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복음이 감춘 예수, 도마가 만진 예수>
선생님께,
이 글은 사랑의 경외와 복음의 간절함으로 쓰입니다. 선생님께서 펼치신 학술대회 강연은 단지 성경에 대한 강해를 넘어, 예수님의 육성을 찾겠다는 뜨거운 집념의 외침이었고, 이 시대 지성의 한 중심에서 터져 나오는 고발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자리를 빌려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질문하고자 합니다. 도마복음을 통해 회복하고자 하시는 그 ‘예수의 음성’은, 과연 복음의 중심, 곧 십자가의 사랑을 드러내고 있는가요?
1. 예수의 육성, 복음의 음성인가?
선생님께서는 도마복음을 "가장 초월적이고 신비로운, 정제된 예수의 가르침"이라 평가하시며, 이 문헌이야말로 신약성경보다 더 예수의 원음을 담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묻고 싶습니다. 도마복음의 중심에는 ‘십자가’가 있습니까? ‘부활’이 있습니까? ‘죄 사함’이 있습니까?
복음의 심장은 언제나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랑이며, 그 사랑은 피 흘림 없이, 자기 부인 없이, 하나님 나라 없이, 홀로 선 인격적 가르침으로만 드러날 수는 없습니다. 도마복음이 아무리 위대한 영지적 통찰을 담고 있다 해도, 예수님의 몸이 찢긴 자리, 곧 죄인을 위한 십자가의 사건이 배제되어 있다면, 그 가르침은 복음이 아니라 예수를 흉내 낸 지성의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2. "예수는 사건이다"라고 하신 말씀의 참의미
선생님은 반복하여 "예수는 사건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 사건은 단지 어떤 교훈이거나 시대를 뒤흔든 문화 충격이 아닙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 자신이 인간의 죄를 안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건이며, 피 흘리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자기비움의 절정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만 세상을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침묵 속에서 고통당하심으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도마복음에는 이 고통의 침묵이 없습니다. 거기에는 칼에 찔리신 어린양이 아니라, 도(道)를 논하는 선인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을 철학자로 모시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것입니다.
3. 예수의 음성을 찾고 싶다면, 먼저 그분의 상처를 보십시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오늘날 한국 기독교는 분명 병들어 있습니다. 탐욕스러운 번영신학, 왜곡된 문자주의, 반지성적 교권주의… 이 모두가 예수의 참된 얼굴을 가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욱, 우리는 그분의 찢기신 몸과 흘리신 피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복음은 완전한 진리의 문장이 아니라, 상처 입은 사랑의 고백입니다. 도마복음이 아무리 철학적으로 탁월할지라도, 복음은 상처로 기록되었고, 그 상처 속에서만 진리가 온전히 빛납니다. “도마야, 네 손가락을 내 못 자국에 넣어보아라” 하신 주님의 부르심은, 문자 이전에 자기 존재로 계시된 복음입니다.
저는 선생님의 도마복음 강의가 단순한 학술 발표를 넘어 한국 기독교에 대한 문제 제기이자 시대적 외침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간절히 말씀드리고자 하는 핵심은 이것입니다. 기독교가 무너진 자리에서 새로운 진리를 세우려 하신다면, 그 시작은 ‘도마복음’이 아니라 ‘찢기신 예수’여야 합니다.
4. 도마복음, 왜 위험한가?
도마복음은 분명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문서이며, 기독교 형성 과정에서 일어난 다양한 신앙적 흐름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이 문헌을 신약 복음서보다 더 원형적인 예수의 음성이라고 단정하신 순간, 신학적 위험이 시작됩니다. 왜냐하면 도마복음은 일관되게 영지주의(Gnosticism)의 정수를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지주의는 본질적으로 육체를 악으로, 영을 선으로 보는 이원론을 가르치며, 예수의 실제 죽음, 부활, 십자가의 대속을 무력화시키는 사상입니다. 도마복음은 부활을 신비한 지식의 상징으로 바꾸며, 예수의 고난을 철저히 침묵합니다. 복음이 아닌 것입니다.
선생님은 도마복음이 예수님의 "진짜 음성"이라고 하시지만, 진정한 예수의 음성은 “내가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내가 대신 너를 위하여 죽노라” 하신 그 사랑의 고백 속에서만 들립니다.
5. 성경의 권위는 '문자'에 있지 않고,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랑'에 있습니다
선생님은 “성경은 다 인간이 쓴 것이고, 오류도 많다”고 주장하셨습니다. 그 말은 일견 맞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답하겠습니다.
예, 성경은 상처 난 책입니다.
성경은 완벽한 문법책이 아니며, 편집되고 고치고 싸우고 토론한 인간들의 기록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상처 입은 기록 위에 십자가의 빛이 비추었을 때,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가 되었습니다.
도마복음이 아무리 ‘완전한 어록’처럼 보인다 해도, 진짜 복음은 ‘완전한 문장’이 아니라 ‘찢기신 몸’에서 나옵니다. 우리는 문자로 구원받지 않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랑으로 구원받습니다.
6. 왜 이 시대엔 ‘도마복음’이 아니라 ‘못 자국’이 필요합니까?
선생님, 이 시대가 잃어버린 것은 '신비한 말씀'이 아닙니다. 이 시대는 이미 수많은 교훈과 철학, 명상과 종교적 담론에 질식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가 진짜 목말라하는 것은, 자기 생명을 내어주는 사랑, 곧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도마복음은 많은 통찰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피 흘린 사랑 없이는 회복이 없습니다. 십자가 없이 신학도 없고, 구원도 없습니다. 진리는 철학이 아니라 고난당한 하나님의 침묵 속에서 태어난 사랑의 울음입니다.
7. 선생님께 마지막으로 간곡히 드리는 부탁
선생님, 만약 그토록 예수님의 음성을 찾고 계시다면, 가장 먼저 그분의 침묵을 경청해 주십시오. 그분은 십자가 위에서 거의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침묵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외침이었고, 그 외침은 지금도 모든 죄인을 향해 열려 있습니다.
도마복음의 신비가 아닌,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고 외치신 그 사랑, 그것만이 진짜 예수의 음성입니다. 선생님의 혜안과 지성이, 복음의 심장과 만날 수 있다면, 저는 한국 신학계가 놀라운 갱신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도마에게 하신 그 말씀으로 이 편지를 마칩니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요한복음 20:27)
(요한복음 20:28)