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평강이 늘 함께하시길 빕니다. 목사님께서 전하신 "성경의 무오성"에 관한 강의 두 편을 경청하며, 그 안에 담긴 신학적 입장과 성경관에 대한 열정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한 신앙인으로서 그 말씀을 경외심 속에 받아들이며, 동시에 그것이 과연 복음의 중심,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계시와 어떻게 일치하는지를 조심스럽고도 진지하게 묵상하였습니다. 그 결과, 사랑 안에서 그러나 단호한 반론을 드리고자 이 편지를 씁니다.
1. 무오성에 대한 전제: 구원 목적 중심인가, 문자적 완전성인가
목사님께서는 강의에서 성경의 무오성을 "원본에 한하여, 오류 없이 영감되었으며, 그것이 신앙의 방파제이며, 이를 거부하면 결국 자유주의와 불신앙으로 나아간다"고 반복적으로 주장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전제는 십자가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본성과는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오류 없는 문자로서가 아니라, 고난당하시는 인격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분은 고문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고, 철저히 무력한 모습으로 계시되셨습니다. 십자가는 문자적 완전성의 상징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 자기 자신을 내어주는 계시의 절정입니다. 그 계시의 방식이 오류 없는 문서가 아니라, 상처 입은 인격이었다면, 성경 역시 그 성육신적 패턴을 따르는 것이 타당합니다.
2. 성경 저자에 대한 이해: 유기적 영감인가, 기계적 무오인가
목사님은 유기적 영감을 인정한다고 하시면서도, 실제로는 성경의 모든 문장과 정보가 무오하다고 주장하십니다. 그러나 유기적 영감은 저자의 인격, 문화, 한계를 포함하여 하나님의 영이 함께 일하셨다는 뜻입니다. 이는 곧, 성경 안에는 인간의 불완전성, 시대적 한계, 심지어 신학적 오류마저도 하나님께서 감내하시며 기록되게 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은 죄인의 모습으로 오해받고, 조롱당하며, '하나님의 저주받은 자'(갈 3:13)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왜곡과 오해 속으로까지 들어오시는 방식입니다. 성경 또한 그러한 방식으로, 인간의 문화적 한계와 오류 속에서도 하나님의 진리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3. 성경의 권위: 문자적 정확성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인가
목사님께서는 성경의 권위를 무오성에 전적으로 의존시키셨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권위는 그것이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는 도구이기 때문에 존재합니다. 요한복음 5:39에서 예수님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지만,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스스로 목적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향한 증언이며,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성품을 밝히 드러내는 도구입니다.
따라서 성경의 무오성을 복음의 기초로 삼는 것은, 십자가를 복음의 중심으로 삼는 계시적 패턴과 어긋납니다. 오히려 그리스도 중심의 계시 이해에 따르면, 성경의 진리는 '정확함'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드러냄'이라는 기준으로 평가되어야 합니다.
4. 무오성 논쟁의 위험성: 방파제가 아닌 우상화
성경의 무오성을 신앙의 방어선이라 하셨지만, 오히려 문자적 무오성을 절대화할 때 성경은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우상이 됩니다. 이는 바리새인들이 성경을 철저히 지키면서도 정작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과 같습니다.
십자가는 방파제가 아니라, 열린 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방어가 아니라 자기 노출, 자기 헌신입니다. 성경이 무오해야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논리는, 예수님의 나사렛 목수의 몸 안에 감추어진 신성을 보지 못한 유대인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5. 복음의 본질과 교회의 생명력
강의에서는 영국 교회와 복음주의 운동의 쇠퇴 원인을 성경의 무오성을 포기한 데서 찾으셨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권위가 약화된 것보다 더 본질적인 위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이 교회의 중심에서 밀려난 데 있습니다.
교회를 살리는 것은 문자적 정확성이 아니라, 복음을 따라 자기를 비우는 공동체, 다시 말해 십자가형의 삶을 살아가는 교회입니다. 교회가 강력했을 때는 무오성 수호 때문이 아니라, 사랑과 자기희생의 능력으로 세상을 감동시켰을 때였습니다.
6. 결론: 하나님의 말씀은 십자가에 달린 인격입니다
목사님,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히 문자나 문장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신 인격이십니다. 우리가 성경을 믿는 것은 그 문장이 정확해서가 아니라, 그 문장이 우리를 사랑하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참된 성경관은 무오성 여부가 아니라, 그리스도 중심성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성경을 사랑하시듯이, 더더욱 십자가의 예수님을 사랑하시고, 그분 안에서 성경을 새롭게 읽어가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