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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을 정면으로 반박한 화잇 - 인 치심이 먼저인가, 성화기 먼저인가?

조사심판 논쟁은 한낱 신학적 논쟁을 위한 논쟁일 뿐일까?, 아니다!.

화잇의 조사심판은 바울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조사심판은 재림교인들을 멸망의 길로 인도하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재림교인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

필자는 화잇이 바울이 가르친 것과 정반대로 가르쳤음을 분명히 밝히고자 한다.

그러므로 조사심판에 대한 논쟁은 멸망의 길을 가고 있는 재림교인에게 구원의 길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기회이다.

 

바울은, 십자가의 피로 죄인의 구원을 최종적으로 확정하시고 보장하셨다는 복음을

죄인들로 하여금 듣고, 믿게 하여 주시는 성령을 믿음으로 받아드리면,

성령은 구원의 확신”, 곧 믿음을 가지게 하시고 인 쳐주신다.” 고 가르쳤다.

성화가 시작되기도 전에 먼저 인을 쳐주시는 것이다.

 

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 치심을 받았으니

 

3:12 그 안에서 우리가 그 분을 믿음으로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느니라.

 

그러므로 죄인이 하나님이 주신 성령으로 십자가의 피로 구원을 주셨음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인 치심을 받고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이라고 바울은 가르쳤다.

그러므로 인 치심은 죽었던 죄인을 살리셨고,(2:1,2,5:24) 

사단의 소유였던 죄인을 하나님의 소유로 사셨고,

사단의 자녀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셨고

불완전한 죄인을 완전케 하셨다(10:14)는 것을 뜻한다.

 

그 이유는 이 인 치심을 먼저 주셔야만, 그 인 쳐주신 성령의 역사로, 믿음으로 성화가 시작되어

흠이 없어지도록(1:4) 하여 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울과 온 성경의 가르치는 은혜로 구원받는 그리스도의 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 치심은 죄인에게 인 받을 자격이 없어도 

십자가 보혈의 은혜로 주신 구원을 믿음으로 받아드게 하시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구원의 길이다.

이 길만이 죄인이 성화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러므로 구원(인치심)은 하나님이 죄인의 성화라는 당신의 목표를 달성하시기 위한 

첫 선물이요 출발점이라는 가르침이 바울의 가르침이다.

 

이제 화잇의 가르침을 보자. 바울과는 정반대이다. 먼저 성화부터 되어야 인 치신다고 가르쳤다.

 

우리의 품성에 하나의 점이나 흠이라도 있는 동안에는 우리들 중 아무도 하나님의 인을 받지 못할 것이다. (교회권면 334)

 

예수께서 성소를 떠나실 때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로울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의 모든 죄가 도말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초기 48)

 

화잇의 조사심판은, 먼저 성화가 이루어져서 품성에 흠이 없게 되었다는 판결을 받아야만

마침내 인 치심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고 가르쳤다.

구원 받지도 않은 죽은 자인 죄인이 성화되어야 인 치셔서살리실 것이라는 말이다,

죽은 자가 하나님이 주신 생명도 없이 스스로 살아나서 성장할 수 있다는 말과 다름없다.

이런 조사심판의 길은 사단이 만든 이 세상 종교가 가르치는 행함으로 말미암는 의의 길, 멸망의 길이다.

먼저 살려서 인 치시고성화시키신다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길, 바울이 가르친 이 길만이 영생의 길이다.

 

사도 바울 : “인 치심”(구원)이 먼저이다, 성화는 나중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인 치신다는 말은 죄인의 구원을 최종적으로 확정하시고,

또 그들을 자기의 소유가 되었음을 성령으로 최종확인하시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성령을 주심으로 우리가 그분의 자녀가 되었음을 믿게 하시는 구원의 확신을 주시고 보장하신다는 뜻이다.

이렇게 죄인의 구원이 확정되었음을 인치셨다라는 표현보다 더 확실하게 표현할 수는 없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의 보혈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받아드린 성도들(우리들)에게 너희는 인 치심을 받았다”(과거시제)

다음과 같이 분명히 선언하고 있다.

 

1:13 그 분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분 안에서 또한 믿었으니

너희는 약속의 성령으로 인침을 받은 것이니라.

 

십자가에서 구원이 완성되었다고 믿는 자에게 구원이 확정되었음을 위의 말씀보다 더 명확하게 표현할 수가 없다. 다음 말씀을 보자.

 

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성령)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 치심을 받았느니라.

 

고후1:21 이제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확정하시고 우리에게 기름 부으신 그 분은 하나님이시니(KJV)

 

고후1:22 그 분은 또한 우리를 인치시고, 우리 마음속에 성령의 보증을 주셨느니라.(KJV)

 

하나님이 인 치실 때에 성령을 주신다. 이 성령이 성도들의 마음속에서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죄인들은 나는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라고 믿는 구원의 확신, 곧 믿음을 가지게 된다

리고 성령께서는 날이 갈수록 이 믿음을 더 굳게 하시어 성화를 시작하신다.

그 결과 성도들의 품성을 변하기 시작하실 것이라고 바울은 가르친다.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보혜사 성령)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바울은 하나님께서 먼저 인을 쳐주시고(구원) 성령을 주셔야 성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인 치심이 없으면 성화도 없다는 뜻이다. 바로 이것이 믿음으로 말미는 의”, 곧 성경의 가르침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먼저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고 가르친다.

이것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핵심이다. 다음의 바울의 말씀을 보자.

 

[3:26]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2:8]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화잇의 조사심판 : 성화가 먼저이고 인 치심”(구원)은 나중이다.

조사심판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그러나 화잇의 가르침은 바울의 가르침과는 정 반대였다.

먼저 성화가 있어야만 나중에(조사심판이 끝날 때에

마침내 구원이 결정되고 인치심이 있을 것이다, 라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다음의 화잇의 글을 보자.

 

하나님께서는 품성을 조사하시며, 도덕적 가치를 달아보시며, 개인에 대해 판결을 선포하시는 일을 하고 계신다.(목사와 복음교역자 448)

 

이와 같이 품성을 검사하는 일, 곧 누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준비가 되었는지 결정하는 것이 곧 조사 심판이요,

하늘 성소에서 하는 마지막 사업이다.(쟁투 428)

 

위의 화잇의 글에서는 품성의 조사가 끝나 품성의 완전함이 증명되기 전에는 구원을 얻은 사람은 존재할 수 없다,

 

우리의 품성에 하나의 점이나 흠이라도 있는 동안에는 우리들 중 아무도 하나님의 인을 받지 못할 것이다.

인을 받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흠이 없는, 하늘의 후보자들이어야 한다.(교회권면 334)

 

다음의 글에는 품성을 고치고 정결케 하는 일이 성령을 받기 전에 우리에게 맡겨져 있다”(left with us)는 화잇의 생각이 나타나 있다.

결국 인간의 노력으로 성화를 이룬 후에 하나님이 성령을 주신다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우리의 품성에 있는 결함들을 고치고 심령의 전에서 모든 불결을 정결케 하는 일이 우리에게 맡겨져 있다.

(It is left with us to remedy the defects in our characters) 그것들이 고쳐지고 정결케 될 때,

오순절 날 제자들에게 이른 비가 내렸던 것처럼 늦은 비가 우리에게 내릴 것이다(교회권면 334)

 

그리고, 화잇은 조사심판이 끝나고 나서야 하나님의 인을 받는다고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예수께서는 지금 지성소에서 우리의 희생과 기도와 잘못과 죄에 대한 고백을 받고 계신다.

그분은 성소를 나오시기 전에 모든 이스라엘의 죄를 도말하시고 용서하실 것이다. 예수께서 성소를 떠나실 때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로울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의 모든 죄가 도말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초기 48)

 

그러므로 화잇의 조사심판은, 하나님의 인을 받지 않고도,

다시 말해서 십자가의 피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구원의 확신”(믿음)구원의 기쁨을 주시는 성령을 받지 않았을지라도

인간이 성화될 수 있다고 가르친 것이다. 결국 화잇은 성령이 없어도 성화될 수 있다고 가르쳤던 것이다.

이런 오류로 말미암아. 화잇은 인간이 성령의 도움이 없이 성화를 먼저 이루어야만

마침내 하나님의 인(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화잇의 이 오류는 너무나도 반 성경적이며,

바울이 가르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정면으로 반박한 전형적인 행함으로 말미암는 의의 가르침이었던 것이다.

 

조사심판은 구원을 받을 수 없게 만드는 가르침이다.

바울의 가르침으로는, 어린 양의 피를 믿음으로 받아드린 우리는 이미 인 치심을 받은 자들이지만,

화잇의 가르침으로는, 조사심판이 끝나 완전한 품성을 가졌다는 판결이 나기 전까지는 인 치심을 받은 자는 아무도 없다.

이 때문에 십자가를 믿는 우리는 단순히 인 치심을 받을 수 있는 후보자들에 불과하다는 가르침이다. 여기에 심각한 모순이 있다.

나는 이미 인 치심을 받은 자가 아니라, 장래에 인 치심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후보자들이라는 조사심판의 가르침으로는

성령이 주시는 구원의 확신(믿음)을 받을 수 없다.

구원의 확신을 주시는 분은 성령이기 때문에 구원의 확신이 없는 것은 성령을 거부한 것이다.

그런데 성령이 성화시켜주시는 분이시다. 이 때문에 이 성령이 없이는 성화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내가 하늘의 후보자라고 가르치는 조사심판은 구원의 확신을 주시는 성령을 거부하게 하고

그 결과 성화를 불가능하게 한다. 그러므로 완전한 성화로 완전한 품성을 요구하는 조사심판을 통과하지 못하게 한다.

결국 조사심판은, 성령을 거부하게 하여 성화도 불가능하게 해놓고, 또 구원도 불가능하게 해놓고서는

성화되어 구원을 받아보라고 가르치는 참으로 자가당착에 빠진 가르침이다


구원의 확신과 구원의 기쁨을 빼앗는 조사심판

다윗이 범죄 하기 전에는 성령 충만으로  “구원의 확신”뿐만 아니라 “구원의 기쁨”을 누렸다.

그러나 사단의 유혹에 빠져 범죄 한 후에는 이 구원의 확신과 기쁨을 사단에게 빼앗겨버렸다.

이처럼 십자가의 피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드리어 인치심을 거부하게 하여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조사심판은

재림교인들로부터 구원의 확신을 빼앗아 가버리고 구원의 기쁨을 결코 맛보지 못하게 하고 있는 현실이다.

 

시51:12 주의 “구원의 기쁨”(Joy of Salvation)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주의 자원하는 영으로 나를 붙드소서.

 

바울이 가르치는 대로, 인 치심을 받았다고 성령의 역사로 믿으면 “구원의 기쁨”이 넘치게 되고

마침내 순종과 헌신을 "자원하는 영"을 주시고 그 결과 성화가 일어난다는 다윗의 말씀이다.

 

또 어린 양의 피를 믿음으로 받아드림으로 말미암아, 성령이 인을 쳐주시어 의롭게 하시고

구원하여 주셨음을 믿을 수 있는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되면,

현실적인 모든 어려움을 충분히 극복하게 하는 “구원의 기쁨”이 넘치게 되는 것이라고 하박국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합3:17,18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전히 주 안에서 기뻐할 것이요, 나는 내 구원의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리라.

 

느헤미야는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느8:10)라고 기록함으로써

구원의 기쁨을 주시는 성령이 사단의 시험을 이기는 힘을 주심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품성이 완전해져야만 인을 쳐주실지 여부의 판결을 기다리며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조사심판의 가르침으로는 구원의 확신은 물론, 이런 구원의 기쁨이란 이해할 수조차도 없다.

오직 십자가의 피로 인 치심을 받았다는 바울의 가르침만이 우리가 기뻐해야 할 이유를 제공하고 있다.

바울은 고후1:24에서,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고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 구원의 기쁨의 중요성을 일곱 번 씩이나 반복하여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고후13:11]~형제들아 기뻐하라. [빌2:18]~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빌3:1]~주 안에서 기뻐하라

[빌4:4]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살전5:16] 항상 기뻐하라. [살전5:19] (기쁨이 없이) 성령을 소멸치 말며

 

성령을 소멸하는 기쁨이 없는 신앙생활

이런 성령이 주신 “구원의 확신”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기쁨”이 없는 신안생활로는

성령은 점점 소멸되고 성령이 없는 성화란 전혀 불가능하게 된다.

그 뿐만 아니라 사단의 극심한 시험을 극복할 수 있는 “영적인 힘”도 가질 수 없다.

그 결과, “너는 품성이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구원을 받을 수 없다.

더 이상 노력해봐야 가망이 없다, 포기하라”는 사단의 속임수에 속아 넘어지고 말 것이다.

그 결과 사도 바울이 가르친 십자가에서 이미 주신 구원(인 치심)을 

스스로 거부해버리게 하여 멸망시키는 슬픈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단이 우리를 범죄 하게 한 후에 이런 동일한 속임수를 써서 우리를 넘어지게 하려고 할지라도

“그래!, 나는 부족하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십자가의 보혈로 나의 구원하셨고 이미 나를 인 쳐주셨다!”고 외치며

그 사단의 속임수를 거부하고 다시 일어날 수 있게 하는 믿음(“구원의 확신”)과 함께 “기쁨”을 가질 수 있기 위해서는

십자가의 피로 우리를 인 쳐주셨다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받아드려야 한다. 

하나님의 구원을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이기 때문이다.

 

느8:10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그러나 십자가의 보혈을 믿음으로 받아드린 자들에게 하나님이 인을 쳐주셨다는 

바울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화잇의 조사심판을 옹호하는 재림교인들은 이 놀라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가르치는 십자가의 복음을 

스스로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구원의 확신과 기쁨을 거부하며 성령의 역사로 주어지는 이런 놀라운 확신과 기쁨이 결여된, 

신앙생활을 계속하며, 성령을 근심하게 하며(엡4:30), 성령을 소멸(살전 5:19)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조사심판을 옹호하는 재림교인들은 “구원의 확신”(믿음)과 “구원의 기쁨”도 없이

그들 자신의 노력으로 품성을 성화시키려고 애를 쓰며 살고 있다.

그리고 1844년부터 진행되고 있다(?)는 조사심판을 받아 그들의 품성이 완벽함이 드러나면

마침내 하나님께서 인을 쳐 주시기를 바라며 가는 길, 

곧 구원이 불가능한 멸망의 길을 선택하여 가고 있는 것이다,

이 귀한 사도 바울의 “십자가의 피로 우리를 인치셨다”는 가르침을

사단은 조사심판으로 왜곡하여 “행함으로 말미암는 의”로 변질시켜 놓고 있는 것이다.

 

재림교회가 시와 때에 관심을 가지게 된 원인

이런 상황 때문에 재림교인들은 더 심각한 영적부작용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것은 성령이 주시는 “구원의 확신”(믿음)과 “구원의 기쁨”이 넘치는 신앙생활을 맛보지 못하게 되었다. 

그 결과 신앙생활에 의미와 활력이 없어져버리면서 지루함을 느끼게 되어버렸다.

따라서 그들을 가장 강력하게 자극하는 것이 바로 위기감과 긴장감이 되어버렸다.

이런 위기감을 가장 효과적으로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재림이나 일요일 휴업령 시기이다.

그리하여 확신도 기쁨도 없는 그들의 신앙생활에 시와 때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어 

결국 복음보다도 예언이 그들의 신앙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들은 이 시기를 확실히 알아야만 마침내 그동안 게을리 하던 품성의 개선에 총력을 기우려(올인) 

구원을 받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마음속에 작정을 하면서, 

일요일 휴업령이 아직도 멀었으니 아직은 올인 할 때가 아니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영적기회주의 자로서의 삶을 선택하여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구원의 기쁨도 없이 살아가는 신앙생활은 결국 영적위선만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런 구원의 기쁨과 믿음(구원의 확신)을 빼앗아버리는 조사심판의 길은,

악한 마음으로 가는 길이며, 하나님에게서 떨어지게 하는 길이며,

결국 죄의 속임 수에 빠져 완악하여져서 멸망의 길을 스스로 선택하여 가는 길이라고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히3:12 형제들아, 너희 중에 아무도 믿음 없는 악한 마음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라.

(이미 인 치심을 받아 하나님께 붙어 있는 상태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히3:13 오직 오늘이라고 부르는 동안 매일 서로 권면하여 너희 중 아무도 죄의 속임수에 빠져

(아직도 인 치심을 받지 않았다는 속임수) 완악하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하라.

 

그러므로, 우리들은 성화되어야만 구원을 주실 것이라는 사단의 “행함으로 말미암는 의”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말고, “처음부터 가졌던 확신”을 굳게 잡아야 한다.

그리고 바울의 가르침대로 십자가의 피의 복음을 듣고 

믿음(엡1:13)으로 하나님이 먼저 성령으로 인을 쳐주셨음을 믿는 “구원의 확신”(믿음)을

끝까지 붙들고, 그 “믿음을 지켜” 승리하여야 한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히3:14 이는 우리가 “처음의 확신을 끝까지 확고하게 붙들면 그리스도께 참여한 자가 되기 때문이라.

(For we have become partakers of Christ if we hold the beginning of our confidence steadfast to the end,)

 

딤후4:7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화잇에게 일어난 충격적인 변화

그러나, 마침내 화잇에게 충격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조사심판으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정면으로 반박하던 그가 바울의 가르침을 받아드린 것이다. 

성령의 역사였다. “행함으로 말미암는 의”의 가르침을 180도로 수정하여

마침내 바울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복음을 받아드렸다. 

화잇이 왜거너를 통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받아드린 1888년 이후에 저술한

시대의 소망에는, 이런 조사심판의 오류를 마침내 벗어나서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통하여 (조사심판과는 상관없이)

믿음으로 이미 “하나님과 연결되었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다”고 기록함으로

사도 바울의 가르침대로 십자가의 피를 믿음으로 받아드려 “인 치심을 받았다”는 가르침을 받아드렸다.

그 증거가 다음의 글에 분명히 나타나 있다.

 

그 때에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연합되고(되었고) 하늘 가족의 일원이 됨(되었음)을 기뻐하라.(소망 493)

 

그대가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있)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되어 있으)며 온 하늘 가족과 하나가 됨(되어 있음)을 기뻐하라..(소망 493)

 

Then rejoice that through Christ you have become connected with God, members of the heavenly family.

~ Rejoice that you are one with God, one with Christ, and with the whole family of heaven. {DA 493.3}

 

그리고 먼저 성령이 구원의 기쁨을 주시고 우리는 그 기쁨을 누림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성령과 함께 성화케 하신다고 다음과 같이 수정하여 기록하였다.

 

사도 바울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고 권고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대의 성품이 어떻든지 간에 온화하고 그리스도와 같은 성품으로 형성시킬 수 있다.(부모 교사 학생 233)May 17, 1908.

 

하나님께 향한 모든 의인들의 요구는 성령의 성화케 하시는 능력을 통하여 이루어질 것이다.(원고 11, 1910년).

 

그리고 화잇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야말로 “참된 셋째 천사의 기별”이라고 말하며

1888년 이전까지 셋째 천사의 기별이라고 가르쳤던 조사심판은 더 이상 참된 셋째 천사의 기별이 아니라는 뜻을 확실히 천명하였다.

 

참된 셋째 천사의 기별, 여러 사람들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이 셋째 천사의 기별인지 질문하는 편지를 나에게 보냈다.

나는 “그 기별이야말로 참된 셋째 천사의 기별이다”고 대답하였다.(RH 1890년 4월 1)(복음전도 190)

 

그 당시 교단 중진 지도자들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화잇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받아드렸다. 

이 때, 그의 나이가 61세였다.

참으로 오랫동안 재림교회는 십자가의 그리스도의 능력 보다는 인간 자신의 능력에 더 큰 기대를 걸고,

인 치심을 받기 전에 성화될 수 있다고 가르쳐 왔다. 화잇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너무도 오랜 세월 동안 교회는 인간에게 어떤 기대를 걸어 왔으며

영원한 소망의 중심이 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대신에

인간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여 왔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에게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그대로의 진리,

곧 분명하고 뚜렷한 내용으로 셋째 천사의 기별을 전하는 증거를 주셨다.TM 91-93 (1896)

 

결국 교단은 그를 왜거너와 분리시키어 호주로 보내어버린 것이다. 

진리를 발견하면 자신의 명예, 지위, 체면 같은 것에는

더 이상의 욕심을 버리고 자신의 오류를 정직하고 과감하게 인정하는 

참 하나님의 종의 모습을 화잇을 통하여 볼 수 있다.

 

현재 재림교단의 문제점

사실 재림교인들은 바울이 가르친 대로 성령이 없이는 성화될 수 없다는 신학적 지식은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이 주시는 구원의 확신(믿음)과 기쁨이 없이 성화를 이룰 수 있고 

품성이 완전해야만 인을 쳐주신다고 가르치는

화잇의 오류도 동시에 받아드리고 있다.

성령께서 사도 바울에게 주신 가르침과는 “정반대”로 화잇이 가르쳤을지라도 그가 “선지자이기 때문”에

조사심판 역시 성령이 주신 진리라는 주장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 샘에서 단물과 쓴물을 낼 수는 없음(약3:11)과 같이,

한 성령으로부터 정반대의 가르침이 나올 수가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성령이 사도 바울에게 주신 것이 진리이고 화잇은 오류를 범했다는 판단을 내리는 것이 옳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림교단은 화잇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은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완전히 받아드리지 않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런 비합리적 재림교단의 현 상황은 사실상 바울에게 진리를 주신 성령을 거역하며 소멸하고 있는 상황이다.

바로 이것이 재림교단에 성령의 역사가 없고 교인들이 뜨겁지도 차지도 않게 되어 있는 근본적 원인이다.

재림교단이 이런 심각한 상황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오류는 보지 못하고,

영혼불멸설, 장로교의 예정설, 천주교의 교황무오설 등을 비판하고 있으면서도,

화잇이 성령의 역사로 발견하고 수정한 조사심판의 구원관의 오류를 아직도 교인들이 보지 못한다면

자기 눈의 대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상대방 눈의 티만 보는 장님이다,

또 이런 지도자를 따르는 것은 장님이 장님을 따르는 것과 다름이 없는 상황이다.

유대교도, 초대교회도 모두 타락하였다. 그 타락한 교회(음녀)로부터 

마틴 루터라는 남은 자가 나와 개신교회(여자)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이 여자(교회)도 모두 타락하여 라오디게아 교회가 되어버렸다.

이제 이 타락한 모든 개신교회(여자)로부터 

그 여자의 남은 자들이 각 교단에 사단이 심어둔 각종 거짓 가르침을 거부하고 나와야 할 때가 왔다.

재림교단에 사단이 뿌려둔 거짓 가르침은 화잇이 오류로 가르쳤던 조사심판이다.

(알곡과 가라지, 양과 염소, 지혜로운 다섯 처녀와 미련한 다섯 처녀를 

재림 전까지 구분하는 과정을 거부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필자는 이 과정을 따로 설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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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노래 2017.09.28 00:52
    감사합니다. 오늘 심판에 관한 예레미야서를 읽은데다 삶의 무게에 눌려 살아갈 힘을 잃은 것 같았는데, 그래서 이곳을 찾았는데, '구원의 기쁨'을 회복하고 갑니다. 언젠가 박사님의 동영상 강의를 통해서 들었던 내용이 되살아났고, '이제 타락한 모든 개신교회로부터 그 여자의 남은 자들이 각 교단에 사단이 심어 둔 각종 거짓 가르침을 거부하고 나와야 할 때가 왔다'는 말씀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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