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꽃이나 나무 등 자연을 매우 좋아한다. 성경과 하나님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건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두 번째로는 이 자연에서 느끼는 순수함과 선함을 이 세상의 사람들에게서 찾으려고 했었던 갈망은 나로 하여금 성경을 이해하고 싶게 만들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였다. 그것보다 소중한 가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갈망이 크면 클수록 실망도 컸다. 내 자신이나 이 세상 사람들에게서 받은 상처들로 인해....그래도 이것을 얻고 싶은 바램은 언제나 내 마음 속 깊숙히 자리잡고 있어서 아무리 힘들어도 그것을 완전히 포기가 되지 않았다. 자연은 언제나 이러한 나의 마음에 위로와 평안을 주었다. 하지만 이러한 마음을 나눌 사람들이 주변에 없다는 것은 나의 크나큰 슬픔이었다.
우물가의 여인도 이러한 바램이 있었기에 남편을 여럿 두었었지만 만족스럽지 못했을 것이다. 그 때에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그분을 통해 자신이 진정 바라던 것이 무엇이며 그것을 그분께서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에 그녀는 기쁨에 넘쳐서 마을로 내려가 사람들에게 이를 알렸다.
처음부터 속이는자 마귀는 우리가 진정 얻기를 바라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게 하려고 우리가 육신의 생각이나 관념에 머물러 있게 하려고 끊임없이 유혹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의 어떠함과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함을 알게 된다면 그는 자신을 떠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온 세상을 죄에 빠지게 한 장본인인 사탄의 유혹을 따라 생겨난 마귀에게 속한 온갖 사상이나 문화 등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심을 깨닫지 못하게 한다. 반면 거짓이 없으시고 선하신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들을 볼 때에 그것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신성과 하나님의 성품을 알 수 있다. 비록 이 세상은 죄로 인해 저주를 받아 인간을 괴롭히는 많은 요소들이 곳곳에 숨어있지만 여전히 이 세상의 만물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솜씨를 드러내고 있다. 아무리 작은 생물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허투로 지으신 것이 없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셨다.(마6:30) 아주 작은 생물들에서부터 인간의 능력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우주 세계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지으신 것들을 통하여 그분의 능력과 선하심을 보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이렇게도 많은 증거들이 있음에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싫어하고 부정한다. 그 이유는 죄로 인해 사람들이 하나님을 거부하고 싫어하는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이다. 이 본성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성령을 거스리고 거부한다. 그 대신 자신의 육신의 생각에서 이르러오는 욕망을 따르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에 놓인 것이 바로 죄의 종노릇을 하고 있는 상태이다. 사람들을 이 죄의 종노릇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고자 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계획이자 목적이다. 이 종노릇에서 벗어나는 일이 곧 진정한 영혼의 자유함을 얻는 일이다. 이 일은 이 세상의 그 어느 신이나 이론 또는 유명한 철학자라도 이룰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이 종노릇에서 벗어난다는 곧 하나님의 품성 곧 하나님의 사랑의 품성을 그가 갖게 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품성을 가진 존재가 되는 일이 곧 거듭남이다. 죗된 본성을 가지고 난 자가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처럼 그를 믿는 자들이 당신의 아들과 똑같은 품성을 갖은 자로 나게 해 주심으로써 그는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신 것이다. 이러한 일이 있어야만 그는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고 의를 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죗된 본성으로 인한 더러운 옷을 벗기시고 그 대신 깨끗하고 흰 의의 옷을 입혀주시기를 바라신다. 이 일을 얼마나 바라셨으면 당신의 독생자라도 아끼지 아니하셨을까!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는 그분의 이와같은 행동을 보고 알 수 있으며 당신의 독생자되신 예수님 역시도 하나님과 동일한 사랑을 소유하셨기에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흠 없고 거짓 없는 사랑을 인간의 모습을 하시고 보여주셨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선포하셨다. 육신의 생각을 따라 사는 일은 곧 죽음의 길이요, 말씀과 그리스도를 통해 깨달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음으로 그는 죗된 본성을 따라 사는 일을 포기하게 되고 성령을 따라 살 수 있게 된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처음엔 이 일이 잘 안될 수도 있다. 그래서 고민하고 고뇌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는 언젠가 다 성장한 건장한 청년과도 같이 튼튼한 영혼을 갖게 될 것이다. 튼튼한 영혼이 되었다는 것은 그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을 만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알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같이 되기 까지 얼마나 많은 고뇌의 고민에 빠지게 될런지....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알게 되는 일보다 더 가치있는 일은 이 세상에 없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이것에 대해 알게 될 때에 맞추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퍼즐을 마침내 모두 맞추게 된 것처럼 성경 말씀이 이와같이 이해되기 시작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 인간은 누구나 잃어버린 것 즉 의에 대한 간절한 소망이 있다. 그것은 완전함에 대한 갈망이라 할 수 있고 불완전한 자신이나 온갖 위험 요소들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이러한 상태에서 벗어나고자 가장 많이 추구하는 일은 돈과 명예를 쫒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완전한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영적인 일은 영적으로 해결되는 것이지 육적인 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이 더 중요한 일인지를 성경을 통해 가르쳐주셨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셨다. (마6:33) 내가 생각하건대 나는 안식일을 제대로 지키지도 못하면서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선택한 일로 인해 금전적으로 궁핍한 생활을 오래 했었기에 이 말씀이 그리 와닿지 않았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안에서 살고 싶었고 하나님께서 옳으심도 알고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당장 먹고 살기 힘들고 내일이 어떻게 될런지도 모르는데 이런 말씀이 내게 무슨 소용인가 싶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음에도 내 마음은 허전하기 이를 데가 없었고 그 영적 허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나름의 노력은 헛수고에 불과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 말씀의 의미를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성경이 가르치시고자 하신 핵심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후에야 영혼의 자유함을 얻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해 주셔서 얻게 해 주시려는 것은 죄의 멍에에서 벗어나 영혼의 자유함을 얻게 해 주시려는 것이다. 이것을 깨닫게 될 때에야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다. 그토록 자신을 얽어 매려던 죄의 유혹에서 해방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적 싸움이 그것을 깨달은 순간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일은 우리의 육체의 생명이 끊어질 때까지 계속될 것이며 나로 하여금 그러한 경험을 하게 하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끝까지 고수해야 하는 것이다. 그 믿음을 고수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지식을 잊어버리지 말아야한다. 그 분의 사랑을 잊어버리는 순간 우리는 다시 죄의 본성의 이끌림을 당하게 될 것이다. 끊임없이 기도하고 말씀을 봄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함을 깨달아 알게 됨으로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거하므로 내 영혼을 마귀의 유혹으로부터 지켜야 한다.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거할 때 그는 죄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을 행할 수 있는 자가 되는 것이다.
요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요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15: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요일4장 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