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가장 불행했지만 가장 운좋은 사람은 아마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구원함을 받은 한 강도가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형편이 어떠함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 편은 그리스도를 봄으로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와 그 반대로 한 편은 예수님의 희생을 보고도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조롱하는 자들을 대변하는 일인 것이다.
(편의상 오른편 강도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자라고 하고 왼편 강도는 그 반대라고 하겠다.)
오른편 강도는 죽기 직전에 믿었기에 믿어서 구원을 받았으므로 성화될 시간도 없었으니 성화하지 않아도 구원이 있다고 생각하는 신자들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특수한 경우를 두고 이것을 성경이 가르치는 구원에 대하여 일반화 하려는 것은 구원에 관해 자기 편리한대로 결론을 지으려는 얇팍한 수에 지나지 않는다. 만일 이 오른편 강도가 죽기 직전 사면을 받아 이 세상에서 자연적으로 사망하기 까지 살 수 있게 되었는데 그가 또 이전처럼 강도짓을 계속하다가 그가 자연사를 하게 되었을 때에 그는 영생의 부활에 참여할 수 있었을까? 나는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수님께서 이르시기를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9:23)"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인가? 자기 자신의 본성으로 사는 일은 곧 사탄과 동일한 일을 하는 것으로 그 일을 멈추게 하기 위한 방법은 나의 죗된 본성을 죽이는 일 외엔 없다. 대신 믿음으로 받아들인 그리스도의 영이 내 속에서 계속 머물러 있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에야 그는 하나님의 의를 행할 수 있게 된다. 계속해서 그러한 상태에 있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유지하는 길 뿐이며 사도 바울도 이것에 대해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고 말한 것이다.
어느 시대나 이러한 믿음을 가진 자들을 하나님께서 귀중히 여기시지만 마지막 때에 이러한 믿음을 가진 자들이 특별한 것은 이러한 믿음을 끝까지 유지한 자들 중 살아서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며 이들은 십사만 사천에 속한 자들로 이들은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을 때에 죄를 이기고 승리하심으로 온 천하를 꾄 마귀와 그에게 속한 악한 영들을 최종적으로 심판하시는 확실한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이 싸움은 사람에게 속한 싸움이 아니라 하늘에서 시작된 하나님께 속한 싸움으로 만일 나의 믿음을 나 자신이나 이 세상 어떤 사람 또는 이론 등등과 같이 하나님께 비롯된 진리에 속하지 않은 어떤 것에 두는 것은 마귀의 편에 서는 것이나 다름없기에 결국 마귀가 당할 최종적인 집행 심판에 참여할 수 밖에 없다. 반면 나의 믿음을 하나님께 둔다면 죄를 승리하는 경험을 하게 되고 그 경험이 계속해서 이어지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나의 믿음을 하나님께 두는 일 뿐이다. 즉 예수님을 통해 알게 된 하나님께 속한 선이 내 자신의 안밖에서 이르러오는 죄를 이길 수 있는 경험을 나의 삶 속에서 경험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수십년간 죄의 종노릇을 하며 살아왔기에 이 삶에서 단번에 벗아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태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도 오직 믿음 뿐이기에 이 믿음을 되찾거나 고수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늘 묵상하며 그분의 사랑을 잊어버리지 않고 더욱 더 알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죄를 이기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함을 더욱 더 알기 위해 또는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이 사랑은 이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 중 하나님의 사랑과 가장 가까운 사랑은 아마도 자녀에 대한 부모 특히 어머니의 사랑일 것이다. 어머니는 자녀를 자신의 목숨보다 더 사랑한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대개 조건이 없다. 그냥 사랑스럽기에 사랑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사랑도 자녀나 자신을 구원에 이르게 하지는 못한다. 왜나하면 죄의 값을 지불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죄의 값을 지불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그리스도 뿐이며 그리스도만이 그 값을 지불하실 수 있는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지만 죽기까지 마귀의 유혹에 굴복치 않고 죽으셨기 때문이다. 그리하심으로 하나님께서는 매우 잘 아시나 그의 피조물들은 증거할 수 없었던 마귀가 불의하다는 것을 명백히 밝힐 수 있는 증거를 마련하게 되신 것이다. 그래야 마귀를 멸해도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공평하심을 분명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확실한 증거가 없이 마귀를 멸하게 된다면 천사들을 비롯한 피조물들에게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은 영영 증거할 수 없게 된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편에 선 자들은 그 자신이 의롭게 될 뿐 아니라 그가 하나님의 옳으심을 증거하는 자들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마귀가 불의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아시나 마귀의 그럴듯한 거짓에 속아 넘어간 자들은 마귀가 불의하다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거짓되고 불의하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지 않음을 확실히 증거하시고 보여주셔야 했던 것이다.
창조주만이 받으실 수 있는 존경을 자신이 받기를 바라는 욕망을 품게 되므로 시작된 사탄의 매우 교활하고 그럴듯한 거짓으로 하늘 천사 삼분의 일을 자신의 거짓에 속아 넘어가게 하였으며 새로이 창조한 아담과 하와 역시도 그의 거짓에 넘어가 그들이 창조함을 받을 때 입혀 주셨던 하나님의 신성을 잃어버리게 하였다. 그들의 후손인 우리 역시도 하나님의 신성을 잃어버린 채로 태어나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것 즉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입혀주셨던 신성을 다시 복구해 주시기 위해서 당신의 독생자를 기꺼이 내어 주신 것이다. 이렇게 하시려고 하신 계획은 이 세상이 창조되기 전부터 있으셨고 그 계획 하에 이 세상이 창조되었고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마귀를 멸하시려면 피조물들이 아무도 이에 대해 반박할 수 없는 증거가 필요하였고 동시에 속아 넘어가서 죄를 범한 자들을 구원하시는 일이 동시에 필요하셨던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겠는가? 이 사실을 알고도 계속하여 전처럼 죄의 종노릇을 하며 살아가므로 마귀가 옳다고 하는 편으로 살아가야 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편에 서므로 예수님께서 죄를 이기시고 승리하셨던 것처럼 죄를 이기는 삶을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을 믿노라고 하는 자들은 이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지 그 중간은 없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의 편에 설 것인가 아니면 나 자신이나 이 세상의 어떤 거짓 가르침을 따름으로써 마귀의 편에 서서 살다가 죽을 것인가? 이 둘 중 하나에 속하게 되는 것이다. 최종적으로 마귀의 편에 서서 살다가 죽으면 마귀와 같은 운명을 당할 것이며 그 반대로 하나님의 편에 서서 살다가 죽으면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이다.
알곡이라 함은 영적으로 그리스도의 분량까지 성장한 사람으로 영적 성장은 그가 가진 믿음에 비례한다고 할 수 있다. 즉 그 어떤 유혹이나 상황에서도 그의 믿음이 결코 흔들리지 않게 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도 있을 것이며 믿음의 시련과 고난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고난이 자신의 죄로 인한 고난으로 인한 것일 수도 있고 믿음을 고수하려하다가 받게 되는 고난일 수도 있다. 그리고 내 자신이 당하는 고난이 어떤 고난인지는 자신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예를 들어 돈을 많이 벌려고 대출을 받았다가 사업이 망하는 바람에 당하는 고난은 자신의 욕심을 이루려다가 당한 고난이다. 그 외 이 세상을 살면서 겪게 되는 온갖 시련들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받는 시련이라기 보다는 나의 죄 혹은 다른 사람의 죄로 인한 시련이 더 많을 것이다. ) 나의 죄로 인한 고난이라고 한다면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는 계기로 삼으면 될 것이며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고수하다가 받게 된 고난이라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참으셨던 것을 생각하며 참아야 할 것이다.
지금은 그 무엇으로 보나 마지막 때임이 분명하다. 우리는 날마다 안밖에서 이르러오는 죄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하심을 그분의 창조물인 자연이나 말씀을 통하여 맛보아 알게 된다면 그분의 선함에 속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임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러한 자유를 맛보고 경험하게 되므로 하나님 안에 거한다면 그제야 죄를 이겨낼 수 있다는 것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시고 증거하셨고 그 분 뿐만 아니라 그를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같은 삶을 살아낸 자들은 하나님의 옳으심을 만천하에 증거하는 자들이 되므로 하나님께서 마귀를 심판하실 때 그리스도 외에 이들을 마귀를 멸할 증거로 삼으시는 것이다. 그리함으로 죄의 역사를 완전히 끝내시려고 하시는 것이다. 이후로 아무도 하나님에 대한 오해로 하나님을 불신하거나 하나님을 반역하는 피조물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므로 완전한 평화를 이루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이 세상을 통하여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증거는 이 세상에서 이룰 수 있지 하늘에서 이룰 수는 없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재림 이후에는 구원받는 성도들이 가는 천국에는 죄의 그늘이 전혀 없기 때문에 죄와 싸워서 이기는 경험을 할 수 없으니 그러한 증거를 남길 수가 없는 것이다. 그 확실한 증거를 이루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동일한 품성을 가진 자들이 이 땅에서 나타나야 하는 것이며 이들이 바로 십사만 사천인이다.
이러한 자들이라고 하나님께서 인정한 자들은 하나님의 인을 받게 될 것이며 이들이 구원받아서 하늘에 가게 되었을 때에 그곳에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기 후에 있을 악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 집행 심판 때에 영멸하는 심판을 받을 자들에 대한 심리를 맡게 될 것이다. 그들이 왜 첫째 부활 즉 예수님의 재림 시에 있는 영생의 부활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고 판단하는 일을 하게 될 것이다. 그 심판의 근거는 그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의 생애가 선하게 되었는지 그렇지 않은지가 판단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그들이 그러한 자격을 받게 되는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같이 선한 삶을 살아냄으로 그 자신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증거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삶을 살다가 죽었다가 예수님의 재림 시에 영생의 부활에 참여하게 되었거나 혹은 살아서 구원을 받음으로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구원받은 성도들 중에서 십사만 사천인은 마지막 때에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완전히 드러내어 몰아내려는 계획하에 시행되는 짐승의 표가 시행될 때에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은 자들이 곧 십사만 사천인에 속하는 것이다.
하지만 마귀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에 그 당시 사람들의 마음을 충동하여 예수님이 죄에 굴복하게 하기 위해 끝내 십자가에 달리게 하셨던 것처럼 마지막 때에도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고 따르는 자들을 이 세상에서 완전히 없애버리기 위해 이 세상에서 자신의 편인 다수의 사람들의 마음을 끝까지 충동질할 것이다. 이 선악의 싸움이 가장 치열하게 벌어지는 때는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울수록 치열하게 벌어질 것이며 우리는 그러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 마귀의 편에 서지 않으려면 무엇이 선인지 악인지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하지만 말씀을 통해 그것을 알게 되었다할지라도 나 자신에겐 선을 행할 능력이 없다. 즉 죄를 이길 능력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에 우리에게 항상 믿음이 필요한 것이다.
이 믿음이 참된 것이라면 선을 행할 수 있게 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계속해서 내 자신의 악한 상태에 머물러 있게 되어 첫째 부활인 영생의 부활에 참여하지 못하고 천년기 후에 있을 최종 심판을 받기 위한 악인들의 부활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이와 관련된 성경 말씀을 읽으면 성경 말씀에 대한 이해가 훨씬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