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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말씀만 하셔도 병이 낫고 바람도 잠잠해지고, 죽은 자가 살아나기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우리에게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도 할 것이요, 이보다 더 큰 일도 하리라’고 약속하셨지요.
그렇다면 왜 지금 우리는 그렇게 믿어도, 그분이 하셨던 만큼의, 혹은 그 이상의 하나님의 능력을 쉽게 보지 못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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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예수처럼 기적을 행하지 못하는가 


1. 예수의 삶은 쇼가 아니었다 ― “하늘 구멍이 뚫린 시간”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보여주신 사역들―죽은 자를 살리고, 눈먼 자를 보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고, 폭풍을 잠재운 그 모든 기적들은 단순히 신적 능력을 과시하는 쇼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힘의 발휘가 아니라, 하늘이 실제로 뚫리고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실재하게 된 순간들이었습니다.

예수의 오심은 단지 고통을 덜어주는 기적의 마법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사탄의 권세 아래 신음하는 이 세상을 해방하고, 깨어진 창조를 회복하기 위한 십자가의 여정의 일부였습니다.
그분의 기적은 사랑의 절정인 십자가가 미리 도달한 순간들이며, 장차 완전히 임할 하나님의 나라의 샘플이자 전조였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놀랍게도 “너희가 나보다 더 큰 일도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그 약속과 너무도 거리가 멉니다. 왜입니까?
단순히 우리의 믿음이 부족해서일까요? 성령이 부족해서일까요? 죄 때문일까요?

그 질문은 단순한 개인의 문제로 축소되기엔 너무 복합적이고 무거운 주제입니다.
왜냐하면 예수조차도 자신의 고향에서는 많은 기적을 행하지 못하셨기 때문입니다.
복음서는 그 이유가 “그들의 믿지 않음 때문이었다”(막 6:5–6)고 말합니다.

이는 예수의 능력에 한계가 있었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이 스스로 정하신 사랑의 질서, 곧 자유의 법칙을 침해하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사랑은 강제로 흐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를 “목수의 아들”로만 여겼고, 그 친숙함 속에서 하늘의 임재를 거절했습니다.
반대로 마르다와 마리아는 절망 속에서도 “주께서 원하시면”이라는 신뢰를 품었고, 그 믿음의 공간에서 나사로가 살아났습니다.
기적은 ‘하나님이 문을 여는 사건’이 아니라, 인간이 마음의 문을 열 때 일어나는 응답의 사건이었습니다.

예수의 전능은 결코 강제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폭력을 꺾어 복종시키는 힘이 아니라, 자발적 사랑을 기다리는 인내의 힘으로 일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예수의 사역은 강제가 아닌 초대였고, 기적은 통제가 아닌 응답이었습니다.
그분의 능력은 ‘힘의 과시’가 아니라, ‘사랑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공간’에서만 드러나는 하늘의 질서였습니다.


2. 기도응답의 지연 ― '믿음 부족'도, '하나님의 뜻'도 아닌 제3의 영역

예수의 사역이 강제가 아닌 초대였다면, 이제 우리는 또 다른 질문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 초대에 응답하려는 우리의 기도는 왜 종종 응답되지 않는가?"

믿음으로 구했는데도 현실은 변하지 않고,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 우리는 혼란에 빠집니다.

많은 이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네 믿음이 부족한 거야.”
“하나님의 타이밍이 아직 아니야.”
“하나님이 더 좋은 계획을 가지고 계셔.”

이 말들은 때로 부분적인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모든 설명을 넘어서는 ‘제3의 영역’을 드러냅니다.
그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차원의 영적 전쟁입니다.

다니엘서 10장을 보십시오.
다니엘이 금식하며 간절히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그의 부르짖음을 즉시 들으셨습니다.
그러나 응답은 무려 21일이나 지체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뜻이 늦었기 때문이 아니었고, 다니엘의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그의 기도에 대한 응답을 전하러 오던 천사가 “바사 왕국의 군주”라는 영적 세력에게 저지당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미가엘 천사의 개입으로서야 응답이 전달되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하늘은 지금도 전쟁터입니다.
빛과 어둠, 진리와 거짓, 사랑과 자기중심성이 보이지 않는 차원에서 치열하게 부딪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 믿음, 사랑, 용서, 선택은 이 거대한 전쟁에 실제적인 파문을 일으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예수처럼 기적을 체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지 우리의 불충분함이나 하나님의 의도 때문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 배후에는 종종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또 하나의 전선이 있습니다 ― 하늘에서는 치열한 저항이 일어나고 있지만, 우리는 그 현실을 보지 못한 채 조용히 지나치기 때문입니다.

3. 기적은 하늘의 구멍이다 ― 구름을 뚫는 영적 압력

앞서 살펴본 대로, 우리의 기도가 지연되는 이유는 하나님의 무관심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전쟁 때문입니다.
이제 그 전쟁이 실제로 어떻게 현실에 나타나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늘은 마치 죄와 불신, 탐욕과 교만이 만들어낸 두꺼운 구름층처럼 이 세상을 덮고 있습니다.
그 구름은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이 세상에 흘러드는 것을 막으려는 영적 저항의 장벽입니다.

그러나 그 장벽은 완전히 닫혀 있지 않습니다.
때때로 기도와 눈물, 회개와 사랑, 공동체의 헌신과 진리의 고백이 그 구름을 찢습니다.
그리고 그 찢긴 틈으로 하나님의 빛, 곧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그것이 바로 부흥의 순간이며, 회심과 치유와 기적이 일어나는 때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시던 시기는, 하늘이 대대적으로 열려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분 자신이 하늘과 땅을 잇는 다리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부활 이후, 우리는 믿음과 불신이 교차하는 중간지대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이 세상은 완전히 열리지도, 완전히 닫히지도 않은 영적 격전지입니다.

그렇기에 기적은 언제나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빛이 어둠을 뚫고 들어오는 간헐적인 돌파입니다.

결국 이 하늘의 구멍은 우리의 의지나 열정이 아니라,
십자가를 향한 전인적 신뢰에 의해 열립니다.

십자가는 단 한 번의 희생으로 끝난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하늘을 여는 열쇠이며, 하나님의 사랑이 세상으로 스며드는 통로입니다.


4. 십자가의 승리는 끝난 전쟁이자, 여전히 지속되는 전쟁이다

그렇다면 또 한 가지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이미 모든 어둠을 이기셨다면,
왜 우리는 여전히 저항과 실패, 침묵과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까요?

그 이유는 단순하면서도 깊습니다.
십자가는 전쟁의 결정적 승리를 이미 선언했지만,
그 승리의 열매는 역사 속에서 점진적으로 확장되어야 하는 지속적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다 이루었다”고 외치신 그 순간,
어둠의 권세는 본질적으로 붕괴했습니다.

그러나 그 무너진 세력은 여전히 습관처럼, 관성처럼, 미련처럼 이 세상을 뒤덮고 있습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고난과 지연은 패배한 어둠의 마지막 발악일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기도와 사랑, 용서와 선포는
단순한 종교적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십자가의 승리를 오늘의 현실 속에 적용하고 확장하는 전투 행위입니다.

우리는 이미 승리한 전쟁 속에 있지만,
그 승리를 현실 속에 실현하기 위해 여전히 싸우는 군사로 부름받았습니다.

이제 그 싸움의 중심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혼자 두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지금도 성령으로 우리 안에서 싸우고 계십니다.


5. 성령은 오늘도 싸우고 계신다 ― 그러나 강제하지 않으신다

지금도 하나님은 더 이상 육신의 예수님을 통해서가 아니라, 보혜사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를 통해 일하고 계십니다.
성령은 단지 우리를 위로하는 영이 아니라, 예수의 생애와 능력을 우리의 현실 속에 
재현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사역은 언제나 사랑의 방식으로, 관계를 통해, 인격적으로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주목할 것은, 성령 역시 결코 강제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마음을 폭력적으로 밀고 들어오지 않으시고,
자발적으로 열리는 마음에만 조용히 임하십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깊은 상처와 분노 속에 있을 때,
성령은 “용서하라”는 내적 속삭임으로 다가오십니다.
그러나 그 마음이 닫혀 있다면,
그분은 억지로 입을 열게 하거나 행동하게 하지 않으십니다.
사랑은 결코 폭력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그렇게
자유를 존중하시는 하나님,
강제보다 기다림을 택하시는 하나님,
관계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으로 싸우십니다.

그래서 성령의 역사는 기술이나 공식이 아니라 관계의 열매입니다.
믿음은 주문이 아니라,
하나님께 자신을 내어맡기는 신뢰의 응답입니다.
기도는 신을 움직이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아버지와 자녀가 나누는 사랑의 대화입니다.

그리고 기적은,
그 사랑의 친밀함이 깊어질 때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은혜의 부산물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약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과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이 단순하지만 
결정적인 진실이, 오늘 우리 모두를 다시 성령의 내면적 연결로 초대합니다.
성령은 지금도 우리 마음의 문 앞에 서서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요한계시록 3:20)

그리고 그 문이 열릴 때,
성령은 그 자리를 천국으로 바꾸십니다.
그 자리에서,
예수께서 약속하신 바로 그 '더 큰 일'이 시작됩니다.



6. 기적보다 더 위대한 일 ― 십자가를 짊어지는 삶

이제 우리는 예수의 말씀 속에 담긴 놀라운 반전을 다시 보게 됩니다.
“너희는 나보다 더 큰 일도 하리라.”

많은 이들이 이 말씀을
더 화려한 기적, 더 강력한 부흥의 약속으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복음이 말하는 “더 큰 일”은 그 차원을 훨씬 뛰어넘습니다.

예수께서 이루신 가장 큰 일은
병 고침이나 자연을 다스린 기적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고 원수를 사랑하신 일이었습니다.

그분은 자기 생명을 내어줌으로 악을 꺾고,
증오 대신 사랑으로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따라서 “더 큰 일”이란,
우리가 그분의 사랑을 일상 속에서 살아내는 것입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십자가를 짊어지고,
복수 대신 용서를, 미움 대신 축복을 선택하는 삶.

그것이야말로 세상의 논리를 거스르는 가장 큰 기적입니다.

이 땅에서 가장 위대한 일은 초자연적 능력이 아니라,
자기본능을 넘어 타인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성령의 사랑입니다.

바로 그것이 십자가의 영광이며,
지금도 하늘을 다시 여는 참된 능력입니다.


7. 기적을 행하지 못해도 낙심하지 말라 ― 복음은 지금도 살아 있다

이제 우리는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왜 우리는 예수처럼 기적을 행하지 못하는가?”

이제 그 질문은 단순한 의문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을 기적을 추구하는 자리에서 십자가를 신뢰하는 자리로 이끄는 거룩한 초대가 됩니다.

기적이 없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날마다 짊어지는 십자가 안에
이미 하늘의 문을 여는 능력이 담겨 있습니다.

당신의 눈물 섞인 기도,
불완전한 믿음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신뢰,
말없이 감당하는 고난 속의 순종은
하늘에 작은 구멍을 내는 거룩한 행위들입니다.

그 구멍을 통해 하늘의 빛이, 복음의 능력이,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내립니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는 하늘에서
우리가 뚫어냈던 수많은 구멍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 틈을 통해 수많은 영혼이 구원을 받고,
치유와 회복을 경험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십자가를 붙들며,
성령과 함께 사랑으로 싸우는 전사로 살아갈 뿐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당신은 지금도 하늘의 빛을 통과시키는 작은 구멍 하나를 열고 있는 존재입니다.
그 구멍 하나로 한 영혼이 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당신의 삶이 품고 있는, 눈부신 영적 진실입니다.
  • ?
    벚꽃향기 2025.10.23 21:09
    “내 이름으로 불리는 내 백성이, 자신들의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서 스스로를 낮추고 진심으로 나에게 기도하며
    내 얼굴을 구한다면, 나는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를 듣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며 그들이 사는 땅을 다시 회복시켜 주겠다.”
    (역대하 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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