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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오늘 마지막으로 사형장에 올라올 사형수는 용필이었다. 그는 하마 같은 덩치에 고집은 황소라, 여간해선 남의 말을 듣지 않는 속수무책 유형이었다. 성격도 난폭해 같은 방에서 생활하는 수용자들이 혀를 내둘렀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날엔 식사를 하면서 자기의 대나무 젓가락을 슬슬 쓰다듬으며 말한다.

“꿈자리도 뒤숭숭하고 짜증이 슬슬 나는데 오늘 밤에 이 젓가락으로 아무 놈이나 눈알을 콱 파버릴까 부다. 그럼 재판 끝날 때까진 사형집행이 연기될 텐데!”

징그러운 웃음을 날리며 젓가락을 쓰윽 만지는 그의 느물대는 모습은 마귀와 다를 바 없었다. 직원들에겐 골칫덩이요 동료들에겐 애물단지라, 드러내놓고 말은 못 해도 다들 속으로 ‘귀신도 정신 나갔지, 저런 인간을 빨리 안 잡아가고 뭣하나’ 탄식할 정도였다.

나는 용필이와 자주 상담했다. 그는 세상을 그야말로 자기 멋대로 살아온 사람이라 정상적인 심성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진실성도 없고 오직 생을 포기한 사람 특유의 비뚤어진 오기가 전부였기에 대화를 나누기 어려웠다. 나는 여러 번 스스로 다짐했다.

‘꾸준히 애정을 가지고 만나야 한다. 주님은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지 않으셨던가.’

어느 날 나는 지금까지 해왔던 대화 분위기를 바꾸어 짐짓 장난스러운 말투로 그에게 접근했다.

"야, 용필아, 니는 예수님 안 믿으믄 두 번 죽는대이. 이게 무신 말인지 아나? 넥타이공장(재소자들이 사형장을 일컫는 은어)에서 한 번 매달려 죽는 거보다 지옥불에 떨어지는 게 더 고통스러운 기라.“

그가 피식 웃는다.

”히히, 계장님. 그런 소리 맙시다. 누가 죽어봤나요? 괜히 쓰잘데기 없는 공갈치지 마쇼. 그런 게 어디 있다고 그래요?“

”용필아, 나도 예전엔 니같이 무식한 소릴 해댔지만 진짜로 하나님이 살아계신 걸 내가 확인했대이. 그러니 니도 인제는 꼭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야 한다 말이다. 알겠나?“

”나까지 환자 만들려고 그래요? 그 따위 짓은 배부르고 속 편한 사람들이나 하는 거지 우리하곤 관계 없수다!“

그에겐 남의 속을 부글부글 끓이는 특이한 재주가 있었다. ’옛날 성질 같았으면 그냥 한주먹에 요절냈을 낀데‘하는 마음이 목구멍까지 치밀었지만, 그래도 참아야지.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니!

”용필아, 니 예수님만 믿으믄 내가 좋은 집사님 소개해 주께. 마음도 좋고 돈도 많은 분이야. 일주일에 한두 번씩 맛난 것 잔뜩 사서 면회도 오시고 니한테 도움도 많이 줄 끼다. 그러니 예수님만 믿겠다고 하믄 된다 말이다.“

이런 말 저런 말로 여러 번 달래다 보니 조금씩 녀석의 마음이 변하는 것 같았다. 어느 날 결국 그는 이렇게 말했다.

”계장님이 그토록 간곡히 말씀하시니 예수 믿는 거 한 번 고려해 보지요, 뭐.“

나를 꽤나 생각해주는 듯 잔뜩 생색을 냈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이라도 들은 게 너무 기뻐서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주님, 저 엉터리 같은 인간의 입에서 그나마 예수님을 믿어보겠다는 말이 나온 것만 해도 어딥니꺼. 꼭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시켜주이소.‘

그런데 이일 저일로 바빠서 그에게 다시 복음의 핵심을 제대로 알려줄 기회도 없이 용필이가 그만 오늘 사형장으로 불려 나오게 된 것이다. 나는 억장이 무너지는 듯해 하나님께 원망 어린 투정을 부렸다.

’주님, 너무 하심니더.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저 녀석을 이렇게 빨리 부르시면 우짭니꺼. 다만 몇 달이라도 시간을 주셨으면 최소한의 신앙이라도 준비시켰을 낀데예. 저대로 지옥불로 떨어지면 어떡합니꺼!‘

나는 그를 데려오려고 출발하는 신우회원들에게 거듭 당부했다.

”집사님들요, 알다시피 용필이는 믿음이 거의 없심더. 절대로 그냥 오지 말고 우짜든지 꼭 복음을 전해야 합니더. 복도 끝에 앉아서 사영리라도 읽어주면서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대이!“

집사님들은 그러겠노라고 입술을 굳게 깨물며 출발했다. 사형장 계단 입구를 서성이며 그들을 기다리는 동안 애절한 기도가 터져 나왔다.

’잃어버린 한 영혼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주님, 우리 용필이는 비록 아직 믿음의 뿌리는 없지만 그래도 자기 입으로 ”예수님을 믿어 볼랍니다“하고 약속했지 않심니꺼? 성경말씀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 하셨는데, 그럼 용필이도 그 말 한마디 고백한 것을 어여삐 보시고 꼴찌구원이라도 허락해주이소. 주님, 용필이를 꼭 살려주셔야 합니더!‘

숫제 생떼를 쓰며 기도하는데 어느새 용필이 일행이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그의 얼굴이 내 눈에 크게 들어왔다. 세상에! 앞서간 불신자들보다 더 기막힌 모습으로 나타난 용필이. 완전히 맥이 풀린 다리는 마치 인형 다리처럼 덜렁거렸다. 극심한 두려움에 자율신경도 기능을 잃은 듯 안면근육이 이상하게 뒤틀려 있고, 비틀린 입에선 침까지 줄줄 흘러내렸다.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힌 그의 눈동자를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는 순간, 그 눈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사탄의 그림자가 비치는 듯했다. 용필이의 동공은 이미 초점을 잃어 사물도 잘 구별하지 못했다. 바로 그의 앞에서 손을 잡고 큰 소리로 불러도 나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인정신문을 시작했으나 절차 진행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는 밧줄이 있는 곳을 향해 고개를 홱 돌리기도 하고, 일그러진 얼굴로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중얼대기도 했다. 한참 이 말 저 말 해대던 그가 무슨 말 끝에 ”하나님“이라는 소리를 불쑥 내뱉었다. 순간, 기대감으로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혹시라도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이 나올까 싶어 기다리는 애절한 내 마음을 그러나 비웃기라도 하듯, 그의 횡설수설은 더욱 도를 더해갔다.

전후사정을 살펴보던 교도소장은 더 이상의 절차가 무의미하다고 판단해서 집행명령을 내렸다. 담당직원들은 기다렸다는 듯 달려와 용필이의 양팔을 끼고 밧줄 밑으로 끌고 같다. 기나긴 사형집행의 심적 고통에서 빨리 해방되고 싶은 마음이었으리라. 아무리 법에 따른 절차라 해도 다른 사람의 목숨을 끊어야 하는 일에 어찌 괴로움이 없으랴.

끌려가는 용필이의 얼굴도 처참함으로 치달았다.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던 의식 속에서 ’이제 정말 죽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완전히 넋이 나간 것 같았다. 그 가련한 표정을 안타까이 바라보며 뒤를 따라가는 것 말고는 내가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밧줄 밑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벽력같은 말씀이 울렸다.

”그냥 보내면 안 된다! 절대로 그냥 보내지 마라!“

오래전 청송감호소에서 하나님을 만난 직후, 영호 앞에서 ”땅바닥에 꿇어앉아라“ 말씀하셨던 바로 그 음성이었다. 내 영이 즉각 화답했다.

’맞아, 절대 그냥 보낼 수 없어!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한데!‘

그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용필이를 향해 서너 걸음을 뛰었다. 거의 밧줄 아래까지 다다른 그를 가슴에 끌어안고는 옆에서 팔을 끼고 있는 직원들을 향해 외쳤다.

”이 팔 좀 놔보소! 이 팔 좀 놓으소!“

나는 그들을 용필이에게서 떼어놓고, 그를 품에 안은 채로 몸을 빙그르르 돌려 단상에 앉은 교도소장을 향했다. 서로 눈이 마주쳤다. 나는 애원하기 시작했다.

”소장님, 시간을 쪼금만 주이소. 잠시믄 됩니더. 이대론 그냥 보낼 수가 없심니더! 소장님! 쪼금만 시간을 주시이소, 예?“

이미 집행명령이 내려졌으니 번복은 거의 불가능함을 잘 알았지만 용필이의 영혼을 생각하면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한참 동안 나와 용필이를 번갈아 보던 소장이 마침내 허락했다. 지금까지 예수 믿는 사형수들의 아름다운 최후를 지켜보고 감동한 그의 마음이 열린 것이리라.

나는 밧줄 바로 밑에까지 갔던 용필이를 다시 앞자리로 데려와서 신우회원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용필이가 믿음이 없심니더. 그러나 우리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간절히 기도해보입시더.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때까지 힘껏 기도합시더.“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옆에서 그를 애타게 바라보고 있던 교도관 집사님들이 우르르 덤벼들었다. 어떤 이는 용필이의 팔을 잡고 늘어졌고, 또 다른 사람은 다리를, 또는 허리를 부여잡은 채 큰소리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기도라기보다 몸부림에 가까웠다. 너무나 기가 막힌 그의 모습에 우리 모두 억장이 무너지는 아픔을 느꼈던 것이다.

”엉엉, 용필아! 용필아!“
”하나님! 하나니이임!!“
”주여! 주여!!!“

십여 명의 신우회원들이 그를 둘러싸고 각양각색의 모양으로 울부짖는 모습은 처절했다. 짧은 시간에 목청껏 외치다 보니 몇몇은 잠겨버린 목으로 그저 꺼억꺼억 흐느끼기만 했다. 나도 용필이의 머리를 가슴에 바짝 끌어당겨 안고서 소리쳐 간구했다.

”오, 하나님! 이 영혼을 불쌍히 여겨주셔야 합니더! 이대로 그냥 보내믄 어떡하란 말입니꺼? 육신으론 실패한 인생이어도 영으로는 살아야 할 거 아입니꺼? 용필이를 구원해주시이소!“

울부짖으며 기도하던 내 마음에 오기가 솟구쳤다.

’그래, 좋다. 이제 용필이는 우리 꺼다. 하나님이 응답해주시기 전엔 죽어도 안 놔줄 끼다. 밤이 새 봐라 놔주는가. 억지로 끌고 가서 목매달아 죽이믄 우리 모두 같이 매달려 떨어지믄 될 거 아이가!‘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욕심일 뿐, 현실적으론 이제 곧 법에 따라 그를 죽음에 내주어야 하고 그는 가장 비참한 모습으로 이 땅을 떠나야 한다. 용필이의 구원을 향한 내 불타는 갈망과 냉혹한 현실의 커다란 틈을 메울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울 수밖에. 마냥 기도할 수밖에!

5분...
10분.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상당한 시간이 지났지만 ’그만하라‘는 소장의 제지도, 직원들의 독촉도 없었다. 모두 고압전기에 감전된 듯, 넋나간 용필이를 벌떼처럼 둘러싸고 울부짖는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다. 답답했다. 언제까지 이 상황이 계속될 것인가. 어떻게 이 기도를 마무리해야 하는가. 우리는 이미 기진맥진했다.

기적이 일어난 건 바로 그때였다. 죽은 해삼처럼 축 늘어져 있던 용필이가 몸을 꿈틀댔다. 기도하며 울부짖던 우리는 그의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멈칫했다. 그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반쯤 일어서더니 수갑 찬 두 손을 힘겹게 허공을 향해 치켜든 채 첫 마디를 외쳤다.

”주여!“

기절할 듯 놀라운 부르짖음이었다. 그의 영혼이 너무나 가엾어 몸부림치며 기도하긴 했지만 그가 이렇게 극적으로 주님을 부르리라곤 기대하지 못했다.

우리는 얼마나 믿음 없는 사람들인가!

”주여! 이 죄인을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여! 이 죄인을 용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용필이는 힘차게 몸을 일으키며 천둥처럼 외쳤다. 그의 두 눈에선 눈물이 폭포같이 쏟아졌다.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이 돌변한 상황 앞에서 얼핏 ’아, 드디어 용필이가 돌아버렸구나. 그렇게도 겁을 집어먹더니 결국은 정신이 나간게로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공포로 완전히 공황상태가 된 그가 열광적으로 기도하는 신우회원들의 소리에 도취해 자신도 모르게 광적으로 주님을 찾는 줄만 알았다. 용필이는 다시 외쳤다.

”주여! 이 죄인을 용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여! 이 죄인을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이제 감정이 조금 절제가 되는 듯 눈물을 닦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우리를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은 조금 전까지의 나약한 얼굴이 아니었다. 그보다 먼저 이 땅을 떠난 믿음의 형제자매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담대하고도 평화롭게 빛나는 얼굴이었다.

오 주님! 우리 평생 두 번 겪기 힘든 이 놀라운 구원의 기적을 이토록 생생히 보여주시다니요! 모두가 할 말을 잃어버렸다.

용필이는 다시 눈물을 쓰윽 닦더니 옆에 서 있던 신우회원의 손을 붙잡으며 인사했다.

”부장님,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의외의 모습에 얼떨떨함을 감추지 못하던 집사님이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그, 그래, 용필아, 잘 가!“
”주임님도 잘 계세요.“
”그래, 용필아...으흐흑!“

잠시 끊겼던 집사님의 울음이 다시 이어졌다.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과 담담히 하직인사를 나누는 이 사형수의 모습을 보고 지휘부에 앉은 이들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참 동안 여러 직원과 인사를 나누던 용필이의 시선이 교도소장에게 머물렀다.

”소장님, 정말 고맙습니다. 부디 만수무강하시고 승진도 하셔서 우리처럼 불쌍한 사람들을 많이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몸을 반쯤 의자에서 일으켜 인사를 받던 소장이 기어이 나지막하게 흐느끼며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다. 사형집행의 최고 지휘관을 오히려 진심으로 축복하는 사형수의 모습 앞에선 장승이라도 울지 않을 수 없으리라. 게다가 그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죽음의 공포에 짓눌려 비참하게 떨던 나약한 사형수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무엇이 저를 순식간에 저토록 다른 사람으로 바꿔놓았단 말인가?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다!

신앙 없는 그들이 이 신비로운 하나님의 역사를 다 깨닫진 못했을 터이나,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상을 초월하는 이 사건의 배후에 어떤 절대적인 힘이 작용한다는 것과, 그 힘의 근원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온 용필이가 내 손을 힘있게 잡고 인사했다. 그의 얼굴은 해처럼 환했다.

”용필아, 먼저 가거라. 우리도 머잖아 갈 거니까... 천국에서 다시 보자.“

”예, 계장님. 하늘나라에서 만납시다요. 신세 지고 갑니다.“

애틋하면서도 감격에 겨운 마음으로 용필이와 마지막 대화를 나누던 그때였다. 그의 손을 잡고 있던 내 손에 백만 볼트의 전류가 흐르는 듯한 충격이 전해졌다. 이게 뭐지? 너무 놀란 나는 용필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의 온몸이 엄청난 권능에 휩싸여 마구 떨리고 있었다. 아, 이것이 바로 말로만 듣던 ’성령의 불같은 임재‘로구나!

성령충만함으로 그의 몸은 건드리기만 해도 펑 터질 것 같았다. 허공을 향해 고개를 든 그의 두 눈에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또다시 흘러내렸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이 불쌍한 영혼에게 성령을 물 붓듯 부어주시니 어찌 울지 않고 배길 수 있으랴.

그가 참으로 부러웠다. 나도 아직 체험해보지 못한 그 황홀한 영적 희열을 온몸으로 누리던 그가 다시 두 손을 높이 들고 외치기 시작했다.

”주여! 이 죄인을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여! 이 죄인을 용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환희 가득한 표정과 우렁찬 목소리로 주님을 부르는 그는 더 이상 비참한 사형수가 아니었다. 그 가슴 벅찬 모습을 나는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목청을 높여 몇 번 더 주님을 부르던 용필이가 갑자기 찬송하기 시작했다.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 말 들으사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주여! 주여! 내 말 들으사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아는 용필이는 찬송은커녕 간단한 기도조차 못 하는 사람이었다. 이 놀라운 반전을 어찌 사람의 머리로 헤아릴 수 있을까! 두 번 세 번 반복해 부르는 그의 찬송은 이제 우리 모두의 마음을 모은 합창이 되어 사형장 안에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나는 지금도 몹시 궁금하다. 예수님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던 그가 어떻게 그 찬송가를 알았을까? 평소에 어디선가 어깨너머로 들어서 배웠을까? 아니면 사형집행 직전에 충만하게 임하신 성령께서 그의 전 존재를 지배하시는 순간 입에 넣어주신 걸까? 나중에 천국에서 용필이를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다.

나는 그와 나란히 서서 목이 터지라 찬송하며 다시 그의 얼굴을 쳐다보앗다. 이미 죽음을 초월한 구원의 감격이 그의 전신을 휘감고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인간으로서 마땅히 두려워 떨 수밖에 없는 사망의 공포가 위대하신 하나님의 평안에 완벽히 제압당한 모습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건 엄청난 특권이었다.

서너 번째 ’인애하신 구세주여‘를 부르던 그가 드디어 하늘에서 부어지는 충만한 기쁨을 이기지 못했던지 두 손을 공중에서 좌우로 흔들며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주여! 주여! 내 말 들으사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용필이가 찬송하며 그 곡조에 맞추어 너울너울 춤을 추었다. 사형장의 음산한 기운도 그의 환희를 막지 못했다. 드리운 밧줄의 위압도 위대한 성령충만의 춤사위 앞에선 힘을 잃어버렸다. 참으로 기묘하고도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빗줄기처럼 쏟아지는 눈물, 그러면서도 해같이 밝고 확신에 가득 찬 얼굴, 나 같은 죄인을 받아달라며 주를 부르는 힘찬 찬송, 그리고 나비의 날갯짓처럼 자유로운 그의 춤...

완전히 압도당한 채 그를 쳐다보고 있던 신우회원들이 무엇에 끌린 듯 하나 둘 용필이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눈물로 범벅이 된 우리는 어느덧 한 덩어리가 되어 사형장 밧줄 밑에서 두 손을 높이 쳐들고 목청껏 찬송을 부르며 사형수와 함께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이 광경을 보고 비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이 땅에서 천상의 세계를 목격하는 듯한 신비로운 기운에 휩싸였다. 평소 예수 믿는 사람들을 손가락질하며 노골적으로 전도를 방해하던 몇몇 교도관들이 여기저기서 무릎을 꿇고 앉아 서로 손을 맞잡은 채 눈물짓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집행시간이 됐다. 이제 용필이는 그 누구보다 당당했다. 오만이나 치기가 전혀 섞이지 않은, 영생의 기쁨을 맛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담대한 모습으로 그는 밧줄 밑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흰 두건이 덮이고 목에 밧줄이 걸리는 내내 흔들림 없는 소리로 찬송을 불렀다.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그의 마지막이 임박했음을 직감한 내가 외쳤다.

”용필아, 잘 가!“
”계장님, 이 은혜는 천국 가서도 잊지 않고 꼭 갚을게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덜커덩‘ 하며 널빤지가 지하실을 향해 뚝 떨어지고 그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일순간 사형장 안을 짓누르는 정적. 온 세상이 멈춘 듯했다. 적막한 사형장에 움직이는 것이라곤 삐거덕거리며 천천히 좌우로 흔들리는 긴 밧줄뿐.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구원하심이 모호한 이론이 아니라 생생한 현실로 증거되는 이 엄숙한 순간을 영원히 세상에 선포하듯, 밧줄은 괘종시계의 추처럼 완만히 흔들리고 있었다.

그가 부르던 찬송가의 여운도 끊겼다.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혀 기쁨으로 추던 춤도 끝났다. 짧은 인생 속에 곰팡이처럼 들러붙어 있던 추악한 죄악도, 사형수라는 저주스러운 이름도 사라졌다. 이제 용필이에겐 새로운 삶이 열렸다! 우리는 늘 영원히 살 천국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확신 없는 신앙의 길을 걷고 있지는 않은가. 용필이는 최후의 10분을 통해 믿음 없는 이 세대에게 하나님의 실재와 구원의 실상을 똑똑히 보여주었다.

살아계신 주님!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주님!
용필이마저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구원해주신 주님!

쏟아지는 눈물을 닦을 겨를도 없이 나는 사형장 바닥에 꿇어앉아 영광의 주님을 찬양하기 시작했다. 부족한 모습이지만 ’나는 하나님의 자녀요 구원의 백성‘이라는 사실이 너무도 감사했다. 그날 나는 사형장에서 또 한 번 태어났다.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져지는 세계만이 전부인 줄 알고 살던 미련한 내 영혼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난 이후, 천국의 문으로 바뀐 이 사형장에서 깊고 부유한 믿음의 세계를 온몸으로 체험하며 다시 한번 거듭나게 됐다.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베드로전서 1:9)

죽은 자를 살리시는 생명과 부활의 하나님!
영원히 홀로 찬송과 영광을 받으소서! 아멘.


<박효진, 하나님이 고치지 못할 사람은 없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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