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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재림교단 공식 입장: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신 말씀의 참뜻은 무엇인가?성경에는 “다 이루었다”(tetelestai, 요 19:30)와 이와 비슷한 표현인 “(다) 되었다” 또는 “(다) 이루었다”(gegonen 또는 gegonan, 계 16:17; 21:6)가 모두 3회 나온다. 첫 번째 경우(“다 이루었다”)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운명하시기 직전에 외치신 것이고, 두 번째 경우(“[다] 되었다”)는 일곱 번째 천사가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을 때 성전의 보좌로부터 나오는 큰 음성이 말씀하신 것이며, 세 번째 경우(“[다] 이루었다”)는 천지와 만물이 새롭게 된 후에 보좌에 앉으신 분께서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 마디의 말씀은 그것이 외쳐진 때와 경우에 따라서 각각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첫 번째로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말씀은 그분이 죄인들이 죽어야 할 죽음을 대신 감당하기 위해 인간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어야 했던 사명을 완수했다는 뜻이다.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외치신 “다 이루었다”라는 선언은 그분이 성육신(成肉身)하신 목적인 죄인을 위하여 죽는 일을 이제 이루었다는 것이지, 모든 사람들의 구원을 완성했으니 이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고, 신자나 불신자나 심지어는 마귀까지도 모두 구원을 받는다는 말은 아니다. 이 선언을 그렇게 해석하고 적용함으로써 이제는 사람들이 회개할 필요가 없고, 전도할 필요도 없으며, 그리스도의 중보(中保) 사역과 하늘 성소 봉사도 불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성경의 많은 부분을 부정하는 것이다.두 번째로 일곱 재앙 끝에 선포된 “(다) 되었다”(계 16:17)는 일곱 번에 걸친 재앙과 “아마겟돈”(계 16:16) 전쟁이 끝났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이 일곱 재앙과 “아마겟돈” 전쟁은 세상 역사의 마지막 사건들 중에서 대단히 중요한 것들인데,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계획대로 다 성취되었음을 선포한다.세 번째로 인간의 구원 역사가 모두 마쳐지고 신천신지가 펼쳐질 때, 다시 한 번 “(다) 이루었도다”(계 21:6)라고 보좌에 앉으신 분께서 외치신다. 이 선언은 태초에 천지 창조가 끝났을 때 그 위대한 역사(役事)가 완성되었음을 선언한 창세기 2:1(“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의 메아리이다. 첫 번 창조에서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라고 한 선언은 두 번째 창조, 즉 재창조에서는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 다 이루었다.”(계 21:5, 6)라는 선언으로 반향(反響)되고 있다.이와 같이 “다 이루었다” 또는 “(다) 되었다”라는 선언에는 각기 다른 시간에 서로 다른 것을 완성했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 위의 “다 이루었다”라는 선언에 모든 인류와 마귀의 구원까지 다 포함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그 선언의 취지와 목적을 크게 왜곡하고,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구원의 원칙을 심각하게 손상시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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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복음 앞에서, 다시 시작하기 위하여


존경하는 한국 재림교회 지도자 여러분께,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며 백성들을 진리로 이끌기 위해 헌신하고 계신 여러분의 수고와 열정에 먼저 깊은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진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종말의 때를 분별하며 성도들을 하나님의 뜻 안에서 바르게 인도하고자 노력해오신 여러분의 사역은 결코 가볍게 여겨질 수 없는 귀한 헌신의 열매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귀 교단이 공식적으로 가르치고 계신 한 핵심적인 성경 해석, 곧 요한복음 19장 30절의 “다 이루었다”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선언에 대한 해석에 관하여, 복음의 중심성과 완결성에 비추어 심각한 신학적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문제는 단지 신학 해석의 견해 차이를 넘어서, 복음 자체의 본질과 구조에 직결되는 사안입니다.



(1. 선언의 중심성) “다 이루었다”는 구속의 선언이지, 미완의 절차가 아니다


“다 이루었다”는 말씀은 단순한 ‘죽음 직전의 고백’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기희생적 사랑이 인간의 시간과 역사를 꿰뚫으며 실체로 선언된, 복음의 궁극적 중심이며 하나님의 계시의 절정입니다. 이 선언의 의미가 축소되거나 변형될 때, 복음은 선언이 아닌 조건으로 환원되고, 회개는 사랑에 대한 반응이 아닌 구속을 얻기 위한 수단이 되며, 십자가는 구속의 실체가 아니라 미완의 제도 속에 갇힌 의식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2. 비평 1) 복음을 ‘조건 성취의 시작점’으로 환원한 해석


귀 교단은 이 선언을, 예수께서 죄인을 대신해 죽는 사명을 완수하셨다는 뜻으로 해석하며, 이는 곧 모든 인류의 구원이 완성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이 해석은 표면적으로는 겸손하고 신중한 태도로 보일 수 있으나, 실상은 복음의 중심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무서운 전제를 담고 있습니다. 곧, 십자가를 단지 ‘죽음의 마무리’ 또는 ‘구속 조건의 충족’으로만 해석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실현된 구속의 실체를 ‘향후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비로소 이루어질 것’처럼 유예시키는 구조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10장 14절은 단호하게 선언합니다: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이 말씀은 단지 구속의 가능성이 열렸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단번의 죽음을 통해, 구속의 실체가 완전하고도 영원하게 성취되었음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3. 비평 2) 구속을 ‘진행형 조건’으로 이해하는 오류


귀 교단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다는 말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회개와 전도, 중보사역은 여전히 필요하다”고 주장하십니다. 그러나 이 논리는 복음을 “이미 이루어진 선언”이 아닌 “진행 중인 조건적 과정”으로 전락시키는 구조적 오류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은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셨고, 그 말씀은 곧 현실이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9장에서 예수께서는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셨고, 그 선언은 곧 구속의 실현이 되었습니다.


복음은 선언이 현실을 이끄는 계시 구조이지, 현실이 조건을 충족한 뒤 선언이 발효되는 구조가 아닙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합니다. 이미 새로운 창조가 선언을 통해 발생한 것입니다.



(4. 비평 3) 하늘 성소 봉사의 오해: 연장이 아닌 성취


귀 교단은 십자가 이후에도 예수께서 하늘 성소에서의 봉사를 계속 수행하셔야 하며, 이것이 구원의 적용 과정으로서 필요하다고 가르치고 계십니다. 이 구조는 다음의 세 전제를 포함합니다:


1. 십자가는 구속의 조건을 마련한 출발점일 뿐이다.


2. 하늘 성소에서의 중보가 그 구속을 실제로 적용하는 핵심 과정이다.


3. 그러므로 구속은 아직 미완의 과정 속에 있다.



그러나 이 구조는 히브리서의 핵심 진술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 12절은 선언합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예수의 십자가는 반복적 속죄가 아닙니다. 그것은 단번에 이루어진, 구속의 완전한 성취입니다. 십자가는 성소 봉사의 조건이 아니라, 성소의 실체요 완성입니다.



(5. 비평 4) 복음을 ‘시간표 구조’로 나눈 해석의 위험성


귀 교단은 요한복음 19:30과 요한계시록 16:17, 21:6의 선언들을 각각 다른 시점의 독립된 선언으로 구분함으로써, 구속의 완성을 시간의 단계로 나누는 해석을 제시하십니다. 물론 선언의 시점과 문맥이 각각 다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선언은 하나의 복음적 본질, 곧 죽임당한 어린양의 사랑이 완성된 사건으로부터 파생된 동일한 계시적 파동입니다.


계 16:17의 “다 되었다”는 재앙의 완결을, 계 21:6의 “다 이루었다”는 새 창조의 완성을 말하나, 모두 십자가에서 선포된 “다 이루었다”의 심장박동이 확장된 결과입니다. 그 선언들이 시간적 단계로 단절되어 이해될 때, 복음은 단순한 종말 시간표의 구성 요소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러나 복음은 시간의 순서를 따라 흐르는 구조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터져 나온 충격 그 자체입니다.



(6. 비평 5) 회개와 전도를 ‘구속 보완 수단’으로 오해한 구조


이와 같은 구속의 본질을 오해한 구조 안에서, 회개와 전도 역시 본래의 복음적 위치를 상실하게 됩니다. 귀 교단은 “다 이루었다”를 완전한 구속으로 해석하면 회개와 전도의 필요성이 사라질 것을 우려합니다. 그러나 이는 복음의 구조를 오해한 반응입니다.


복음은 선언이 선행하고, 회개는 그 선언에 대한 감동의 반응으로 따릅니다. 로마서 5장 8절은 말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구속은 이미 확정된 사랑의 사건입니다. 회개는 그것을 보고 무너지는 눈물의 반응이지, 조건을 채우는 영적 공로가 아닙니다. 전도 역시 미완의 구속을 보완하기 위한 사명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복음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증언하는 감격의 외침입니다.



(7. 신학적 정리) 선언이 현실을 이끈다 – 복음의 계시 구조


귀 교단이 주장하는 “현실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에, 선언도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논리는 계시의 본질 구조를 거꾸로 이해한 것입니다. 성경은 반복해서 하나님의 말씀, 곧 선언이 현실을 창조한다고 말합니다.


*창세기 1장: “빛이 있으라” → 곧 빛이 있더라


*요한복음 19장: “다 이루었다” → 곧 구속이 이루어지니라


*로마서 8장 30절: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 아직 부활하지 않았지만 완료형으로 선언



복음은 선언이 현실보다 앞서고, 선언이 현실을 이끈다는 계시적 구조 안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복음은 끝없이 미루어지는 조건의 이야기로 전락하고 맙니다. 선언이 구속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시간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이며 실체입니다.



(8. 결론) 복음은 완성되었다 – 선언 위에 신앙을 세우라


결론적으로, 계시록 21장 6절의 “다 이루었다”는 선언 역시 요한복음 19장 30절에서 이미 울려 퍼진 복음의 메아리입니다. 요한복음의 “다 이루었다”는 십자가에서 완성된 사랑의 절정이었고, 계시록 21장의 “다 이루었다”는 그 사랑이 온 피조계를 새롭게 덮는 완성의 선언입니다. 이 두 선언은 시간적 단절이 아니라, 한 복음의 파동이며, 그 중심에는 오직 하나, 죽임당한 어린양의 십자가만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셨을 때, 우리의 신앙은 어디에 뿌리를 두어야 하는가?


복음은 하나님의 완전한 자기비움이며, 이미 다 이루어진 사랑의 선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건이 아니라 선언 위에 신앙을 세워야 합니다.


순종은 조건이 아니라 사랑의 열매입니다.


회개는 구원의 자격이 아니라 구속된 심장의 떨림입니다.


복음은 구조가 아니라 실체이며, 제도가 아니라 사랑입니다.



최종 권면: 다시 선언으로, 다시 십자가로


그러므로 저는 재림교단에 진심으로 권면드립니다.

이제 다시 복음의 중심으로, 다시 십자가로, 다시 선언으로 돌아가십시오.

그곳에서 우리는 시간과 구조가 아니라, 이미 모든 것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심장박동을 듣게 될 것입니다.


“다 이루었다.”


그 한 마디가 모든 교리를 압도하고, 모든 제도를 넘어서며, 모든 존재를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궁극 선언임을 잊지 않으시기를, 진심으로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 ?
    벚꽃향기 2025.06.01 05:10
    아직 안 이루어졌다면
    왜 그분은 죽으시며 “다 이루었다”고 하셨을까요?
    하나님은 선언으로 현실을 만드십니다.
    우리는 그 안에 거하면 됩니다.
  • ?
    벚꽃향기 2025.06.01 05:11
    “다 이루었다”를 믿지 못하면,
    우리는 결국 ‘내가 이루어야 한다’는 종교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그곳엔 자유가 없습니다.
  • ?
    벚꽃향기 2025.06.01 05:12
    율법을 지키는 자가 남은 무리가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드러난 사랑을 붙드는 자가
    참으로 남은 자입니다.
  • ?
    벚꽃향기 2025.06.01 05:13
    복음은 가능성이 아니라 실체입니다.
    ‘다 이루었다’는 사랑의 선언이
    아직도 “기다려야 할 사건”으로 남아 있다면,
    우리는 아직 복음을 못 들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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