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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오해하면, 죄의 용서와 도말, 조사심판, 그리고 구속의 전체 계획에 대한 바른 이해가 왜곡될 수 있습니다. 성경과 성소 제도는 개인의 구원이 십자가에서 시작되어 완성된다고 일관되게 증언합니다. 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믿음으로 즉시 의롭다 하심을 받고 영생을 얻으며(요 5:24), 이는 번제단에서의 용서와 동일한 구조입니다. 그러나 구속사 전체에서는 십자가가 시작점이며, 부활하신 예수께서 대제사장으로 하늘 성소에서 수행하시는 최종 심판과 죄의 도말 사역이 구속의 클라이맥스를 이룹니다.

조사심판은 구원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심판이 아니라, 사단을 정죄하고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내는 최후의 우주적 심판입니다. 이로써 죄 자체가 도말되고, 사단이 멸망당하며, 하나님의 구속 경륜이 완성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개인의 구원과 구속의 계획을 혼동하지 말고, 십자가와 하늘 지성소를 잇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의 구속 드라마를 온전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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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께,

이 시대에 마지막 사명을 품고 진리를 사모하는 선생님께 존경과 사랑을 담아 인사를 전합니다.
저는 이 글을 통해, 많은 이들의 신앙을 형성해 온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와 “조사심판”의 관계를 진지하게 고찰하고자 합니다.

선생님은 말하셨습니다.

“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믿음으로 즉시 의롭다 하심을 받고 영생을 얻는다(요 5:24). 그러나 구속사 전체에서는 십자가가 시작점이며, 부활하신 예수께서 대제사장으로 하늘 성소에서 수행하시는 최종 심판과 죄의 도말 사역이 구속의 클라이맥스를 이룬다.”


이 진술은 부분적으로 성경적 진리를 담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 뿌리에는 “십자가로는 아직 부족하다”는 신학적 구조가 깊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는 단지 하나의 구속 순서 설명이 아니라, 복음의 본질을 뒤흔드는 극적인 전환점입니다.


1. “의롭다 하심을 받았지만 아직 도말은 안 됐다”? – 십자가를 불완전한 구속으로 축소시키는 함정

십자가는 단지 구속의 “시작”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 사랑의 정점이며, 구원의 완성 선언입니다.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 하신 그 순간(요 19:30), 단지 인간의 죄값을 지불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 공의, 사랑이 동시에 완전히 계시되었고, 죄의 본질인 하나님과의 단절이 치유되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1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그러나 선생님은 이 ‘영원히 온전하게 하신’ 십자가 사건을 구속사의 출발점으로만 간주하며, 죄의 도말은 아직 남은 과제로 남아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복음을 완성 사건이 아니라 진행 중인 심판의 전초전으로 격하시킵니다. 결과적으로 십자가는 '조건부 사면'에 불과하며, 하늘 지성소의 확인 도장 없이는 효력을 얻지 못하는 미완의 사건이 되어버립니다.

이는 바울이 선포한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롬 3:24–26) 복음을 조용히 침식하는 또 다른 형태의 율법주의입니다. 이름은 “사단을 정죄하는 우주적 심판”이라 포장되지만, 실제로는 구원받은 자의 영생이 아직 최종 결정되지 않았다는 불안의 복음을 낳습니다.


2. 죄의 도말, 과연 미래 심판의 절차인가? ― 복음의 본질은 ‘기록 정리’가 아니라 ‘관계 회복’입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조사심판은 구원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심판이 아니라, 사단을 정죄하고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내는 최후의 우주적 심판이다.”

그러나 이 주장을 곱씹어 보면, 복음의 심장을 흔드는 근본적 질문이 솟아납니다.

만일 죄의 도말이 아직 남아 있다면, 이미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복음의 선언은 어떤 의미를 가집니까?
도말되지 않은 죄를 품은 채 영생을 얻는다는 말은, 복음 자체와 모순되지 않습니까?

성경이 말하는 ‘죄의 도말’은 미래의 회계 절차가 아니라, 십자가에서 이미 완결된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골로새서 2장 14절은 분명히 선포합니다.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을 지운 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셨느니라.”

도말의 현장은 하늘 지성소가 아니라 갈보리 언덕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세상의 죄를 친히 지시고(요 1:29),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모든 정죄 기록을 단번에 지워 버리셨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단순히 법적 문서를 삭제하신 것이 아니라, 죄로 인해 끊어진 관계를 즉시 회복하셨습니다.

“기록을 지운다”는 성경의 언어는 단순한 장부 정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잃은 자식을 품에 안으며 ‘이제 아무 빚도 없다’고 선포하는 사랑의 포옹입니다. 죄의 핵심은 법을 어긴 기록이 아니라, 아버지의 품을 떠난 단절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조사심판을 구속의 클라이맥스로 세우고, 죄의 도말을 미래의 마지막 단계로 미뤄 두면, 복음은 사랑의 초대가 아니라 행위와 절차의 회계 보고서로 전락합니다. 십자가에서 이미 끝난 하나님의 구원을 마치 하늘 법정의 최종 확인이 필요한 미완의 사건처럼 바꾸는 것입니다.

복음은 장부를 정리하는 재판이 아닙니다. 복음은 단절된 아들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와 이미 안기고 있는 그 순간입니다. 그 품 안에서 우리는 더 이상 어떤 심판의 결재도 기다리지 않습니다.

따라서 죄의 도말을 미래의 조사심판에 두는 해석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선포한 “다 이루었다”(요 19:30)는 완결의 복음을 흐리게 하고, 사랑이 주는 확신을 불안한 절차로 바꾸는 치명적 오해입니다.

복음의 정점은 미래의 법정이 아니라, 그날 갈보리에서 이미 열린 하나님의 품입니다. 그 품 안에서 죄는 지워졌고, 관계는 회복되었으며, 영생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3. “사단을 정죄하기 위한 심판”? – 복음은 사단을 이긴 사건이지, 사단을 설득하는 드라마가 아니다

선생님은 “조사심판은 사단을 정죄하기 위한 우주적 절차”라 설명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단을 어떤 법적 판결로 정죄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미 십자가에서 패배했습니다.

히브리서 2:14은 단호히 선언합니다.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사…”


골로새서 2:15도 말합니다.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십자가는 사단을 정죄하는 과정이 아니라 이미 승리하신 현장이며, 그 이후로 사단은 항소권도 없는 패배자로 기록된 존재입니다.
하늘에서 심판의 재판정이 열려 사단을 '설득'하는 장면은 복음의 이미지가 아닙니다. 복음은 누군가의 고발에 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스스로가 십자가에서 자신을 증명하신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는 것입니다.


맺으며 – 복음은 ‘심판을 넘는 사랑’이다

선생님,
하늘 성소의 복음은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 복음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하나님의 자기희생적 사랑을 하늘에까지 드러내는 영광의 메아리입니다.
우리가 하늘 성소를 통해 배워야 할 것은 “기록 정리의 불안”이 아니라, 십자가로 이미 심판을 넘은 자로서의 확신입니다.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요 5:24)라는 예수의 약속은,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랑으로 담대히 나아갈 자녀들에게 주어진 영생의 선포입니다.

부디 우리 모두가 이 복음을, 그 완전한 사랑을, 의심 없이 누리며 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사랑 안에서,
한 신앙인의 비통한 마음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의 감격 속에서
  • ?
    벚꽃향기 2025.06.21 22:45
    우리의 구원은 기록이 아닌 관계에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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