가 있다

십자가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모호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분명한 하나님의 자기 계시입니다.
그 모습은 너무 약해 보여서 쉽게 믿을 수 없게 만들지만,
동시에 너무 사랑스러워서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을 품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단순히 종교적 상징이 아니라,
사랑이 자기 자신을 어디까지 낮출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정점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오직 사랑하는 자만 볼 수 있는 계시이며,
믿고자 하는 자만 깨달을 수 있는 진실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러나 너를 억지로 무릎 꿇게 하지는 않겠다.
나는 너의 죄를 대신 짊어졌지만, 너는 여전히 나를 거부할 자유가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믿음이 어려운 이유를 발견합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지만, 그 전능함으로 우리를 압도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우리 앞에 가장 무력한 모습으로 다가오십니다.
왜냐하면 압도는 복종을 만들 수는 있어도, 사랑을 낳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믿게 하시기 위해 천둥이 아닌 십자가를 택하셨습니다.
천둥은 두려움을 줄 수는 있지만, 십자가만이 사랑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5. 자기제한적 사랑, 그 황홀한 침묵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은, 그 고통의 절정에서 침묵하십니다.
그 침묵은 비겁함이 아니라,
끝까지 자신을 제한하시며 우리의 자유를 보존하시려는 사랑의 방식입니다.

하나님은 원하신다면,
모든 시대, 모든 세상, 모든 사람 앞에서 자신의 존재를 강력하게 증명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신다면,
그 증거 앞에서 우리는 사랑해서가 아니라, 압도당해 굴복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자신을 감추십니다.
우리를 강제하지 않기 위해,
믿음을 억지로 만들어버릴 만큼의 강력한 증거를 남용하지 않기 위해,
오직 진짜 사랑이 응답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십자가 위에서 가장 낮은 자로 드러내신 것입니다.

십자가는 바로 그 하나님의 고의적인 자기제한의 절정입니다.
그 안에는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세상이 얼마나 무너져 있는지,
그리고 인간의 자유가 어디까지 거부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진리의 나무가 서 있습니다.


6. 믿음의 길은 어둠 속을 걷는 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모든 것이 설명되고 확증된 뒤에 내리는 지적 결론’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믿음은 오히려,
깊은 어둠 속에서 나지막히 들려오는 사랑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납득된 다음에 예수님을 따르지 않습니다.
그분의 사랑을 본 다음, 그 사랑 앞에 마음을 열고 나서야,
비로소 그분이 누구이신지를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가장 선명하게 자신을 드러내신 자리이며,
동시에 가장 철저히 자신을 감추신 자리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하나님의 무한한 겸손, 그리고 자기제한적 사랑의 결정체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랑을 볼 수 있는 사람은,
그 겸손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러나 권력과 기적, 정복과 응징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그분은 단지 너무도 약하고 비효율적인 실패자처럼 보일 뿐입니다.


7. 부활은 계시의 역전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존재와 사랑이 완전히 감추어진 자리였습니다.
하나님은 그곳에서 침묵하셨고, 무력하게 보이셨으며,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자리에, 가장 깊은 사랑의 자기비움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어둠 한복판에서, 부활은 시작되었습니다.
부활은 단순한 반전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시는 방식의 완전한 혁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계시는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열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부활은 로마 황제의 궁전이나 예루살렘 성전의 정문에서 공개적으로 선포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사랑하는 자들,
예수님을 그리워하고, 기다리고, 눈물 흘리던 이들에게만 조용히 드러났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에게 — 그녀가 울고 있을 때, 부드럽게 그녀의 이름을 부르시며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 — 말씀을 풀어주시고, 떡을 떼실 때

*도마에게 — 의심을 품은 그에게 손과 옆구리를 내보이시며

*베드로에게 — 호숫가에서 불을 피워놓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실 때


이처럼 부활은 단순한 이성적 증거가 아니라, 사랑하는 관계 안에서만 인식되는 사건이었습니다.
그것은 믿고 싶은 자,
사랑할 준비가 된 자에게만 하나님의 얼굴로 다가왔습니다.
부활은 논증이 아니라, 초대였습니다.


8. 성령은 사랑을 믿게 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단지 부활 사건만으로 계시를 완성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부활 후에도 지속적으로 우리와 함께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믿는 이들의 마음에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직접 보았지만 끝내 이해하지 못했던 제자들,
그 부활을 눈앞에서 보았음에도 여전히 두려움과 혼란에 휩싸였던 이들에게,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을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고,
그 약속은 오순절에 실제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성령은 여전히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내면에서 조용히 이렇게 속삭이십니다:

“내가 너를 위해 죽었고, 지금도 너를 사랑한다.
네가 나를 받아들인다면, 나는 너 안에 살겠다.”


이제 믿음은 더 이상 외부의 기적이나 현상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성령의 사역은 외적인 강제나 감각적 충격이 아니라,
우리의 내면을 감동시키는 사랑의 인격적 증언입니다.

성령은
– 우리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시고,
–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감동시키시며,
– 성경을 단순한 문자가 아닌 살아있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조명하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 안에 머물게 하십니다(롬 8:16).

믿음은 이제 단순히 “하나님이 존재하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이 아니라,
“나는 그분의 사랑에 응답하겠는가?”라는 결단의 문제로 변합니다.
이것이 성령께서 오늘도 우리 마음 안에서 일으키시는 믿음의 방식입니다.


9. 사랑이 없으면 하나님은 끝까지 감추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전능함으로 우리를 억지로 믿게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스스로를 낮추셨고,
부활을 통해 조용히 계시하셨으며,
성령을 통해 오늘도 은밀히 임재하십니다.

그러나 여전히, 믿고자 하는 사람만이 그분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지 않는 자,
즉 하나님을 ‘이용하고자 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끝까지 감추어진 채 남으십니다.
하나님은 단지 지적인 탐색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인격으로 응답받기를 원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한다.” (히 11:6)


하나님은 찾는 자에게 반드시 나타나십니다.
그러나 억지로 믿으려 하지 않는 자에게는, 끝까지 보이지 않으십니다.
믿음은 결국 사랑하려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결론: 믿음이 어려운 이유는, 그것이 사랑의 모험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믿음을 어렵게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사랑이 쉬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을 뿐입니다.

믿음은
– 사랑의 눈을 가진 자만이 볼 수 있는 비밀이며,
– 십자가는 사랑의 언어를 아는 자만이 들을 수 있는 고백이고,
– 성령은 사랑에 응답하려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하나님의 숨결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단순한 설명이나 논증이 아닙니다.
믿음은 자기 자신을 거는 결단입니다.
사랑 앞에서 무릎 꿇는 영혼의 고백입니다.

믿음을 갖기 어려운 이 시대,
하나님은 여전히 십자가의 어리석음,
부활의 조용한 기쁨,
성령의 나지막한 속삭임을 통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너는 나를 사랑하겠느냐?”


그리고 바로 그 사랑에 응답하는 그 순간,
그 자리가 믿음의 문이 열리는 자리입니다.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가장 조용하게, 그러나 가장 확실하게 임재하십니다.
  • ?
    벚꽃향기 2025.08.08 04:33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아니함 같은 자여,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 5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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